인도불교설화와 한국 동물설화 1 기본 카테고리

인도불교설화와 우리설화

인도불교설화

불교와 토착신앙과의 융화(融和)는 행위화(行爲和) 와 의식화(意識化)라는 두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연의 특정 대상과 장소에서 산신과 지신에 대한 제례행위가 인공적인 건물인 사찰 안에서 행해지게 한 것을 행위화라 한다면 의식화는 종교의 교리를 설화를 통해 전파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앞서 바위설화에서 행위화의 과정을 확인했습니다.

행위화가 왕조의 비호 속에 이루어 졌다면 의식화는 불교 자체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불교설화입니다. 의식화는 권력의 강요가 아니라 설화라는 친숙한 이야기를 통해서였습니다. 또한 불교설화에 영향을 받아 우리 옛 설화가 다양한 내용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불교교리를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인도설화와 불교교리를 결합해 만들어진 것이 불교설화입니다. 인도설화와 불교교리를 결합한 불교설화는 인도문화적인 특징들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대개 중국화된 이후에 이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불교설화를 우리 선조들의 재해석과 재창작의 과정을 통해 한국적 특징을 담은 설화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인도설화가 불교설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다시 불교설화가 우리 설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인도설화입니다.

인도설화

인도설화에 종교적인 내용을 보탠 것이라 불교설화도 인도설화라 할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도설화와 불교설화는 나눠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형식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소개할 판차 탄트라라는 인도설화집은 교육적 목적의 우화를 모아 엮은 책입니다. 불교설화는 판차 탄트라나 인도설화를 종교적 목적을 위해 엮은 것입니다. 힌두설화는 배제했습니다.

인도설화인 판차 탄트라는 발단갈등절정대단원이라는 단순 이야기구조(플롯)가 아니라 복합적입니다. 이야기의 갈등절정단계에 또 다른 이야기가 추가되며, 이 추가된 이야기의 갈등절정단계에 또 다른 이야기가 추가되기도 합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그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판차 탄트라

인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우화집인 판차 탄트라는 브라만 현자 판디트 비쉬누 샤르마의 저작입니다. 판차 탄트라(다섯 단계 혹은 체계라는 의미)의 첫 편은 남인도의 마힐라포퍅이라는 성의 바르다마나카로부터 시작됩니다. 장사를 위해 바르다마나카는 산지바카와 난다카라는 두 마리의 소에 짐을 싣고 하인들과 길을 떠났습니다. 산지바카가 넘어져 다리를 다치자 같이 동행하던 하인 둘에게 산지바카가 회복되면 뒤따라 오라 했습니다. 하지만 하인들은 산지바카를 정글 속 강가에 놔둔 채 산지바카가 죽었다는 거짓말을 하고는 주인 바르다마나카와 합류합니다. 여기까지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이후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홀로 남겨진 산지바카가 헤매는 곳은 핑갈라카라는 사자왕이 다스리는 지역이었습니다. 물을 마시고자 강가에 오던 핑갈라카라는 산지바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런 정글에 혼자 있는 소는 보통 소가 아니라 신과 관련된 존재라는 생각에 산지바카의 울음소리에 두려움을 느껴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핑갈라카는 도망칩니다. 그 광경을 보게 된 자칼 카라타카와 다마나카는 핑갈라카의 부하입니다.

전대의 아버지들은 대신으로 사자왕을 가까이에서 모셨지만 그들의 처지는 시종이었습니다. 다마나카는 이 상황을 이용해 사자의 신임을 얻어 아버지들과 같은 대신이 되고자 하지만 카라타카는 통나무에 깔려 죽은 원숭이 이야기를 하면서 다마나카를 말립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원숭이와 통나무이야기는 사원을 짓기 위해 쌓아놓은 통나무더미에 원숭이 한 마리가 작업부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에 통나무더미에 올라갔습니다. 통나무더미가 쓰러지지 않게 박아 논 쐐기를 원숭이가 뽑자 무너지는 통나무더미에 깔려 원숭이가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괜히 남의 일에 참견하다 원숭이와 같은 처지에 빠진다는 자칼들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다마나카는 사자왕 핑갈라카에게 가서는 핑갈라카의 두려움의 원인을 해결해 보겠다 말합니다. 소리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굶주린 자칼이 먹이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자칼 카라타가와 다마나카의 두 자칼의 대화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때로는 카라타가와 다마나카의 이야기에서 멀리 벗어난 듯 다른 동물의 대화로 이야기 하다 다시 카라타가와 다마나카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인도설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동물들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동물에 대한 이미지를 잘 활용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의 생각과 행동이 왜 그런 것인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설화 한편이 끝나기까지 스무 편 정도의 짧은 이야기가 고리처럼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식이라면 불교설화는 한 편의 이야기입니다. 불교교리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해설하는 방식입니다. 자칼 카라타가와 다마나카가 화자였다면 불교설화는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이 글에서는 불교 용어를 걸러내 일반 용어로 바꾼 다음,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바꿔 적었습니다. 이제 인도 설화에 영향을 받은 불교설화입니다.

불교설화

이와 벼룩

부처님이 사위국(舍衛國)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한 스님이 산속에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의 이가 스님의 몸에서 피를 빨며 살고 있었으며, 좌선 하는 동안에는 피를 빨지 않기로 약속하는 대신 이는 스님의 몸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마리의 벼룩이 스님의 몸에 찾아왔습니다. 이는 벼룩에게 스님의 몸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님이 좌선하는 동안에는 피를 빨지 말라 일러줍니다.

스님이 좌선에 들어갔습니다. 벼룩은 이에게 들은 말을 잊고 스님의 몸 이곳 저곳 물고 다녔습니다. 스님은 좌선을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님은 옷을 벗어 불을 붙여 태웠습니다. 결국 옷에 붙어 있던 이와 벼룩은 함께 불에 타 죽었습니다.

좌선하던 스님은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 이전의 부처)이며 이는 부처님, 벼룩은 데바닷다이다. 데바닷다는 언제나 부처님을 이와 같이 괴롭혔다. 대방편불보은경 4

이와 벼룩의 이야기는 석가모니의 전생담으로 재 편집됩니다. 위대한 종교지도자도 전생에서는 좌선하던 한 스님에 지나지 않으나 벌레들의 일들에게서 교훈적인 내용을 이끌어 내려 합니다.  불교설화의 이와 벼룩의 이야기는 판차 탄트라의 빈대와 벼룩의 이야기를 비교해 보면 조금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판차 탄트라

빈대와 벼룩, 화자는 자칼 다마나카이다.

어느 왕국 왕의 침실 침대에는 값비싼 비단으로 된 시트가 있었습니다. 그 시트에 만다비사르피니(Mandavisarpini 느리게 움직이는)라는 벼룩은 왕의 피를 빨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의 침실에 아그니무카(Agnomukha 뜨거운 주둥이)라는 빈대가 들어왔습니다. 지금껏 혼자 왕의 피를 독차지하던 만다비사르피니는 빈대에게 나가달라 합니다. 하지만 빈대 아그니무카는 손님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벼룩을 꾸짖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별의 별 피를 다 빨아 봤지만 온갖 좋은 것들을 먹은 왕의 피는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벼룩은 지금껏 왕이 잠에 곯아 떨어졌을 때만 피를 빨아왔다고 말해줍니다. 빈대도 왕이 곯아 떨어졌을 때 피를 빤다는 조건으로 허락합니다. 그때 왕이 들어와 침대에 눕자 빈대는 참지 못하고 왕이 잠에 들기도 전에 왕의 몸을 물었습니다.

빈대에 물린 왕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나 시종들을 불렀습니다. 왕은 시종들에게 침대 시트에 빈대나 벼룩이 있는지 찾아보라 명령합니다. 그 말을 들은 빈대는 몸을 피합니다. 시종들에게 발견된 벼룩 만다비사르피니는 시종들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자칼 다마나카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천성을 살피지 않고 돕는 일은 삼가야 해야 한다고. 잘못은 빈대가 저질렀지만 벼룩이 죽었듯이.

왕조를 위한 설화

판차 탄트라가 왕자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면 불교설화는 종교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이야기로서, 서로 목적이 다릅니다. 그래서 불교설화가 교훈적인 이야기로 삶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라면 판차 탄트라는 왕자들의 처세적 삶의 방식을 목적으로 합니다. 종교와 우화로서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불교설화가 종교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지만 판차 탄트라처럼 통치자의 덕목, 자질, 소양, 통치방식을 다룬 설화가 있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판차 탄트라의 영향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점차 권력자가 필요한 이야기를 만들어 추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불교설화 중에 앵무새의 충고는 태자의 교육을 위한 목적을 가진 이야기입니다.

앵무새의 충고

『여자를 탐하여 정조를 무시하는 것이 첫째요. 술자리를 베풀고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 것이 둘째요, 승부에 치우쳐서 예의와 교()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이 그 셋째요, 유렵(遊獵)과 살생을 예사로 하여 자비심이 없는 것이 그 넷째요, 다른 사람을 쓸데없이 즐겨 꾸짖고 착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그 다섯째요, 부역처벌(賦役處罰)을 보통 법보다 배로 무섭게 한 것은 그 여섯째요, 백성의 재물을 뺏는 것은 그 일곱째요. 이상 일곱 가지 일은 왕의 스스로의 안위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다시 세 개의 조항이 있어서 왕의 국운이 기울어지게 하는 것은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에게 아첨하는 나쁜 사람과 친하는 것이 그 첫째요, 현인이나 성인을 멀리하고 충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그 둘째요, 즐겨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 민력의 함양을 잊어버리는 것이 그 셋째요, 이상 세 가지를 제거하지 아니하면 왕의 국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다.』 불교의 설화, 운수행각, 앵무새의 충고 170p ~ 172p,

카아시국의 악수(惡受)라는 왕에게 왕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앵무새가 충고해 준다는 설화입니다. 불교설화에서도 인도설화처럼 앵무새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을 의인화해 등장시킵니다. 또한 한국의 토착신앙에서 천신의 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새가 한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앵무새의 충고는 친숙했을 것입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새가 전해주는 하늘의 말은 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동물이 등장하는 불교설화는 토착신앙인들의 의식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야기 끝에는 앵무새는 석존(釋尊)을 말함이다라 하며 석가모니를 천신과 동일한 권위자로서 전달합니다. 토착신앙과 불교의 사유방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당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라 보입니다. 석가모니 역시 초월적 존재자인 천신의 권위를 갖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토착신앙이 초월적 세계와 자연현상과 같은 현세적 권위를 갖는 것처럼 불교설화에서도 석가모니도 현세적인 권력도 갖고 있다 말한다.

머리털 공양


머리털 공양.jpg


사찰에 가시면 각 건물에 불교설화와 관련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들 중에서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바로 머리털 공양에 관한 불교설화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쇼오옹왕의 왕궁에 석가모니가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가큐라는 사람이 석가모니를 만나 공양하기 위해 그의 전재산을 바쳐 연꽃을 구해 공양하려 했으나 그 꽃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게 됩니다. 왕궁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왕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진흙탕이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값비싼 옷을 진흙탕위에 펼치고 그 옷을 밟고 석가모니가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러자 미가큐도 자신의 사슴 가죽옷을 벗어 진흙탕위에 펼쳐 놓았으나 누군가 미가큐의 허름한 옷을 집어 던지고 자신의 값비싼 비단옷을 펼쳤습니다. 그러자 미가큐는 석가모니에게 공양할 것이 이제 머리칼 밖에 없다고 생각해 자신의 머리를 풀어 진흙탕위에 펼치고 석가모니가 밟고 지나가기를 바랬습니다. 그러자 석가모니는 값비싼 비단옷이 아니라 미가큐의 머리카락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미가큐의 머리카락을 다른 사람이 밟지 못하게 했는데, 석가모니는 훗날 미가큐가 성불해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될 것이라 말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의 말이 끝나자 미가큐는 하늘로 올라가고 미가큐의 머칼이 바닥에 그대로 남았있었습니다. 그러자 쇼오왕을 비롯해 그 대신들은 미가큐의 머리카락을 정광여래 (錠光如來, Dipamkara, 연등불) 의 머리카락으로 생각해 잘 모셨답니다. 이야기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이 왕의 덕목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왕은 점쟁이들을 불러 이제 곧 태어날 태자의 앞길을 점치게 했다. 그들은 태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자는 위엄과 덕망을 겸한 큰 인물이며 왕위를 계승하면 전륜성왕이 되어 전 세계를 통일하게 될 것이며, 출가하게 되면 불타가 되어 전 인류를 구제할 것이라고 왕에게 말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점쟁이들을 후하게 대접했다. 네 사람의 유모에게 키워진 태자는 8,9세가 되어서는 덕서(德書) 산수음악무술을 모두 터득하였다. 불교의 설화(한국불교설화연구회), 반야용선, 머리털공양

덕서, 산수, 음악, 무술을 가르치는 것은 왕위 계승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소양이자 국가경영능력 입니다. 또 사교성은 타국과의 외교 협상력을 위해서, 신체를 단련하고 자신을 보호할 호신술을 배우는 것 등은 모두 통치자가 될 태자의 교육과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머리털 공양설화에서는 태자가 귀의(歸依)함으로서 불교 승려와 왕권은 대칭적인 이동으로 함으로서 불교의 권위를 내세웁니다.

토착신앙의 각 신들이 자연현상을 토대로 권위를 갖는다면 불교의 석가모니는 자연현상과 결합된 존재인 왕과 결합해 현세적 권위를 갖습니다. 그렇다고 불교가 왕권과 결합해 제정일치의 국가를 지향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사세왕의 설화를 보면 불교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려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사세왕의 후회

아버지 빈비사라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아사세왕에게 병이 들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치료할 수 없자 아사세왕은 자신을 찾아온 신하에게 말하기를 몸의 병은 치료할 수 있으나 부왕을 죽인 마음의 병은 치료할 수 없으니 어떤 명의라도 치료할 수 없다 합니다. 그에 대해 신하가 아사세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대왕께서 너무 심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원래 법이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출가법(出家法)과 왕법이 있는데, 왕법에 따르면 아버지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어떤 종류의 벌레가 어머니 배를 뚫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이 벌레의 태어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그 벌레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한 방법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출가법에 따르면, 가령 모기 한 마리를 죽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가의 이야기지 대왕의 경우와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왕께서는 대왕께서는 마음을 활달하게 가지시고 걱정하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불교의 설화, 발고여락, 아사세왕의 회개 14p 하단에서 15p상단

아사세왕의 회개설화에서 아사세왕은 승려가 됨으로써 불교가 현세의 권위도 갖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대국가 성립시기에 특정 인물의 신화를 통해서 현세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권력현상 이라면 종교는 신화적 권위를 뒷받침하는 사회현상에 영향을 주려 했습니다.

현세와 내세를 분리해, 정치는 현세의 권위를, 종교는 내세의 권위를 갖게 되면서 정치와 종교는 양립하게 됩니다. 불교는 이 양립을 통해서, 정치권력과 타협이 가능하게 되고, 종교만의 내세 권위를 통해서 제정일치시대에서 제정분리 시대로의 이행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되어있는 인도의 신분제를 무시하거나 폐지를 주장 하면서 왕권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회 신분제는 반대하면서 국가권력은 인정하는 것이 당시 불교 종단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교리상 그러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권력의 지지를 얻어 인도는 물론이고 타 국가에 불교 교리를 빠르게 전파하고 국가적 종교로서 공인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되기는 합니다. 불교가 국가 종교로서 선택되었던 아쇼카왕 시대의 이야기에서 그런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쇼카왕 설화

『아쇼카왕은 평소 불교 수도자들을 존경해왔답니다(불교에 심취했는지 왕권강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신하 야시야는 불가 수도자들이 신분에 관계없이 출가할 수 있으며 특히 크샤트리아족이나 브라만족은 극히 드물고 천한 바이샤족과 슈드라족이 많음을 지적하며 수도자들을 신분이 천한 자들이라 존경할만한 가치가 없음을 아쇼카왕에게 말합니다.

아쇼카왕은 신하들을 모두 불러모으고는 신하들에게 각기 다른 동물의 머리를 팔아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신하들은 시장에 나가 동물의 머리를 팔아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신분과 관계없이 죽은 시체의 머리를 팔아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신하들은 시장에 나가 팔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죽은 시체의 머리를 사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죽은 시체의 머리를 그대로 들고 온 신하들에게 아쇼카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내 머리를 사가는 사람이 있을까?” 신하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대답합니다. 죽은 시체의 머리는 귀천과 종족을 가리지 않고 혐오를 받는 것과 같이 불교 수도자를 경배하는 것은 출신이 어떻든 불교수도자이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왕이 종교인을 경배한다는 것이 인도뿐만 아니라 신분제 국가들에서는 파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소카왕은 왜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는까요? 전륜성왕(轉輪聖王), 아육왕(阿育王)으로 불리며 황제중의 황제로 추앙받는 아소카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 왕이자 무력을 통한 정복전쟁을 포기하고 불교를 통해 종교적, 문화적 통일을 이루려 했다 합니다. 작은 종파에 지나지 않았던 불교를 인도 전역과 세계적인 종교가 될 기반을 마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도의 수 많은 종교 중에서 불교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 정치 상황에 필요해서였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불교는 왕권은 인정하면서도 왕 이하의 신분제를 인정하지 않았던 점과 왕권과 종교가 내세의 권위와 현세의 권위를 양분하게 되면서 아소카왕은 자신의 정복전쟁으로 가족과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또 불교가 인간의 문제를 다뤘기 때문입니다. 원시종교들은 신화와 자연현상, 인간과 자연과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불교는 인간의 삶을 다룹니다. 인간 삶 중에서 생과 사의 문제와 인간의 갈등과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데, 갈등의 해소는 윤회사상과 보편적 윤리에 따르게 합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의 통합에 필요했을 것입니다.

불교는 때와 장소, 상대에 따른 행위 때문에 선악이 결정되고 윤회의 동기가 된다고 합니다. 전생의 선악의 행위 때문에 현세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개인의 행()과 불행(不幸), 신분제의 문제들을 주로 전생과 현세, 내세의 문제로 설명하는 불교의 교리는 사람들의 불만을 권력과 체제의 문제로 향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아소카왕은 불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는 하지만 그 이유는 아소카왕 만이 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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