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관용, 그 양립 가능성에 대하여 What's up?



지난 달, 교황 프랜시스의 미국 방문은 미국 뉴스 프로그램에게 풍성한 소재를 제공했었다. 사실 교황 프랜시스에 대한 보도 시간 할당은 미국 언론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에 속한다. 1980년대 5공화국 당시 KBS 9시 뉴스가 아홉시를 알리는 '땡' 소리에 이어 오프닝 멘트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항시 시작해서 사람들 사이에 '땡~전'이란 용어가 회자되기도 했지만, 미국 뉴스 프로그램은 대통령인 오바마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하기는 커녕 대통령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국민을 상대로 발표하는 담화문은 정규 뉴스를 중단하고서라도 생방송으로 내보낸다. 대통령이 외국 국가 원수 누구를 만나건, 어디를 방문해서 누구를 위로하건, 그런건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더라도 국가 정책과 관련된 사항은 매우 중대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감안할 때, 교황의 쿠바 방문으로부터 그의 행적을 보도하기 시작하여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는 장면은 물론, 미국 공식 방문 엿새 동안 미국 언론이 교황의 일거수 일투족을 전부 커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셈이다.


작년 12월 외교 관계가 단절된지 50년만에 미국과 쿠바 관계 정상화가 발표되어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는데, 사실 그 배경엔 교황 프랜시스의 중재가 큰 몫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한 나라 미국을 표방하는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대쿠바 관계에서 너무 저자세로 나간다고 비판하면서 쿠바에 내려진 경제 제재(sanction) 해제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통령의 대쿠바 정책에 불복의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하원의장이라고 할 수 있는 Speaker 존 베이너는 교황 프랜시스를 접견하는 등 교황의 미국 방문에는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인구 대다수가 카톨릭이기에 카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매도했던 막스가 주창한 공산주의와 카톨릭, 뭔가 잘 조합이 맞지 않는 컴비네이션 같지만, 미국과 쿠바의 외교 정상화가 발표되던 당시 쿠바의 수도 하바나에 위치한 카톨릭 교회는 일제히 종을 울려 환영의 뜻을 표시한 바 있다.


교황의 미국 공식 방문 기간 동안, 언론은 교황을 따라 다니느라 주말 텔레비젼이 매우 분주했다. 종교와 정치 사상을 떠나 이해를 달리하는 그룹의 관용을 촉구하는 교황의 메시지 뿐만 아니라, 교황을 맞이한 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라든가, 필라델피아를 방문했을 때 군중에 섞여있던 아이 머리에 키스를 한 장면, 그리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벌어진 대규모 미사 등 미국 언론에 충분한 기사거리를 제공해줬다. 그런데, 교황 프랜시스에 대한 언론의 집중적 관심은 그가 미국 방문을 마친후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교황의 비공개 행적이 밝혀지면서 그는 다시 한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었다.


교황 프랜시스가 킴 데이비스라는 켄터키 주에 위치한 작은 시 시정부 관료를 비공식 방문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가 전달했던 관용의 메시지가 갑자기 퇴락하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되었다. 킴 데이비스라는 여성은 시정부에서 결혼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하급직 공무원이었다. 이런 그녀가 하루 아침에 뉴스 탑 기사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된 이유는 종교적 이유로 인해 게이 커플의 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법원 대법관들이 게이 커플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은 후라서 킴 데이비스의 행동은 논란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가장 상급 법원인 대법원 법관들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마당에 일개 하급직 공무원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게이 커플에게 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절한 사실이 진보 입장에서는 미국의 법 질서를 무시하는 위법적인 행동으로, 보수 진영 입장에서는 골리앗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를 향해 자신의 믿는 바를 지키기 위해 용기있게 돌을 던지는 다윗과도 같고, 소신을 지키는 행동때문에 박해를 받는 순교자와도 같다는 서로 상반된 여론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게이 커플이 이성 커플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누리게 하기 위해선 그들의 결합을 법 테두리 안에서 인정하는게 우선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치면 혼인 신고와 같은 결혼 증명서를 발급하는게 동성 결혼 합법화의 첫 걸음인 셈이다. 켄터키 주 법원은 킴 데이비스에게 동성 커플에서 결혼 증명서를 발급하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킴 데이비스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게이 커플이 결혼하는 걸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결혼 증명서 발급도 거부할 수 밖에 없단 입장을 굳건히 고수하였다. 결국 그녀는 이 때문에 유치장에 갖히게 되고 말았고, 교황 프랜시스는 미국 방문시 비공식적으로 킴 데이비스를 방문해 대화를 나눴다고 전해진다. 교황의 킴 데이비스 방문은 비공식 일정이었기에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교황이 미국을 떠난 후 킴 데이비스는 로마 교황청이 먼저 자신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다고 언론에 밝혔다. 동성 결혼이나 낙태를 혀용치 않는 카톨릭 교회를 대표하는 수장이 동성 결혼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밝히는 메시지를 전한 직후, 게이 커플에게 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킴 데이비스와 만났다는 사실은 (그것도 교황이 먼저 연락해서) 뉴스를 듣는 이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소식이었다.


원래 종교란 배타적 교리를 가진 신앙 체계이다. 한 종교를 가진 사람이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내가 믿는게 맞는데, 다른 사람이 믿는거 또한 맞다고 동의하는게 뭔가 이상하다. 게다가 오랜 기간 동안, 종교와 정치적 지도자는 하나였다. 적어도 국교라는게 있어서 정치 지도자가 국교 신봉자이어야 했다. 따라서 종교는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있는 정치적 파워를 갖고 있었다. 중세와 근대 유럽 국가들의 신교 박해가 그 예이다. 당시 유럽의 정치적 수장은 대부분 구교 신봉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 후기로 접어들면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기 시작했고, 현대 국가들은 개인이 믿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천명하고 있다. 딜레마는 킴 데이비스와 같이 자신이 가진 공적 지위를 이용해(비록 하급 공무원이긴 하지만) 자신의 믿음 체계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행동을 할 때이다. 미국 헌법은 엄연히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긴 하지만, 개인의 행복 추구를 방해하는 행위 또한 엄연히 헌법의 기본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황 프랜시스가 이례적으로 동성 결혼과 낙태에 대해 관용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고는 하지만, 동성 결혼와 낙태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은 여지껏 변함이 없다. 종교란 세상 돌아가는 것과 관계없이 변함없는 고유한 믿음체계를 유지한다. 안 그러면 그건 종교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와 관용, 이 둘은 과연 양립 가능한 것일까? 교황 프랜시스를 보면 가능한 거 같다.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진 관용의 메시지는 그의 믿음과는 상이하지만, 바로 자신의 믿음과 상이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관용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믿음과 상이한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자신의 믿음 체계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프랜시스의 킴 데이비스 방문 소식이 약간의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는 킴 데이비스라는 여성이 자신의 위법 행위(공권력 남용)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 위해 이를 이용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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