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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을 배우는 시기에 어울린 들고양이 같은 친구들과 사회가 적대적 환경이라는 인식 덕분에 한동안 말에 날이 서있었다. 사람은 언어로 서열과 친분을 확인한다. 공격성을 드러내는 방식에 따라 교양 있는 혹은 천박한 말투로 나뉜다.


은어와 전문적인 단어는 외부자에게 진입장벽이며 내부자들의 결속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무리임을 확인하고 구별한다. 법조계와 노동계, 언론계, 학계 등으로 나누어지는 무리는 쓰는 언어가 조금씩 다르다. 언어와 무리는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언어를 기반으로 이해와 감정을 나눈다. 슬픔과 고통과 분노를 나누는 방법은 깊은 결속을 가져오지만 그만큼 심리적 부담이 있다. 종종 공통의 웃음코드를 확인하는 걸로 무리를 구분 짓고 결속을 확인한다.


웃음은 울음의 진화된 표현이다. 얼굴 근육을 격하게 움직여 눈을 일그러뜨리고 입을 벌리고 이를 드러낸다. 원시의 으르렁거림 같은 웃음은 공격성을 내포한다. 공격성이 공통의 적을 향할 때 공동체의식은 강화된다. 공통의 주제로 웃는다는 건 하나의 무리로써 공감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준다. 인간은 무리를 벗어나 살 수 없다. 웃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소수자들의 분노는 당연하다. 분노가 임계를 넘어설 때 소요가 일어난다.


무리를 공격하는 적에 맞서거나 사냥감을 결정하는 것은 리더의 역할이다. 웃음을 주도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고양감이 주어진다. 불안한 서열 확인에 대한 강박관념은 ‘부장님 개그’라는 말도 만들어 낸다. 리더가 공격성을 드러내는 방향은 내부를 향하는 것보다 적을 향하는 것이 안전하다. 공격성보다는 웃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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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성을 내부로 향하는 리더는 서열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불안감은 정통성의 부재나 자신감의 부족에서 온다. 인간 사회는 교감으로 이루어진다. 교감하는 무리는 리더의 불안감을 안다. 반골의 태생들은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리더의 빈틈을 찾는다. 순응의 유전자를 타고난 다수는 기존의 권력자가 아니라 새로운 영웅을 응원한다. 기득권에 저항하는 새로운 리더를 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하지 못하는 건 그만한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는 국민이 개새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쉽지 않다. 사람의 본성엔 당연히 개와 같이 무리와 서열에 대한 복종심이 내포되어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공격성에 동조하는 웃음을 짓는 사람들은 좀 더 안전한 큰 무리에 속하고 싶은 본능에 따른다. 본능은 마냥 거부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환경에 자신을 맞춰 살아가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환경을 인간에 적합하게 맞추고 다시 변화된 환경에 자신을 맞추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되는대로 살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인이 된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결정할 수 있고 삶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다.


들고양이 같은 결손가정 청소년들의 대화는 거칠었다. 보이는 곳에 저들보다 약한 다른 소수자를 찾을 수 없기에 공격적인 웃음의 코드는 자학적이다. 가출을 할 만큼 불안정한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웃음의 재료로 삼기도 한다.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이 어린 마음에 정제되지 않은 거친 언어로 튀어나왔다. 누군가 너희 집도 우리 집처럼 콩가루 가족이라는 말을 하고 다들 자지러지게 웃었다.


또래 그룹에서 웃음을 유발한 아이는 우쭐해진다. 별 것 아닌 말장난으로도 키들거리는 나이다. 누군가 광고카피 문구였던 ‘우리 집은 베지밀 가족’이란 말을 꺼냈다. 콩을 갈아 만든 음료는 풍비박산 난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의 대체어로 쓰였다. 더이상 접두사와 접미사로 욕설을 사용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운이 좋았다.


사회화를 거치면서 순치과정도 겪었다. 예의를 배웠다. 상대에게 존칭을 하는 게 편하다. 방심하거나 무의식에서 간격이 가깝다고 느껴지는 상대에게는 가끔 예전의 말버릇이 튀어나온다. 느닷없이 드러내는 공격성에 상대가 당황하거나 상대방의 얼굴빛이 변하고 나서야 아차 하는 마음을 갖는다. 몇 번인가 날카로운 말로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버릇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차차 말을 줄이게 되었다.


말을 하지 않고 살기도 어려운 일이라 말을 구분한다. ‘마음을 담은 말’과 ‘상황에 맞추는 가벼운 말’로 나뉘었다. 마음을 담는 말에는 진심을 담고 약속은 지켜야했다. 생각의 틀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한말을 지키지 못하고 살면 생각의 틀이 어그러진다. 아무래도 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단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 중 ‘수신(修身)’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소승적(小乘的. 시야가 좁아 개인적 욕심에 얽매이며 옹졸함)’인 사람이다.


파카한일유압 사태가 터졌을 때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는 상급단체가 조금 못 미더웠다. 나만큼의 의심을 품은 동료에게 먼저 도망가지는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몇 번인가 이만큼이면 되지 않았나 자문을 했고,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보기가 미안하고 불편하다는 말도 들었다. 이미 자본 쪽에 붙어서 바보짓을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부당한 처사를 지적하는 건 신분주의 사회에서 신분차별의 적폐를 지적하는 것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바보짓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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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


파카자본은 한일유압을 인수한 후에 획득한 유압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경기도에서 조성한 외국인 전용공단에 세제혜택을 받고 입주했다. 원래 계획은 자연스러운 인적 구조조정 후 2~30%의 인원을 남기고, 외국인 전용공단에 유압생산설비를 갖추고 입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생긴 후 계획을 수정했다.


법무법인 김앤장의 어시를 받는 미국계 글로벌 기업의 노무관리는 다른 토종기업들의 우악스런 노무관리와 달랐다. 다른 곳에서 하는대로 깡패를 풀고 개별적 테러를 하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노-노갈등을 깔고 가는 방법이야 기본이지만, 노조상급단체와 투쟁작업장의 반목을 유도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몇몇 조합원과 인터뷰를 하고 회사 관리자를 만났다.


기업인수로 획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세제지원을 받는 공장을 짓고 기존 공장의 사람들을 정리하는 문제에 대한 방문으로 알았다. 노동조합설립에 한 다리를 걸치고 민주노동당 대의원 당원이었던 사람이 있었다. 완장의 위력에 취했다. 작업현장에서 무슨 트러블인가로 안전화를 벗어 상대방을 때렸다. 회사와 노조로 구성된 징계위원회에서 노조가 중징계를 주장했다. 앙심을 품었다. 사장 차에 타고 몇 번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금속노조 홈페이지에 ‘감나무’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파카한일유압 노조 지도부의 성희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글의 뉘앙스와 당시 정황으로 볼 때 감나무는 ‘그’라고 추정한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직접 글을 올렸을 가능성도 있다. 작업현장에 50대의 여성조합원이 몇 명 있었다. 지금에야 자체적으로 내부감사를 하지 못해 자정기능을 상실한 조직은 무너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그저 서운했다. 노동자의 편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아이피만 오픈해도 답이 나오는 뻔한 계략에 몇 번씩 실태조사를 했다.


법률적인 문제는 변호사에게 맡기고 각종집회와 시위에 피켓을 들고 참가하는 것 외에는 저항 방법이 없었다. 살자고 싸우는 사람들을 극단적인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없었다. 지원을 요청하는 집회가 없으면 철망이 쳐진 회사 담장아래 모여 노동가요를 틀었다. 자본이 방법을 하나 가르쳐주었다.


굴삭기 유압 컨트롤 밸브는 소비재가 아니다. 불매운동이 가능하지도 않고 파카 기업의 홈페이지에는 따로 글 쓸 공간이 없다. <PD수첩>을 비롯한 몇몇 시사 프로에 방영된 뒤로 회사 측의 조건이 바뀌었다. 113명을 당장 해고하지 않으면 경영이 위태하다던 말이 32명만 자르면 급한 불은 꺼진다고 했다. 소비재를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더라도 대중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한참 미국산 쇠고기 수입연령 문제로 인터넷이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들고 사회정의와 현안에 관한 말을 하는 곳은 다음의 아고라였다. 처음엔 어색하게 글을 썼다. 따로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글도 쓰다 보니 조금 늘었다.


댓글로 나마 관심과 응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약자의 정당한 분노에 마음이 기우는 건 사람의 본능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서툴게 타자를 치는 뒷모습을 보고 든든하다고 말하는 형님이 있었다. 그 글을 읽고 우리가 이러고 다녔다. 그 일이 그런 의미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는 동생도 있었다.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별거 아닌 모습에도 기대를 품었다.


나는 내가 아는 이들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다른 이들이 나만큼 타인에 대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여 기억에 남겨지는 부분이 있다면 잘난 사람은 아니어도 좋은 사람이었으면 한다. 호구는 사양한다. 네트워크 판매로 돈을 번다며 다단계를 권하던 친구에게 다단계를 하는 동안은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재산을 형제들 몰래 본인 명의로 고치기 위해 몰래 유언장을 작성하고 공증을 부탁하는 전화를 거절해 끊어진 인간관계도 있다. 고난을 함께하는 것보다 범죄의식과 부당이익을 공유하는 관계가 끈적하다.


검찰조사를 받는 일로 말단 공직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렇게 했다. 그 기간 동안 몇 안 되던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전화 통화기록과 위치추적을 사후 통보하는 검찰에게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희망씨앗’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시는 분이 다른 동료 분들과 회사에 찾아왔다. 글을 보고 식사라도 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따로 밥 먹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선의를 만나면 대처 할 방법을 찾지 못해 당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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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공장에 다닐 때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생의 아버님이 중병에 걸렸다. 병원에서 피를 날마다 갈아주느라 돈이 많이 든다고 헌혈증을 부탁했다. 그간 했던 헌혈증은 어떤 아이 백혈병 치료한다는데 다 주었다. 아는 사람 일이라 헌혈증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딱히 갈 곳 없는 휴가기간에 헌혈증 수십 장을 모았다.


전화를 하니 고맙다며 당장 찾아온다고 했다. 택시나 버스를 타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그 녀석은 차를 샀다. 새 차를 끌고 나타나 고맙다고 헌혈증을 받아가는 모습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당장 차가 필요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애써 끌어 모은 선의가 사그러들었다. 내가 가진 다른 자산들처럼 선의도 풍족하고 여유롭지는 않았다. 더는 헌혈증을 모으지 않았다.


‘희망씨앗’님을 보고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선의를 무색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기륭전자, 용산참사, 삼성 반도체 피해자 등 정작 더 절박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야할 선의를 훔쳐오는 것 같았다.


약자와 강자의 싸움에서 약자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본성은 선하지만, 약자가 항상 선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약한 처지를 핑계로 삼아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시작이 목적을 가진 글쓰기였다. ‘법률 대리인을 통해 법정싸움을 함께 하는 해고자’라는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차마 적지 못했다.


소수지만 다른 사람들의 선의와 헌신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랜만에 나타나서 타인들의 선의로 모인 투쟁기금 중에 제 몫을 내놓으라며 난동을 부리던 사람이 있었다. 숙식을 제공하던 동료의 카드에서 몰래 돈을 인출해서 유흥비로 쓴 사람도 있다. 여기저기에 어려운 소리를 하고 돈을 빌려 잠적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법 판결을 앞두고 하나도 빠짐없이 파카자본과 서약서를 작성하고 돈을 받았다. 판결을 앞두고 회사 측의 명분을 세워주었다. 한배를 탄 동지라는 말은 현실과 겉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소진하며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의 이야기를 적었다.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수고롭게 댓글을 달아 응원을 다는 마음이 고맙지만 온라인과 현실의 거리는 컸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의도로 인터넷에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 같은 양천고의 김형태 교사는 더 이상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어진 인연과 사회적 자산을 기반삼아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듯했다. 그는 훗날 서울시 교육의원에 당선되어 내부비리를 고발해서 잘렸던 사학재단에 메스를 들고 방문했다. 수술이 성공적이었는지 똥물에 물 한바가지를 희석한 효과를 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따로 할 일도, 다른 방도도 찾지 못했다. 소수가 되어 갈수록 남은 사람들이 감당할 무게는 늘어가고 파카자본의 편에 선 사람들은 당당한 비웃음을 날렸다. 집회 신고를 하고 노동가요를 틀어댔다. 뼈가 시린 모욕을 당하거나 현장에서 억울한 꼴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면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나 김진숙의 추모사를 틀고 유리가 부르르 떨리고 음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볼륨을 올렸다.


효과는 좋았다. 개중 뻔뻔한 놈은 ‘나와서 복직하겠다는 놈들이 일하는 선량한 사람들 괴롭힌다’고 직접 항의도 했다. 영악한 사람이다. 고통 받는 약자의 프레임을 자본의 편에 선 선량한 자신들에게 씌운다. 우리는 폭도가 되었다. 그런 날은 경찰이 더 일찍 출동한다. 보통은 불편한 표정으로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태도였다. 볼륨을 조금 줄였다가 십 여분 뒤 경찰이 가고나면 다시 볼륨을 올려달라는 부탁도 했다. 자본의 편에 들고 싶어하며 유독 떽떽 거리는 경찰도 있다. 그러면 후속곡으로 DJ.DOC의 <포조리>를 틀었다. 바로 틀면 싸우자고 할까봐 <삐걱삐걱>에서 이어지도록 했다.


새가 날아든다 왠갖 짭새가 날아든다
새중에는 씨방새 날지 못하는 새 짭새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문제야 문제 우리나라 경제 좆같은 짭새와 꼰대가 문제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짭(짭)짭(짭)짭(짭) 짭새가 문제


DJ.DOC의 <포조리> 中



아무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억눌려 터질 것 같은 사람들의 원을 그렇게라도 풀어주어야 했다. 이번 정권과 지난 정권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발언이 탁구공처럼 오고 간 뒤 앰프를 설치하고 빅뱅의 <뱅뱅뱅>을 틀었다는 뉴스를 보고, 니들도 막상 할 수 있는 건 없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작전지휘권이 미국에 있고 생계형 군납비리로 너무 많이 갉아먹었다.


일반 대중들의 여론과 시선을 모아 재판이나 협상과정에 조금이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현실을 알아가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의지하는 이들이 있고, 기대하는 이들이 있고, 응원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계속 글을 썼다.


가끔은 글을 읽어주고 좋은 말로 응원해주는 이들의 마음에 들기 위한 글을 쓰기도 했다. 글의 내용이 참담해지기도 하고 개인적인 응어리를 풀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덩어리진 짙은 안개처럼 모호하던 생각과 감정들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근거는 없지만 나는 어쩌면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삶과 행동들을 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폭발하는 감정의 원인을 생각하고 흐름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종교의 순기능은 신자들이 자신을 지켜보는 절대자의 시선을 느끼는 데서 출발하지 싶다.


인터넷 서칭을 했다. 파카하니핀 한국 총괄사장의 스케줄을 알아냈다. 개인적인 모임을 찾아가 선전물을 돌렸다. 노동부 직원이 배꼽인사를 하던 노무담당 이사는 인터넷 검색으로는 노출되지 않았다. 노사쟁의가 공안사건으로 처리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 중에 트위터에 내 글을 링크해 주는 사람들을 보았다. 별거 아닌 일로 먹먹해졌다. 자신을 어떻게든 드러내려는 사람들 속에서 별빛처럼 보였다. 당당하게 살자고 시작한 싸움인데 빚이 자꾸 늘어갔다. 빚은 족쇄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산으로 환산된다.


담당하던 정보과 형사가 은근하게 액수를 추정하며 회사 측 관계자와 연결해 줄 수 있다는 말을 흘릴 때 거절할 수 있었다. 적은 돈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말은 못 했지만 힘들다고 느낄 때 가끔 생각이 났다. 김지하 씨가 박근혜의 연임을 주장할 때 많이 힘들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고생했던 이들과 넉넉히 나눌 정도였다면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런 자본이었다면 억울해서 싸우는 사람도 생겨나지 않았을 일이다.


몇 년을 보다 보니 제법 정이 들었나보다. 정보과 형사가 취업 자리를 알아봐 준다고 했다. 경찰 하나 정도 알고 지내면 살아가며 도움 되는 일이 있다고 친분을 이어가자고 했다. 유능한 경찰은 사석에서 형동생으로 지내는 정보원을 수십 명 관리한다. 휴민트[Humint. Human(사람)과 intelligence(정보)의 합성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얻은 인적 정보]가 될 기회도 버렸다.


정보원 노릇 하고 싶다는 사람은 나 아니더라도 많다. 다만 경찰도 사람이라 되도록이면 자기가 끌리는 사람과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떠나간 동지들 대신 정보과 형사에게나마 좋은 인상을 남겼나보다. 아직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기문 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보고서를 작성했다. 주권국의 대표자로는 힘들겠지만 식민지의 대리 통치자로는 무난한 인물이다.


파카윤리규범을 보면 파카그룹의 경영철학은 제법 괜찮은 편이다. 다만 다른 많은 회사들처럼 회사 이름 뒤에 코리아가 붙으면서 한국식 이윤을 추구한다. 그래도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많을 듯 싶다. 지금은 그룹 소식지를 책자형태로 발간한다. 인상 좋던 파카그룹 한국 총괄사장은 정년퇴직 후에도 자신의 별장과 선상크루즈에서 열리는 동양철학 강좌를 듣는다.


정리해고의 명분을 더하기 위해서인지 감나무라는 아이디로 금속노조에 글을 올린 것으로 추정했던 사람도 함께 잘렸었다. “내가 회사를 위해 한 것이 얼만데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는 절규로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사람이었다. 따로 그를 위해 기억을 할애하기에는 시간이 좀 모자랐다. 양산에 있는 파카그룹 자회사에 장기 근속자로 있다고 이름과 사진이 그룹 소식지에 올랐다.


그의 선택과 자본의 의리가 부럽지는 않다. 딱히 그를 미워한 적도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결과와 책임은 자신의 것이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말을 하며 자신의 아이들은 노동자로 키우질 않는 노동운동가들과 얼마 되지도 않는 자산을 노동쟁의와 정의감에 소진하고 지금은 연락이 끊어져버린 사람들이 아쉽다.


이유가 뭐가 됐든 돈을 받지도 합의서에 서명하지도 않았다. 파카자본의 대량해고 사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는 계속 유지된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제법 비싼 권리다. 시간이 지났어도 파카자본이 잘못했고 치사한 일이었다. 노동자의 신분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주었어야 한다. 노동자는 쓰다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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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이 지나 다시 노동으로 하루를 소진해야 영위할 수 있는 삶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르고 자발적 노동개혁이 이루어진 만큼 노동에 비해 경제적인 여유나 시간적인 여유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전과는 세상과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다름을 느낀다. 읽기가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다면 쓰기는 얽혀있는 감정과 생각을 다듬어줬다.


여전히 겉모습은 초라하지만 미묘하게나마 이전의 나보다 조금 더 자랐다는 고양감이 들었다. 부족한 여유지만 억지로 조금씩이라도 쓰는 습관을 유지하려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순수한 휴머니즘으로 인간과 생명들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 타인에게 욕을 먹지 않을 만큼 적당히 이기적이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기 위해 눈과 손이 닿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편안하기를 원한다. 최소한 억울하지는 않기를 원한다.


이건희 씨처럼 아버지의 유산을 숨기고 형제와 재판까지 해가며 더 많이 갖길 원하지 않는다. 반기문 씨처럼 애국심과 사명감이 투철하지 않다. 김지하 씨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추구하는 가치도 없다.


살아있는 사람은 완전하게 존경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살아있다는 건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순간순간 삶의 선택들을 지나오면서 조금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고양감은 주위를 고려하지 않은 자기기만이거나 위선일 수도 있다. 행여 위선이라 할지라도 죽는 날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조금은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범우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