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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2월 16일, 광주 남구 지석동에서 길을 건너던 보행자가 뺑소니 차에 치인 사고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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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박모씨는 머리를 크게 다쳐 남편 조모씨에 의해 병원에 이송되지만 끝내 숨집니다. 


단순 뻉소니 사고로 마무리될 뻔한 이 사건은 남편이 부인 명의로 된 7억여 원의 사망보험금을 모두 받아내려고 시도하면서 의심을 받게 되죠. 경찰 수사 결과 부검으로 밝혀낸 사인이 뇌손상이 아닌 심장마비였고 사망자의 혈액에서 수면제인 졸피뎀까지 검출됩니다. 남편이 보험금을 노리고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사인인 심장마비와 남편 간의 인과 관계는 딱히 드러나 보이는 부분이 없었죠

 

결정적인 증거는 남편의 차안에 있던 담요에서 나왔습니다. 담요에서 백색 가루를 발견해 국과수에 성분 의뢰를 했는데 이 성분이 염화칼륨(KCL)이었다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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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칼륨은 자연계에 흔히 존재하는 물질로 과일이나 채소에 많이 들어 있고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물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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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륨과 칼륨은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두 전해질로 모든 세포의 활동전위(action potential)에 관여합니다. 심장 같은 장기가 제 역할을 하는 데에도 칼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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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으로 혈중 칼륨이 증가하는 고칼륨혈증이 생기면 심장에 문제가 생겨버립니다. 혈중 칼륨 농도가 8.0 mEq/L을 넘어버리면 VF(심실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해 혈액을 펌프질하지 못함) , asystole(심장이 일정시간 동안 수축하지를 않음) 등을 통해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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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형을 시킬 때 염화칼륨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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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thiopental(초단시간 작용형 전신마취제) 같은 약제로 사형수를 재우고 pancuronium(근육이완제)으로 호흡근을 마비시킨 후 염화칼륨으로 심정지를 시키는 방식의 사형집행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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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명드리고 나니 염화칼륨이 무슨 맹독성 물질 같지만 사실 치료 용도로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저칼륨혈증 환자에서 칼륨을 보충할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죠. (당연히 사용에 주의가 필요한 약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짤방을 보면 '반드시 희석하여 사용'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는 염화칼륨 투여시 지겨야할 원칙 중 하나로 중심 정맥에 투여할 경우에는 60mEq/L, 말초 정맥에 투여할 경우에는 40mEq/L 이하의 농도로 유지해줘야 하며 시간당 10mEq 이하를 주사해야하는 것입니다. 만약 20mEq 앰플을 희석없이 바로 주사하면 환자는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됩니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수사를 확대했고 남편이 간호사인 이모씨와 내연관계에 있었으며 이모씨가 일하는 병원에서 염화칼륨 일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사건의 전말은 사업 실패로 빚 독촉을 받던 남편이 내연녀와 짜고 아내를 살해한 후 보험금을 타기로 공모했던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술에 수면제를 타서 아내에게 먹인 후 차량에 태웠고 아내가 잠들자 내연녀가 염화칼륨 20cc를 주사해서 살해한 것이었죠. 그리고 죽은 아내를 도로에 머리를 부딪히게 해서 뺑소니 사망 사고로 위장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만약 내연녀가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사건이 미궁에 빠졌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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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약물을 주사기에 넣은 후 간호사, 의사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바로 주사기에 들어간 공기를 빼기 위해 주사 바늘을 위로 향한 후 약물을 뿌려질 때까지 실린더를 밀어두는 것이지요. (영어로 squirting이라고 합니다. 뜻은 '찍 싸다') 

 

간호사인 범인은 앰플에서 염화칼륨을 뽑아 주사기에 넣은 후 분명히 squirting을 했을 겁니다. 한 앰플을 한꺼번에 넣기 위해 아마도 20cc 주사기를 준비했을 테고 그 만큼 주사바늘이 더 커지니 찍 날아가 차량 안 담요에 더 많은 양의 염화칼륨이 남게 된 것이죠.

 

평소에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공기를 제거하려고 시행하던 squirting을 아이러니 하게 내연남의 부인을 죽이기 위한 과정 중에도 시행했고 결국 꼬리가 잡히는 계기가 되버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P.S. 


댓글로 부검을 통해 사인을 알아낼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하신 분이 있어서 첨언하자면 염화칼륨 과다 투여로 심정지가 오면 사후 부검을 통해서는 사인이 염화칼륨 때문이었는지 알아낼 수 없습니다.

 

사후 혈관 내 칼륨의 이동이 일어나 고칼륨혈증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사람이 심정지 등의 상황이 되면 전해질, pH 등은 사인과 관계 없이 다 비정상 수치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부검 만으로 심정지의 원인이 염화칼륨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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