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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상한 선생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매번 내 글을 열심히 읽어주는 친구가 물었다.



"묘하게 이상한 경우는 대응을 섬세하게 해야겠지만, 대놓고 이상한 교사들은 오히려 쉽지 않아? 당장 항의하고, 신고해야지!"


"그게 말만큼 쉽지 않아. 애를 맡겨 놓은 입장에서는 괜히 주눅이 든다고. 나중에라도 애한테 불이익이 올까 봐 불안해."



듣고 보니 그랬다. 꽤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학부모에게 교사는 어려운 존재다. 예를 들어 보자. 최근 서울의 한 사립학교에서 교사가 460만 원의 촌지를 받고도 단 3개월 정직 처분을 받고 학교로 복귀한 일이 있었다. 사립학교법으로 교육현장이 지렁이만 좋아할 진흙탕이 되었고, 내가 신고한 교사가 단 몇 달 안에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로 불사조처럼 돌아오는 환경에서 학부모들이 안심 할 수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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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 460만원 받고도 ‘무죄’ 버젓이 복귀…손 못 대는 사립교사

출처 - <경향신문>


하지만 공립학교는 객관적으로 볼 때 누가 뭐래도 이상한 교사(촌지 교사, 폭력 교사)에게 법적인 제재를 가하기 상대적으로 쉬운 환경이다. 그런데도 제 버릇 개 못 주고 퇴임하는 해까지 촌지를 받는 교사들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그때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학부모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돈을 주는가?’ 라는 의문이 들며, 학부모들이야말로 이상한 교사를 재생산하는 주범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친구가 말한 ‘불이익’이라는 단어를 여러 맥락 속에서 곱씹어보니, 누가 봐도 이상한 교사들에게조차 쉽사리 대응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불안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열리는 대회의 수상자를 뽑을 때 교장이나 교감이 그들과 친분이 있는 학부모의 자녀에게 상을 주라고 지시하는 일이 2016년인 지금, 공립학교에서조차 빈번하다. 그런 친분을 쌓으려면 도대체 얼마면 되는지 얼마나 친화력이 있어야 하는지, 학교운영위원회랍시고 모여서 무슨 작당들을 하는지 얼마나 학교에 봉사를 해야 하는지 순진한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수상권에도 못 들 실력의 학생에게 금상을 주라고 압력을 받은 상황에서, 못 이기듯 지시를 따랐던 교사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왔다. 이상한 관리자들의 요구를 거스르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자기합리화에 젖어 자의식에 상처조차 입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다. 그런 교사들이 교실 내에서 학생들에게 공정함의 가치를 실현할 힘이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늘 있었다. 그러니 곧 학부모가 될 내 친구에게 ‘불이익은 무슨 불이익! 망상에서 벗어나! 발언하고 참여해!’ 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교육 현장에 건전한 의견을 제시하고 활발한 참여를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폐쇄적인 학교 문화를 바꿔 가는데 교사와 학생은 물론 학부모와 시민들도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아이를 맡긴 입장에서 왜인지 모를 불안함이, 혹은 내 의견이 과연 반영이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좋은 제안을 줄 수 있는 학부모들이 정작 이런 생각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분들을 위해 나는 개인적인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무릅쓰고 내가 저질렀던 두 가지 일을 털어놓고자 한다. 교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 말할 수 있었던 일들이나, 동료들에게는 이래저래 조심스러워 아주 많이 친한 경우가 아니면 이야기하지 못했었다.



사례1 :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4년 차 교사로서 6학년 담임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4층에서 서른 명 남짓의 학생들과 6교시까지 수업을 하고 있노라면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돼서 수업이고 나발이고 다 뒤엎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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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같아선 이렇게..


물론 선풍기를 세네 대쯤 돌린다. 하지만 20평쯤 되는 교실에서, 체온이 37도에 이르는 생명체들이 서른 명 넘게 몰려있다 보니 체감온도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이 졸음과 짜증으로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얘들아, 힘들어도 정신을 좀 차려 보자!’라는 내 외침은 시끄럽기만 한 선풍기 소리에 밀려 저 멀리 날아가곤 했다.

 

교실 천장마다 설치된 시스템 에어컨을 왜 틀어주지 않는지 교무실에 문의를 하면 국가의 에너지 절약 시책에 동참해야 한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당시 정부는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에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무슨 낯짝으로 우리에게 에너지와 세금을 절약하라고 하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이게 고문이지 수업이냐’, ‘이딴 비인간적 교실 환경’, ‘자기들이나 잘할 것이지 어따 대고 세금 타령’ 등 욕이 튀어나왔지만 꾹 참고 작은 목소리로 건의를 계속했는데 이게 결국은 ‘교무실도 에어컨 가동 중단!’이라는 조치로만 이어졌다(원래 교무실 등은 외부 손님을 접대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에어컨을 틀고 있었다).

 

관리자들이 무슨 큰 희생이라도 하는 양 굴었지만, 사실 나는 교무실이나 교장실에서 에어컨을 가동하든 말든 관심이 없어 언급조차 하지 않았었다. 본인들이 괜히 찔리니까 움찔하는 모습이 가관일 뿐이었다. 꼭대기 층과 1층의 온도가 같을 리 없다. 무엇보다 수백 명의 학생들과 일반 교사들은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체온에 영향을 받아가며 서 있고, 움직이는 등의 동적인 활동을 많이 한다. 그러나 교무실은 서너 명의 사람들만 상주하니 1인당 면적도 넓고, 신체 활동을 덜 하기 마련인 데다, 개인 선풍기를 한 대씩 틀고 앉아 있으니 우리와는 상황이 너무 다르지 않은가. 우리도 참을 테니 너희들도 참으라는 말이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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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품이 아닐 텐데...


‘나도 죽을 맛이다. 예산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관리자 얼굴을 보면서 ‘당신들 학교 돈으로 비싼 운동복이랑 운동 기구 산 거 누가 모를 줄 알아!’라고 들이받고 싶었다(행정실 소속 공익요원을 통해 설핏 흘러나온 내용이었다). 하지만 학교 전체 예산이 어떤 명목으로, 어떻게 굴러가는지 세세히 파악하기 어려운 평교사 입장에서 준비 없이 들이대기가 두려웠다. 예산 운영 내역을 모조리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샅샅이 뒤져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부끄럽게도 당시의 나는 혼자서 싸울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당장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수업, 학생생활 돌보기, 업무) 잘 해내는 것도 버거웠다. 이런 젠장, 눈먼 돈들 조금만 아껴도 오후에 고학년 교실들에 두 시간 에어컨 가동할 돈은 분명 나올 텐데. 의혹은 떨쳐지지 않았고, 나와 학생들은 찜통 교실에서 점점 더 지쳐갔다.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말에 미치고 환장할 것만 같던 나는 결국 친한 친구를 학부모로 둔갑시켜 교무실에 전화를 했다. 자식도 없는 내 친구에게 학부모식 발성(;)을 연습시키고, 허례허식에 깜빡 죽는 교감의 성격을 잘 고려해가며 대본을 썼다.


 

“안녕하세요, 6학년 학부모입니다. 이 삼복 더위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저희 애가 요즘 너무 더워서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오면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고, 체력도 약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돼서 전화 드렸어요. 아이고, 그럼요, 알죠. 요즘 에너지 부족 문제 심각합니다. 네네, 그럼요. 그래도 일단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들도 선생님들도 너무 고생하시는데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오후 수업시간만큼은 에어컨을 좀 트는 게 어떨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허허허”


 

일 이 분 가량의 덕담이 오갔고, 친구 말로는 교감이 아주 점잖게 대응을 하더라고 했다. 정확히 다음 날부터 방학하는 날까지 한 달가량, 오후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에어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부아우웅-하고 천장에서 쏟아지는 에어컨 바람에 환호성을 지르는 학생들, 어리둥절 기뻐하는 동료 교사들에게 내가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물론 학교 측으로부터 갑자기 왜 방침이 바뀌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단지 학교 예산이라는 마른 수건은 학부모가 짜야 물이 나온다는 걸 알았다.

 

*덧붙임 : 교육용 전기요금 문제에 대해 예산증액이나 할인율 인상 등의 대책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5년부터 후 1년 중 5개월(7~8월, 12월~2월)은 기존의 4%에서 15%로 인상된 할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그 중 절반이 방학이고, 6월부터 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같은 때에 여러모로 아직 매우 제한적인 수준이다. 어디에 항의를 해야 하는 건가? 한전? 교육부? 교육청 및 학교? (최근 감사원에서 교육청과 일선 학교들이 배정받은 전기요금 예산을 전기요금으로 지출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뭐가 사실인지 원) 도저히 모르겠다. 전기요금 전문가의 고견을 부탁한다.

 

*또 덧붙임 :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는데, 왜 학교 건물은 여름에는 바깥보다 더 덥고, 겨울에는 바깥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가? 기분 탓인가? 자재 탓인가? 창문이 많은 탓인가? 건축 전문가님들의 고견을 듣고 싶다.



사례2 : 배구, 배구, 배구!


두 번째 사례를 이야기하기 전에 초등학교와 배구 문화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교대에 다닐 때부터 암암리에 그러나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승진하려면 배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사로서의 능력이 수업의 전문성, 학생 지도 능력 심지어 행정 능력도 아닌 ‘배구 실력’에 달려있다고 했다. 설사 배구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 관리자들에게 굽신굽신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 관리자들과의 친화력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학생 시절에는 이 말이 농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0년 정도 지켜본 바에 따르면 모든 사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절대로 없는 말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성비에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임에도 남교사들이 교감, 교장 등으로 승진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물론 매우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중의 하나가 그들이 배구를 중심으로 뭉쳐서 인맥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함께 어울려 배구하고, 술 마시고, 동지애를 키우는 것까지야 좋지만 이게 주요한 인사발령과 승진점수에도 다분히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제는 성별을 불문해 배구 실력으로 (혹은 그와 얽힌 인맥으로) 초빙교사가 되어 특정 학교에 발령을 받고 (물론 문서 상으로는 다른 이유로 초빙되지만) 그 속에서 신뢰를 얻어 승진까지 탄탄대로를 밟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저 양반은 저 능력으로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올라갔지?’ 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관리자들이 몹시 많다. 여기에는 이런 잘못된 관행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디나 그렇듯 돈 봉투도 많이 오간다. 꼭 교육 계통이 아니더라도 이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교사의 무능력과 부정부패의 문제는 학생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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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번째로 근무하게 된 학교의 관리자와 교사들은 배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배구를 둘러싼 문화에 유달리 반감이 많은 나였지만,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눈에 띄는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고 배구를 정말 스포츠로만 즐기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처음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어느 날부터인가 배구를 하지 않는 교사와 학생들에게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태로 번지고 있었다. 바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배구대회와 교육감배 배구대회 때문이었다.

 

불타는 열정 덕분인지 우리 학교가 예선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가운데 다른 학교와 연습경기가 자주 열렸다. 근무시간 후에야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사적인 시간을 할애하기는 싫었던 모양인지, 어떻게든 일과 중에 다른 학교 교사들과 만나 연습을 하려고 하니 고학년 교사들의 오후 수업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부 교사들이 교과전담 교사들에게 시간표를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잦아졌고, 급기야 몇몇 담임들은 학생들에게 학습지 몇 장, 그림 그리기 과제 등을 던져주고 오후에 교실을 비우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배구 열풍을 이끌던 교무부장은 공공연히 ‘나는 배구하러 학교 온다!’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처음엔 말은 저렇게 해도 학생 지도도 그만큼 열심히 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반의 학생과 학부모들도 그 교사가 정말 배구하러 학교 오는 분이라는 데 이의가 없었다. ‘수업과 학생돌보기는 뒷전이고, 친목 도모와 관리자 수발들기에만 집중하는 교사’로 유형화할 수 있는 이상한 교사였다. 덧붙이자면 이런 유형의 이상한 교사들은 성과급에서도 높은 등급을 받는다(학교에 성과급제도란 게 도입되니 이런 꼴이 난다).


어쨌든 그런 교무부장이 관리자들의 승인을 받고 학교의 하루 수업 일정을 바꾸는 사태에 이르렀다. 다음 날 배구대회를 위해 일부 교사들이 일찍 학교를 떠나야 하므로 수업 시작 시간을 30분 당기고, 쉬는 시간을 10분이 아닌 5분으로 단축하겠다는 것이었다.


교무실로 돌진해 항의를 하고 교감과 교무부장의 책상을 뒤엎기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당시의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첫 학교도 그랬지만, 두 번째 학교에도 당시 전교조 교사는 나 하나뿐이었다. 막 학교를 옮겨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전교조라 그래서 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네’ 라고 말하며 점점 가까워져 가는 선배 교사가 있었고, 동료들과도 서서히 친해져 가는 중이었다. 배구 대회에 잔뜩 신이 난 그들과 이제 막 시작된 관계를 망쳐가면서까지 항의를 할 배짱이 내겐 없었다. 그러나 도저히 두고 볼 수는 없는 행태였다.


결국 또 전화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교육청이었다.

 


“○○ 초등학교인데요. 요새 배구대회 때문에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세요? 학교 수업 일정이 변경되고,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두고 학교를 떠나는 일까지 있어요. 연습을 같이하는 학교들도 마찬가지 상황일 텐데요. 알고 계셨습니까?”

 

“아, 네... 하지만 내일 있을 배구대회는 교육감님도 큰 관심을 갖고 계신 매우 큰 대회라서요.”

 

“교육감이 관심을 가지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교육감 관심사가 학생들 수업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선생님들도 행사 때문에 사정이...”

 

“선생님들 행사니까 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아...그...그렇죠.”

 


교육청과의 짧은 통화 후, 다음 날부터 학교 수업은 원래대로 운영됐다. 사람들은 ‘어떤 유난스런 학부모가 교육청에 전화를 했다나 봐’ 라고 말하고 있었다(사실 나는 교육청에 내가 학부모인지 교사인지 밝힌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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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문제는 비단 내가 근무했던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처 - <이뉴스투데이>


‘배신자’, ‘뭐 이런 찌질한 게 다 있어’ 라는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학교와 교육청의 변화에 학부모가 정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내 사례에서 보다시피 사실 어떤 방법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관성의 법칙

 

학교와 교육청은 결코 명확한 논리, 철학, 기준, 자기반성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다. 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관성의 힘에 가깝다. 하던 일은 계속하려고 하고, 하지 않던 일은 죽어도 하지 않으려 하는 그 법칙 말이다.

 

학교는 학생 심신의 안정과 지적, 인격적 성장에 가장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조무래기 교사인 내가 무려 교육청씩에나 전화를 해서 어필해야 했을 정도다(어쩌면 내가 조무래기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교육계에 사회의 못되고 미련한 자들이 몽땅 몰려와서 그런 게 아니다. 많은 이유로 이곳에 관성대로 움직이기 매우 쉬운 환경이 조성됐을 뿐이다. 그래서 일부 교사들, 학교, 교육청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던 대로만 한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명확한 기준이란 게 없는 학교와 교육청은 학부모 전화 한 통에도 휘청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학부모들은 전혀 합당하지 않은 요구를 하는데 이마저도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투명한 운영, 합리적 기준, 확고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부분마저도 일 커질까 두려워 속절없이 휘둘려놓고는 ‘극성맞은 학부모들 때문에 못 살겠다’라고 말하는 곳이 학교다.

 

이상함에 한계는 없고, 관성만 있을 뿐이다. 물리법칙이자 사고와 행동의 법칙이기도 한 관성의 법칙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물체에 힘을 가하듯이 인간의 정신세계도, 교육계도, 정치판도 외부에서 힘을 가해야 한다. 학교와 교육청, 교사들이 중심 없이 하던 대로, 흘러가던 대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외부의 충격이 필요한 것이다. 이 힘을 당신이 가해야 한다. 그 충격이 이상하게만 보였던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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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