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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사건의 재구성, 즉 소설을 써보는 것이라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2016년 5월 27일 오후 12시 40분, 일본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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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의 시선 : 승객 302명, 승무원 17명, 총 319명이 탑승 완료했다고 사무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일본 도쿄 하네다 KE2708편(B777-300/ HL7534), 비가 약하게 오고 있었고 바람은 오른쪽에서 시속 8km 정도로 불고 있었다. 활주로 34R에서 이륙을 위해 속도를 올리던 중 시속 180km 즈음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쿵쿵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엔진 화재 경보가 울렸다. "Stop"이라고 외쳤고, 브레이크와 함께 역추진장치를 작동시킨 후, 비행기를 활주로상에 멈췄다. 엔진에 달려있는 1번 소화기를 작동시켰으나 불길이 잡히지 않자, 2번 소화기를 작동시키며 승무원들에게 비상탈출을 명령했고 모든 승무원들과 승객들이 탈출한 것을 확인한 후 제일 나중에 비행기에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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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에 멈춘 비행기 KE2708


승무원의 시선 : L1 출입구 옆에 앉아서 근무 중이었는데 비행기가 이륙하던 중 갑자기 쿵쿵하는 소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기내에 타는 냄새가 났으며 뒤쪽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갑자기 감속을 시작한 후 멈췄고, 기장은 "This is captain, attention crew at station(기장이다, 출입구에 대기하라)."라고 방송했으며 승무원들은 훈련받은 대로 출입구에 대기했다. 약 30초 후 비상탈출 경보음과 함께 기장이 "Evacuate, Evacuate(대피, 대피)"라고 방송했다. 절차대로 우리들은 불이 난 쪽 반대편 비행기문을 열었으며, 자동적으로 탈출 슬라이드(Slide raft) 가 펼쳐졌다. 동시에 우리들은 우리말과 영어로 "벨트 풀어, 일어나 나와, 짐 버려, 이쪽으로"를 외쳤고 탈출구에서는 "양팔 앞으로, 뛰어, 내려가" 비행기 밖으로 내려간 승무원들은 "멀리 피해"라고 외쳤으며, 모든 승객과 승무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관제사의 시선 : 나는 대한항공 2807편에 이륙허가를 주었고, 활주로에서 이륙하려고 증속하던 비행기의 왼쪽 엔진에서 불꽃이 이는 것을 보고 "Korean air 2708 fire on your left engine"이라고 말하였다. 비행기는 감속을 시작했고 멈췄다. 나는 공항 비상출동팀에게 소방차와 구급차를 보낼 것을 지시하였고, 소방관들은 30분 정도에 걸쳐 비행기 왼쪽 엔진에 붙은 불을 효과적으로 진압하였다. 비행기와 승객을 무사히 구조했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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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엔진을 소화하는 소방차


승객의 시선 : 비가 오는 도쿄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좌석 38B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소리가 나며 비행기가 멈췄고 뒤쪽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무슨 방송과 경보음이 나오자, 갑자기 승무원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의 지시에 따라 가까운 문 쪽으로 달려갔고 줄 서서 탈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갔는데, 좀 있다가 내려온 승무원들이 비행기에서 멀리 떨어질 것을 지시했고 나와 일행들은 비행기 오른쪽으로 멀리 피해서 서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몇 명은 승무원 지시를 무시하고 가방과 귀중품들을 들고 나왔고, 나만 나일론 재질의 미끄럼틀이 찢어질까 봐 신발 벗고 나왔던 건지, 다른 사람들은 신발을, 심지어 하이힐을 그대로 신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대한항공에서 대체 비행기 편을 마련해줘서 저녁 8시 45분쯤 출발해 밤늦게 김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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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승객이 내린 후 승무원의 탈출




2016년 3월 15일 (사건 두 달 전) 


기장의 시선 : 6개월에 한 번 있는 Simulator 훈련(실제 비행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의 훈련)이 있는 날이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수평거리, 즉 시정이 150M인 날씨에서 비행기 엔진이 꺼지거나, 불이 나거나 혹은 완전히 망가져서 엔진이 눌어붙으면 비행기를 안전하게 활주로에 세우고 승무원들을 출입문에 대기시킨 후 화재진압을 시도 한다. 화재진압이 될 경우에는 승무원들을 다시 자리로 돌아가게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승객비상탈출(Passenger Evacuation)을 지시할 것이다. 이 훈련은 대한민국 정부(국토교통부)가 요구하는 법정 요구량으로 1년에 한 번씩 실시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숫자 150M 시정의 의미는 조종석에서 날개 끝이 안 보이는 안개가 자욱한 날씨를 의미하며 앞이 잘 안 보인다는 뜻이다. 두 개의 엔진이 달린 비행기에서 한 개의 엔진이 이륙 중에 꺼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개의 엔진이 너무나 힘이 세서 비행기를 활주로 밖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300톤 가까운 비행기를 날려보내는 엔진의 힘이 얼마나 세겠는가? 나는 이러한 훈련을 20년이 넘도록 매번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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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 150M의 날씨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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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 중 비행기 엔진 하나가 꺼지면 왜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그림


승무원의 시선 : 1년에 한 번 있는 비상탈출 훈련이 있는 날이다. 오전에는 체력테스트를 받고 기장님들과 joint CRM(합동 승무원 자원관리, 운항 승무원과 객실 승무원이 함께하는 것이 특징) 훈련을 한다. 이후에 우리는 훈련원에 있는 장비로 기내응급처치 및 비상탈출 훈련을 한다. 비상탈출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얼마나 빨리 승객들을 기내에서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가다. 기내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골든타임을 90초라고 이야기한다. 90초 내로 탈출하면 모두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승객과 우리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신입승무원 훈련 때 목소리가 작거나 당황해서 소리치는데 주저하게 되면 승무원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강사 중에 어떤 분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기본이 세 번 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청유형 어미로 끝나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탈출을 위해 외치는 소리는 명령입니다. 반말로 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영어는요?" 


강사가 대답했다. 


"영어는 원래 반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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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사고는 탈줄이 늦으면 무지 위험하다고요




2016년 3월 27일 당일 오전 7시, 김포 대한항공 Operation Center 


기장의 시선 : 인천공항으로 국제선이 옮겨간 이후에 없어질 줄 알았던 김포출발 하네다 왕복 비행이다. 각국의 수도와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셔틀개념으로 운항하는 한중일 노선 중 하나이며 승객들이 편리하게 도심과 가까운 공항을 이용할 수 있어서 탑승률이 높은 노선이다. 그런데 요즈음에 희한하게 국내외에서 비행기 엔진 관련 고장이 잦다. 얼마 전에 선배인 이규남 기장도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륙 직전 엔진이 고장났지만 다행히 안전하게 비행기를 다시 하노이 공항에 착륙시켰다. 회사에서는 연속되는 비정상적 상황에 많이 당황스러운가 보다. 승무원 비행 전 브리핑 때 비상상황 발생 시의 행동요령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해야겠다. 


승무원의 시선 : 기장님이 브리핑룸에 들어오셨다. 평소처럼 비행시간과 날씨, 터뷸런스에 대해 알려주셨고, 비행기가 이륙 중 하다 말고 갑자기 서면, 자신이 방송하겠다고 한다. "Cabin Crew remain seated"라고 하면 아무런 문제 없는 거고, "Attention Crew at the Station"이라고 방송하면 마음 단단히 머고 탈출 준비를 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너무나 잘 훈련받아 왔으며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누구나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나는 기장이 이륙 사인을 보내면 마음속으로 비상시에 어떻게 승객들을 탈출시킬지 항상 되새기고 있다. 


필자(20년 차 기장)의 시선 : 항공산업은 그동안 큰 사고가 있을 때마다 조그마한 실수의 고리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연결되어 큰 사고까지 이어지게 된 것인지를 많이 연구해왔으며 지금도 그러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항공기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기록하는 블랙박스를 달고 조종석에는 어떤 대화가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녹음기까지 달려있습니다. 조종사 입장에서 보면 아주 성가신 장비이지만, 항공사는 FOQA(Flight Operations Quality Assurance)라는 것을 장착해 1초에 8번 이상 비행기 상태 및 조종사의 비행습성이나 행동을 모니터하고 지속적으로 각각의 조종사에게 피드백을 보내서 사고를 예방하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FAA(미연방항공청) 및 각국 정부는 검증 프로그램을 마련해 훈련 및 평가를 하고 실력이 없는 조종사는 퇴출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규정에는 없지만 다른 나라 항공법에는 승무원이 30분에 한 번씩 조종실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들어가서 확인해 보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가 사고로 이어져 사람들이 다치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인간 본성 연구를 항공산업만큼 잘 하고 있는 분야도 없을 것입니다. 사고 시 행동요령과 대피행동에 대해서도 절차가 잘 준비 되어있으며 이것을 열심히 훈련하여 몸에 익히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97~99년에 걸쳐 비행기 5대를 전손사고로 잃어버렸고 수많은 승객과 승무원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세계항공역사상 그런 사고를 겪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회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대한항공이 어떻게 살아남았을 까요? 


대한항공은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구전으로 이루어지던 비행술을 매뉴얼화 하고 규정을 명문화했습니다. 조종사의 훈련을 강화하고 평가를 공정하게 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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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훈련센터에서 실시된 항공기 비상탈출 훈련 장면


예를 들어 자신에게 내려진 평가나 조치에 대해 "누가 그래?"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의도는 '어떤 힘 있는 사람의 의견이냐'에 가깝겠죠. 그래서 이런 질문이 사라지고 "근거가 뭐야?"라고 묻도록 바꾸게 됩니다. 즉 문서에 근거해서만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입다. 


거기다 SOP(Standard Operation Procedure)라는 것을 만들어 모든 조종사가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같은 절차로 행동하고, 같은 잣대로 평가받게 만들었습니다. 대한항공은 199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험료를 내는 항공사였습니다. 하지만 2015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보험료를 적게 내는 항공사로 탈바꿈했습니다. 그것은 임직원 모두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했기에, 또 그러한 사고에도 끊임없이 대한항공을 이용해주시는 승객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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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8일 한국일보 보도


그런데 말입니다. 2014년 겨울 그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파리에 있던 저는 카톡을 통해 이상한 제보를 받았습니다. 


"뉴욕에서 A가 난리를 치며 사무장을 내리게 했대."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땅콩회항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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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드린 "누가 그래?"의 재등장이자, "근거가 뭐야?" 의 증발이라고 할까요. 모든 게 매뉴얼화되고 시스템화 되어 사고를 막아내던 항공사에 느닷없이 "내가 누군데?(니 따위가?)"가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그 후에 벌어진 많은 일들을 보면서 저는 우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짜여진 시스템이 멀웨어를 먹고 다운된 느낌이랄까요? 


인간은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안전하고 쾌적하며 정시에 움직는 항공사를 직원들과 승객에게 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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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말해 주는 한 장의 사진


하네다에서 정확한 판단과 헌신적인 행동으로 승객들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려놓으신 김동욱 기장님과 승무원들님께 무한한 찬사를 보내며 이 글을 마칩니다.





20년 차 기장, 핑크 마후라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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