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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거대한 전함은 강대국들의 국력 상징이었다. 대해(大海)에서 적 함선을 맞닥뜨려 이기기 위해선 온 힘을 쏟아 적을 단발에 제압해낼 수 있는 강한 함포와 여러 위협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기 위한 장갑과 무장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배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거함제일주의에 시대는 항공 기술의 발달과 함께 쇠락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함포사거리 훨씬 바깥에서 나타난 항공기들은 한 해 예산과 맞먹는 돈이 들어간 전함에게 폭뢰 공격을 쏟아붓고 유유히 시야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기술의 발달이 교전 방식을 함대함에서 함대공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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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예산이 침몰해 간다.


이에 버금가는 변화가 지금 기업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름하여 Disruptive Innovation(파괴적 혁신이라고 번역되는데, Disrupt는 방해하다 깽판을 놓는다는 의미가 있다). 하버드 경영대 교수 Clayton Christensen이 고안해낸 이 개념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혁신이 이루어지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에 혁신은 선두 기업들이 기존에 있던 제품의 성능을 조금 개선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카메라의 화소를 조금 올린다든가, 핸드폰 화면을 좀 더 밝게 하는 식의 작은 변화 말이다. 보통 새로 나온 하이엔드 제품에 이런 최신 기술을 적용하여 더욱 비싼 가격을 책정했다. 하지만 세대가 바뀔수록 보급형에도 이런 기술은 서서히 적용되면서 더 많은 대중들이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런 하향식의 점진적인 변화를 그는 'Sustainable Innovation'(존속성 혁신이라고 번역된다. 말 그대로 기존 회사들이 조금씩 변화를 주어 계속 호구소비자에게 계속 돈을 뽑아낸다는 의미가 있다.)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시장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건 하이엔드 기술을 많이 개발해서 이익을 뽑아내는 대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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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layton Christensen Bolg>


문제는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어느 시점에 가면 사실 일반 소비자는 필요 없는 수준까지 올라가 버린다는 점이다. 흑백 액정을 쓰다가 칼라 액정을 쓰는 건 매우 유의미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화질이 구현되면 나 같은 까막눈은 굳이 새폰을 살 이유를 잃어버린다. 이런 지지부진한 변화가 고급시장에서 반복이 되면 보급형 시장에서부터 모든 소비자의 소비패턴을 바꿔버리는 크고 아름다운 혁신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게 바로 '파괴적 혁신'이다.


과거에는 고급형시장에서 제한적인 수준으로 구현되던 기술을 보급형 시장에서 대중들을 타겟으로 구현해냄으로써 소비자들의 소비패턴 자체를 바꿔버리는 혁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기존 기술을 발전시키는 수준에서 나아가 기술의 완전한 재배열을 통해 전혀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컴퓨터가 연구소의 전유물이던 시절 등장한 Personal Computer가 그랬고, 삼성이 옴니아를 수백만 원에 팔 때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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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파괴적인 변화의 선두에는 스타트업(Start-Up)이 있다. 기존 대기업이 거대한 조직을 갖추고서 돈이 되는 사업 위주로 기존 제품을 조금씩 개선시키는 반면, 좋은 스타트업은 이런 초기투자에 얽매이지 않고, 아주 구체적이고, 창의적이지만, 기존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 하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출시시키기 위해 점차 필요한 골격이 하나씩 갖추어 나가게 된다. 초기 투자비용이 크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는 선택하지 않는 좀 더 과감한 아이디어어에 도전해볼 수도 있고, 대기업처럼 모든 걸 갖추고 시작하진 못하지만, 반대로 불필요한 사업 부분을 억지로 들고 있을 필요도 없어 집중과 효율에 있어 장점을 가지고 있다. 


스타트업이 전 소비자의 패턴을 바꿔버린 예로 Yelp와 Uber를 들 수 있다. Yelp라는 평점사이트의 경우 전화번호북을 없애는 데서 나아가 모든 식당과 미용실에 대한 검색정보와 평점을 제공하고 있고, Uber라는 차량예비 서비스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택시산업에 맞서 더 싸고, 효율적인 운송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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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대기업들이(기존 사업방식 틀 안에서) 돈이 되느냐를 중심에 놓고 합리적인 사업계획을 추진하는 반면, 실리콘밸리에서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스타트업은 일단 소비자의 관점에서 가장 편리한 소비 패턴을 제시하고, 그 후에 서비스로 돈을 벌 궁리를 한다. 마치 폭격기처럼 갑자기 등장한 스타트업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무기로 대기업들이 점령한 시장을 뒤흔들고(Disrupt) 있다.


이런 급진적인 스타트업들의 공세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혁신인지 아니면 더 많은 일자리를 없애버릴 재앙인지에 대한 논의는 미루도록 하자. 왜냐하면 그런 판단을 할 틈도 없이 이런 스타트업이 맹렬하게 늘어나고 있고,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근 10년간 수많은 스타트업이 나타나 기존 대기업들에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며 규모를 키우고 있고, 그 선두에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은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처럼 그들 안에 수많은 스타트업들을 인수해 채워 넣으며 Killer 컨텐츠를 계속 생산하고 강화해 나가고 있다.


대기업을 전부 무시하자거나, 제조업을 포기하잔 말이 아니다. 그들 역시 이미 우리 경제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들이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다만 이들 기업이 매번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무조건 국민 혈세로 손실을 보전해줄 것이 아니라 과도한 위험을 짊어지고, 무조건 크기를 늘리려할 때마다 그에 대한 규제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새로운 경제환경에서 좀 더 경쟁력이 있는 스타트업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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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원 방식에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미 유럽을 비롯한 각국 선진국들은 정부주도로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과 자금을 제공하고 있고, 최근 중국은 리커창 총리 주도하에 338조의 정책자금을 조성해서 국가적인 과제로 스타트업 육성에 나섰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에서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돈과 자원이 필요한 기업에게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자금이 존재하고, 은행들에게 위에서 중소기업 대출 할당량을 내리기까지 하는데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원해 줄 기업'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스타트업이란 게 본디 기존 기업들처럼 담보가 될 수 있는 자산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도 못한 데다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 자체가 경쟁력이 있는지, 돈이 되는지를 대출 담당자나 공무원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선 조직들은 좀 더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뽑아서 이를 통해 스타트업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스타트업 지원을 가장한 대출 청탁 등에 대해 엄격히 처벌함으로서 방만한 운영을 근절해야 한다. 말이 쉽지 은행과 공무원 조직이 뿌리부터 바뀌지 않으면 하나도 나아질 수가 없는 부분이다.

 

반면 미국 같은 경우에는 이런 공적인 차원에서 지원보다는 오래전부터 사모펀드 중심의 투자가 이루어져 왔다. 최소 7년 이상의 장기투자를 하는 사모펀드들은 투자 단계에 따라 Angel Stage(아이디어 상태에서 투자), First Stage(시제품이 만들어지는 시기), Second Stage(제품 양산에 돌입되는 시기) 등으로 나누고, 이에 맞는 투자와 지원을 해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테크 버블이 깨지는 등에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도 페이스북 등의 성공사례를 거치면서 스타트업과 사모펀드 모두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들을 긁어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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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쪽이 더 효율적이고, 스타트업 시장을 키울 수 있는 방식인지 사회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도 사실 할 얘기는 많다. 스타트업이 잘 성공할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라던가, 모방하는 대기업들에 대한 징벌적인 배상제 도입 같은 법률적인 장치, 우리 사회에서 천편일률적인 잣대로(그게 수능 점수든, 대학이나 직장이든, 집 평수건) 사람을 평가하는 문화의 변화, 기초과학에 대한 부실한 투자 등등, 사실 누구나가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이 의견들 모두가 사실 옳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런 논의가 좀 더 많이, 자주 그리고 좀 더 의사결정권을 갖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에서의 패권을 내려놓은 미국은 금융과 테크놀로지회사를 앞서워 현재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 세계 1등 핸드폰 제조업체였던 노키아가 몰락한 이후 추락할 것 같았던 북유럽 경제는 앵그리버드를 비롯한 다양한 앱개발과 스타트업 창업으로 다시금 떠오르고 있다. 우리사회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늦었지만 다 같이 고민해 볼 때다.





[지난 기사]


1 : 한·중·일 거함제일주의 시대의 몰락 上






씻퐈


편집: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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