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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을 되찾다



<ABC> 방송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알리는 계속 프레이져를 무시한다.

흥분한 프레이져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알리에게 다가갔고

결국 둘은 링이 아닌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권투가 아닌 레슬링을 한다.


3년 만에 가진 재대결. 그 사이 헤비급 판도는 조금 변했다. 알리를 이기고 승승장구하던 프레이져는 ‘조지 포먼’이라는 새로운 강타자에게 세계 챔피언 벨트를 뺏겼다. 그것도 6번의 다운 끝에 2회 KO패를 당하면서. 경기 전엔 프레이져가 더 유리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경기는 완전히 일방적으로 흘렀다.


알리와 조프레이져와의 두 번째 대결은 알리에게 있어는 설욕전이자 다시 세계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였고, 프레이져에게는 다시 포먼에게 도전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두 선수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다. 경기는 초반부터 탐색전 없는 난타전이었고, 결과는 1차전과는 다르게 알리의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이었다. KO로 이기거나 다운을 빼앗은 것은 아니었지만 알리에겐 깨끗한 설욕전이었고, 프레이져에게는 뼈아픈 패배였다.


이제 알리의 다음 상대는 ‘조지 포먼’, 아직까지도 헤비급 챔피언 중 KO율이 가장 높은 선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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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와의 대결 전 조지 포먼의 전적은 무려 40승 무패 37KO였다. 거의 모든 선수를 3회 이내에 KO 시켰으며 알리와는 다르게 스텝도 없고 상대방이 펀치를 때리면 그냥 더킹(상대의 주먹을 피하는 복싱 기술)으로 걷어내는 그런 선수였다. 잘 웃지도 않는 이 괴수를 상대할 사람은 인간계에 없을 것 같았다.


당시 포먼은 운동선수에게 전성기인 25세였지만 알리는 32세를 훌쩍 넘긴데다 관리를 잘 안 한 탓인지 몸도 많이 불어있었다. (지금은 체계적인 훈련으로 30세가 넘어도 잘 하는 사람이 많지만, 예전에는 이정도가 맥시멈이었다)


이 경기 역시 조 프레이져와의 경기만큼이나 세기의 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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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포스터.
아프리카 자이레(현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열려 <The Rumble in the Jungle>로 불린다.


많은 사람들이 알리의 열세를 예상했지만 알리는 항상 그랬듯이 자신만만했고 또한 무례했다.


“만일 닉슨의 대통령직의 사퇴로 놀라셨다면 제가 포먼을 이겨 더 놀라게 해드리죠.”


그러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되었던 포먼에게 불행이 닥친다. 훈련하다가 눈 위가 찢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포먼은 연습을 많이 하지 못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알리는 예상과는 다르게 맹공격을 퍼붓다가 이내 아웃복싱을 구사한다. 포먼은 계속 쫓아다니고 알리는 도망 다니는 양상이 지속되었다. 많은 라운드를 뛴 경험이 별로 없고, 또 알리의 약올림에 화가 난 포먼은 정말 미친 듯이 알리를 쫓아다닌다. 알리는 영악하게 커버링을 올리면서 그의 펀치를 다 흡수하고 또 로프의 반동을 이용하여(Rope-a–Dope) 충격을 완화시킨다. 필요할 땐 클린치로 그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방어만 한 것은 아니고 간간히 카운터펀치도 날렸는데 이것이 포먼에게 꽤 충격이었다. 포먼의 살인 펀치는 알리의 이런 지능적인 플레이에 효과가 없었고 중반 이후 지쳐가는 건 포먼이었다.


알리는 계속 포먼에게 공격하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너 이것 밖에 안 되냐? 너 되게 세다고 하던데.”


라며 살살 약을 올린다.


문제의 8회, 포먼은 더 지치기 시작했고 그 때문인지 빨리 끝내고 싶었던 포먼의 주먹은 점점 더 궤적이 커졌다. 그러다 결국 포먼은 알리의 어퍼컷 한 방에 쓰러지고 만다.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알리의 승리였다.



포먼이 쓰러 질 때 고목이 쓰러지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이 경기는 복싱 역사상 최고의 파란으로 기록된다.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놀람은 1990년 2월 타이슨이 더글라스에게 KO로 졌을 때 보다 더했다.


경기 후 포먼은


“그는 나보다 더 영리하였고 나보다 더 강하였다.”


라며 알리의 승리를 인정하였다. 이로써 알리는 거의 7년 만에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



챔피언 그 이후


몇 경기를 더 한 뒤, 알리는 프레이져와 3번째 대결을 갖는다. 마닐라에서 열린 이 경기는 <Thrilla in Manila>라고 불렸다.


인간이 얼마만큼 처절해 질 수 있는지,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경기였다. 찜통더위에 에어컨마저 고장이 나서 선수 뿐 아니라 관중들도 다 지쳤다.


경기는 14회 알리의 KO 승. 프레이져의 매니저가 수건을 던져 경기를 중단시켰다. 더 이상 경기를 하다가는 프레이져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 많던 알리도 경기가 끝나자 인터뷰는커녕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혈투’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게임이었다.




알리는 11차 방어전에서 레온 스핑크스에게 판정패하여 챔피언을 빼앗기지만, 리턴 매치에서 승리해 다시 챔피언 벨트를 가져온다. 한 체급에서 전무후무한 3번의 세계 챔피언이 된 것이다.


그 후 알리는 체력적인 이유와 예전과 같지 않은 실력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한다. (두 차례 더 경기를 갖지만 이때는 예전의 알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생략)


알리의 경기를 보고 있자면 정말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맷집도 좋은 편이었고 근성도 최고였다. 특히 프레이져와 켄 노튼의 경기에서는 턱이 부러졌음에도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싸워 판정으로 갔다(결국은 졌지만). 아웃복서였지만 도망만 다니지도 않았다.


링 밖에서도 엄청 시끄러웠지만(여자 문제도 꽤나 시끄러웠다), 진정한 쇼맨쉽이 무엇인지 보여주어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또 링 밖에서는 꽤나 도발적이었지만 링 안에서는 매너가 좋아서, 쓰러진 상대를 더 가격하거나 클린치 중 뒤통수를 치거나 하지 않았다.


언론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적절히 도발해 흥분시킬 줄도 알았고,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지자 기존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수시로 바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였다. 그는 항상 끊임없이 연구했고 최선을 다했다.


운도 좋았다. 록키 마르시아노 선수 같은 경우 49승 무패 43KO로 기록만으로는 굉장했지만 제대로 된 호적수가 없어서 전적에 비해 저평가 받는다. 그에 반해 알리의 상대는 조지 포먼, 조 프레이져, 켄 노튼, 소니 리스톤 같은 당대의 최고 주먹들이었다.


거의 10년을 쉬다가 다시 복싱을 해 무려 42살에 다시 세계 챔피언이 된 조지 포먼을 생각해 보면, 알리 당시의 선수들이 얼마나 실력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포먼이 이겼던 마이클 무어러는 듣보잡 세계 챔피언이 아니라 그 때 까지 한 번도 지지 않았던 강타자였다. 포먼에게 지기 전까지 35전 전승 30KO였다)



스포츠 외적인 면에서의 알리


알리의 베트남 전 거부와 흑인의 인권 운동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다. 그는 항상 당당했으며 자기의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그의 행동은 흑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뉴욕 타임즈의 칼럼리스트였던 윌리엄 로든(William Rhoden)은,


“알리의 행동은 운동선수의 위대함에 대한 나의 기준을 바꿨다. (농구 선수가) 단지 골을 잘 넣거나 (미식축구 선수가) 런너를 멈추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신은 당신의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당신의 국가가 (국민들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게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나?”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또 다른 위대한 운동선수 중 하나인 LA 레이커스의 카림 압둘 자바는 알리의 전쟁 반대를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고등학교 선생님은 알리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서 심지어 정부를 비웃고 (군대를)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간다고 싫어했어요. 하지만 그는 흑인의 우상이었고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그 이유로 그를 좋아했고, 그 상황을 즐겼습니다.”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대한 스포츠맨이었으며 스포츠가 진정 사회를 위해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베트남 전쟁은 더 길어졌을 것이고, 사람들은 더 많이 죽었을 것이고, 미국 내에서 이슬람에 대한 편견, 흑인에 대한 차별도 더 지속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도 깊은 상관이 있었던 베트남 전쟁도 그가 없었더라면 더 길어졌을 것이고, 더 많은 사상자를 내었을 것이다


가끔씩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나의 어떤 신념을 위해 나의 전성기를 4년 정도 지워버릴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The Greatest’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의 명복을 빌고 하늘 위에서는 조 프레이져 선생과 부디 화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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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조지 포먼에게 챔피언 벨트를 가져 온 이후, 알리는 ‘척 웨프너’라는 무명 선수와 대결에서 다운도 한 번 당하는 등 고전을 한다. 알리가 15회 경기 종료 직전 KO 승을 거두긴 하지만 웨프너의 투혼은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 경기를 보고 만든 영화가 <록키>다. 그러니까 ‘아폴론’의 실제 모델이 알리인 것이다. 알리는 이 사실을 알고 무척 좋아했는데, 아카데미 상 시상식에 스탤론이 나올 때 기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바쁜 사람들을 위해 하이라이트만. 웨프너도 대단하다.


2) 전설의 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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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져는 암으로 세상을 떴고 알리도 파킨소니즘 때문에 엄청 고생하다가 6월 3일 운을 달리 했다. 결국 승자는 40살 넘어 세계 챔피언을 되찾고 후라이팬을 팔아 돈도 많이 번 조지 포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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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