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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동성애에 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애자이기도 하고 그닥 내 생활과 관련 없는 일이라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내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호모포비아에 가까웠다.

 

내 어릴 때를 잠깐 말해 보면, 고등학교 때 동네 지하철역에서 짧은 머리에 철 지난 힙합 바지를 입고 미대생들이나 매고 다닐만한 화구통을 낀 또래 여학생들이 여럿 모여서는 중앙에서 동성 키스를 하는 사람 주위로 원을 만들고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곤 꺼져. 뭐하는 짓이야?”를 진심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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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가 느꼈던 이반 느낌

 

당시 이반(일반인이 아닌 이반인이라는 의미)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을 때였고, 똑같은 청소년이지만 유행을 무분별하게 좇는 청소년을 아니꼽게 보는 잘 길들여진 청소년이었기에 동성애는 눈살 찌푸려지는 하나의 유행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20대가 되었고 동성애에 대한 얘기를 다시 듣게 됐다. 인권이랑은 동떨어진 문제로 듣게 됐는데, 바로 군대 때문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군대에서 커밍아웃한 병사가 전역하였다는 소문을 듣게 됐고 술자리에서 친구들하고 농담 삼아 눈 딱 감고 커밍아웃하면 뭣 같은 군 생활 종지부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떠들었다. 내게 동성애는 이런 것이었다. 유행을 좇는 아이들의 괴팍한 취미생활로 혹은 빨리 전역하고 싶다는 농담의 소재거리로 쓰이기만 했다.

 

홍석천 씨의 등장으로도 내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동성애자로의 삶의 애환과 그동안 받았던 멸시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토크쇼를 봐도 그러했다.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 보다는 속된 말로 기집애처럼 구는 남자 새끼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평소 마초적인 걸 싫어하고 나 자신도 마초적이지 않다고 여겼음에도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는 건 거부감이 들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생각에 변화를 준 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얼핏 뜬금없을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보여준 소수자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에 변화를 가져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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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개봉하고 몇 년쯤 지나고 나서, DVD를 새로 장만한 다음 재밌는 영화란 영화는 죄다 빌려보다가 볼 게 없어서 고른 영화가 이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느꼈던 감정은 헤어짐에 관한 슬픔이었다. ‘장애인 여자 친구를 버리는 저런 저런 나쁜놈. 저럴 거면 사귀질 말든가.’가 아니라 그냥 남녀가 사랑하다가 헤어진 이야기로 느껴졌다. 영화 처음은 주인공인 '장애인 조제'를 봤었다면, 영화가 끝난 다음엔 '사람 조제'가 보였다.

 

그 이후로 소수자라 불리는 사람들을 그저 한 사람으로 대하는 기적은 없었지만, 연민의 대상도 뭐도 아닌 그냥 사람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전 내 생각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여고생들의 이반을 유행이라 치부하고 난 다르다는 자만에 빠져있었고, 소수자를 비하의 의미로 농담했었으며, 여성과 소수자를 같이 비하하는 발언까지 했다

 

그렇다고 지금은 나은 사람이 됐다고 말하기 힘들다. 영화 하나 봤다고 어느 날 갑자기 성인군자처럼 극적인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 초심자라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아직도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다 지웠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자라오면서 사회로부터 학습된 관습을 일순간 지울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연습 중인 가운데 퀴어 축제를 한다는 SNS 글을 보았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권리를, 그들의 말을, 그들의 생각을 보는 거 말고 그들이당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려고 말이다.


밖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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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리면 바로 보였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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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왜 아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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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기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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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2D가 대신하는 느낌적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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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는 적게 오셨다고 한다



작년보다는 적게 오셨다는 종교를 가지고 계신 분들을 봤다. 단호한 표정과 진심 어린 목소리, 그리고 종말이 정말 오고 있는 듯한 울음 섞인 기도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저 사람들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배척하며, 믿음을 가지면 치료된다고 믿고 있었다.  


안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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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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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캐나다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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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연합 대표부 주한 독일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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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사관에서 준 책자와 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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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춤과 완쾌의 아이콘에서 배신의 아이콘이 된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축제는 밖의 분위기와 대조적이었다. 대사관 부스들은 웃으며 사람을 맞았고, 참가자들도 계속 웃으며 축제를 즐겼다. 깜짝 놀란 방문도 있었는데,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도 참여했다는 것이다. 뉴스에서 하도 얼굴을 봐서 그런지 누군지 한 번에 알아봤다. 쾌유 기념 부채춤의 대상이자 이제는 배신의 아이콘이 된 그 사람이었다. 알아보는 참여자들과 웃으며 악수까지 하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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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에 무지개가 떴다


안과 밖으로 나뉘었던 공간이 퍼레이드로 의미를 잃었다. 충돌할 것 같은 안과 밖은 막상 벽이 사라지니 우려할 만큼의 격한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경찰의 보호 아래 퍼레이드를 벌인다는 게 낯설게 느껴지긴 했다. 방패를 든 경찰들이 뛰길래 따라가 봤더니 그냥 교대여서 놀랍기까지 했다. 이런 광경과 느낌은 처음이었다. 


경찰에 대한 소회를 접어 두고 퍼레이드만 보자면, 많은 사람이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색달랐다. 집회가 아닌 축제 퍼레이드는 처음이라 그랬기도 했지만, 독특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흐린 하늘에 무지개가 뜬 것처럼 무지개 깃발만 나부꼈다.



집으로 가는 길


축제와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난 뒤 사람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 꼈다. 동성애자인 사람도 있었다. 여러 얘기를 듣는 와중에 퀴어 축제가 2회가 아니란 말을 들었다. 작년부터 서울 광장에서 했지만, 서울 광장 이전부터 퀴어 축제가 있었고 17회가 넘은 오래된 행사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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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행사일 뒤에 봤다



헤테로(간단히 말해 이성애자)란 말도 처음 들었다. 어디 가서 이성애자라고 자신을 소개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입 밖으로 이성애자, 헤테로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의 느낌은 익숙지 않은 언어를 내뱉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그냥 술자리 하나 마치고 집에 오는 기분이 들었다. 특별할 것도 없이 낯선 사람들과 가진 모임이었다. 난 해방의 느낌도 인권을 지키는 정의로운 느낌도 받지 않았다. 하나의 축제를 구경하고 구경 온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달랐던 하루지만 특별하지 않았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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