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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공성은 사전에 미리 결정될 수 없고, 오직 타자들의 반응에 따라 사후적으로만 얻어지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말을 빌리자면 공공성이란 동일한 규칙에 지배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상이한 규칙을 가진 타자들과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주의의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공공성을 구별해야 한다.


강신주 <비상경보기> 중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인 큰딸은 강화도로 이사 온 후, 전 학교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그리워 밤마다 울었다. 그렇게 강화도에 적응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진 큰딸은 집으로 애들을 부르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다. 직장맘은 친구 초대가 여러 가지로 부담스럽다. 큰애는 최후의 수단으로 슈렉 고양이 눈빛 레이저를 쏘았다.


이런 연유로, 지난 토요일 오후에 꼬마 손님 몇 명이 집에 찾아왔다. 작은 마당이지만 아이들이 왁자지껄 놀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다. 한 시간 후, 경찰관 두 명이 초인종을 눌렀다. 인근 주민이 시끄럽다고 112에 신고를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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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모두들 안녕?


초딩들은 느닷없는 경찰의 등장에 일동 모두 몸이 굳었다. 경찰관 역시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소음이라고 해서 어마어마한 난장판(어른들이 술 먹고 깽판을 친다던가)을 예상했었나 보다. 나는 먼저 놀란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경찰관은 말을 더듬거리며 근처 빌라에서 신고했다고 살짝 힌트를 주곤, 아이들 너무 떠들지 못하게 지도해달라고 한마디 덧붙이고 돌아갔다.


사십 평생 아파트에 살았어도 이웃에게 항의 한 번 받은 적 없었는데, 단독주택, 그것도 강화도에서 무려 경찰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강화 남부 거주민 Y씨는 이 소식을 듣더니 “역시 읍은 클라스가 다르다. 벌건 대낮에 초딩의 입을 막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다니 짱이다.”라며 감탄했다.


공동주택에 살 땐 층간소음, 담배연기, 청국장 같은 냄새 강한 음식 조리, 미세먼지의 주범 고등어와 삼겹살 구워 먹기 등으로 인해 온갖 다툼이 있다. 난생 처음 단독주택에 살았을 땐 이런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있었다.


서울의 작은 단독주택에 거주 중인 지인에 따르면, 일반 주택가는 갈등 양상이 공동주택에 비해 더욱 다양하다고 한다. 골목길 주차 공간 확보, 쓰레기 투기, 창밖으로 들리는 차문 닫는 소리, 조망권, 공사 중 흙먼지와 소음, 키우는 닭이나 개가 아무 때나 울부짖을 때, 마당에서 손님맞이 등 생각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가 없을 줄 알았던 단독 주택에서도 손님 초대 관련하여 항의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러니까 소란스러운 애들 때문에 경찰이 출동할 수도 있는 거다.


역지사지 해보자. 신고자는 밤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일 수도 있고, 많이 아픈 환자일 수도 있고,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겨우 단잠을 청했을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걍 꿈같은 토요일 오후 휴식을 방해 받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서로 다른 철학, 생활 패턴, 삶의 방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복작인다.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진상 짓이 다른 이에게는 별일 아닐 수가 있다. 공동체 유지를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할 상식 수준의 행동 규칙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은 멀미날 정도로 빨리 변하고 구성원들의 적응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피차간에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허용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편은 강화도의 이웃갈등 문제다.


강화도의 주된 민원이 궁금했다. 가까운 주민센터에 전화를 하니, 민원담당 공무원은 이런 질문이 난생 처음이었는지 황당해했다. 원하는 답변을 얻을 확률 10% 미만. 예의바르게 전화를 끊고 다음 작전을 세웠다.


예쁜 수지가 선전하는 비타민 드링크 한 박스를 들고 근처 파출소에 방문했다. 뇌물이라고? 울엄마가 남의 집에 빈손으로 가는 거 아니라고 했다. 3만원 미만은 괜찮다. 파출소 입구 안으로 들어가니 12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메소드 연기를 시전한다. 지은 죄도 없는데 경찰 제복 앞에서는 쫀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질문을 던졌다. 지면을 빌려 성심성의껏 답변 주신 S파출소 경찰관들에게 인사드린다.


경찰관에 따르면, 강화도 전체 인구의 40%가 거주 중인 강화‘읍’엔 타 도시에도 있을 법한 모든 이웃갈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신고자들은 강화도 토박이가 아니라, 도시 생활하다가 강화로 이주해 온 외지 사람들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개인적인 의견을 밝혔다. 강화 토박이 분들은 겨우 이런 일(?)로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아예 없단다. 혹시 외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이번에는 강화 지역신문을 발행하고 계신 <강화뉴스>의 윤여군 대표를 찾았다. 역시 감사드린다. 강화도에서 20년 넘게 시민운동 중인 윤여군 대표는 일단 ‘주민 갈등과 관련하여 신고자는 대부분 외지인일 것’이라는 경찰의 견해에 동의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은 윤여군 대표님과 인터뷰를 정리 한 내용이다.


강화읍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도 공기 질도 썩 좋지 않다. 대기오염은 이제는 광역화되어 있어서, 강화읍도 예외가 아니다. 강화읍을 제외한 지역은 아직까지는 문명의 때가 덜 묻었지만, 강화읍엔 차도 많고 빛 공해도 심하다.


강화도의 인구 변동은 1년에 약 7,000여 명(인구의 10%)이다. 강화를 떠나는 부류는 대개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을 구해야 하는 20대 청춘이나 자녀 교육 때문에 학군이 좋은 곳으로 가는 가족인 반면, 강화로 들어오는 분들은 장년·노년층이 압도적으로 많다. 즉,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가고, 평생 도시에서의 삶이 몸에 밴 어르신들이 들어온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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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퍅한 도시생활에 익숙해 있는 외지인들은 강화 이주 직후 개인의 권한부터 체크한다. 자주 발생하는 갈등은 ‘땅’에 대한 것이다. 도시 출신 ‘외지것’의 첫 번째 행동은 울타리 치기다. 조상 대대로 공유지처럼 썼던 사유지(그게 사유지인 줄도 몰랐던)에 어느 날 갑자기 출입 금지 표시가 생긴다. 내 땅 네 땅 없이 살아왔던 토박이들은 일방적인 경계 획정에 항의 한 번 못한다. 물론 헌법 제23조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되어있다. ‘법’보다는 관습이 먼저인 강화 사람의 뇌구조에는 ‘권리 챙김’의 개념이 없다. ‘외지것’을 향한 불만이 쌓여도 대적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외지것’이 사는 집과 ‘강화 토박이’의 집을 울타리 유무로 구분할 정도다. 이렇게 서술하고 나니, ‘외지것’들이 싸가지 없고 공감 능력 결여된 소시오 패스들처럼 보인다.


강화군민 중 6만 7천 중 약 4만 7천명은 강화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다. 시골은 다 그렇지 아닐까 싶겠지만, 전국적으로도 이런 인구분포는 흔하지 않다. 강화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강화 토박이들은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관대하다.


주민 갈등이 사법부의 판단까지 가는 경우도 드물다. 마을 사람들에게 어마무지하게 사기를 친 쓰레기도 분리수거 하지 않고 같이 산다. 강화도에서 변호사 개업하고 싶다면 말리고 싶다. 소송이 없는 동네다. 인천 경찰청 소속 경찰들 사이에서는 강화도로 가면 업무량이 줄어든다는 말도 있단다. 강력사건이 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개인끼리 싸움도 많지 않다.


강화 사람들의 특성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강화도는 좌우대립이 극심했고 피해자도 많았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300여 건을 확인했지만, 밝히지 않은 피해자를 합치면 1,000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7만도 안 되는 섬에 말이다.


강화 토박이들은 불화를 공론화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윗집 사람이 부친의 살인범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평생 마을을 못 떠나고 행사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거나, 형을 죽인 죽마고우랑 모르는 척 하고 친구관계를 유지한다. 고구마 백만 개는 처먹은 것 같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불편하다. 서로 다른 욕구가 충돌할 때 말썽이 생긴다. 중요한 건 처리 방식이다. 갈등이 싫어서 피하고 덮을 수 있지만, 상처는 곪는다.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부딪힐 때 너와 나 사이에 허용 가능한 것과 불가능 한 것의 합리적 조정이 가능해진다. 강화 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없다. 그래서 외지 사람들과 분쟁으로 얽히면 형편없이 깨진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거린다는데, 강화 사람들은 웬만하면 견딘다. 부당한 권력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항의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으며 생각을 표현했다가 사단이 났던 충격이 각인된 탓이다.


그 결과, <강화뉴스>가 창간 4주년을 맞이하여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링크)에서, 왜 때문에,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가 무려 68.5%나 나왔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를 배설하기 위해 나약한 인간은 가장 쉬운 방법을 찾아낸다. 그래서 타인은 악마가 된다. 상대를 적으로 돌리면 비용도 덜 들고 속편하다. 외지인을 향한 배타적 관점, 다른 생각에 대한 불관용, 약자에 대한 폭력은 화병의 왜곡된 분출이다.


누군가는 뭘 안다고 함부로 씨부리냐고 뒤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겠지. 내 앞에서 따져라. 나도 유리멘탈이라 쿠크 깨지겠지만(편집부 주- 잘 부스러지는 과자 쿠크X스처럼 멘탈이 깨짐), 기꺼이 대적해주마.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 진통중이라고 믿고 싶다. 요즘 매일 신문 보기가 두렵다. 골이 지끈지끈 아프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의 기운이 복을 내려준다는 근거 제로의 초긍정주의는 짜증 만땅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인데 좋은 건더기라도 좀 찾아보자.


호모 사피엔스의 파워가 지구를 망가뜨리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강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를 통틀어 요즘이 가장 평화로운 시기 아닐지. 김갑수 문화평론가가 지난 100년은 귀족이 사라지고 대중이 풍요로웠다며 20세기 시대정신을 외쳤다. 동감한다. 반동의 역사일까 봐 두렵다.


세상이 나빠졌다는 한탄은 쉽다. 태평성대가 아닌 건 분명하다. 내가 살아온 40년의 시간이 전부는 아니다. 현생인류는 4만 년 전에 등장했다. 인류는 분명히 진보했고 앞으로도 더 나아질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우리가 한때 공적영역으로 여겼던 것들을 점점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한다.”라고 한탄했던 지젝의 주장은 옳다. 21세기 대한민국이 그 증거다. 그렇지만 강화 사람들은 사적 공간을 만들고, 넓히고, 아끼는 것이 먼저다. 이기적으로 보여도 괜찮다. 강화 사람들은 이기심의 미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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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찰관의 급습(?)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불쾌하다. 또 다시 경찰이 온다면 소음 체크해보라고 따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 토박이분들에게 권한다.


윗집에서 발뒤꿈치로 쿵쿵 걷거나, 옆집에서 밤새도록 시끄럽게 떠들거나, 대문 앞에 낯선 차가 주차 되어 있거나, 감히 집 앞에 누군가 쓰레기를 버렸다면 당장 112를 누르자. ‘겨우 이런 걸로 무슨’이라며 재지 말고 신고하자. 강화 사람들이 개사이다 캐릭터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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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