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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이야기


작년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는 열심히 일을 했고 책을 봤다. 일을 해도 아이가 유치원에 있어주니 집에서 일하는 짬짬이 나의 시간이라는 게 찾아와서 좋았고 큰 아이 낳고 가져보는 나만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인디언 섬머는 짧다고 했던가,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평소에 소원소원하던 남편의 입이 다물어질 만한 어마어마한 날벼락!



우리 집에 셋째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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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키우기 힘든 세상, 장기적으로 무언가를 계획하기 참 어려운 난세에, 이제 좀 살만한 나이 마흔에 또 아이를 키워야 할까?



옆에서 꼬물거리는 공주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낙태를 생각했다.



중고피아노 매매와 피아노조율이라는 남편의 일이 마치 사양산업처럼 시들해지고 커가는 아이들에게도 돈이 점점 많이 들 것인데 우리가 또 한 생명을 감당할 여력이 있을까? 정글 같은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게 아이에게 올바른 일일까? 국가에서 해준다는 자궁암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난데없이 임신 진단을 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남편 역시 나에게 선뜻 낳자는 말을 못했다. 육아라는 중노동을 나에게 시키는 것이 미안했고, 자신의 겅제적 능력으로 셋째를 키우려면 나를 더 힘들게 할 것 같아서였단다.


병원엘 가서 낙태 상담을 했다. 낙태 상담을 하면서 비로소 알았다. 각종 뉴스에서 왜 화장실에 낳아 버리고, 고시원에서 혼자 낳아 몰래 버리고... 이런 기사들이 왜 나오는지를.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계류유산(임신이 되고 초음파에서 아기집도 보이나 발달과정에서 태아가 보이지 않는 경우 혹은 임신 초기(일반적으로 20주까지)에 사망한 태아가 유산을 일으키지 않고 자궁 내에 잔류하는 경우)이나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는 근친상간, 부모의 심각한 유전적, 정신적 결함, 강간 등에만 한정되어 있다. 어디에도 해당될 수 없는 나같은 경우는 불법이다. 많은 미혼모나 나처럼 결혼은 했어도 다양한 이유로 아이를 낳아 기르기 힘든 경우도 그렇다.


그러다보니 병원에서는 낙태를 수술은 수술이되 수술이라 부를 수 없는 투명수술이 되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고.

평균잡아 백 만원에서 백 오십 만원이 넘는 현금을 한꺼번에 들고가서는 몰래 건네고 쉬쉬하며 몰래몰래 하는 수술이 되었다.


카드결제, 분할납부는 애초에 상상도 할 수 없고 차트가 없으니 보험 혜택이나 부작용에 대한 변변한 항의도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억지로 아이를 보내야 하는 산모의 정신적 고통을 챙길 여유는 물론 없고 가뜩이나 힘든 산모를 범죄자로 만들고 만다.


이러다보니 임신한 것 자체를 쉬쉬할 수 밖에 없는 데다 경제적으로 수술비를 현금으로 준비할 수 없으면 어딘가에서 아이를 낳아 버리는 수밖에 없다. 윤리적이고 생명존중을 바탕으로 한 제도가 열 달을 배불러 다 키운 다음에 출산의 고통까지 겪게 한 다음 아이를 버리는 더 큰 윤리적 문제를 양산하는 꼴이다. 그것도 경제적으로 영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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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현실은 있으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법 때문에 병원의 배를 더욱 더 불려주는 격이기도 하다. 어느 교회든 병원이든, 다른 그 어디엔가 있는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버리라고 있는 게 아니라 어차피 버릴 아기면 좀더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 놓아서 아기의 생명을 지켜주자고 만든 것이 아니던가!


다음날 돈을 준비해서 남편과 함께 오면 된다고. 좌약 하나 간단히 삽입하고 일상 생활 하다가 병원 와서 간단히 처치만 하면 되니 걱정 말라는 말을 뒤로 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은행으로 향하면서 한참을 울고 또 울고... 남편과 통화하면서 또 울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하나가 나를 잡았다. 내일 일도 모르는 인간이, 내가 태어났으면 행복할지도 모르는 아이의 생명을 빼앗아버려도 되는가? 언제는 난세가 아니었던가? 이 아이 때문에 다른 형제들도 덩달아 행복할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권리마저 내가 빼앗아버리는 건 아닐까?


그래, 어차피 우리가 돈을 아무리 들인들 계층상승이 불가능한 세상이라면 서로서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겠지. 앞으로 정권이 바뀌고 시민의식이 성장하면 약자들이 조금 덜 고달프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겠지.


이렇게 우리는 앞을 보지 말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기로 하고 셋째가 생겼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동네에도 소문을 내서는 입덧이 워낙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을 때마다 이것저것 얻어먹고 위로받았고 남편이 물고기 꿈을 꾸었다 해서 포뇨라는 태명도 지어주고 출산을 준비했다.


나중에 힘들면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일단은 가보기로 했고 아직은 잘 가고 있다. 앞으로 '낳지 말걸'하고 후회하는 날이 온다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위로받고, 셋째로 와준 예쁜 공주님에게는 사과해가면서 최선을 다해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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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고위험군


이 이야기는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에서부터 시작된다.


두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니 임신을 계획하면서부터 우리 부부는 결심했다. 아이가 건강하든 장애가 있든 생긴 생명은 세상 빛을 보게 하자고. 국가에서 돌봐주어야 하지만 그다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시각장애 2급으로 이 시대를 힘겹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하는 이들과 따뜻한 사람들이 주변에 몇 명쯤 있으면 살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심을 굳혔으니 임신 중에 산전검사나 임신성 당뇨검사 같이 내 몸에 관계된 검사들만 하고 기형아 검사 같은 것들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280일만 지나면 평생 보고 살 얼굴인데 아이가 싫어할지도 모른다 싶어 초음파 검사도 자제했다. 산부인과 입장에서 보면 돈이 안 되는 산모라고나 할까.


그런데 다양한 피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하게 생긴 셋째를 낳기로 결심하면서 일이 좀 꼬여버렸다.


둘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시 보건소에서는 쿼드검사라는 기형아 검사 쿠폰을 발급하여 공짜로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임신 출산 지원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엄마의 혈액을 통해 태아에게 다운증후군이나 에드워드증후군 같은 질환이 나타날 확률을 알아보는 검사법이다.


엄마 피를 뽑으니 태아에게 무리가 갈 일도 없고 공짜라니까 그냥 한번 해보자 싶어서 보건소에 임신 등록을 하러 간 김에 쿠폰을 받아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놈의 공짜가 문제였다.


공짜라 아무 생각없이 한 검사 결과가 뜻밖에도 우리 공주님이 기형아 고위험군 태아로 분류되어 양수검사가 꼭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와버린 것이다. 35세가 지난 노산인 데다 기형아 고위험군으로 나왔으니 양수검사를 해야한다고, 그것도 태아가 더 크기 전에 빨리 해야한다고 하루에 두 번씩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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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병원에서 하자고 했는데 안 했다가 아이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병원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게 산모이다. 설혹 산모들은 거부하고 싶어도 주변에서 가만두지를 않는 게 또 우리네 시댁이요 친정이기도 하고.


그래도 두 아이를 조금은 남다르게 낳은 내공이 있기에, 평소에 조금은 세상에 딴지를 걸어본 내공도 있기에 산부인과 전화번호를 수신거부해 놓고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쿼드검사라는 건 반드시 기형아가 나온다는 게 아니라 몇 가지 지표로 다운증후군 같은 기형아를 낳을 확률이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검사이고 그 지표 중에는 산모의 나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셋째를 낳을 때 내 나이 마흔, 우리나라 노산 기준은 35세. 그러니 노산도 한참 노산일 수 밖에 없으니 다운증후군 확률도 폭증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확률의 문제이다. 쿼드검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이지 확진이 아니다. 검사 결과가 좋아도 다운증후군 아기가 태어나기도 하고, 겸사결과가 나빠도 건강한 아기가 나오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럼 양수검사는 왜 하지? 병원에서도 말했다. 양수검사가 다운증후군 확진이라고 나와도 낙태는 불법이라고. 쿼드검사 결과가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라도 양수겸사 결과에서 정상 확진 판정이 나오는 경우가 80퍼센트 이상이다.


그렇다면 양수검사를 해서 정상 확진 판정을 받으면 모든 고민이 해결되는데 나는 왜 양수검사를 망설이는걸까?

단지 80만원 정도의 검사비가 부담스러워서만은 아니다. 양수검사라는 게 예전보다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외부의 힘이 들어가서 양수를 채취하는 것이기에 태아에게는 감염의 우려가 상존한다. 산부인과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하지만 병원 말보다 더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게 현실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아이를 불필요한 위험에 빠뜨려도 되는 걸까?


그러다보니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이르렀다. 양수검사로 정상 확진을 받는다면 모든 게 해결 되겠지만 양수검사 결과가 다운증후군 확진으로 나오면 아이를 포기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낳을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것도 아니고 다운증후군인데. 내가 죽으면 이 녀석을 도대체 누구한테 맡겨야 하는 걸까? 내가 없더라도 이 병을 안고 독립생활이 가능할까?


다양한 피임에도 생겨난 아이를 다운증후군이라고 버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우리 가족의 몫이라면 나와 남편, 아이들이 함께 감당하고 지역사회가 감당해주도록 싸우고, 국가와 싸워야 할 문제지 아이를 버릴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문제는 간단해졌다. 병원의 상술일 수도 있는 태아에게 위험한 양수검사 대신, 그 비용의 반으로 우리 가족에게 투자해서 함께 좋은 것 먹고, 놀러다니면서 내 마음을 행복하게 다스릴 수 있다면, 기쁘게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다면 먼저의 두 아이들처럼 아이가 뱃속에서 편안하게 있도록 내버려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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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음으로 일하고, 동네 아이들에게 한국사도 가르치고, 책도 보고, 산책도 하면서 즐겁게 지냈다.


다행히 우리 공주님은 지금 자기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웃고, 눈 맞추고, 뒤집고, 잘 먹으면서 자라고 있다. 그때의 내 선택은 참으로 탁월했다고 생각하면서 한시름 놓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하나, 양수검사 결과가 기형으로 나와도 낙태는 불법이라 뒷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데도 왜 병원은 굳이 양수검사를 하라고 하는 걸까? 결과가 안 좋아 장애아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부모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붙여야 하는 걸까? 이런 현실 속에서는 양수검사라는 게 병원의 돈벌이 수단 밖에 안 된다고 하면 너무한 걸까?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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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