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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처럼 살기를 원하거나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를 원한다. 아버지에게 1년에 한 두번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으면 돈을 보내거나 만나러 간다. 돈을 조금 주고 온다. 아버지에게 전화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했다. 먼저 전화할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가끔은 전처럼 모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동생의 죽음 이후 간간이 아버지는 와 닿지 않는 친근감을 표현한다. 그 친근감에 호응할 수도 없고, 외면하지도 못한다. 빨대를 물고 숨을 쉬는 것처럼 답답해진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최민수 씨나 아버지와는 반대로 살아가겠다는 오기를 보이는 이문열 씨가 납득이 간다. 고정된 도덕관념으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해는 갔다.


동생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 동생의 죽음에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들을 가져다 댈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아버지 그대가 그 아이를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동전 몇 개를 당신의 주머니에서 훔쳤다고 모진 매를 들고, 묶어 장롱에 몇 시간을 가두어두었을 때부터 정신을 담는 그릇에 금이 가기 시작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쉬어터지다 가늘어지는 울음을 듣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두려움과 원망과 죄책감의 기억이 지워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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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잘되게 하기는 섬세하고 어렵지만 아프게 하기는 단순하고 쉽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감의 능력이 발달한다. 보통은 인지와 감응이 상호작용을 하지만 반대의 작용을 하기도 한다. 공감능력을 이용해서 상대에게 더욱 큰 고통을 줄 수도 있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 병원비로 목돈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했다. 혼자 감당할 만한 액수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시설에 있던 어머니의 병원비와 장례비용으로 사용했다고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묻는 물음에 죽어서 뿌렸는데 알아 무엇하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맞는 말이다. 막내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다. 눈이 붉어진 막내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형, 사람들이 우리를 호로 자식이라고 하겠지" 상황을 받아드렸다. 아마도.


명확하게 시작과 끝을 인식 할 수 없는 탄생과 죽음의 사이에서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의식한다. 의식하다 보면 인정받고 싶어진다. 때로는 서열 확인이 되고 때로는 허례허식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관계망 속에서 불안정한 삶의 좌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 주위로는 사람들이 끌리고 별자리들이 만들어진다. 빛나지는 않아도 괜찮다.


어느 날부터 죽은 동생의 사진이 많이 슬프지 않았다. 다섯 살 터울의 제 동생보다 더 어린 모습의 사진에서 조금씩 낯설음을 느낀다. 네가 변하지 않고 내가 변하는 것만으로도 서먹해 질 수 있다. 십년도 지났으니 이제 놓아줄 때가 되었다.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고창에서 2년 살고 조금 더 남쪽인 함양군으로 이사를 했다. 할 말도 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잘도 이사를 다닌다. 주소변동 기록이 3페이지는 넘을 것 같다. 고창에서 살던 조립식 주택보다는 집이 아늑하다. 산자락을 끼고 앉은 집 앞에 제법 넓은 평지가 보이고 강이 마을을 휘감아 돈다. 강 너머에는 산자락들이 병풍처럼 첩첩이다. 지리산 자락이라 그런지 산매가 부드럽다.


시내에 나가 밥을 먹었다. 아내의 권유에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따라와서 르카프에서 하늘색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 슈퍼에 들러서 먹거리를 샀다. 아버지는 오예쓰를 먹고 싶다고 했다. 따로 보이지 않아 쵸코파이를 담았다. 찾아볼 수도 있었는데 작은 심술도 담았다.


운동화가 영 마음에 들었는지 쵸코파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버지는 아내에게 덕담을 했다. 아직 젊어서 부지런히 모으고 서로 아끼고 위하고 살란다. 개그 한 토막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말은 삶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힘을 갖는다. 같은 말도 누군가는 고맙고 누군가는 고까운 건 청자의 탓만은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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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름으로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논이 있었다. 그 논을 작은 아버지가 경작하고 아버지에게 해마다 쌀가마를 주었다. 동생의 죽음 후에 아버지가 작은아버지를 찾아갔다. 자신이 죽은 뒤에 돈이 땅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땅을 팔아 돈을 받길 원했다. 처음엔 자식이 죽은 뒤에 라는 말로 듣고 늦은 후회를 하는 줄 알았다. 원래는 자신이 먼저 땅을 팔려고 알아보았는데 지역사회에서 작은아버지를 계속 보고 살아야한다는 말로 거절당했었다. 전후사정이 어찌 되었던 30년 가까이 같은 사람이 농사를 짓던 땅이다. 암묵적인 권리가 인정된다.


동생의 죽음이 촉매가 되었다. 작은아버지는 땅을 팔아 아버지와 고모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버지는 막상 돈을 받자 겁이 났다. 평생 제대로 돈을 벌어본 일이 없는 아버지에게 오 천 만원은 무섬증이 생길정도의 큰 돈이다. 며칠 무섬증에 떨다가 자신이 예전에 잠깐 살았던 평창의 배추밭을 샀다. 한참 동계올림픽 열풍이 불 때 사서 반 토막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막내고모는 쓸 수 있는 땅을 팔아서 못 쓰는 땅을 샀다고 아까워했다.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걱정도 했다.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신의 아버지보다 오래 사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이루었으니 원이 없다고 웃는 얼굴 앞에서 당신의 죽음을 물었다. 당신이 이룬 업적은 공감하기 어렵다. "죽은 뒤에 어디에 묻어줄까요." 색색거리는 숨소리에서 가슴부터 목 언저리까지 올라온 끈적한 가래가 느껴진다. 결핵을 심하게 앓아 폐가 좋지 않다. "죽은 뒤에 무슨 소용이 있냐. 니 맘 대로 해라" 살짝 눈치를 보아 온다. 어떻게 하고 싶다는 내 맘이 없어서 물어본다.


"원한다면 할머니 할아버지 묻혀계신 곳에 묻어주고" 선산에 있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무덤에 가 볼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썩 내키는 표정이 아니다. 별 말이 없다.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러면 평창의 땅을 팔아서 당신이 묻히고 싶은 곳 땅을 사세요. 그곳에 동생도 묻어주고 당신도 묻어주게."


동생을 묻고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썩 나쁘지 않은 제안인지 그러자고 한다. 참나무 몇 그루 심을 정도면 족하다. 생각나면 어쩌다 한번 가서 향 대신 담배 한 가치 피워주고 싶다.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놓지는 못한다. 한동안은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안 되면 동생을 조금 더 가지고 있다가 풍광 좋은 곳에 뿌려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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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오는 길에 머릿속을 차지한 사람은 김진숙이었다. 그녀는 적어도 노동자라면 하이패스로 결제하지 말라고 했다. 기술의 발달이야 어찌 할 수 없다지만 조그만 박스 하나를 목숨 줄로 부여잡고 사는 여자들이 밀려 사라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어 했다. 함안 톨게이트에는 하이패스가 아닌, 출구에 사람이 앉아있는 부스대신 무인 정산기가 있었다.


안타까워해도 결국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보이지 않게 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생각을 하다가 그들을 연민하던 김진숙에 생각이 닿았다. 허허로워 보이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났다.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의 용접공이었다. 조선일보에서 당시 처녀용접공을 인터뷰한 기사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파카한일유압 사태에서 두 번 취재를 나왔었다. 한번은 사측에 서서 민주노총 고임금 귀족노조의 프레임을 씌우려했고, 한번은 공공편의의 입장에서 파카 서울 사무실 앞에서 여는 집회의 소음 데시벨을 측정했다. 분수를 알고 그저 열심히만 살아가는 처녀 용접공은 조선일보가 좋은 마음으로 취재할 만한 대상이었다.


노동조합을 알게 되고, 반쯤 등 떠밀려 노동조합 간부가 되고,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곳에 가면 죽는 사람도 있었고, 실종처리가 되는 사람도 있었고, 정신을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근안 씨처럼 일부 운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일을 하던 공무원들은 승진을 하고 훈장을 받고 정년퇴직을 하고 안락한 노년을 보낸다. 그분들의 노고 덕분에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까지 소녀감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전두환씨도 마르지 않는 29만원으로 황제의 삶을 살아간다.


김주익님의 죽음이후 겨울에 보일러를 틀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연민인 것 같다. 연민이라는 감정은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대상이 확장된다. 연민이 자신에게만 향하는 모습은 안쓰럽기고 때로는 추하다. 자존감을 깨우친 사람들은 연민을 자신에게 향하지 못한다. 자신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상에게 연민을 향한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우리의 폭이 넓어진다. 보통은 우리가족과 그것에서 조금 더 확장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순한 사람도 자신이 소속감을 가지는 어떤 조직을 위해서는 쉽게 이기적이 되고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조직의 외피를 두르는 순간 파리대왕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격이 바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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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양과 댓글을 달던 요원들의 충성의 대상은 국가가 아닌 국정원이다. 더불어 대한민국 정치의 양대 축을 담당하는 검찰조직에서도 그들의 충성의 대상은 국가가 아니다. 불특정다수의 모호한 국민들의 주권의 연합체인 국가가 아니라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특수하게 선별된 자신들의 조직이 무소불의의 권한과 부귀영화를 제공해준다고 인식한다. 국정원 요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부분기억상실증과 의문자살로 증명된다.


과도한 선민의식과 주어진 권한의 폭을 확대해석한 초임검사가 피의자를 검찰청에서 강간했다. 조직을 개혁하려는 어떠한 대상도 적으로 인식한다. 라이벌인 국정원과 각을 세우다 혼외자 문제로 옷을 벗는 검찰총장에 대한 충심의 표현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들이 인식하는 우리는 특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충성의 대상인 조직은 상급자로 인식된다.


특권계층에게 질시의 시선을 보내거나 특권의 정당성을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세밀하게 갈라진 계층의 사다리 아래 부분에 노동자가 존재한다. 노동자는 여성과 남성, 내국인과 외국인,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려 은근한 차등대우를 받는다. 직접 대항하기 벅찬 상위계층대신 서로를 미워하기가 쉽다. 삶이 팍팍하거나 욕심이 시야를 가리면 인식하는 우리의 폭은 좁아질 수박에 없다.


노동자가 비록 세상의 주인은 아니지만 자기 삶의 주인은 될 수 있다던 김진숙과 그녀를 닮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이젠택의 이선자, 시그네틱스의 윤민례, 기륭의 유홍희, 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한이 소금 알갱이처럼 맺혀 시각화되었다. 연민의 방향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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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씨


노동자로 살아가며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는 그들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반대편에 서지는 말아야겠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것이 자연에 가깝다. 고관대작들이 즐비한 종로에서 뺨을 맞고 억눌렀던 분노를 만만한 상것들이 일하는 한강나루에서 풀어버리기가 쉽다. 그렇게 아래로 가중되는 분노가 더 이상 아래를 찾지 못하는 계층에서 서로를 향한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 전동차에 치어죽은 열 아홉 소년의 유류품 사진을 보았다. 사발면 옆에 있던 수저를 보고 왈칵 감정들이 치밀었다. 사람의 뇌는 20대 중반까지 발달이 끝나지 않는다. 아직 의식이 덜 자랐고 경험이 부족했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부당한 작업지시에 순응하다 죽어버린 소년에 대한 애처로움, 순응만을 가르친 부모에 대한 안타까움, 그 피를 이익으로 환산하는 사람들에 대한 환멸이 지나가고 기관사에 대한 생각을 했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피해자를 피해의 원인을 제공한 자로 만드는 기사를 썼다.


언젠가 사람을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철도공사 사장님이 2인 1조로 근무하던 기관사를 한사람씩만 근무하게 했다. 기관사 한 분이 운행 중인 지하철에서 급하게 용변을 해결하려다 떨어져 숨졌다. 정비담당자들도 줄어 사고의 위험이 커졌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도 기관사 한 명이 더 있었으면 키를 잠그고 도망가지는 않았을 일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임금 외의 조건으로 쟁의를 일으키면 불법이다. 쟁의 명분을 임금으로 삼으면 그보다 못한 수입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다. 철도 민영화 반대는 불법파업 판결과 70억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기 전엔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더 예전에는 농약과 쥐약을 마셨지만 도시화가 되어서인지 자살에 신문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하철에 사람이 뛰어들면 철로에 시신이 분산되고 기차에도 들러붙는다. 담당기관사는 시신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을 이루던 조각들을 양동이에 담고 물걸레로 핏물을 청소하고 운행했다. 아마도 스크린 도어를 가장 환영했던 사람들은 기관사들이었을 것이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고 나서는 스크린 도어를 고치던 비정규직의 시신을 치운다.


정규직에 목메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비정규직에게 가혹한 현실과 정규직에만 조금 더 제공되는 보상 때문이다. 차별과 보상에 중독된 사람들은 판단의 기준을 조직에 둔다. 자살용 마티즈를 사는 국정원 요원과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국가기밀문서를 공개하는 원장, 검찰 총장의 두 집 살림을 공격하는 외부의 압력에 분개해 사표를 내는 검사처럼 옥시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그런듯하다.


몰라서 그저 시키는 대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갉아먹는 물건을 만들고 판매할 수도 있다. 알게 돼서도 다른 이들의 죽음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드리는 사람이 없다. 사과는 잘못의 인정이 되고 잘못의 인정은 배상의 근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옥시의 직원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해외여행을 받아드렸다.


비정규직이나 무직자가 되기보다 살인자들과 공범이 되는 길을 택했다. 살인자들과 공범이 되는 편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들을 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다 소모된다. 목숨을 잃는다. 정규직은 돈이 적고 목숨이 위험한 자리에 비정규직을 보낸다. 공범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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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나마의 정규직도 특권계층이라 노동개혁의 대상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꿈은 박근혜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재인의 나라에서도 기름장어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심지어 나도 모든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이 되는 꿈을 꾸지 않는다. 다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만큼 대가를 받길 원한다.


조금 덜 비겁해도 사람처럼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살인자들과 공범이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가족과 밥줄을 핑계로는 하지 않을 수 있다.


세상이 바뀌는 건 세상을 이루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때 가능하다. 가난해도 부자의 줄에 서라며 긍정의 힘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마음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선다.






범우


편집 :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