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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마녀 하면 무엇이 연상될까? 길쭉한 턱에 검은 망토를 걸치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자?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학교? <백설공주>에 나오는 못된 계모?


여기 마녀 사진이 한 장 있다. 검은 망토를 걸치고 납처럼 칙칙한 머리카락에 얼굴은 주름이 져서 쭈글쭈글하고, 손가락은 비쩍 말라 가늘고 손톱이 길게 자라 있다. 코는 매의 부리처럼 길게 구부러져 있고 눈은 움푹 패여 있으며 턱은 길쭉하게 앞으로 나와 있고 듬성듬성 보이는 이빨은 검게 썩어 있다. 걸을 때면 허리는 꾸부정하고 뱀처럼 구불구불한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무슨 말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아무 때나 욕설과 섬뜩한 저주를 내뱉는다. 어둠침침한 마녀의 방에는 마법의 책이 놓여 있고 음침한 검은 까마귀가 그 곁에 있다. 방 한쪽에는 마술에 쓰일 온갖 기구들과 묘약을 만들 솥단지가 놓여 있다. 아무 마녀 그림이든 뒤적이면 흔히 나타나는 마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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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는 마녀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맥베스>에 등장하는 마녀들은 우리가 지닌 마녀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녀들은 사악한 능력으로 고결한 장군인 맥베스를 타락시켜 왕을 시역하게 하고 한 국가를 혼란과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마녀 1: 그 자를 건초처럼 말라빠지게 할 거야.

밤이든 낮이든 잠이 그 자의 눈꺼풀 위에

찾아들지 못하게 할 테야.

그 자를 저주받은 채 살게 할 거야.

일곱 밤 여든 한 번을 지치게 하면

그 자는 여위고 수척해지고 시들고 말 거야.

그 자의 배를 난파시킬 순 없지만

폭풍으로 뒤흔들 수는 있어.

 

마녀의 모습이 어떤 것이든 지금의 우리에겐 마녀는 낭만적인 꿈의 상징이다. 그것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아득한 잃어버린 어떤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자유의 꿈을 대리 만족시켜주기도 한다.


빗자루 하나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신비의 영약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거나 저주하는 존재가 마녀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마녀로 그려지는 늙고 추한 노파의 모습에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과 혐오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또한 당대의 일반화된 규범과 질서를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공포와 저주가 마녀의 이미지 속에 남아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나오는 마녀들은 맥베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욕망이 구체화된 존재들이다. 이처럼 우리 앞에 펼쳐진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마녀의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마녀가 유럽의 한 시대를 휩쓸고 간 광기의 산물이라는 것을, 그것이 아직도 우리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마녀는 타락한 서구 기독교가 만들어낸 한 시대의 속죄양이다. 그들이 믿는 악마가 실제 그들의 삶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 마녀이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그 마녀를 잡아 죽이려는 광기에 사로잡혀 유럽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다. 마녀사냥(재판)의 광풍은 13세기 무렵 프랑스에서 불기 시작해서 서유럽 전역을 황폐화시켰다. 특히 유럽 르네상스의 전성기로 알려진 16-17세기에 극에 달했다. 합리와 이성의 시대에 이런 종교적 광기가 수반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그러나 그것은 왜곡된 ‘이성’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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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이 무너진 이후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면서 유럽은 교황 중심의 거대한 종교대륙이 되었다. 그 세계에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하찮은 존재였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의미 있는 존재는 신이다. 스콜라 철학은 수백 년 동안 바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중세 유럽인들에게 이 세상은 덧없는 곳이고 오로지 천국에서의 영생만이 삶의 목적이다. 이 세상에서의 고통이 크면 그만큼 더 천국에서 복을 받는다. 그런 중세적인 가치가 붕괴되고 새로운 인간 중심의 가치가 성립되는 과정을 우리는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르네상스에 와서 인간은 다시 세상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명제는 바로 인간이 신을 밀어내고 다시 세상의 중심에 들어섰다는 선언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는 오직 신만이 사유(생각)하는 존재이며 신의 한낱 피조물인 인간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다. 그 단순한 진리를 되찾는데 유럽은 천 년 가까운 세월을 허비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 과정에서 마녀 사냥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신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발짝 물러나, 인간의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인간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늘 불안한 마음으로 등 뒤에 있는 신을 의식하고 그의 뜻을 유추하고 그 뜻에 따르려고 애썼다. 그 혼돈의 산물이 마녀이다.


마녀는 악마가 준 연고를 바른 빗자루를 타고 한밤중에 악마의 잔치에 참석해서 떠들썩하게 먹고 춤을 추며,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짓밟으며, 악마를 숭배하기로 서약하고 그 엉덩이에 경건하게 입을 맞추고 악마와 섹스를 하며, 악마의 힘을 빌려 사람과 가축에 온갖 종류의 악행을 저지른다. 사람이나 가축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하며, 사람과 가축이 임신을 하지 못하게 하고, 산모의 젖을 마르게 하고, 주술로 사람과 짐승을 죽이고 심지어 사람의 시체를 먹는다.


마녀재판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는 죄목이다. 특히 마녀재판에서 재판관들이 악마와의 성교를 끝없이 추궁하고 죄인을 발가벗겨 몸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뒤지고 판결문에서 온갖 형태의 성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것은 종교적 경건함 뒤에 가려진 사제들의 성적 욕망과 관음증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여기에 1582년에 쓰여진 마녀재판의 판결문에서 재판관이 마녀들에게 선고한 죄의 목록이 있다. 읽기에도 벅찬 죄목이다.


배교자, 우상 숭배자, 신성한 신앙에의 반역자, 전능하신 신의 부정자, 수간범인, 최악의 죄인, 간통자, 간음자, 요술사, 마술사, 이단자, 악마의 눈을 가진 믿지 못할 자, 살해자, 유아 살인, 악마 예배자, 악마교도, 악마의 법률과 사악한 신앙의 신봉자, 신을 모독한 자, 거짓 맹세자, 부도덕한 자, 그 외의 모든 범죄와 위배를 범한 자.



유럽 전역에 걸쳐 수십만 명이 마녀라는 이름으로 처형되었다. 마녀는 교황에서부터 거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 처형당한 사람들 중 90% 이상이 힘없고 가난하고 남편이 없는 여자들이나 처녀들이었다. 그들은 근대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흔들리고 있던 유럽의 가부장제 체제를 지키기 위한 희생양들이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프랑스의 민족 영웅 잔다르크였다. 그녀는 여성의 몸으로 조국을 멸망에서 구함으로써 오히려 남성의 권위에 도전하고 위협을 가했다. 그러므로 남성 지배자들이 결탁해서 그녀를 마녀로 몰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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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로 찍힌 사람은 자기 변론권이 인정되지 않았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고문을 당하고 결국에는 교수형을 당하거나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 한 가족이 몰살당하고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근세 유럽은 진보의 한편에서 이처럼 마녀를 태워 죽이는 불꽃과 살타는 냄새와 비명소리가 뒤얽힌 아수라장이었다. 그것은 중세의 봉건적인 엄격한 종교 및 정치 체제가 와해되는 데 따른 기득권 세력의 일대반격이었다.


마녀 혐의자에게 가해지는 고문이라는 것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마녀의 표식을 찾기 위해 긴 바늘로 신체의 여기저기를 찌르고, 팔을 뒤로 묶어 공중에 높이 매달았다가는 아래로 떨어뜨리고, 벌겋게 단 쇠구두에 발을 집어넣어 쇠망치로 두드리고, 인두로 살을 지지고, 손톱을 뽑아내고 그 자리를 바늘로 찌르고, 온몸을 마차 바퀴에 꽁꽁 묶은 채 마차를 끌고 다니고, 사지를 네 필의 말에 매달아 찢고, 혀를 뽑아 자르고 그곳을 인두로 지지고, 악행은 끝이 없다. 더욱이 마녀를 고발하는 자의 형을 낮춰준다고 선동하며 가까운 가족의 고발을 장려하여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남편이 아내를 밀고하고, 형이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모리시마 쓰네오는 <마녀사냥>에서 마녀재판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한 명의 이단자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는 1천 명의 무고한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피고에게 유리한 변호의 기회는 완전히 빼앗고 피고에게 불리한 증언을 위해서는 온갖 기회를 동원하며, 사람의 온갖 지혜를 동원한 고문에 의해 자백을 강요하거나 취조하며, 따라서 용의자는 처음부터 유죄판결에 직결되어 있으며, 죄에 대한 변상 의무는 온몸을 태운 후에도 남아 모든 심문비용은 자신의 온몸을 태운 땔나무 값을 포함해 재산몰수로 변상한다.


마녀 사냥의 광기는 구교와 신교가 따로 없었다. 마녀사냥을 주도한 것은 무지몽매한 백성들이 아니라 교황과 왕과 신구교의 사제들과 학자들 같은 당대의 권력자와 지식인들이다. 그들이 서로 결탁해서 유럽 대륙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으며, “마녀를 죽여라”는 성경 출애굽기(22장 18절)의 한 구절을 근거로 그들의 만행을 합리화했다. 그리고 교회와 마녀 재판관들과 그들에게 기생하는 사람들은 마녀로 처형한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해 배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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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휩쓴 마녀사냥은 신교도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1680년대와 1690년대에 유행했다. 1692년에 마지막 마녀재판이 보스턴 인근의 세일럼에서 벌어져 150여 명이 투옥되고 19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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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사무엘 패리스라는 목사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그 집의 흑인 노예들이 밤마다 몰래 부두교 - 중미 카리브 해의 아이티 섬 흑인 노예들이 주로 믿던 민간신앙으로 북을 치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해서 주술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 의식을 치르는 것을 사춘기 소녀들이 보고 영향을 받아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소녀들이 마녀의 요술에 걸렸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게 되면서 2월 말에 마녀 사냥이 시작되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마녀사냥이 보스턴과 안도바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까지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마녀 혐의로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며 자백을 강요받았다. 마침내 31명이 마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실제 19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그런데 그때 보스턴의 상인인 로버트 칼레프가 용감하게 마녀재판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면서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에 힘입어 피고들이 무죄를 주장하게 되고 사건의 발단이었던 소녀들이 진상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이 사건은 잘 보여준다)


1693년 5월에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풀려났으며, 1696년에는 재판관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판정을 번복했다. 그리하여 이미 죽은 자들을 비롯한 모든 죄수들에 대한 판결은 파기되었다. 마녀 재판을 주도했던 패리스 목사는 추방되었다. 그것으로 마녀사냥은 미국에서 사라졌지만 이미 무고하게 죽은 19명의 목숨을 누구도 다시 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이 재판에서도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당대의 가부장적인 가족 질서와 청교도 사회가 요구했던 엄격한 규율에 순응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17세기 미국의 청교도들은 신정일치의 종교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으며, 지나치게 엄격한 교리와 가혹한 형벌로 신자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미신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그런 광적인 종교적 열정은 세속주의와 부딪치면서 점점 와해되어 17세기 말에 급속히 쇠퇴하였다. 바로 이런 종교적 위기의식이 마녀사냥을 낳았다. 그들은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마녀라는 희생양을 끝없이 찾았다. 아무튼 그 사건은 청교도 사회의 폐쇄성과 불관용의 특징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아서 밀러는 이 세일럼 마녀사냥을 <크루서블>이라는 연극으로 만들었으며, 그 연극이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에 의해 1996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극은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역사는 아니다. 그는 그 극을 존 프락터와 아비게일이라는 그 집 하녀 사이의 불륜에서 시작한다. 실제 역사에서 프락터는 60세이며, 아비게일은 10살이었지만 이 극에서는 두 사람이 정사를 가질 수 있는 연령인 35세와 17세로 바뀐다. 두 사람의 비뚤어진 애정이 결국 마녀사냥의 광기를 몰고 왔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잠재되었던 불신과 질투와 탐욕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마을은 쑥대밭이 된다.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고발하고 매도한다.


밀러의 극은 17세기 말의 종교적 광기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1950년대 미국의 광적인 매카시선풍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밀러 본인이 바로 공산주의자에 대한 마녀사냥의 희생자였다.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소련과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서면서 치열한 이데올로기 싸움을 시작했으며, 미국 사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집단 히스테리에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보수적인 정치가들과 종교인들이 결탁해서 벌인 광기였다. 그 광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반미주의자, 공산주의자, 매국노로 몰려서 감옥에 가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치러야 했다. 밀러 역시 공산주의자로 몰려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그나마 법정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바로 그런 경험이 이 작품을 낳았다. 이 작품은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공산주의 혐의로 죽는 날까지 CIA의 감시를 받았다.


오늘날에는 ‘마녀사냥’이라는 말은 흔히 어떤 집단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다른 집단에게 무차별적인 폭력과 탄압을 가하거나 어떤 개인을 악인으로 몰아서 비방하고 인격살인 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그런 점에서 히틀러가 자행한 유대인 학살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저지른 만행도 일종의 마녀사냥이다. 두 경우 모두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유대인과 조선인을 ‘마녀’로 몰아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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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에 벌어진 마녀사냥의 유산은 암암리에 미국의 정치와 외교에 깊게 남아 있다. 마녀가 없는 미국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미국은 건국 이래 마녀를 찾아 세계를 헤매고 다녔다. 그 마녀는 소련, 중국, 쿠바, 이란, 이라크, 북한,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나라, 알 카에다, 하마스, 지하드, 헤즈볼라, 탈레반 같은 단체, 오사마 빈 라덴 같은 개인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위험분자들로 몰아 집단수용소에 강제 수용했으며, 전후에는 공산주의 혐의자들에 대한 매카시선풍을 불러일으켰고, 2001년의 9.11테러 이후 이슬람계 미국인들에게 백인들은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였다.


군산복합체의 나라인 미국은 마녀가 사라지는 순간 위기가 온다. 그러므로 미국은 잊을만하면 ‘저기 마녀다’하고 소리를 지르며 그 말에 전세계는 기다렸다는 듯이 벌벌 떨면서 미국의 무기를 사재끼고 자국민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한다. 미국의 팽창주의 욕망이 미국은 신의 선택을 받은 나라라는 선민의식과 결합될 때 타자에 대한 마녀사냥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미국이 짧은 역사에서 해외침략을 한 횟수가 200번이 넘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 마디로 마녀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녀를 필요로 하는 세력/나라에 의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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