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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탑차를 샀다. 세 들어 살고 있는 방을 빼고 차 안에 침대를 설치해서 주거를 해결할 생각이란다. 여기저기 여행도 다닐 거라 했다. 이런 자유로운 영혼을 보았나. 축하해 주었다. 침대는 샀지만 옷장과 수납장이 필요한데 기성품은 맞지 않으니 만들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가구 따위 별로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가 하는 부탁을 거절하기 싫었고, 기간과 가격은 정하지 않겠다는 말에 해주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시간과 돈은 달라는 대로 주겠다니, 이 얼마 만에 맡아보는 호갱님의 향기인가. 실컷 빨아먹으리라 다짐하며 여기에 그 과정을 기록한다.

 

크기에 맞게 도면을 그리고 모양을 다듬는다. 재료를 선택하고 결구법을 정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명장이나 인간문화재들처럼 몇 년 전에 켜서 말려둔 나무 따윈 없으므로 동네 목재상에 가서 산다. 몸통은 레드파인, 알판은 낙엽송, 뒤판은 삼나무로 할 계획이다. 수입되는 소프트우드 중에서 레드파인을 많이 쓴다. 옹이가 많긴 하지만 뉴송이나 칠레송 스프러스에 비해 조직이 치밀하다. 낙엽송은 흔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무늬를 보는 합판 중에서는 가격이 저렴해서 만만하다. 가끔 삼나무로 서랍이나 뒤판이 아닌 몸통을 만든 가구를 본다. 좋지 않다. 물러서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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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재단하고 먹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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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잘 놓았는지 확인하는 고양이

 

장부를 만들기 위해 먹을 따라 톱질한다. 보통은 등대기톱을 쓰지만 등대기톱은 폭이 좁아서 자를 수 있는 두께가 얼마 되지 않는다. 큰 부재를 가공하려면 양날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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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른 나무를 쓸 때는 먹금의 반을 가르기보다는 살려서 빡빡하게 들어가는 게 좋다.

왼쪽은 등대기톱으로 오른쪽은 양날톱으로 켰다

 

톱질이 끝났으면 큰 살을 덜어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끌만으로 할 수도 있고, 톱을 쓸 수도 있고, 실톱을 쓸 수도 있고, 트리머나 라우터 같은 기계를 쓸 수도 있다. 가지고 있는 공구 중에 정확하고 빨리 할 수 있는 도구를 선택하면 된다. 살을 없앴으면 끌로 반듯하게 다듬는다. 암장부 가공은 트리머나 각끌기로 큰 살을 덜어내고 끌로 다듬는다. 트리머도 각끌기도 없다면 끌질을 열심히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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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이 끝나면 가조립을 해본다. 잘 맞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맞게 다듬는다.


끝나면 결합될 부위에 목재용 본드를 바르고 조립한 후 빠지지 않도록 클램프로 조여 놓는다. 장부에는 쐐기를 박기도 하는데 튼튼하고 다른 나무를 쓰면 장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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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서랍은 가구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사용이 편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색이나 모양, 비율이 몸통과 보기 좋게 어울려야 한다. 손잡이와 경첩까지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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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하지만 밋밋하다. 전체적인 톤을 고려할 때 어두운 색이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이다. 주문자가 어두운 색은 싫다고 했지만 설마 칠 좀 했다고 돈 안 주겠다고 하진 않을 거라 믿으며 내 마음대로 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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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판 색깔이 마음에 든 기념으로 그루밍을 시전 하는 고양이

 

어쨌든 문은 만들었는데 이런 색을 칠해놓고 보니 손잡이를 뭘로 해야 할지 고민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기성품을 뒤져봤지만 마음에 드는 놈이 없다. 이럴 때는 난감하다. 가구 전체로 볼 때 손잡이나 경첩 같은 것은 작은 부분이지만 어울리지 않으면 그 작은 부분이 눈엣가시다. 그렇다면 자급자족이라는 기분으로 만든다. 작년에 의자를 만들고 남은 애쉬가 있다. 켜고 자르고 밀고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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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음에 안 든다. 색깔이. 혹시 깔맞춤 좋아하십니까. 전 좋아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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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맞춤까지 했으므로 손잡이를 단다.

 

다음은 서랍. 앞판은 숨은 주먹장, 뒤판은 주먹장으로 하고 바닥은 합판을 홈파서 끼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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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의 결합 상태를 꼼꼼히 검사하는 고양이

 

조립이 끝났다면 이제 칠이 남았다. 몸통에는 하도제로 보일드 린씨드 오일을, 스테인을 발라 왠지 싼티가 나는 알판과 손잡이 그리고 서랍 밑판에는 셀락을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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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상태를 점검하는 고양이

 

오일이 말랐으면 상도제를 발라야 한다. 셀락을 바르기로 한다. 셀락은 동남아에서 사는 곤충의 분비물을 알코올에 녹여서 쓰는 천연도료다. 헤프고 상대적으로 비싸긴 하지만 빨리 마르고 인체에 해가 없다. 정치적으로 안정된 노란 빛이 나는 데 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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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을 몇 번이나 하면 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눈과 손으로 보기에 만족스러울 때까지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한 서너 번은 해야 하고 잘 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면 예닐곱 번은 해야 한다. 칠이 끝났으면 문을 달고 뒤판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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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모양을 감상하는 고양이

 

가구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고양이다. 디자인이나 톱질 끌질 대패질 따위는 그까이꺼 내 것도 아닌데 대충하다 보면 된다. 하지만 고양이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가구를 만들 것인가. 고양이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DIY 가구 만들기를 마치며 이 가구를 만들고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내 고양이 도도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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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독투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레겐' 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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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레겐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