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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절대로 투자를 유도하는 글이 아니다. 이미 망한 투자를 돌아보며, 왜 나는 이렇게 예측을 했고 돈을 잃었던가를 짚어보고 위험한 투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경제 문제에 대한 분석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공유해 드리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올해 초에 유가 상승으로 재미를 본 나는, 두 번째 재미를 엔화로 보리라 마음 먹었다. 왜? 돌이켜보면, 가장 큰 이유는 이 양반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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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먼 캐피탈 창립자 카일 베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2010년대 그렉시트를 정확하게 예측한 덕에 떼돈을 번, 헤지펀드 매니져다. 지난 몇 년간 있었던 주요 폭락 이벤트를 정확히 예견한 데다, 그로 인해 돈까지 번 양반이니, 이사람 말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일본을 졸라 깠던 것이다.

 

 

위 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카일 베스는 통계로 스토리를 만드는 데에 능하며 굉장히 논리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강연을 듣고 난 나는 다단계 투자설명회를 찾은 어린양마냥 나는 고개를 졸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이 일본을 깐 주요 포인트는,


① 현재 조세수입의 4분의 1을 국채 이자 갚는데 쓰고 있다. 이게 얼마나 미친 거냐면 단기 이자가 지금 일본은 거의 제로다. 장기이자율도 당연히 엄청 낮은데도, 이미 조세의 상당 수준을 계속 빚의 이자갚느라 쓴다. 만약에 아베 신조의 공약대로 인플레가 2% 달성됐다가는, 조세 전액을 이자 갚는데 써야될 판이다.


② 조세 수입은 줄어드는데, 예산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복지 등으로 비용은 미친 듯이 증가하고 있어,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미 GDP의 245%가 정부 빚인데, 점점 더 거대해진다.


③ 그나마 이런 재정상태인데도 버티는 건, 일본 국채를 일본 기관들이 계속 사주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연기금이 슬슬 바닥난다는 거다. 고령화로 인해,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수령받는 인구가 계속 늘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연기금에서는 여기에 맞춰서 국채를 팔고 배당을 줘야 한다. 참고로 일본은 유아용 기저귀보다 성인용 기저귀가 더 많이 팔리는 나라다.


④ 결국 연기금이 국채를 못 사고, 예산 빵구는 점점 심해지니, 일본은 국가가 돈 못 갚겠다고 깽판을 놓든지, 아니면 해외에다가 돈을 빌려오든지 해야되는데 전자의 경우 일본 내 투자자들이 지옥을 맛보게 되고, 후자의 경우 일본 엔화의 가치가 폭락할 것이다.


⑤ 내가 보기에 엔화는 1달러 당 200에서 250 정도는 떨어져야 적정 가격을 찾을 것 같음.

 

종말론적인 스토리다.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은 양반이라 그런가 시나리오 하나는 졸라 잘 쓴다. 사실 위 영상은몇 년 된 것인데, 그 무렵 비슷한 썰이 많이 돌았다. 하지만, 실제로 이걸로 큰 돈을 번 사람은 없는 걸로 안다. 소로스 형도 그렇고, 카일 베스 형도 그렇고 몇 년 전에 살짝 재미 보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요즘은 거기 가서 입 털고 계신다.

 

그리고, 아직도 여기에 미련을 못 버리고 남아있다가 손해 본 투자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 국채 공매도 트레이딩은 월가에서 Widow Maker(과부 제조기)란 별명으로 불린다 카드라.

 

근데 나는 여기에 발을 담궜다. 씻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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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올해 엔화가 미친 듯이 올랐기 때문이다. 엔화는 올해 선진국 통화중에 가장 선전 중인 자산이다. 달러 당 120하던 게 110 밑으로 내려갔다. 연초대비 20%가 올랐는데, 그 기간 동안에 일본경제가 근본적으로 상황이 나아졌냐를 돌이켜보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왜?


① 캐리 트레이드 청산 : 올해 일본 중앙은행은 소비를 끌어내려고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시행했다. 그 말은, 엔화가 지구상에서 가장 이자율이 낮은 통화가 되었다는 말. 그러니 엔화로 돈을 싸게 빌려서, 이자율이 더 높은나라에서 돈을 빌려주면 그 금리차이로 돈놀이를 할 수 있다(그래서 우리나라 대부업 자본 중 상당수가 일본계다). 이런 걸 '엔 케리 트레이드'라고 하는데, 시장이 불안하면, 얘덜은 손해를 많이 본다. 왜냐하면, 돈 빌려주는 나라의 화폐가치가 보통 폭락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아프리카 이런 데서 돈을 빌려주면 손쉽게 이자로 10%씩 먹을 수 있겠지만, 이 나라에 내전이라도 터져서 화폐가치가 떨어졌다간 이 나라 화폐를 든 것 자체로 20% 손실을 볼 수 있다. 망할 수가 있는 거다. 연초에 중국발 경제위기설이 나오고, 그 뒤로도 온갖 자잘한 위험이 많았으니, 이런 케리 트레이드하던 사람들은 짐 싸서 일본으로 돈을 들고 가려는 수요가 많았으리라.


② 위험자산 수요 감소 : 위에 꺼랑 비슷한 얘긴데, 엔화는 선진국 통화인 만큼, 안전 자산으로 분류된다. 시장이 불안하면, 엔화에 대한 수요도 올라간다. 이게 나는 아직도 쫌 아리까리하긴 한데, 어쨌거나 일본은 세계 3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교역 강국이다. 게다가, 국가가 막장이라도, 경상수지 자체는 흑자다. 기업들이 수많은 제품을 해외다가 내다 팔아서 흑자를 내고 있다. 비록, 국가 자체는 빚더미 위에 있지만, 이 빚도 사실은 내국인에게 엔화로 빌려준 빚이라, 여차하면 중앙은행이 화폐를 더 찍어서 갚아버리면 된다. 이런 안전 자산이란 이유로, 올해처럼 불황에 대한 위기감이 높은 시점에서는 더욱 값어치가 올라가게 된다.


③ 기축통화 : 전 세계 무역거래 결제의 약 15%가 엔화로 이루어진다. 그만큼 많이 쓰인다. 달러, 유로 등과 더불어 통화 기축통화 대장으로 꼽힌다. 그러다 보니, 각국 중앙은행들은 미래를 대비해 외환보유고를 쌓을 때 (위험에 대비할 때) 꼭 엔화를 달러와 섞어 들게 되어있다. (이건 엄청난 장점이라, 몇 년 전부터 위안화도 열심히 이 틈에 끼려고 노력 중이다). 1, 2번에 더해져 시너지를 낸 측면이 있다.


④ 1분기 일본경제 GDP는 1.7%의 깜짝 경제 성장을 달성한다. 유가가 올 초 바닥을 치면서, 생산비용이 대폭 내려간 덕에 일본 경제는 올해 1분기 경제성장이 꽤 괜찮았다. 반면에 미국은 5월 일자리 창출량이 전망치인 16만여 개에 한참 못 미치는 3만8000개에 머무르면서, 시장을 불안하게 했다. 일본경제가 상대적으로 더 호황이었으니, 엔화의 가치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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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The Financial Times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올초 엔화는 달러 대비 대폭 상승했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① 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인한 엔화가치 상승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이벤트이지, 장기적으로 하나의 통화의 가치를 바꿀만한 큰 변화가 아니다.


② 엔화가 안전자산이라는 건, 그동안 그래 왔다는 것에 따른 얘기지, 미래의 가치를 나타내지는 못한다. 일본의 재정적자는 갈수록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날 것이고, 결국은 빚을 억지로 갚기 위해 찍어낸 돈들은 상대적으로 엔화의 가치를 끌어내릴 것이라고 봤다.


③ 기축통화라도, 국가 기반이 나빠지면 훅 가는 걸 우린 그동안 여러 사례를 통해 목격해왔다.


④ 유가는 바닥을 찍고 이미 많이 올랐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와 성장은 앞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통화량이다. 일본은 아베 정권 들어서 미국의 양적완화(돈을 미친듯이 찍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의 4배의 해당하는 돈을 시장에 풀었고, 그 결과 엔화의 통화량은 미국 달러의 육박하는 수준이되었다. 미국 GDP의 4분의 1 정도인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가,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의 통화량을 찍어냈다? 이건 이상한 거라고 봤다. 이런 통화량의 변화의 따른 환율의 변화를 예측하는 지수를 소로스 지수라고하는데 (이쪽 거시 경제 바닥에서 레전드 아닌 전설이신 분), 소로스 지수가 이미 버블경제 직전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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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자면, 나는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109 정도 되었을 때, 이를 비정상적이라고 보았고, 별다른 일이 없더라도 연초의 120 수준으로 돌아갈 꺼라 봤던 거다. 운이 좋아서 어떤 방아쇠가 당겨지면(아베 정권이 경제정책을 망친다거나, 자넷 옐렌 누나가 기준금리를 6월달에 올린다거나), 140 혹은 진짜로 200대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보았던 거다.

 

이러한 나의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나는 내가 운용하던 주식구좌의 약 20%를 엔화 울트라 쇼트 ETF에 집어넣었다. 울트라 쇼트 ETF라는 건, 일종의 펀드로써 엔화의 가치가 약 1% 떨어지면, 3%를 돌려받는 방향으로 운영된다. 장외나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달리, ETF 상품은 주식시장에서 언제든 사고 팔 수 있기에 이 방식을 선택했다. 상황을 봐가면서 돈을 조금씩 더 넣거나 뺄 생각으로 시작을 했던 것이다. 


이게 5월의 일이었고, 그때 엔화의 환율은 약 108~109였다.

 

 



씻퐈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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