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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권종관
주연: 김명민, 김영애, 김상호, 성동일, 김향기, 김뢰하, 박혁권, 박수영
각본: 권종관
촬영: 유억, 김정우
15세 관람가 / 120분





스포일러 시럽 다량 함유



최근 권종관 감독의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를 봤다. 포스터와 정식 예고편을 보면 견적이 딱 나오는, 최근 유행에 포함될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나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 이일형 감독의 <검사외전>처럼 사회문제를 뒤섞는 영화 말이다. 데뷔작부터 사회문제를 연결시켜 영화를 만들어 온 강우석 감독 같은 이도 있으니, 급하게 생겨난 유행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나름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이런 작품들이 주는 아쉬운 지점은 계속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관객들이 궁금해 했던 세계를 현실적으로 보여주고자 그들이 쓰는 용어나 활동하는 분야를 보여주는 데는 열성적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신기하게도 이런 소재일수록 개성보다는 공산품처럼 철저하게 ‘적당’ 수준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적당함과 과함 사이에서 간당간당하는 유머, 적당적당한 분노, 브라스와 리듬 기타, 와와 기타로 적당적당히 만들어낸 펑키한 음악 등. 어떤 분야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면 현실의 사건들에서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고, 현실의 사건을 알고 있는 관객들의 기대에 맞추려 메시지도 집어넣으려 하지만, 그조차 겉핥기다. 결국 배우가 해당 세계의 용어들을 얼마나 잘 체화해 내는지를 보는 게 그나마 수확인 경우가 많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 대한 첫인상은 이일형 감독의 <검사외전>을 볼 때만큼 당황스러웠다. 기시감을 너무 많이 느꼈다. 억울하게 사형수가 된 택시기사 권순택(김상호)의 편지를 받고, 그의 딸 동현(김향기)을 만난 브로커 필재(김명민)가 점점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간다는 나름의 이야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다른 작품들이 연상되는 이유가 뭘까.


제목 때문일까. 위에서 거론한 <베테랑>을 비롯해서 <성난 변호사>도 생각나며, 이한위가 등장하는 시체실 시퀀스는 영락없는 <공공의 적>이다. 등장인물들은 중국음식을 자주 먹는데 여기서는 <신세계>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필재가 전직 형사였음을 드러내는 순간에는 주연이 김명민이라 그런지 <무방비 도시>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심지어 작품 속에서 셔터가 내려진 시장 골목에서 벌이는 액션 시퀀스도 비슷하다. 택시기사의 딸이 수난을 당하고 이에 분노하는 전개에서는 김래원이 주연한 <해바라기>가 침투한다. 김명민은 작품 속에서 코가 베이기까지 하는데, 이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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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이 쓸쓸하고 비정한 작품을 벤치마킹한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검사외전>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다른 작품이나 관습들을 너무나도 설렁설렁 붙여넣은 탓에, ‘대충 만든 영화’라는 인상을 풍기는 게 문제였다. 그에 반해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성실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 작품들을 콜라주해서 기시감을 ‘심하게 많이’ 느끼게 한다(<차이나타운>이 등장한 것도,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차이나타운>을 언급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두 작품은 다르지만 느끼는 당황스러움은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시간이 지나자, 작품을 관람하는 게 생각보다는 덜 불만족스러웠다. 절대 좋게 봐줄 순 없지만 이전에 존재했던 작품들에서 특색 있는 요소들만을 취합하려는 노력이 있어서 그런가 모나 보이지 않았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생각보다 어둡다. 이런 작품일수록 하드보일드인 척 하지만, 생각 외로 유머가 많이 끼어드는 바람에 어정쩡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선을 잘 지킨다. 긴장감 넘치는 순간에 일순간 기묘하게 유머가 끼어들어 보는 사람을 이완시킨다. 대놓고 웃기려는 순간들이 가끔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래의 어두움이 손상되지 않을 정도다. 법의 무능함 때문에 개인이나 제도에서 벗어난 수단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든다는 하드보일드 장르의 고유함이 일관되게 유지된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속 주인공들은 문제가 좀 있는 편인데, 이를 드러내는 방식이 의외로 인상적이다. 작품에는 악역이 아닌 주인공들이 스스로가 저지른 부끄러움을 직접 성찰하는 시퀀스가 있다. 본 이야기나 다른 인물이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으로 직접 말이다.


가령 억울하게 사형수로 몰린 택시기사 권순태의 딸인 권동현이 마냥 아버지만을 생각하는 효녀가 아니라, 나름의 욕심과 타락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순간이 그렇다. 탐욕으로 인해 사건을 해결할 증거가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는 증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든지, 혹은 아버지가 부끄러워 일부러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게 한다든지. 이외에 필재나 권순태 모두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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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태처럼 과거에 어두운 생활을 했다가 청산했다는 뻔한 유형도 있지만, 동정의 대상으로만 표현되던 ‘누군가의 딸’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분명 특이하다. 딸에 해당하는 권동현을 비롯해서 주인공 급 인물들인 필재, 권순태, 마지막으로 사무장인 필재를 깍듯하게 챙기는 변호사 판수(성동일 역)는 마냥 호감 갖기에는 좀 정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작품은 그들이 수난을 당하든, 혹은 평소 모습을 고수하든 해서 그 모습을 나름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작품은 주인공들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자각하고 고백할 때 어떠한 억지 유머도 포함시키지 않는다. 관객은 주인공들이 뻔한 유형의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악역이 아니라 ‘주인공’인지 알게 된다. 이 작품의 악역이자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인천을 꽉 잡고 있는 대해제철의 여사님(김영애)은 최소한 자기 입으로 잘못을 말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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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과 달리 주인공들은 정말 죽을 고생을 한다. 사건은 술술 해결 되지만, 이 작품에서 ‘싸가지 없는’ 브로커인 주인공 필재를 비롯하여, 나름의 투쟁을 벌이는 핵심인물들은 모두 시종일관 죽지 않을 정도로 맞고, 베이고, 피를 흘린다. 권순태가 겪는 감옥 안의 상황도 최근 한국영화에서 묘사된 감옥 이야기들 치고는 꽤나 살벌하다. 여기엔 김상호의 열연도 한 몫 한다. 이들은 모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하드보일드한 구석이 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이런 연출은 말초적인 자극에 가깝다. 김영애가 연기하는 악역인 ‘여사님’의 무자비함을 부각시켜 순전히 보는 사람의 공분을 유발하려 설계한 연출인 셈이다. 이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거둔다. ‘한국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맞서고자 한다면 스스로가 피투성이가 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반영했다는 감흥을 주는 것이다. 주인공이 왜 주인공인지, 악역이 왜 악역인지를 설명하는 대신 ‘권력의 힘’을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악역인 여사님에게 주먹을 내리꽂아 오동나무 코트를 입히거나 하는 등의 초월적인 순간을 주거나 하진 않는다.



이 작품에선 조지 P. 코스마토스 감독의 영화 <레비아탄> 같은 결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연기 경력이 오래된 한국영화계의 대배우 김영애에 대한 예우차원이었을까? 그보다는 애초부터 정의구현이 불가능한 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위치에서 쓸 수 있는 만큼만 권한을 준다. 대해제철 사모님으로 대표되는 ‘재벌’의 음모 속에서 죽지 않을 만큼만 목숨을 부지하며, 그저 이들을 조사할 수 있는 진실을 찾아내는 데에서 그친다.


작품에서 악역은 김영애만이 아니다. 그녀의 수하로 김뢰하가 연기하는 박 소장이나 박혁권이 연기하는 양 형사 등이 악역으로 나온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그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 자멸하거나, 혹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여사님의 손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필재의 정의의 주먹이 영향을 미치는 건 박 소장의 부하 조직원들 정도다. 검사에게 혼이 실린 주먹 한 방을 날리지만, 작품의 흐름 상 관객의 통쾌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서비스로, 예외적으로 허용됐다고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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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체념이 보인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서 사모님이 거느리는 대해제철은 인천 검찰과 경찰, 심지어 군대(박 소장의 부하들이 모두 특전사 출신이라는 설정이다)까지 주무른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악역의 막강한 힘은 곧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의미한다. 영화의 허구적 상상력조차 그들 앞에서는 제한이 걸리는 듯, 여사님은 포승줄에 묶이면서도 끝까지 고고한 외면을 유지한다. 우리가 죽창을 던져 그들의 ‘용안’에 무언가 상처라도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일지 모른다는 태도다. 박근혜 대통령을 참고한 듯한 김영애의 굳고 냉랭한 표정 속에서 나오는 호연이 이를 더 부각시킨다.


결국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속 시원하게 무언가를 ‘타도’하는 게 아니라 속 시원하게 ‘진실’을 밝혀내는 데 있다. 진실이야말로 우리가 부패한 재벌을 상대로 맞설 수 있고, 그나마 동등한 상황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작품은 ‘진실을 밝히는 행위’가 폭력적 타도보다 더 높은 가치이며,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가치임을 말한다. 악역을 구속시켜서 재판까지 받게 만들었지만, 통쾌하다기 보다는 저러다 금방 풀려나지 않겠냐는 생각만 하게 만들었던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처럼,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가 보여주는 결말에도 그런 ‘우려’가 우선적으로 들긴 하지만. 그런 점에서 작품의 마지막, 대해제철 사모님과 필재 간의 대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대해제철이 여기서 무너질 것 같애? 여기 인천이야.”


“내가 인천 토박이인데, 인천 사람들 너무 우습게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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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민은 윤종찬 감독의 <소름>이라는 걸작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후, (영화판에서만) 시종일관 매력 없는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해 왔다. 말하자면 영화라는 영역에서 김명민은 믿고 거르는 아이콘이다.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서도 그가 연기한 필재는 비슷한 과인 <조선명탐정>의 ‘명탐정’보다 매력이 떨어진다(네이버 영화 '명대사 란'에서 이 작품 속 필재의 대사보다 <조선명탐정> 속 명탐정의 대사가 인기가 더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재라는 인물의 태도만큼은 인상적이다. 대해제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작품 속) 인천에서 그는 부끄러움을 자각하고 자기 쇄신한 인물이다. 물론 ‘인천 사람들 너무 우습게 보시네’라는 대사를 직접 꺼내는 것은 듣기에 좀 민망하다. 그냥 강우석 감독 작품 속 대사의 딱딱함을 조금 제거한 수준이랄까. 그러나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악역이 어떻게 그만큼의 세력을 떨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경험이 시간낭비로 여겨지지 않는다. 작품 속 상황들은 모두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할 때 발생한다.


딴소리지만,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영화고 좋은 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다.”라고 말했다. 이 명언으로 비추어 보자면, 뭐랄까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결코 만듦새가 독창적이지 않다. 이야기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채 해피엔딩으로 향하고, 통쾌한 감흥도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거창하게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개인이 덜 부끄러워지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내일을 걱정할 수 있는 영화다. 내일부터라도 쇄신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던진 죽창이 그들에게 맞을 수도 있지 않겠나. 당연한 행위가 더 이상 우려로 느껴지지 않을 테고. 무려 <소름> 이후 ‘김명민의 주연작’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면, 그나마 뭔가가 된 작품인 거다.



P.S.


1) “인천 사람들 너무 우습게 보시네”라는 대사는 현재 인천시를 겨냥한 대사로도 느껴진다. 인천이 몇 년째 어떤 시장을 뽑고 있는지, 시장을 뽑을 때마다 빚이 얼마나 쌓이는지를 생각한다면…. 뭐, 인천만 빚 많은 게 아니니까 그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누구나 뜨끔할 수 있는 대사라고 할 수 있겠다.


2) 배우들에 대한 잡생각.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서 김명민의 볼따구가 참 오동통해 보인다. 보는 내내 입에 뭘 물고 있는 거 같다. 일본의 스즈키 세이준 감독 작품에 자주 출연했던 배우 ‘시시도 조’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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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도 조는 나름대로 미남이 되겠다고 자기 얼굴에 보형물을 넣었는데, 김명민도 그런 방향을 추구하는 걸까. 아니면 연기일까. 참고로 시시도 조는 나이 들고 나서 뺨에 넣었던 보형물을 다 뺐다. 21세기 한국영화에서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작품이 떠오르니까 갑자기 기괴한 기분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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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포스터에서의 김영애의 화장이 하얗게 떠서 그런지, 고영남 감독의 <깊은 밤 갑자기>에서 보여준 흰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녀의 연기는 무척 인상적이다.


3) 원래 제목은 <감옥에서 온 편지>였는데, 밋밋하다고 생각했는지 현재의 제목인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로 바뀌었다. 둘 다 매력 없는 제목이지만 바뀌기 전이 더 낫다. 모티브는 영남제분의 윤길자 여사가 여대생 하지혜를 청부살인한 사건에서 얻었다고. 참고로 윤길자 여사는 지금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영화가 아무리 현실을 반영한다고 해도 영화는 영화인가보다.
 





홍준호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