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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주변에서 들리는 말 중에 하나가 이제는 하다 하다 친일파 커밍아웃도 요란하게 한다고 하는 말이었다. 순간 '응? 공주 각하의 동생분 얘기인가? 아니면 옥새 킴의 아버지 인증 얘기인가?'하고 생각을 했었고 '뭐 새삼스럽게'라고 넘겼었다. 


그러다 계속 말이 도는 걸 보니 그보다 최근의 일인 듯 했다.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해보고는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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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아시아경제


"이 호방함! 패기! 멋지다!" 


하면서 말이다. 그래, 아닌 척 뒤로 숨거나 뒤통수치거나 기만하는 행위가 일반적인 작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열린 워크샵에서 '천황폐하 만세 삼창'이라니!


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23일자 '아시아경제'가 단독으로 국무조정실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 연구원(약자로 KEI)에 이정호 국가 기후변화 적응센터장이라는 사람이 워크샵 자리 건배사로 자신은 '동양 척식회사의 마지막 사장이었던 할아버지를 두었다'고 말했으며 이어서 천황 폐화 만세를 삼창했다는 증언과 녹취록을 보도한다.

 

이에 이 센터장에 대해 알아보니 나름 겸손한 건지 아니면 할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러워 부모님 자랑은 미처 하지 못 한 것인지 그 속마음은 모르나, 아버지도 알고 보니 전 국방장관이었던 이종구라는 분이었음도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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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는 이런 자랑을 외부에 알리고 녹취한 내부 관계자를 색출 하겠다고 난리난 모양이지만 이 센터장의 할아버지 자랑이 뻥카라는 말도 있다, 김상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동양 척식회사 마지막 사장이었다는 말은 거짓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 총독부는 조선인들에게 사장급 고위직을 맡기지 않았다, 높아야 조합장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뻥이라 하더라도 이 센터장의 만세 삼창의 역사적 평가가 절하될 것은 아니다. 정말 이 사람의 친일파가 되고 싶어하는 간절함과 대범함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스케일 남다른 뻥이기 때문이다. 실로 비범하기까지 한 그 패기에 각하의 은총을 한 몸에 받을 거 같다는 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세상에는 감출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기침, 가난, 사랑이 그것이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스스로 친일파 후손이며, 난 천황을 존경한다고 만세 삼창을 했을까? 물론, 사랑 중에도 하면서 떳떳할 수가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사랑 또한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세상의 기본 룰 아니던가. 당당하게 자랑하고 밝힌 만큼 당당하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 혹은 그것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하지만 마무리는 좀 아쉽다.

 

정부연구센터장이라는 직책 따위 상관 않고 만세 삼창을 외치던 장부의 기개는 어디 갔는지 '술자리라서', '제 정신에 나올 수 있는 얘기겠냐'는 식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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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도 개인이 한 일이다, 일탈행위다, 라며 꼬리 자르듯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정도의 해명조차 없이 모르쇠하며 그냥 덮는 모양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 센터장의 솔직함과 자랑질에 질투와 시기를 느낀 것인지, 아니면 이미 친일파들 전성시대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게 뭐 대수로운 뉴스겠냐 싶은 건지 기사화하는 데에 소홀하다는 느낌을 준다. 

 

유신의 심장을 쏜 야수의 심정까진 아니라도 백수될 심정이었음은 분명한 당 거사가 과소평가 받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두 가지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하나는 이 센터장의 진의를 주변 사람들이 몰라주는 경우다. 그저 숨기는 것이 능사라며 이 센터장을 뜯어말리고 있을 가능성.


두 번째는 다 같은 친일파라 만세 삼창 따위 별 거 아닌 일상인데 이 센터장 혼자서 천황 사랑은 다 하는 듯 조명을 받을 것 같으니 주변에서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경우다. 혼자 겸손하지 못 하고 천황을 향한 사랑을 입으로가볍게 떠벌려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하려든 것에 대한 응징 되겠다. 

 

물론, 두 가지 시나리오 외에도 이 센터장이 겸손까지 몸에 벤 위인이라 앞장 서 주변을 뜯어말릴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긴 하다. 그 근거로는 27일 박광국 KEI 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현황 보고 상임위원회 회의실에서 "천황폐하 만세로 대단한 기삿거리 잡았다고 생각하나 봐요"라 발언한 것을 들 수 있다.


'대단한 기삿거리가 아니다'라는 것이 이 센터장과 그 주변 인물들의 생각이라면 '뭐~ 이런 거 가지고 부끄럽게'라는 겸손이 마음 속 깊수키 자리잡았기 때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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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아시아경제

 

여하튼 개인 술자리도 아니고 워크샵이라는 큰 자리에서 시원하게 호방함을 자랑한 사람이다. 누구들처럼 친일으로 남긴 재산만을 탐할 뿐, 명예는 깎이기 싫어 친일파 후손임을 숨기고 뒤에서 권력으로 교과서를 수정하여 입 닦으려는 사람들 보다 훨씬 정직하고 굳건하다. 


이 땅의 모든 친일부역자 & 그 후손은 이 센터장의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본 받아야 한다. 어른답게 스스로의 모습을 고백하고 인정하며 책임 지는 모습을 보여야 그 쪽 말로 '간지'가 날 게 아닌가. (천황도 그냥 친일파보다 '간지'나는 친일파를 좋아할 것이다.) 


이제는 자기 PR 시대 넘어 어그로의 시대다. 음지에서 일 꾸미지 말고 양지로 나오시라. 친일파인지 아닌지 일일이 따지는 수고스러움도 덜고 세금도 아끼게 되고 친일인명사전과 역사에 이름도 남기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이 센터장의 호방한 만세 삼창이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밝히고 당당하게 책임지는 사람들의 사회로 변화하기 위한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한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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