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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4. 08. 월요일

육두불패 dushbag




나는 발기에 대해 생각했다.

 

상실의 시대에서 미도리가 말했던, 포르노 극장에서 일제히 발기하는 성기들. 그리고 그것들이 발사를 위해 천천히 작동하는 다연장 로켓포의 움직임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바넷 뉴먼의 수직선들이 가득한 그림처럼. 상승의 의지는 숭고해보이지만 동시에 애처롭다. 십대 후반, 시도때도 없이 발기하던 나라는 존재의 초라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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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 없는 상징들을 도미노처럼 세우다 결국 발기가 되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에서 주섬주섬 넘어진 도미노들을 세웠다.


발기가 되지 않아서 그런 생각들을 했을 수도 있다. 합당하거나 근거 있는 이유는 결과와 같은 시간대에 있기도 하다. 타임머신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선형적인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해, 선후관계와 인과를 엄격하게 정의 내려 깔끔하게 정리된 세상에 있다는 확신을 준다.

 

흡연, 술, 비만, 스트레스.


도미노 세계 챔피언처럼 여자는 뻔한 원인들을 빠르게 늘어놓았다. 자세한 것은 검사를 해봐야 안다며 여자는 잔소리를 했다. 심한 잔소리는 여자가 취했다는 증상이었다. 아니면, 잔소리를 하고 싶어 술에 취하는 줄도 몰랐다. 여자는 꽤나 늦은 나이에 내과 전문의에서 성형 전문의로 전공을 바꿨었다.

 

삼년 전, 여름 장마가 한창일 때, 여자가 대뜸 전화를 걸어왔다.

  

술이나 한 잔하자고. 나야 아무개. 기억 안나냐?

  

그에 대한 대답으로 말줄임표가 섞인 아. 아무개 하는 스탠스가 어정쩡한 거짓말을 했었다.  지난 겨울에 소개팅을 했던 말이 없고 두꺼운 안경 쓴 여자. 그 정도가 여자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었다. 어쨌든 여자니까. 다소 뜬금없는 재회를 하고 여자는 다짜고짜 술을 마시자고 했었다. 여자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여자가 대답했었다.


   -목이 말라서.


   여자는 말없이 술을 마시다가 사래가 들렸다. 등을 두드리는 나에게 여자는 기침 섞인 단어들을 뱉었다.


   -나 전공 바꿨다. 성형으로.


   -그 나이에 공부 그만해라. 지겹지도 않냐?


   여자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처음으로 웃으며 말했었다.


   -변한 게 없어 좋다. 병신 새끼.


안경을 쓰지 않은 여자는 긴 속눈썹을 한 큰 눈과 부드러운 콧날은 단단했고 아름다웠다. 그때부터 여자는 가끔 전화를 걸어왔다.

  

다시 발기와 연관된 이야기로 돌아오면, 애무는 쉽지 않다. 상대의 반응을 관찰하고 끊임없는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여기구나. 여긴 아니고. 저기인가. 손길이 거친가. 좀 더 약하게. 애무가 외교전이라면 삽입은 전면전이다. 하지만 전면전에서 사용할 무기가 바닥나면 옵션은 하나다.

                      


사년 전, 나는 여자에게 항복을 했었다. 가진 것도 없고, 돈을 많이 벌 능력이나 노력도 없는, 그저 그런 쉼표의 연속인 남자였다. 혹은 말줄임표의 연속인 답답한 놈이었다. 그렇다고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바뀐 점이 있다면, 그냥 점만 찍으면서 사는 걸로 만족하는 놈이 되어버렸을 뿐이다. 그 말줄임표의 점들 사이 만큼, 발기되지 않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었다. 그 많은 이유 중에 한 가지를 대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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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안경을 쓰지 않은 여자가 낯설었다...

  

소개팅 날, 나는 여자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알이 커다란 안경에 누가 봐도 익숙하지 않아 촌스러운 화장. 갈색 니트. 색이 바랜 청바지. 숫기없이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시선.


  -나는 당당한 여자가 좋아. 너 같은 애 말고.


변변치 않게 생기고, 가진 것도 없어 꼬여버린 내가 던지는 말은 그냥 자존심의 똥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녀석 괜찮다니까 하고 나를 소개해주었을 것이 뻔한 선배를 나는 질투하고 있었다. 건축학과를 졸업 후, 뜬금없이 정체 모를 무역회사를 창업한다며 삼년 간 빌빌 거리며 나에게 얹혀 산 적도 있었다. 이제는 대표이사가 되어 세상은 말이다 하는 꼰대스러운 선배 얼굴에 똥이라도 던지고 싶었다.


여자는 똥을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비겁한 사람은 늘 그렇듯이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똥을 던지는 법이었다.

  

  -어차피 만난 거 술이나 한 잔 하죠.


나는 미안했었다기 보다 자빠뜨리기 쉽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무슨 생각에선지 쉽게 승낙했었다. 우리는 취했고, 서로 씨발, 개새끼, 지랄, 깝치네 로 이루어진 대화를 했었다. 그리고 여관으로 향했었다.

  

  -그런데 우리 그날 잤어?


   나는 축 늘어진 성기 만큼 의기소침해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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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조수석에 앉은 여자는 내 질문을 확인했다.


   -소개팅했던 날.


   여자가 힘들게 얼굴을 들었다.


   - 아. 그 날.? 너 말이야. 개똥벌레를 처부르다가. 나는 개똥벌레. 친구가 없네. 크흐흐. 막 울더라. 병신 새끼. 센 척은 졸라 하고. 뭐 당당한 여자가 좋아? 깝치네.


   -너 욕 여전히 잘한다.


   -너 만나고 욕 잘하게 됐어. 전에는 한마디도 못했는데. 고맙다. 씨발놈아.


나는 여자에게 키스를 했다. 여자의 혀가 내 입으로 들어왔다. 내 성기가 서서히 상승했다. 여자가 왜 나를 찾는 걸까. 이젠 결혼 준비라도 해야 하나.

  

   너 무슨 생각해. 씨발. 넣어 줘.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머리속에 울려퍼졌다.


   발사 준비 완료. 로져 댓.

   텐.

   나인.

   씨발. 쓰리, 투, 원.

  

   우리는 처음으로 카섹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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