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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직장에서 서울시 교육청 강당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실무(라고 쓰고 따까리라고 읽는다)를 맡은 적이 있었다. 잘나가는 학원장들 여럿 모아놓고 교육부 장관이 훈시를 하는 그런 자리였는데, 장관 연설이 메인 이벤트였고 그 앞뒤로는 시시껍절한 시간 때우기용 식순이 들어차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실무자(따까리)로서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교육부 장관이 내릴 때 나름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방명록을 받는 대기석에 앉았다. 장관은 대여섯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장관이 회의실로 들어가는데도,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양복 차림의 관료 두 사람은 그를 따라가지 않고 자리에 남았다. 대신에 한 사람은 정중하게 앞짐을 쥔 상태로 문 왼쪽 옆에 서고, 다른 사람은 역시 정중한 부동 자세로 한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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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구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타야한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정지시켜 어르신들이 계단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

출처 - 한국사진기자협회


처음에는 단순히 누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복도에 나와 그들 셋만 남았는데도 그들의 기묘한 부동자세는 풀리지 않았다.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오도가도 못한 채 문이 열린 상태로 붙들려 있었다. 한 오 분쯤 지나자 앞짐을 쥐고 있던 사내가 버튼을 누르고 있는 사내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말 그대로 버튼 터치를 했고 버튼을 누르고 있던 사내는 그가 서 있던 자리로 걸어가 이번에는 그가 앞짐을 쥐고 역할을 바꿨다.


잠시후 어떤 방문객이 다가와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자 앞짐을 쥐고 있던 사내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손바닥을 뻗어 옆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제스쳐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손짓은 '너희 같은 개돼지들과는 말도 섞지 않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그로테스크한 퍼포먼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손님들 방명록이나 받고 있는 내가 쓸쓸해 보여서 행위예술이라도 펼치는 것일까? 그렇다면 좀 더 재미있고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으로 준비했으면 더 고마웠으련만. 하긴, 어쩌다 인간의 탈을 쓰고 태어나긴 했으나 실제로는 개돼지에 불과한 나같은 존재가 상위 1%에 해당되는 고귀하신 교육부 공무원들의 깊은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시 오 분쯤 지나자 또다시 그들은 영국 버킹검 궁전 근위대 교대식처럼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바꿔 파트너의 팔저림 현상을 예방해주었다. 무슨 의미가 있는 퍼포먼스라기에는 너무나 장난 같았으나, 장난이라기에는 너무나 진지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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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나와 친한 원장 하나가 용무가 있어 복도로 나왔다. 나는 그에게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퍼포먼스를 일러주며 그들이 벌이는 해괴한 짓거리에 어떤 뜻이 있는지 견해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행사 끝나고 장관 나왔을 때 엘리베이터 기다리지 말고 바로 탑승하라고 엘리베이터를 잡아놓는 중이라 했다. 정말 그게 목적이라면 좀 쉬었다가 대강 장관 나올 때쯤부터 잡아놓든가, 아니면 아예 짐 나를 때 흔히 하는 것처럼 엘리베이터 전원을 꺼버리면 저런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그사람 역시 그것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요즘 유행하는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트랜드처럼, 전원 버튼의 힘을 빌린다는 자체가 장관에게는 불경스러운 일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고등학교 때 배운 '신독(愼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정성을 다해 자신의 손으로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는 것이 예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또다른 의문이 피어올랐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직책이 무엇일까. 나름의 전담 업무가 있을 텐데, 장관이 어디에 행차하면 자신의 고유 업무는 내팽게치고 저렇게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만 누르고 서 있는 것일까. 교육부가 결코 시간이 남아도는 부서가 아닐 텐데. 혹시 백화점의 엘리베이터 걸처럼 저런 업무만을 전담하는 공무원을 따로 뽑는 것일까, 아니면 순번제로 돌아가며 이 기괴한 업무를 떠맡는 것일까.


당시의 교육부 장관은 꽤나 정력적인 사람으로 기억된다. 앰프의 힘을 빌어 증폭된 소리이긴 했지만, 굳이 마이크를 들지 않았어도 충분했을 것 같은 쩌렁쩌렁한 음성이 복도를 타고 전달되었다. 예정된 십오 분을 훌쩍 넘기고도 장관의 연설은, 고등학교 시절 월요일 아침 애국조회 때 교장 선생님 훈시처럼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역시 훈시 길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을 총괄하는 수장답다는 감탄이 절로 일었다. 나는 다시 이인조 엘리베이터 공무원을 쳐다 보았다. 이쯤 되면 지루할 법도 하건만, 그들의 얼굴에 깃든 근엄한 표정은 처음 그대로였다. 마치 장관님께서 날밤을 새신다 하더라도 쓰러지면 쓰러졌지 이 버튼을 놓치지 않겠다라는 결기가 새나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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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일을 억지로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출처 - @aimhighlee


마침내 장관의 연설이 끝났다. 수행원들과 함께 장관이 복도에 나타나자 앞짐을 쥐고 있는 사내는 공손히 인사하며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그 모습은 흡사 추운 겨울 주군의 발이 시려울 것을 염려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나막신을 품속에서 덥혀놓았다가 내놓았다는 훈훈한 미담과도 같아 보였다. 이 날의 경험은 살아오면서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반드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장면이었고, 한동안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이 항간의 화제이다. 나씨는 무슨 뜻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긴 나 역시 좋아라고 누구 찍더니만 자기 동네에 사드 배치한다니까 민란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한 바 있긴 하지만, 나씨가 말하는 개돼지 범주는 내가 생각하는 범위보다 훨씬 넓은 모양이다. 무려 전 인구의 99%가 거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문득 정성을 다 해 교육부 장관을 보필하던 엘리베이터 보이들의 추억이 떠올랐다. 어떤 개돼지가 보스를 기다리며 삼십 분간 부동자세로 기립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충성으로 훈육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우리 개돼지는 천성이 시건방져서, 설사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와 같은 행동을 수행하게 되더라도 얼굴에 싫은 표정이 새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그들에게서는 그런 불경스러운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이 나라 교육의 발전을 위해 손가락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버튼을 누르고 있겠다는 굳건한 의지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향욱이 말한 '민중 개돼지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두 가지가 궁금하다. 지금도 교육부 공무원들은 장관 행차하면 그렇게 하염없이 자리에 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있는 당번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때 그 엘리베이터 보이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시 나는 내가 만약 공무원이 되었다면 저런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먹고 살아야 했나라며 공무원에 뜻을 두지 않았던 것에 안도했지만, 이제 보니 정작 나를 개돼지로 바라보고 있던 것은 그쪽이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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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공


편집 : 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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