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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과 영혼>으로 유명한 패트릭 스웨이지입니다. 췌장암으로 운을 달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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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췌장암으로 사망했다고 알고 있는 스티브 잡스지만, 췌장암(췌장 선암종, adenocarcinoma)이 아닌 췌장 신경내분비종양(NET, Neuroendocrine tumor)으로 사망했습니다. 췌장암이 아니었기에 동양 의학에 심취해 9개월이나 지난 후에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음에도 꽤 오랫동안 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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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대장암 1위 발생 국가가 된 것엔 음주량과 생활 습관의 서구화 등도 있지만, 대장내시경을 많이 시행함에 따라 대장암의 진단 건수가 증가한 이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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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내시경을 통해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해 수술로 완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피내암의 경우는 내시경으로도 제거가 가능해졌습니다. 선종성 용종을 미리미리 제거해주어 암의 발생 자체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대장에서 자라는 작은 용종까지 모조리 제거해 버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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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진단은 대장암을 비롯한 다른 암으로부터의 생존율을 높여줬습니다만, 췌장암의 경우 이전보다 생존율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생존율이 10%에도 이르지 못하지요). 문제는 췌장암이 2013년 기준 5511건으로, 전체 암의 2.4%에 이르는 상당히 흔한 암이라는 것입니다.


덩어리로 된 고형암의 생존율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병기(stage)’입니다. ‘병기(stage)’는 치료 방법을 결정하고 환자의 예후를 예측하는 인자로 사용됩니다. 흔히 T(Tumor), N(Lymph node), M(Metastasis) stage가 사용되는데, T는 종양의 크기, N은 임파선 침범 정도, M은 원격 전이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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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1기에서 4기까지 나눕니다. 보통 췌장암은 1~4기보다 ‘요약병기’를 사용합니다. 다른 암들이 기수에 따라 치료와 예후가 많이 달라지는 반면 췌장암은 잘게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치료 및 예후가 ‘수술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로 나눠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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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병기는 치료 방향 설정을 위해 상태를 국한, 국소, 원격 세 가지로 나눕니다.


국한: 해당 장기에만 국한
국소: 주변 림프절 등에 침범
원격: 머나먼 장기로 전이


대장암은 각각 95%, 80%, 20%의 생존율 보이지만 췌장암의 생존율은 30%, 13%, 2% 정도입니다. 아주 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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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의 경우 암이 주먹만 하게 자란 경우라도 주변에 중요한 장기가 별로 없기 때문에 넉넉하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림프절이나 주변 장기에 퍼진 국소성 대장암의 경우라도 깨끗하게 수술적 치료가 가능한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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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은 저렇게 우리 몸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고 크기가 작아서 조금만 커지면 바로 췌장을 넘어 혈관 등의 주요 장기를 침범합니다. 폭탄이 터지는 곳에 따라 피해량이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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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수술 방법 역시 위, 담도, 소장 등의 중요 장기를 새로 이어줘야 하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고, 수술 후 합병증이 생길 확률도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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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고려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췌장암 환자의 7~80%는 진단 당시 수술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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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은 진단 당시 1기인 경우가 매우 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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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상이 진단을 받았을 땐 이미 신체 여기저기로 전이가 된 상태입니다.


왜 췌장암은 조기 진단이 어려울까요?


(1) 췌장암은 초기에 증상이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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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췌장암도 암 초기에 특징적인 증상이 없습니다. 위에 열거한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방문했을 땐 대부분 많이 진행된 상태라는 얘기죠. 그래서 증상이 없이 건강할 때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2) 적절한 조기 검진 검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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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건강보험 검진 항목에 췌장암 관련 검사는 없습니다. 유병율(집단에서 특정 상태를 가지고 있는 개체의 수를 나타내는 측도) 8위로 순위에서 좀 뒤지기도 하거니와 마땅한 선별 검사가 없기 때문이죠.


저렴하고 간편하고 민감도&특이도가 높은 검사, 췌장암엔 그런 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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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진단법을 개발했다고 하는 잭 안드라카(Jack andraka).


췌장암 표지자(체내에 암세포의 존재를 나타내는 물질)로 알려진 CA19-9(carbohydrate antigen 19-9), 췌장 효소인 amylase/lipase, 위의 잭을 유명하게 만든 mesothelin 등이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혈액검사로 췌장암을 조기에 진단할 순 없습니다. 


검진할 때 많이 하는 상복부 초음파는 어떨까요? 초음파는 일종의 음파를 이용해서 내부 장기를 확인하는 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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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은 앞쪽에서 보면 두부(머리)쪽 일부를 제외하곤 위에 의해 가려집니다. 위는 공기로 가득 찬 장기이기 때문에 초음파 검사에 방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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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쪽의 경우도 만약 인근 장에 공기가 많거나 뱃살이 많은 사람은 초음파가 췌장까지 가기 전에 지쳐 버릴 겁니다. 거기다 초음파는 시술자의 실력에 따라 진단율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검사입니다. 결론적으로 상복부 초음파로 췌장암을 조기 진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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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는 그나마 췌장암을 진단하는데 선별 검사로 사용할만 합니다. 단점은 방사선 노출이 좀 있다는 것과 드물게 조영제(방사선 검사 때 영상의 대조도를 크게 해주는 약품) 부작용이 있다는 거죠. 만약 고위험군에서 정기적으로 췌장암 선별 검사를 해야 한다면 복부 CT를 추천합니다.


여기서 고위험군은,


고령(65세 이상) / 당뇨를 오래 앓은 경우 / 가족력 없이 당뇨가 갑자기 생긴 경우 /

췌장암 가족력 있는 경우 / 만성 췌장염 / 흡연 / 화학물질 (각종 용매, 휘발유, 석탄 가스, 코크스 등)


등 입니다.


위험군에서 CT를 찍는 나이와 간격은 의사들마다 이견이 있으나, 개인적으로 40세 이상이면 1~2년에 한 번 정도는 찍는 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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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는 CT와 달리 방사선 노출도 없고 조영제 부작용도 거의 없고 매우 정확합니다. 다만 가격이 세서 선별 검사로 시행하기엔 부담이 되죠. 그리고 자기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셔터 스피드가 CT에 비해 좀 느립니다. 숨을 오래 참기 힘든 분들은 영상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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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입니다. PET 사진 한 방이면 전신의 암을 잡아낼 수 있다고 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PET에 보일 정도의 종양이면 CT에서 대부분 보인다는 게 함정.


PET는 먹성 좋은 암세포가 포도당을 처묵처묵 하는 것을 이용해 방사선 표지자를 포도당에 붙여서 포도당을 많이 먹는 조직을 찾는 것입니다. 암 뿐만 아니라 염증 등에서도 포도당 섭취가 증가하기 때문에 위양성(음성이어야 할 검사결과가 잘못되어 양성으로 나옴)도 많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PET는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 병기 work up(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한 정밀 검사) 또는 치료 반응을 보기 위해 시행하는 게 좀 더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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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서 초음파를 쏴서 췌장을 보는 경피적 초음파와 달리 내시경에 초음파를 달아서 췌장 바로 앞까지 가 췌장을 관찰하는 ‘내시경 초음파(EUS)’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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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필요하면 위나 십이지장 벽을 뚫고 조직검사를 직접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가격이 좀 비싸고 선별 검사로 두꺼운 초음파 내시경을 하는 건 부담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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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머리 쪽의 췌장암에 의한 담도 압박 등을 보기 위해 내시경적 역행성 췌담관조영술(ERCP)를 시행할 수도 있지만 요건 선별 검사는 아닙니다. 


췌장암의 치료에 대한 건 생략합니다. 언급했듯 췌장암은 수술할 수 있는 환자를 진단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는 치료 방법이나 예후가 좀 우울하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P.S

외래에서 췌장암 검사를 원하는 환자들을 많이 보는데,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고위험군이라 하더라도 6개월마다 CT를 찍어보라고 하기도 그렇고, 건강한 30대 중반에게 ‘CT를 찍어볼 필요가 전혀 없다’고 단언하기도 어렵고요(30대 췌장암 환자도 경험했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죠.


차라리 조기 검진으로 진단이 용이한 위암, 대장암, 간암 등에 걸려서 죽으면 억울할 것 같으니 그런 검사는 꼭 받으라고 얘기합니다. 췌장암 같은 병은 수술이 가능할 때 진단 받으면 천운인 거고, 진행된 후 발견되면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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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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