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하기로 치면 이미 편집장을 넘어선 부편집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해 비밀리에 미국으로 급파되어 트럼프 대선 저지 프로젝트 업무로 24시간이 선미보다 모자른 본 우원. 정말 눈코 뜰 새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공사가 다망한 본 우원이라지만 부편집장의 권력을 쌩까고 모른 척했다가는 벙커깊수키 연재가 짤리는 것은 물론 곧 진행 예정인 팟캐스트 런칭에도 상당한 비협조가 예상되는 바다. 그리하야 본 우원은 부편집장의 이야기를 가카의 사드 배치 결정을 신*계 백화점 쇼핑하면서 들은 외교부 장관 마냥 건성건성 들을 수밖에 없었다.
“껄님, 지금 한국이 포켓몬고(한국에서는 아마 포켓몬고로 쓰일 거다) 열풍이 불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
“네.”
“그러니까 내일 자정까지 한 꼭지 말아서 보내주세요.”
“네?”
“포켓몬고 원고 하나 보내시라고요.”
“무슨 컨셉으로요?”
“알아서.”
“… ….”
포켓몬이라고는 큰놈 유치원 때 같이 앉아서 본 기억밖에 없는 방년 44세의 본 우원. 몬스터 이름이라고는 고라파덕과 피카츄, 라이츄밖에 모르는 본 우원. 일단 이놈의 게임이 뭔지 알아야 했기에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아 설치하기로 했다.
방구석에서 처음으로 잡아 본 무언가. 뭔지 몰라서 기껏 이정도 캡쳐
AR 기술을 접목한 본 게임은 밖에 나가서 활동하지 않으면 게임 진행이 어렵다는 소문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저주를 부편집장에게 내 부으며 귀찮지만 밖으로 나가서 실행해보기로 했다.
맨해튼 로어웨스트 주변에서 잡힌 불가사리같이 생긴 놈
(*편집자 주: 별가사리입니다)
맨해튼 첼시 주변에서 잡힌 뭔 기생충같이 생긴 놈
(*편집자 주: 캐터피구요)
맨해튼 차이나 타운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새 같지도 않은 놈
(*편집자 주: 피죤이네요)
한 3~40여 분 게임을 진행해 본 결과 본 게임이 그냥저냥 뒹굴면서 할 수 없는 게임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역의 지도를 바탕으로 각 블럭마다 몇 개씩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있고 그 근처로 실제 가야만 아이템 획득이 가능했으며 몹을 발견하기 위해선 계속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가끔 알도 얻을 수 있는데 이 알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냅두면 부화되는 것이 아니라 2~10km 이상씩 30km 이하의 속도로 걸어야만 부화가 되는 빡치는 시스템이 아닌가. 갑자기 20여 년 간 많은 술과 기름진 안주로 금이야 옥이야 길러왔던 내 뱃살에 위험신호가 오고만 것이었다. 본 우원 반성했다. 우국충정에 함몰되어 세상 돌아가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내 뱃살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트럼프 대선 저지를 위해 불철주야 슬릭딜(미국 대선 여론 동향 분석 사이트)에서 GTX 1080(미국 내 대선 여론동향을 분석하기 위한 전문가용 그래픽 장치) 핫딜 뜨길 기다리며 불침번 서는 것에만 집중했던 본 우원. 이번을 계기로 삼아 세상을 위한 기사를 하나 써보기로 했다.
도대체 이 포켓몬 광풍은 세계 경제의 심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맨해튼에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인가?
본 우원, 바로 뛰쳐나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포켓몬 광풍을 어렵지 않게 취재할 수 있었다. 지금 포켓몬 출시 이후 완전히 변한 뉴욕의 현재 모습을 바로 공개한다. 충격먹지 마시라. 노약자나 심신 미약자는 가능하면 우황청심원이라도 한 알 정도 드시고 오시라.
포켓몬 광풍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위 사진은 우원이 취재를 앞두고 본의 아니게 배가 고파 집 앞 완딸라 피자집에 들러 치즈피자 2피스와 하와이안 피자 1피스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포착된 장면. 흑인 남성이 창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인물에게 포켓몬 자동 키우기 핵을 몰래 팔고 있다. 급하게 뛰어나가 취재요청을 했지만 흑인 남성은 콩글리쉬는 알아듣기 어렵다며 자리를 피해 버렸다.
맨해튼 로어 웨스트 홀랜드 터널 근처 한 남성이 정신없이 포켓몬을 하느라 인도 밖 차도로 막 걸어가는 모습. 본 우원이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며 "포켓몬 GO 하다가 저승 GO 한다!"고 외치자, 그는 '어? 나 텍스트 메시지 보내는 중인데?'라며 태연한 척 얼버무리고 도망쳐 버렸다.
마찬가지로 같은 장소에서 포켓몬에 정신 팔린 러시아에서 유학 온 어학원 젊은이. 본 우원이 영어 학원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해야지 게임을 하면 되겠느냐고 훈계하자, 자신은 페이스북 하는 중이라며 얼버무리며 야리길래 내가 먼저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포켓몬 하는 아줌마!!”라고 외치자 본 취재원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그녀는 마치 포켓몬을 안 하는 것처럼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절대 본인을 보기 싫어 고개 돌린 게 아니다.
포켓몬 광풍에는 남녀노소 예외가 없었다. 전화하는 척하며 포켓몬을 하는 그녀에게 몇 랩까지 키워봤냐고 물어봤더니 '니 따귀 때릴 수 있을 정도는 키웠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포켓몬 하다 걸린 게 부끄러웠던 것일 뿐, 절대로 내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노호에서 소호 거리로 가는 도중에 만나게 된 청년. '라이츄 잡았어!'라고 외치자 뒤의 소년이 매우 부러워하고 있다. 포켓몬으로 인해 이곳 뉴욕엔 시기와 질투가 넘쳐나고 있다.
운동을 하면서도 손에서 포켓몬을 놓지 못하는 여성. 사진을 540배 확대해보면 그녀의 선글라스에 비치는 고라파덕의 모습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취재하고 싶었지만 우원을 경계하는 바람에 차마 묻지 못했다. 역시 우원이 싫었을 리는 없으니,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었을까.
자전거를 타면서까지 포켓몬 알 부화에 여념이 없는 할아버지. 본 우원이 "여태까지 알 몇 개나 부화시키셨어요?"라고 물어보니 나이 먹고 게임하는 게 부끄러우셨는지 "암쏘리, 아이캔트 스픽 코리언" 하시며 멋쩍게 갈 길을 가셨다. 절대 우원의 영어가 구려서 한국말로 들으셨던 것은 아니다. 절대루..
포켓몬의 영향은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오후 1시 관광객들과 패션산업 종사자들로 미어터져야 할 소호의 한 식당은 포켓몬 미끼를 풀어놓지 않은 죄로 손님이 하나도 없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간인 맨해튼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포켓몬을 잡으러 가 교내에 남아있는 학생이 거의 없다. 이 나라에 미래는 있는가...
뉴욕 주립대 맞은편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도 포켓몬 광풍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공원에서 하라는 연애는 안 하고 죄다 포켓몬 삼매경에 빠져 있다. 아닌 척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다들 증강현실로 만들어진 포켓몬과 대화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흑인 여성은 점심을 먹는 것 같지만 사실 도시락 속에는 피카츄를 꼬시기 위한 미끼가 있다. 오른쪽 옆에는 테이밍에 실패한 한 동양인이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딱 봐도 그렇게 보여서 굳이 물어보지 않은 거지, 본 우원의 영어가 짧아서 묻지 않은 건 아니다.
이 넓은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 포켓몬을 하지 않는 시민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열심히 연주해도 포켓몬에 빠진 사람들은 1센트짜리 하나 넣어주지 않는 야박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포켓몬이 이미 사람들의 영혼까지 잠식해 버린 것인가.
바글바글해야 할 뉴욕 주립대 앞 광경. 지금쯤이면 수업 들으러 돌아다녀야 할 학생들이 길가를 매워야겠지만 포켓몬 광풍에 휩싸인 현재, 대학생들마저 피카츄 라이츄에 빠져 대학은 마치 방학인 것처럼 썰렁하다.
모두 잘 보아서 알겠지만, 현재 이곳은 위기다. 맨해튼은 이미 포켓몬 블랙홀에 빠져 버렸다. 모든 정치 이슈는 피카츄 앞에 무릎 꿇었고 힐러리의 인기는 꼬부기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급기야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다음 주 중 '도날드 덕과 자신은 동명이인이므로 고라파덕과는 사돈 관계 쯤 될 것'이라고 주장할 예정이라고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본 우원. 이렇게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이 게임 하나로 남녀노소 할배 할매들까지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들고 있다는 소식을 한국에서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아무튼 본 우원의 살신성인이 빛나는 취재는 여기까지다. 속초는 지금 난리도 아니라고 한다는데 지금 속초가 중요한 게 아닌 거 같다. 덧붙이자면 취재와 조사방법은 한국의 언론사들이 주로 하는 구라 적절히 섞어 상관없는 사진 붙여넣는 전통적인 취재방식을 사용했다.
이상.
그럴껄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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