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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추천4 비추천-1
2013. 04. 19. 금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나는 불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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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가 만든 배화교(拜火敎 - 불을 숭배(崇拜)하는 신앙(信仰). 조로아스터가 창시(創始)하여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고대(古代) 종교(宗敎)의 이름. 서기(西紀) 전(前) 6세기(世紀) 무렵에 일어났고, 아베스타를 경전(經典)으로 한함... - 편집자 주)를 신봉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안전한 곳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살짝 몽롱한 상태로 빠져든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긴 하겠지만 내 경우는 그걸 좀 더 강하게 느낀다는 거다. 


요즘에도 캠핑을 가서 바베큐를 하거나 캠프 파이어를 할 때에 불 관리하는 역할을 나서서 도맡아 하는 편이다. 또 아주 어려서부터도 시골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 본 기억이 흔하다. 그 때부터 불을 피우고 잘 타도록 관리하는 것을 좋아했었는지, 불을 땔 필요가 있는 아궁이는 다 내 차지였다. 


그런데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도 연료에 따라 다 다른 기술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시는가? 솔가지 태울 때와 잘 마른 장작을 태울 때, 숲에서 긁어온 마른 솔잎을 태울 때와 방앗간에서 담아온 왕겨를 태울 때 그 기술이 다 다르다. 

그 중에서도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는 왕겨, 벼를 정미할 때 나오는 그 쌀의 껍질은 매우 조슴스럽게 태우지 않으면 봉변을 당하는 수가 있기도 하다. 


왕겨불을 잘 때기 위해서는 '풍구'라는 특이한 도구가 필요하다. 지금은 난방기술이 발전해서 거의 보기 힘들어졌겠지만, 낡은 물건들을 취급하는 가게에 가면 가끔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생긴 녀석이 좀 더 일반적이었지만,  

우리 집에는 이렇게 생긴 놈이 있었다. 


작동원리는 단순하다. 손잡이를 잡고 휙휙 돌리면, 속에서 풍차가 돌아가면서 앞을 향해 뚫린 곳으로 바람이 나가는 것 뿐이다. 거기에 굵은 쇠파이프를 연결해 아궁이 속으로 바람을 밀어 넣는 거다. 


그 바람의 출구에다가 불쏘시개용 마른 솔가지 같은 것을 올리고 불을 붙인 뒤, 그 위에 왕겨를 솔솔 뿌리면 불이 타기 시작하는 거다. 그리고 나면 왕겨를 한 주먹씩 던져 넣으면서 한 손으로는 이 풍구를 계속 돌리고... 그러면 왕겨불은 활활 타오르게 된다. 


문제는 귀찮다고 왕겨를 막 퍼부어 불을 다 덮어 버리고 숨구멍을 막은 상태에서 풍구를 돌려 바람을 공급해 주다가는... 


속에서 흰 연기가 무럭무럭 나오다가 갑자기 무서운 불길이 확~ 하고 아궁이 밖으로 밀려 나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단 눈썹과 앞 머리를 홀랑 태워 먹게 되고 심하면 얼굴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입고 있던 싸구려 나일론 제품의 옷이 타버린 경험도 있다. 


불씨는 있는데 숨구멍이 없을 경우에 발생하게 되는 재앙, 그것도 대재앙이다. 







아직도 북한은 자신들이 공언한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있다. 


복잡한 국제정세와 김정은의 속내, 중국의 입장, 미국의 테러사고, 이런 얘기를 또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남북관계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경색되어 있다는 것이다. 


데프콘까지 3단계로 격상시키지는 않았지만,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남측에서는 워치콘 2단계까지 발령된 수준이었다. 

이 데프콘 말고... 
(편집자의 짤방 센스는 아님 - 편집자 주)


이거 숫자로만 보면 그게 뭔가~ 싶지만, 데프콘 3단계는 아웅산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서 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들이 몰살을 당하는 수준의 일이 발생해야 적용되는 레벨이고, 워치콘 2단계는 연평도 포격 사태 정도가 발생해야 발령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작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야 만성이 되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객관적으로 봐서는 지금의 한반도는 전세계에서 가장 전쟁발발의 위기가 높은 화약고 같은 상황이라는 점,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면 '숨구멍'을 틔워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마치 속에서 갈등의 에너지가 누적되어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는 왕겨불 아궁이처럼 작금의 한반도에도 남북간의 갈등 에너지가 누적되고 있으며 서로가 이성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로 인한 사고가 터질 경우 극단적인 상태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일부러 위기상황을 더 떠벌려서 사람들을 위기감에 떨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정부의 책임이고 권력의 의무이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대화의 창구는 모두 막혀 있다. 개성도 막혀 있다. 금강산은 끊긴 지 오래이다. 왕래도 없으며 연락도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제 3의 길이라도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안전은 최우선의 가치이며 그 안전을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나서는 것이 맞다. 


과연 어떤 방법이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미안하다. 조선일보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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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삼각산이 있고, 삼각산에는 도선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도선사의 주지스님이신 선묵혜자 스님이 뭔가를 한다는 소식이다. 


그 뭔가가 뭐냐면.. 


네팔에는 룸비니라는 곳이 있는데, 그 룸비니라는 곳은 부처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여기에서 '평화의 불'을 채화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그 평화의 불을 우리나라로 가져오는 행사를 도선사의 선묵혜자 스님이 거행하도록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네팔에서 남한으로 오려면, 중국으로 와서 배타고 인천으로 와야 되잖은가. 


이런거 보면 남한은 사실상 섬이라는 점이 새삼스레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남북간의 위기상황을 맞이하여, 양측 당국의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차원에서라도 이 '평화의 불'을 육로를 통해 봉송하고 싶다는 것이다. 즉, 네팔, 티벳, 텐진, 칭다오를 거쳐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오기로 했던 원래의 경로를 수정해서, 의주, 평양, 개성을 거쳐 판문점을 통해 들어오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이 나온 것이다. 


사실 도선사라면, 현 박근혜 대통령과는 인연이 많은 곳이다. 이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야 좋게 들리지 않겠지만, 도선사는 박정희 시절 영부인 육영수와 인연을 맺기 시작해서 매년 박정희 대통령 부부 기일에 맞춰 제사도 지내주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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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무슨 종북좌파 그런 얘기로 시비걸릴 일도 없다. 북한을 이롭게 하자는 게 아니라 남북간에 조그마한 숨구멍이라도 열어서 다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명분도 주고, 어떻게 해서든 위기상황을 가라앉히고 다시 이성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 


이런 제안은 정파간의 이해를 떠나 큰 틀에서 지켜봐줄 필요도 있다. 


이 행사를 추진하는 측의 자료를 어렵게 입수해서 확인해 봤더니, 과연 행사의 목적 자체가 이렇게 기술되어 있었다. 이 행사의 제목은 "국민대통합 기원 108산사 순례기도회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평화의 불 합화식" 이다.  


2013년 2월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과거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다시 만나는 국민대통합의 염원으로 탄생한 정부이기에 새로운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며 새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민들의 간절한 미래의 소망을 함께 담는 의식을 갖고자 함.

(사)아시아문화교류협력단




그래.. 그런 거지 뭐.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다시 만난다는 얘기는 꽤 설득력이 있다. 물론 새 정부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 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얘기를 웃으며 받아들이기 진짜 힘들겠지만, 그래도 참아야 할 필요도 있다. 


어차피 우리 사회 내부에서 정치적인 이견을 가지고 충돌할 때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지는 외부의 위기상황 앞에서는 가끔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행사를 지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사의 목적이 무엇이거나 상관없다. 도선사가 어떤 사찰이고, 그 사찰의 주지스님이 어떤 일을 해 왔는지도 상관하지 않겠다. 단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짙게 깔려 있는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아주 희미한 희망 한줄기 만이라도 줄 수 있다면, 이런 행사는 이어져야 한다. 


오히려 걱정이라면, 정치와 아무 상관없는 이런 류의 종교적인 이벤트 마저도 현재의 남북 양측 당국이 받아 들이지 못하고 판을 깨버릴 정도로 꽉 막힌 상태가 아닌가 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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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은 아마도 다 이해하고 계실 것이다. 북한이 찬성하면 남한이 반대할 거고, 남한 측이 찬성을 먼저 하면 북한이 또 반대할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에 가깝게 미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사시켜 주시길 부탁드린다. 하나의 작은 숨구멍이라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절실하기 때문이다. 


남북 양측 당국의 관계자들도 한걸음씩만 물러나 심호흡 한번씩 하시고, 이런 작은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힘을 실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정치가 사라진 대결의 현장에서 최후에 기대할 수 있는 화해의 손길은 종교계에서 나오는 것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아니, 그게 오히려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네팔 룸비니에서 평화의 불 채화는 이미 어제 (4월 18일)에 이루어졌다. 이제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네팔 룸비니 부처 탄생지에서 채화된 그 '평화의 불'이 배타고 바다 건너오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원래 불은 물과 상극이다. 혹시 바닷물이라도 튀어서 불이 꺼지면 곤란하잖아.. 


그러지말고, 안전하게 의주, 평양, 개성을 거쳐 육로로 봉송되어 올 수 있게 되기를 빈다. 


아무것도 아닌 거 가지고 왜 이러냐고? 아, 이런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니까... 



화해와 평화는 뜻밖에 작은 곳에서부터 오기도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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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