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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벙커 1에서 쿠데타 특집으로 강연을 했었다. 그때 <터키>의 쿠데타 전력을 말하며,

 

 “이상한 쿠데타”

 

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터키는 근대 국가를 설립한 이후 수차례 쿠데타가 일어난 나라이다. 지난주에 있었던 쿠데타가 정확히 5번째 쿠데타이다(1960, 1971, 1980, 1997년에 각각 쿠데타가 있었다).

 

재미난 사실은 2016년 7월에 있었던 이번 쿠데타를 제외한, 지난 4번의 쿠데타는 전부다 ‘각본’대로 움직인 ‘영화’ 같은 쿠데타였다는 것이다. 덕분에 총 4번에 걸친 쿠데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자 숫자는 400여 명 수준에 그쳤다(물론, 쿠데타가 끝나고 나서 강제구금 된 인원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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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번 터키 쿠데타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랬던 게 어떠한 전조나 예고가 없는 돌발적인 쿠데타. 말 그대로 ‘진짜’ 쿠데타가 터졌다는 점이었다.

 

원래 터키의 쿠데타는 정해진 ‘룰’이 있다(이건 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터키 군부는 그 ‘룰’에 맞춰 쿠데타를 일으키고 퇴장을 하고, 터키 국민들은

 

 “아, 이번엔 좀 짧네?”


 “정치하는 애들도 정신 차리려나?”


 “에이, 그럼 한 번 더 들고 일어나겠지.”

 

라면서 일상으로 생각한다. 이해가 안 가는가? 그럼 2016년 이전에 있었던 4번의 쿠데타가 어떤 ‘수순’에 따라 일어났는지 그 개략을 설명하겠다.

 


 <터키 쿠데타 진행도>

 

➀ 정치권(정권)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이슬람 원리주의 쪽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➁ 터키 군부에서 장군들이 모인다. 가볍게 ‘경고 성명’을 낸다.


➂ 그래도 정치권이 정신을 못 차린다.


➃ 터키 합동참모본부에 터키 육해공 장성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최후통첩성 경고를 한다. 이때 정치권과 국민을 향해 ‘쿠데타 예고’를 한다.


➄ 정치권이 정신을 차리면, 추진하던 정책을 멈춘다. 만약 ‘설마’ 하는 생각에 멈추지 않고 버티면, 터키 군은 쿠데타를 일으킨다.


➅ 군부가 정권을 무너뜨린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 숫자는 그 규모에 비해 지극히 적다. 대신 구금되거나 잡혀가는 사람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➆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고는 2~3년 안에 깔끔하게 민정 이양을 한다.


 


터키 군부가 60년대 이후 몇 번이나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터키 국민들이 터키 군을 신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민주주의 국가가 3권 분립이라 해서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 발전한다고 본다면, 터키는 4권 분립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터키는 입법, 사법, 행정에 ‘군부’가 추가됐다. 이 군부는 터키 사회가 ‘이상하게’ 돌아갈 때 몸을 일으켜 쿠데타를 일으키고, 터키 국민들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스템이다).

 

국내 언론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 거 같은데, 2000년대 중후반부터(정확히는 2007년 에르도안 당시 총리가 집권한 뒤로) 터키 군부는 몇 번 터키 정치권에 경고를 날린 적이 있었다. 실제로 ‘쿠데타 예고’까지 언론에 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때의 ‘군부’는 지난주에 있었던 ‘막가파식 쿠데타’(개인적인 명명이다)를 예고한 게 아니라 이제까지 해왔던 ‘터키 정통방식의 쿠데타’ 예고였다.

 

그때 터진 대표적 사건이 바로 ‘머리쓰개 금지법’에 관한 충돌이었다.


 

세속주의

 

이번 쿠데타 사건 당시 터키 여성 앵커가 쿠데타군이 정권을 장악했다고 보도하는 장면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들지 않았는가?

 

여성 앵커가 히잡(hijab)이나 머리쓰개(차돌, 니캅, 부르카 등등)를 쓰지 않고 당당히 머리를 풀어헤친 상태로 나온 것이다. 어떤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는가? 같은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터키와 비슷하게 세속에 찌든(?) 이집트 앵커들은 머리에 뭔가를 쓰고 나온다. 관광객 덕분에 비교적 개방적인 이집트마저도 여성들은 히잡을 쓴다(2000년대 초반까지 여성들에 대한 명예살인이 공공연하게 있었고, 무바라크 前 대통령 재임 당시 영부인이 방송에 나와 명예살인 금지를 호소하는 방송을 할 정도였다. 반면, 이집트의 젊은 여성들은 세속화된 삶 속에서 자신의 자유연애와 명예살인 사이에서 갈등하다 비정상적인 탈출구를 찾았는데, 당시 이집트의 젊은 여성들은 타 국가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많은 애널섹스, 오럴섹스 경험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었다. 처녀성을 지키며 연애를 하기 위한 비정상적인 행태였다).

 

터키 여성들은 어째서 히잡을 쓰지 않았던 걸까? 터키가 법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최초에는 교사, 변호사, 의회 의원 등등 국가 소유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금지시켰는데, 1970년대 터키 여대생을 주축으로 이 히잡을 쓰는 게 유행이 되자 이를 금지시켰던 것이다. 나중에는 아예 싹을 자른다는 의미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입학 사진을 찍을 때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상태로 찍은 사진'을 제출받았다.


재미난 사실은 터키 국민의 99%는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 통계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터키 신분증에는 종교란이 따로 있는데, 이 종교 기입란은 의무적으로 기입해야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민등록증에 의무적으로 종교란을 박아넣고 기입하란 소리다. 주변 사람 모두가 이슬람교라고 적은 상황에서 기독교나 천주교를 적는다는 건 사회적 왕따를 자처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많은 통계학자나 사회학자들은 99% 이슬람교란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실제로 케말 파샤 집권 이후 이제까지 추진해온 강력한 세속주의의 영향을 생각해 본다면, 상당수의 터키 국민들은 비이슬람이거나 불가지론자 혹은 무교일 확률이 높다.

 

자, 문제는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터키 내부가 좀 이상하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케말주의 정당의 당수였던 데니즈 바이칼(Deniz Baykal)이 차도르를 입은 여인을 당원으로 받아들이지를 않나(이건 엄청난 사건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새누리당이 맑스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을 당원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사건이다), 문제의 에르도안 총리가 공공 기관에서 머리쓰개 금지령을 해제하겠다며 공약을 내걸면서 터키의 세속주의를 위협하는 사건들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에르도안은 이 공약을 통해 선거에서 승리하게 됐고, 머리쓰개 금지령에 대한 터키 사회의 관심은 터키의 미래를 결정할 정도의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흔히,

 

 “히잡 하나 쓰는 게 뭐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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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방문한 가카도 쓰셨는데..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건 케말 파샤 이래로 이어져 내려온 터키의 80년 전통을 일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고, 터키의 향후 80년을 좌우할 중대한 사안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미래 사회에서 터키가 가질 국제사회적 영향력은 미국과 중국에 버금가거나 이들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했던 미래학자들이 ‘꽤’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다시 부활시킬 것이란 예상인데, 그 핵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터키의 세속주의였다. 지금은 종교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슬람이지만, 그 종교의 탈을 한 겹 벗겨낸 터키의 발전속도를 생각해 보라, 무궁무진한 이슬람 시장에 가장 먼저 접근할 수 있는 게 터키이며,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는 절묘한 영토 위치, 엄청난 인구수 등등 터키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히잡은 그 세속주의를 판단하는 바로미터였다. 그런데 2008년 터키 의회는 여대생들의 머리쓰개 착용 허용을 위한 헌법개정에 들어갔고, 압도적 찬성률로(무려 79%) 이를 통과시켰다. 케말 파샤 이래로 지켜져 내려오던 터키의 전통이 무너지려는 상당히 위험한 순간이었다(그 이유는 에르도안 총리,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서 설명하겠다). 그러나 너무도 다행스럽게 터키 헌법재판소가 이 헌법 개정안을 취소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케말 파샤(Mustafa Kema)

 

오늘날의 터키와 터키 군사 쿠데타를 말하기 위해서는 꼭 말해야 하는 인물이 바로 케말 파셔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갈리폴리>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의 무모한 작전 덕분에 수많은 영국군이 죽어 나가게 된 전투. 바로 그 갈리폴리 전투를 진두지휘했던 이가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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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편에 섰던 오스만 제국을 연합국이 갈라먹으려 덤벼들었다(덩달아 그리스도 나섰다). 이때 케말 파샤가 앙카라에서 국민회의를 주최한 뒤 왕정을 무너뜨리고 독립전쟁에 나서게 된다. 그야말로 전쟁영웅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면모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그는 터키의 살길을 개혁과 개방으로 봤고, 강력한 서구화 정책을 들고 나왔다. 근대국가의 기본인 정교분리 정책은 기본이었고, 이슬람교의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들을 전면에서 반박했다.

 

1930년에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고, 히잡을 금지시켰고,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터키 문자를 개혁했다). 그를 말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 불가 방침이었다. 1938년 사망하기 전에 그는 향후 제1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큰 전쟁이 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터키의 미래를 위해서는 히틀러나 무솔리니 편에 서서는 안 된다. 아마, 이번 전쟁에도 미국은 참전할 거야. 그리고 미국 손에 전쟁이 끝날 거야. 그러니 터키는 미국 쪽에 붙어야 한다.”


 

이는 상당히 놀라운 식견이었다. 당시 히틀러는 미국 기업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은근히 인기 있었던 인물이었다. 파시즘이라는 독을 통해 정권을 잡긴 했지만, 그가 반공주의자이고 자본가의 적인 소련을 적대시 한 점,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재해를 별 무리 없이 극복한 점 덕분에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신망을 얻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케말 파샤의 눈에 히틀러는 ‘그냥 미친놈’이었을 뿐이다.

 

케말 파샤는 자신의 사후 터키가 독일 측에 붙는 것을 걱정해 신신당부했었고, 그의 후계자들은 국부(國父)의 유언을 착실히 따랐다. 히틀러는 수차에 걸쳐 나치 간부들을 보내 터키 지도자들을 꼬셨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시작이 되는 청색작전의 초창기(한참 독일군이 쾌진격을 하던 시기) 터키 군사 고문단을 초청해 독일군의 위엄을 보여주며 터키군의 참전을 유도했지만, 터키는 움직이지 않았다.


독일은 터키가 너무도 아쉬웠다. 만약 터키가 밑에서 위로 치고 올라간다면 소련을 상당 부분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전쟁 내내 터키에 대한 공을 들였지만, 터키 지도자들은 케말 파샤의 유언을 철석같이 믿고 독일 대신 미국을 선택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가져왔던 독일과의 유대 대신 국부의 말을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국부의 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의 마지막 길은 터키 국민에게는 ‘영웅의 최후’ 그대로이다. 만약 인격적으로 완벽한 독재자가 있다면, 아마 케말 파샤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케말 파샤는 만약 자신에게 자식이 있다면, 대를 이어 독재자가 될 수도 있다는, 혹은 정치적으로 이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당연하게 자식도 없었다. 공화주의를 지키겠다는 그의 강력한 의지였다.

 

그는 최후의 순간 자신의 모든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고(여동생의 생계를 위한 일부를 제외하고) 영면의 길에 들어섰다. 인격적으로 완벽한 독재자의 모습이랄까? 이런 그에 대한 터키 국민들의 사랑은 말 그대로 신화다. 모든 터키 화폐에는 케말 파샤의 초상화가 들어가 있고, 터키 형법에는 케말 파샤 모독죄가 당당히 들어가 있을 정도다(케말 파샤 모독죄를 우리나라의 ‘대통령 모독죄’와 같은 선상에서 말하는 것은 어려운 게 강력한 서구화 정책을 시도하는 통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있어 케말 파샤는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이 때문에 조금만 틈만 보이면 케말 파샤에 대한 폄훼 사건들이 종종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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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케말 파샤가 터키를 위해 남겨 놓은 게 바로 ‘터키 군대’였다. 군인의 인생을 걸어왔고,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켰고, 나라의 독립을 이끈 그는 이 군대의 힘으로 이슬람 원리주의를 몰아내고, 근대화된 터키를 만들어 냈다. 문제는 종교의 힘은 끈질겼기에 언제 이 종교의 힘을 등에 업은 정치세력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케말 파샤는 터키 군대를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대항하는 최후 보루’로 남겨 놓았다. 세속주의 정책의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해야 할까? 앞에서 언급한 ‘터키 정통방식의 쿠데타’의 쿠데타는 이렇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법적인 ‘안전장치’도 깔려 있었다. 터키군의 쿠데타에 대해서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 않았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

 

터키의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세속주의의 보루를 자처하는 군대가 그 운신의 폭을 넓히고, 이슬람 종교를 등에 업은 정치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헌법 자체가 쿠데타를 인정했으니)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헌법이 개정됐다.

 

2010년 9월 터키가 30년 만에 개헌을 한 것이다. 역시나 에르도안 총리가 문제(?)였다.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세몰이를 한 에르도안은 문제의 터키 헌법 13조 2항을 고쳤다. 이 조항의 핵심은 쿠데타를 모의, 실행한 터키군 장교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주 골자이다.

 

당시 에르도안의 발언을 살펴보면 이 헌법 개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쿠데타를 지지하는 사람들만이 패배했다. 민주주의가 진보했기 때문에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사람이나 반대표를 던진 사람이나 모두 승리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터키는 4권 분립의 나라이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민주주의를 배우고, 민주주의를 지금까지 나온 정치 체제 중 가장 좋은 정치 체제로 공부한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며, 에르도안은 민주주의를 수호한 투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종교’다.

 

근대국가가 전근대 국가와 차별점을 가지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정교분리 원칙이다. 케말 파샤가 죽기 직전까지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고, 군부에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심었던 이유가 뭘까?


 

에르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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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opoja>

 

이스탄불 시장으로 명성을 쌓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3번의 총리를 연임한 후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다(터키는 내각제 국가이다. 이걸 대통령제로 바꾸려고 덤벼든 게 에르도안이다). 이 때문에 에르도안은 술탄을 꿈꾼다, 푸틴을 꿈꾼다며 반대 세력들에게 수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에르도안의 20년 집권도 가능할 거 같다.

 

그가 이렇게 오래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바로 경제였다. 2000년 IMF 구제금융을 받은 터키. 이때 터키는 한국과 똑같은 방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바로 강력한 구조조정이었다.

 

에르도안 집권 이후 터키는 10년간 GDP가 매년 7% 이상씩 성장했고,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은 3배 이상 뛰었다. IMF에 졌던 빚도 다 갚았고, 외환보유고도 260억 달러 수준에서 1천억 달러 수준으로 올려놨다. 그는 통화단위를 변경해 인플레이션을 잡고, 강력한 수출정책으로 국고를 채웠다. 여기까지만 보면, 에르도안은 훌륭한 지도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하나 있다. 바로 ‘종교’였다.

 

에르도안의 정치적 힘은 저교육, 저소득의 이슬람 유권자들이다. 많이 배운 사람들보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종교적 맹신에 빠질 확률이 더 높다. 에르도안은 이 저소득 이슬람 유권자들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들을 남발했다. 생필품인 빵과 차 같은 물품에 대한 가격은 최대한 낮추고, 이들이 구매할 수 없는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대한 과세를 엄청나게 했다. 무슬림들에 대한 각종 혜택도 남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휘발유 값이 높다고 푸념하지만, 터키에 비할 바가 아니다. 터키는 OECD 국가 중 휘발유 값이 가장 비싸다. 2013년 기준으로 터키 휘발유 가격은 1갤런 당 10달러 선이었다. 터키인의 하루 평균 수입이 30달러 내외인 걸 감안한다면, 엄청난 수준이다. 터키의 경제규모에 비해 자동차 보급률이 엄청나게 떨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전체 국민의 10%만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독실한 무슬림들에게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세속주의를 표방하며 무슬림의 근본을 부정한 케말 파샤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왔다며 광분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강조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시각으로 터키의 정치를 바라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다. 


지 말기를 당부한다. 흠...좋다. 잠깐 짬을 내 이 ‘종교’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겠다.

 

민주주의 성지가 어디겠는가? 바로 프랑스이다. 프랑스에서,

 

 “네 종교가 뭐니?”

 

라고 물으면 선선히 가장 ‘만만한’ 종교를 말한다. 그러나 뒤돌아서서 종교를 물은 이를 비웃는다(배운 사람들은). 그들은 기본적으로 종교를 묻지 않는다. 유럽 교계가 힘들어진 이유가 뭘까? 한기총 분들이 100분 토론에 나와서 하는 말의 핵심은,

 

 “십일조를 내지 않아서”

 

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 짧은 식견으론 그들이 ‘배워서’이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인 것 같은데, 이분법적으로 똑똑한 사람은 종교를 믿지 않고, 못 배운 사람만 종교를 믿는다는 말이 아니다. 종교를 폄훼할 의도는 없다. 

 

그들은 인간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제도교육 안에서 끊임없이 사고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절대자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불가지론으로 빠지기도 하고, 자신의 종교를 찾기도 한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타인을 존중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어떤 초월적인 절대자 대신 인간 스스로 일어나고, 그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살아가기 위한 사회공동체인 국가를 만들고 신이 아닌 개인의 의지, 그 의지의 관철인 정치를 통해 신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교 정교분리가 일어난다.

 

같은 의미로 미국이 위대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헌법이다. 21세기 지금 미국인들이 다시금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미국 수정헌법 1조다.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 의회는 언론, 출판의 자유 또는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고충 처리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문제는 미국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 수정헌법 1조를 종종 무시한다는 것이다. 텍사스의 미친 보수주의자들, 통칭 레드넥(Redneck)이라 불리는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공공연하게 미국의 국교는 기독교라 말하며, 이들의 표심을 얻으려 기를 쓴다. 덕분에 미국 정치는 종종 산으로 갔다. 종교의 이유로 진화론을 거부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여성의 낙태를 반대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타 인종을 거부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부정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른다. 종교를 이용하게 된 정치인들은 하나님을 팔며 전쟁을 말하고 갈등을 부추긴다. 이게 종교의 무서운 점이다(다시 말하지만, 종교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근대국가의 핵심인 ‘정교분리’를 말하기 위함이라 강조하겠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게 가지지 못한 자,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자, 정보 획득과 분석에서 소외된 자, 사회 기득권에서 멀어진 자일수록 종교적 맹신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맹신자가 많아질수록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왕좌의 게임> 시즌 5와 6에서 등장하는 하이 스패로우만 봐도 그렇다.

 

각설하고, 에드도안과 터키의 이야기를 다시 해겠다.



에르도안 본색을 드러냈나?

 

헌법을 개정해 군부 쿠데타의 가능성을 최소화한 에르도안은 이후에 경찰력 강화에 나섰다. 만약의 상황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계획한다면, 경찰력으로 이를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쿠데타에서 경찰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터키 경찰들의 무장 수준과 경력(警力)수를 우리나라 파출소 순경들로 보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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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rt>


이 대목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게 터키 내의 쿠르드 세력들이다. 전 세계에서 국가를 가지지 않은 민족들 중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는 게 쿠르드 족들이다(무려 2천만이 넘어선다). 이들 중 상당수가 터키에 있는데, 이들이 만약 독립을 한다면?(독립하겠다고 난리 치고 있다) 이들이 시리아 사태가 터지고, IS가 준동하자 미국 편에 붙어서 미국 장비로 무장하고, 미국 대신 싸우고 있다.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 족의 독립을 결사반대하는 입장이기에 미국과 미묘한 마찰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쿠르드 족이 터키 내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실제로 쿠르드 민병대가 터키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내보내면, 내란이나 소요사태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목이다. 이 때문에 터키 경찰들은 이들을 막기 위해, 혹은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 수준의 무장을 하고 작전에 투입된다. 작년에만 해도 경찰 5천 명을 동원해,

 

 “쿠르드 민병대와 IS 세력을 격퇴하기 위한 작전을 시행한다.”

 

라며, 터키 국경 근처와 시리아 국경 너머의 쿠르드 민병대 기지와 IS 기지 거점을 공격했다. 왜 하필 경찰인지 알겠는가? 군대를 국경 너머로 보냈다간 침략이지만, 경찰을 보내면 치안활동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독도에 경찰을 배치한 이유와 같다.

 

이 작전을 의경들이 방패 들고 시위 진압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터키공군의 F-16이 이륙해 폭격을 하고, 경찰 5천 명이 거점 100군데를 헬기와 장갑차를 타고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한 소탕작전이었다(IS보다는 쿠르드 민병대를 훨씬 더 많이 때려잡았지만 말이다).

 

헬기 강습작전. 그것도 1~2대가 아닌 편대단위의 강습작전을 치안활동으로 볼 수 있을까? 더구나 F-16의 지원을 받는 작전이라면?

 

터키 경찰은 준 무장세력이 아니라 무장세력이다. 에르도안은 쿠르드족을 핑계(?!)로 착실히 경찰세력을 늘렸고, 이를 가지고 터키 군의 대항세력을 구축했던 것이다.

 

여기에 이슬람교 세력의 압도적 지원을 등에 업었다. 이제 거리낄 게 없어진 에르도안은 서서히 그 본색(?!)을 드러냈다(원래 그런 사람인지, 아니면 정치적 이익을 위한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2011년부터 에르도안은 ‘종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서상으로 정리해 보겠다.



➀ 2011년 10월 지진으로 무너진 초등학교를 재건하면서 아타튀르크를 빼고 자기 어머니 이름을 넣었다

 

(아타튀르크Atatürk는 ‘튀르크 민족의 아버지’란 뜻이다. 우리로 치면 ‘국부’다. 케말 파샤를 의미하는데, 학교나 공공건물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스탄불 공항의 정식 명칭도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이다)

 

➁ 2012년 에르도안은 터키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아타튀르크 추모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3.1절, 8.15 광복절 기념행사에 대통령이 얼굴을 비추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현직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 이상이다! 이 모든 걸 합친 것보다 더 한 정치적 함의가 있었다)

 

➂ 2013년 탁심 게지 공원(Taksim Gezi Park) 재개발 사업

 

2013년도를 뜨겁게 달궜던 터키 젊은이들의 투쟁의 장소이다.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키스를 하고, 대놓고 맥주를 마셨다. 바로 ‘키스 투쟁’이다. 처음에 터키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공공장소에서의 애정 행위를 금지하라며 완곡하게 접근하는 듯했으나, 곧 시위진압부대를 동원해 유혈사태로 발전했고, 젊은이들과 터키 시민들은 이 공원을 지키기 위해 철야농성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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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탁심 공원 한켠에 붙어있는 이 작은 녹지공원 때문에 에르도안은 수천의 경찰을 동원했고, 시민들은 세속주의를 지키겠다며 끝까지 공원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곳은 케말 파샤의 성지였다. 케말 파샤의 서구화, 근대화 정책의 모든 걸 상징하는 공원이었다. 공화국 기념탑이 있고, 이 기념탑에는 케말 파샤가 남긴 세속주의의 유훈이 있다. 그리고 케말파샤의 동상과 그를 기리는 문화회관도 있다.

 

에르도안은 이곳을 밀고 오스만 제국 시절의 포병부대 막사와 이슬람 사원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너무나 노골적이지 않은가?

 

에르도안 집권 이후 사회는 이슬람 원리주의가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2010년 말이었다. 아랍의 봄으로 주변 이슬람 국가들이 하나 둘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이 들어서고(아랍의 봄으로 이슬람 지역은 말 그대로 ‘개판’이 됐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그나마 수니와 시아로 갈라진 이라크를 제어했는데, 후세인 몰락 이후 개판이 된 것과 같았다), 무슬림들이 추구하는 ‘지상낙원’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에르도안도 ‘용기’와 ‘희망’을 얻었던 것이다. 게다가 군부를 묶는 족쇄인 헌법개정도 통과된 상태에서 점점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에르도안은 이때부터 케말 파샤의 색깔을 하나 둘 씩 빼기 시작했고, 그 대안으로 오스만 제국 시절의 영광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자유로웠던 남녀 간의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표현도 제한했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내각에 들이기 시작했다. 


에르도안의 생각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해졌다. 정교분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구 언론들은 이때부터 에르도안이 ‘술탄’을 꿈꾸는 게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고, 터키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은 에르도안을 히틀러와 술탄에 비유하기 시작했다.

 


다시 쿠데타

 

이번에 실패한 쿠데타를 보면서 수많은 상념들이 오갔다. 혹자는 민주주의의 승리이고, 터키 시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빛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난, 솔직히 모르겠다.

 

수많은 서방 세계 지도자들이, 에르도안을 지지하고 민주주의 승리를 찬양한다. 언론에서는 터키 군부의 무자비한 총격 장면을 보여주면서 쿠데타 세력의 무자비함을 말한다.

 

일단 판단보류다.

 

우선 이번 쿠데타 세력의 정치 지향점이나 목적에 대해 불분명하다는 게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정적으로 난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고 있었다(이 기사를 쓰다 보니 내가 그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터키가 근대국가로 들어선 건 이제 겨우 90년이다. 혹자는 대한민국보다 역사가 오래됐다고 말하지만, 터키에게는 강력한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슬람교’이다.

 

대한민국이 정교분리 국가란 건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다(정말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터키는 아니다. 게다가 2010년 아랍의 봄 이후로 이슬람 세계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날뛰며 주변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종교를 이용해 권력을 얻고, 이를 유지한 ‘민주주의 독재자’가 등장했다.

 

에르도안은 그 동안 터키 발전의 원동력이자, 터키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이었던 세속주의를 거부하고 종교를 정치의 영역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에르도안의 정치적 기반인 이슬람교 지지자들을 보면서 얼마 전 우리를 놀라게 했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이 생각났다.

 

 “정말 민중은 개돼지라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되는 걸까?”

 

히틀러는 대공황의 위기 속에 허우적거리던 독일에 구세주로 나타나 아우토반과 군비 재무장으로 경제 활성화를 시킨 뒤 독재를 공고화시켰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찬양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했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되는 거였다. 에르도안도 마찬가지다. 그는 저소득 이슬람교 지지자들을 먹고 살게 해주는 정책을 남발했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이슬람교 세력에게 수많은 혜택을 줬다. 이 정책은 곧 그의 정치적 힘이 돼 주었고, 그의 10여 년 장기집권의 원동력이 됐다.

 

이번 쿠데타의 이면에는 뭐가 있을까? 케말 파샤의 유훈에 따라 이슬람 원리주의로 돌아가려는 정치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군부의 ‘올바른 판단’이었을까? 그렇게 보기엔 허술한 구석이 너무 많다. 지난 4번의 쿠데타와 달리 이번에는 사상자 숫자가 너무 많다. 병력이 적기 때문에 화력으로 응대하려고 했던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TV 화면에 나와 터키 군인들을 막아선 터키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어떤 감동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열기를 느끼지 못했다. 이건 내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자인지 아니면 에르도안의 추종자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결과가 파멸적일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난 예상하고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중에 11/22/63 이란 작품이 있다. 얼마 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JFK의 암살을 막으면, 베트남전도 없을 것이고, 미국은 더 좋아질 것이라 믿은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 케네디의 암살을 막는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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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미국은 디스토피아의 견본이 돼 버렸다. 결국 주인공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역사의 결과를 바꿔버린다(케네디가 죽게 내버려둔다). 극단적인 예일수도 있다.

 

분명 터키 시민들의 이번 행동은 숭고하다. 겉으로 보면 분명 민주주의의 화신처럼 보인다. 에르도안의 모습은 민주주의 지도자로서 모습 그대로이다. 서방 지도자들 역시 그를 지지한다. 개개의 사건과 행동들을 보면 다 맞는 말이지만, 그게 다 합쳐지고 나서의 모습은 ‘괴물’이다.


내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는데, 만약 이대로 진행된다면 에르도안은 개정헌법을 통해 이번 쿠데타 주모자들에게 확실한 보복을 할 것이다. 군부를 제압하고, 장악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르도안을 막을 수단은 사라질 것이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4권 분립은 잘못된 것이고, 군대는 문민통제(civilian control)에 있는 것이 맞다. 이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그 문민이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때를 전제한다(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지만, 터키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우리도 근현대사에서 2번의 쿠데타를 경험했고, 그 공과 과를 다 겪었다. 그렇기에 쿠데타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으로 터키를 바라본다면, 거기엔 분명 ‘빈 구석’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터키는 우리와 다르게 ‘종교’라는 약점을 떠안고 있다. 케말 파샤가 80년 전부터 걱정했던 단 하나. 종교의 정치참여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떠 안고 있는 것이 터키이다.

 

...이번 쿠데타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기에 섣불리 그 주동세력이나 쿠데타 목적에 대해서 말할 순 없기에 이 기사에는 내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점 참작해 주시길 바란다. 다만, 터키의 쿠데타 세력이 단순히 개인적 영달이나 영광을 위해 총부리를 시민에게 들이민 존재들은 아닐 것이란 말을 하고 싶다(내 추측일 뿐이지만). 아니, 내 바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순전한 오해와 착각으로 터키가 4권 분립이 아닌 제대로 된 3권 분립의 민주주의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의 성장통을 폄하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터키 국민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터키 국민들은 물론 국제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말을 남기고 싶다. 가까이는 2003년의 후세인 축출, 1979년의 팔레비 왕의 망명, 1933년 독일 수권법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중동에서 유럽과 미국의 절대적인 파트너이자, 대 중동 전략의 한 축이 되는 터키의 정치 상황은 국제정세의 핵심이다. 당장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한다면, 미국의 대 중동정책은 처음부터 다시 수립해야 한다. 당장 시리아 공습을 위한 비행장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터키 보르포스 해협의 방어는? 시리아 난민 문제는 물론, 유럽연합과의 관계 등등 언뜻 떠오르는 것만 해도 한 손을 넘어선다.

 

...쓸데없이 길어졌다. 일요일 저녁 무렵에 급하게 원고를 쓰다 보니 체력이 달린다. 여기까지 중언부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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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가 디비주는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펜더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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