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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성우가 SNS에 어떤 티셔츠를 입고 사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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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도 나쁘지 않았고 가슴에 적힌 문구도 독립적인 여성상을 나타내는 듯 한, 새로 샀다고 자랑해도 이상할 게 없는 옷 같아 보였다. 거기다 후원의 의미가 있는 티셔츠라니.


그런데 이 티셔츠가 후원하고 있는 곳이 메갈리아4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임이 알려지면서 일부 네티즌이 해당 성우가 참여한 게임을 보이콧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다. 


문제의 게임은 넥슨의 '클로저스', 당연히 넥슨은 유저 이탈을 피하고자 해당 성우의 목소리를 쓰지 않고 재녹음하기로 '선택'한다.


그러자 메갈리아, 워마드(편의상 이하에선 이 두 커뮤니티를 구분하지 않고 메갈리아라고만 언급하겠다.) 등의 커뮤니티에서 넥슨 사옥을 찾아가 시위를 벌이겠다고 예고하고 여러 웹툰 작가들이 sns를 통해 성우를 지지하고 나서면서 반 메갈리아 성향의 독자들에게 별점테러(낮은 별점을 주는 행위)를 받기에 이른다. 별점 테러에 만족하지 못한 네티즌은 sns에 넥슨의 행위를 부당하다 규탄한 작가의 리스트를 만들고 이들이 대거 포진한 레진코믹스를 겨냥하여 불매운동(탈퇴 인증)까지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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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오늘의 유머, 루리웹, 디시 인사이드 웹툰 갤러리에서 갈무리된 레진 탈퇴 인증 글들


인터넷 상의 논쟁은 수일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넥슨과 성우 간의 문제가 웹툰 작가와 독자, 진보정당/진보언론과 지지자 등의 문제로 번지면서 쟁점도 여러 개로 흩어져있는 상황이다.   


쟁점1. 넥슨이 정치 성향(메갈을 지지한다)을 이유로 그 성우의 작업물을 배제했는데 이것이 올바른가.


쟁점2. 메갈리아4(페이스북 페이지)는 메갈리아(커뮤니티 사이트)와 구분될 수 있는가.


쟁점3. 성우를 지지하고 나선 웹툰 작가와 진보 정당, 진보 언론들은 메갈리아를 옹호하고 있는 것인가. 


쟁점4. 웹툰 작가들에게 별점 테러를 하고 레진코믹스 탈퇴를 인증하며 진보정당을 규탄하는 반메갈 성향 네티즌들의 행동은 정당한가. 


대충 정리해본 쟁점만도 이 정도다. 사건이 복잡해졌을 때는 최초의 시점으로 돌아가보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의 후원 인증이라면 미담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의 시발점이 된 후원 인증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후원 단체가 메갈리아였기 때문이다. 


위 모든 쟁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 또한 메갈리아다. 애초에 문제의 후원 인증을 올린 성우가 메갈리아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로 나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후원을 인증하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했거나 아예 후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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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메갈리아에 대한 인식 차이가 모든 쟁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쟁점1에서는 후원함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단체인가의 여부로, 쟁점2에서는 욕설 등 과격한 표현만 배제하는 정도로 정체성의 공유(같은 이름을 쓰는 것)가 허용될 만한 집단인가의 여부로 논쟁이 일어나는 중이다. 쟁점3과 쟁점4는 쟁점1의 연장선에서 메갈리아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할 존재인가/얼만큼 적극적으로 배제해야 할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그러나 다소 늘어지더라도 지금부터 할 이야기(이 글의 제목)가 각각의 쟁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드릴 필요가 있었다. 결국 이 사건은 메갈리아를 어떻게 보느냐가 본질인 문제이다. 이것을 간과하고 문제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으로, 혹은 페미니즘에 관한 것으로 국한시켜 본다면 디씨인사이드, 오늘의 유머, 루리웹 등에 게시되고 있는 수많은 여론이 그저 남초 커뮤니티의 마초성 폭발로 보일 수밖에 없겠다. 


남자든 여자든 메갈리아를 절대적으로 위험한 커뮤니티로 본다면 이를 지지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다. 똑같은 이름은 물론 비슷한 이름을 쓰는 페이스북 페이지조차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질 것이며 정치적 지향점이 같더라도 손 잡을 일 없는 집단으로, 최종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정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메갈리아가 과격할 뿐 옳은 방향을 지향하는 약자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지지 표현이 규탄 받을 이유도, 같은 이름을 쓰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욕 먹을 이유도, 성우의 지지/넥슨을 비판 입장을 메갈리아에 대한 옹호로 여기며 비난을 쏟아내는 이유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메갈리아를 어떻게 보는 것이 좋단 말인가? 팩트는 이거다. '지금 메갈리아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위험한 커뮤니티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이런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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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지향하며 출발한 커뮤니티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사실 이러한 결과는 '미러링'이라는 전략, 그것도 하필이면 일베에 대항하여 쓰기로 했을 때에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본래 미러링이란 단어는 컴퓨터업계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이것을 페미니즘 운동의 개념으로 쓰게 만든 건 디씨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 즉 지금의 메갈리아라 할 수 있다. 그 의미는 거울처럼 비춰준다는 것. 여성이 자신의 성별로 인해 사회적으로 직면하는 차별적 상황과 폭언 등을 그대로 비춰준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성 인권 운동에서 이러한 개념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보자.  



영상1. 스웨덴의 직장 내 성역할을 다룬 영화이다. (원본에는 한글 자막이 없어 부득이하게 원게시자의 영상 대신 자막이 붙은 영상을 올려드렸다.) 보시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남자 역할을 여성 배우들이 여자 역할을 남성 배우들이 연기했다. 



영상2. 영화 '아메리칸 울트라'를 프로모션 중인 제시 아이젠버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인터뷰. 두 배우에게 주어진 인터뷰 질문지가 바뀌어 버린 상황이다. 이에 제시 아이젠버그는 패션, 연애/임신 여부, 가슴 노출, 손톱 등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위 영상에서 보듯 미러링이라 불리지 않았을 뿐, 남녀의 성을 반전시킴으로써 서로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방법은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모르는 다른 국가에서도 행해져 왔고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메갈리아의 '미러링'과 위의 두 영상에서 나타난 '미러링'에는 분명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첫번째 차이는 '미러링'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상이다. 영상1은 영화를 보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다수의 남성이 포함된다. 영상2에서는 반전된 질문을 남성인 제시 아이젠버그가 받고 있다는 점이 중요해 진다. 실제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여배우들이 평소에 받는 질문들을 접하면서 평소 느끼지 못하던 차별을 인지하게 된다.  


메갈리아가 '미러링'으로 생산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커뮤니티 내의 게시물이다. 이것을 보는 이들은 당연히 동일 커뮤니티 내부에 존재한다. 성차별에 대한 인식을 깨우쳐야할 남성들에게 심히 배타적인 커뮤니티 안에 말이다. 메갈리아 안에 그들의 '미러링'을 봐야할 남성들이 없다는 아이러니는 그들의 콘텐츠가 결국 남자들 보다 자신들을 겨냥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애초의 목적인 '남성에게 여성의 입장을 알게 한다'에 충실한 '미러링'보다 메갈리아 내부의 여성들이 보기에 좋은 '미러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 초창기에는 이것을 잘 관리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커뮤니티란 기본적으로 오락적인 기능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거기다 이탈자가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결국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이용자의 유입을 적극 유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새로운 이용자가 생길 때마다 '미러링'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교육시켜 관리에 들어간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더 자극적인 욕이나 비하 발언으로 커뮤니티 내의 다른 이용자들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게시물이 추천을 많이 받게 된다. 이에 이용자들은 더더욱 이런 '미러링'을 추구해나간다. 정작 이들의 '미러링'을 봐야할 남성들은 어쩌다 도를 넘을 정도로 자극적인 소재가 나왔을 때 이를 기사화하려 달려드는 언론을 통해서만 해당 콘텐츠를 접한다. 이 도를 넘어선 게시물들이야말로 메갈리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메갈리아를 떠올리는 이미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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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게는 이런 자극적 소재가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기사 원문 - 일요신문)


이 대목에서 혹자는 대한민국 사회에 일베에 대척점에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낸 것에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실지도 모르겠다. 여성들이 일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겪는 불안을 남성들도 겪게 되는 것 자체가 메갈리아의 '미러링'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메갈리아는 '일베'를 대한민국의 일반적 세계관을 가진 집단으로 봤다는 것인데 이는 대한민국에서 일베의 위상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셈이다. 일베의 이용자들을 비하하는 일베충이라는 단어에서도 드러나듯, 이들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정상적이지 않은', '상식과는 거리가 있는' 세계관을 가진 이들로 평가되어 왔다. 일부 이용자들에 의해 반사회적 범죄 인증 사례가 다수 발생하여 이용자들은 일베를 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말하지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은밀하게 손가락 사인을 만들었다.)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수시로 제기됨에도 불가사의할 정도로 잘 유지되어 '국정원 배후설'까지 나오는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베가 얼마나 문제인지를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여 대중이 알도록 한다고? 대체 뭘 위해서? 


이것이 두 번째 차이다. 영상1에서 여배우들이 연기한 남성 직장인들은 간간이 음담패설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영상2에서 제시 아이젠버그가 받은 질문들도 여배우라면 일반적으로 받고 있는 가쉽성 질문이다. 그런데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 하고 있는 일베의 '패륜 콘텐츠'에 집중되고 있다. 


'패륜 콘텐츠'는 그 자체로 치명적인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금기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하지 말라고, 안 된다고 말하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보이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욕할 수 없다고 인지되어 온 존재를 욕하고 옳다는 데 이의가 없던 명제를 옳지 않다고 한다. 이는 사람의 이목을 끄는 데에도 유리하다. 


그런데 이런 '패륜 콘텐츠'가 주는 쾌감은 그것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만 공유할 수 있다. 일베의 '패드립'이 좀처럼 보수진영을 향하지 않는 이유다. 바꿔 말해 일베의 '패드립'은 진보진영의 모든 부분을 대상으로 한다. 자신(보수진영)을 겨냥하지 않는다면 세월호 유가족이든 민주화 운동으로 유공자가 된 사람이든 예외란 없다. 까선 안 된다는 걸 깔수록 쾌감이 커지니까 말이다. 이렇게 일베의 콘텐츠는 내부 이용자를 제외한 모두에게 불쾌한 것이 된다.


일베의 '패륜콘텐츠'를 미러링한 메갈리아의 게시물들도 마찬가지다.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깨선 안 된다고 인지되어온 금기를 깨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그 대상은 동 커뮤니티 이용자를 제외한 모두가 된다. 비교적 젠더 감수성이 높다고 알려진 남성 네임드는 물론, 메갈리아를 하지 않는 여성까지. 메갈리아의 혐오가 남혐이 아니라 여혐혐이라는 주장은 이 대목에서 힘을 잃게 된다. 처음에는 여혐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메갈리아를 제외한 모두에게 불쾌한 혐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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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줄을 안 서는 버스정류장이 있을 때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디서 줄을 서면 되는지 표시해주면 되는 것이다. 표지판을 세우든 보도블럭 위에 버스 번호를 써놓든 줄을 서야 하는 구체적 지점이 인지가 되면 최초로 버스 정류장에 도달한 사람은 그곳에 다가설 것이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줄이 만들어진다. 굳이 줄 서는 걸 거부하겠다는 사람은? 줄 밖에 있다가 버스를 늦게 타게 되는 불이익을 당한 후 줄을 서는 것이 이득임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줄을 서는 지점을 표시해주는 대신 '자, 줄을 안 서서 일찍 온 사람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는지 느껴봐'하면서 또다른 아비규환을 연출한다면? 그것도 버스정류장에서 비매너로 소문난 행동들을 따라한다면? 심지어 자기들만 볼 수 있는 별도의 버스정류장을 만들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면? 과연 이들의 행동이 '공공질서'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물론, 줄 서는 지점만 표시해줘도 줄이 만들어지는 광경은 '줄 서는 것이 질서를 지키는 일'임에 합의가 끝난 사회라야 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행해지는 여성 차별을 없애는 것이 옳다'는 전제에 합의가 끝난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을 달리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메갈리아의 성과만큼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실제로 메갈리아가 생겨난 이후, 대한민국의 온라인 상에서는 페미니즘과 여혐 이슈를 다루는 빈도가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이것은 성과라기보다는 교환에 가까웠다. 지불된 것은 '페미니즘 운동'의 절대성이다. 여성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에도 옳았고 지금도 옳고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을 실현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운동을 한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거기에 메갈리아가 참여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동조 여부를 달리할 것이다. 심지어 메갈리아가 끼어있단 이유로 그 운동의 의도에까지 의심을 품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이것이 과연 해볼만한 교환이었을까? 지금 메갈리아를 '위험한 집단'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분노를 보고 있자면, 이 질문에는 긍정적으로 답하기가 힘들다.


역으로 질문을 하나 해본다. 전략은 수단이다. 득만큼 실도 크다고 판단된다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는 것이다. 메갈리아는 '미러링' 전략을 수정할 수 있는 집단일까? 아니, 그 전에 수정의 필요를 고민해볼까? 


물론 위 질문은 어디까지나 메갈리아가 패륜 미러링의 쾌감에 빠져버리지 않은, 아직도 페미니즘을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티인 다음에야 해볼 법한 것이다. 지금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실제로는 어느 쪽일까? 




뱀발. 


이 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분량 조절 실패로 한 회 더 가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필진 박현우 씨한테 미안한 마음이 많다. 늘 쓰기 민감한 주제만 던져드리는 것 같다. 


내가 박현우 씨의 글을 기꺼이 편집할 수 있었던 것은 딴지일보의 기조가 '기사 지면은 대화의 장'이라 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명랑하고 일독의 가치가 있는 글이라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것. 박현우 씨 글의 경우에는 넥슨의 선택이 영 좋지 않았다는 부분에 동의할 수가 있었다. 그럼 메갈리아4를 후원한 성우의 목소리를 그냥 쓰는 것이 맞았냐고? 


이에 대해서는 교통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넥슨의 선택을 비난하는 것이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것으로 귀결되지만은 않는다. 지금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대부분 이에 대한 명확한 교통정리 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어질 글에서 자세하게 정리해 보겠다. 


아울러,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어떤 방법으로도 성과를 내지 못한 여성 운동 진영의 벼랑 끝 선택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해 이에 대한 분석도 해볼까 한다. 





딴지일보 퍼그맨

트위터 : @ddanzipugman


Profile
딴지그룹 마켓팀원. 편집부 일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