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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라는 단어에 항상 묶여 등장하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군사기밀!” 그것도 왠지 빨간 도장으로 “TOP SECRET"라고 찍혀있으면 더욱 폼 나는 단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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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군사기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전시에 사용할 작전계획이나 군 수뇌부의 비밀 공간 등일 것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전면 가득 수십 개의 패널을 설치하고 몇 개의 전자 지도를 바라보면서 위성의 화면을 추적하는 ‘벙커’라는 곳의 실제 모습은 기밀 중에 기밀일 것입니다. 이까지가 국민이 생각하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합동참모본부의 설계도가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고, 국방부가 그것을 아직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201사업’이라고 불리는 합참 신축사업은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을 위해서 전·평시 한반도의 전구작전 지휘를 전담하는 군 지휘시설의 필요성으로 인해 시작됐습니다. 2008년 8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설계를 진행하고, 2010년 2월부터 2012년 7월까지 공사를 진행하였지요. 총 사업비는 1,700억 원 규모입니다.

 

처음 군은 A업체에게 EMP 방호시설을 포함하여 추후에 정식 계약을 하기로 ‘구두 약속’하고, 일단 기술 자문과 합참의 설계도면을 의뢰합니다.


*편집자 주: EMP란 Electro Magnetic Pulse의 약자로, 전자기파를 뜻합니다. EMP 탄은 강력한 전자기파로 특정 지역의 모든 전자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무기입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사이언스 베슬이 쓰는 EMP 쇼크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 무기로부터 보호 가능한 시설을 EMP 방호시설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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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의 설계도는 그 자체가 군사기밀이기에 당연히 비밀취급인가를 받은 자가 비밀인가를 받은 공간에서 제작해야 하고 도면이 완성되면 군이 원본을 보관하고 사본은 폐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니 당연히 비밀인가를 받은 공간이라는 곳이 존재할 수 없었고, 업체는 본인의 설계 사무소에서 도면을 작성합니다. 그 도면을 근거로 공사는 계속 진행되었습니다만, 최종 설계계약 단계에서 이 업체는 탈락하게 됩니다. 구두계약을 통해서 작성된 설계도와 동일하게 공사를 끝내고서도 합참이 설계비를 지급하지 않으니, 업체는 2012년 5월에 국민권익위원회에 설계비를 지급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게 됩니다. 권익위원회가 이 내용을 기무사로 통보해주고 나서야 기무사의 조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기무사는 뜻밖의 결과를 발표합니다.


“이 도면은 비밀이 아니고 군사비밀보호법의 적용이 제한된다. 시설본부에서 관련 자료를 회수하기 바란다.”


군사비밀을 생산하는 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당연히 비밀등급을 분류한 적이 없으니 비밀문서가 아니라는 논리인 것이지요. 솔직한 속내는 돈을 주고 의뢰한 내용이 아니니 기무사가 개인 업체를 조사할 법적 권한이 없어 제대로 조사할 수 없으니 계약에 관련되어있던 시설본부가 알아서 잘 해결하라는 것이였지요. 결론적으로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 만들기 위한 수사종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아무도 모르게 끝났겠지만, 합참은 다른 업체에 설계비를 다 지급해버렸으니 합의를 할 수 있는 예산이 남아있지 않게 되고 그것이 다시 2014년 5월에 언론에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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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TN>


어쩔 수 없이 2014년 5월에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에 착수하게 되지요. 당시 사업의 단장이었던 대령은 구속되었고, 사업을 총괄했던 중령은 자살을 하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시작부터 꼬였던 이 사업은 당연히 마무리도 잘 되지 못했습니다. 방산비리의 종합셋트로, 결국 그런 결과의 총체로서 우리 군의 수뇌부의 시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방산비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ROC(Requirement Operational Capability:작전 요구 능력)을 계약 이후에 낮춰주는 것입니다. 이는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는 경쟁 업체의 참여를 어렵게 합니다. 군이 100이라는 성능을 요구한다면 그 수준을 보유하지 못한 업체는 입찰 자체를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계약을 성사시키고 나면 요구 성능을 80으로 낮춰주는 것입니다. 당연히 공사비를 줄일 수 있으니 큰 이익이 생기겠지요. 처음부터 80의 성능을 요구했다면 80이나 90정도의 성능을 갖추고 있던 다른 업체들도 입찰에 참가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배려해준 것이니 누군가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르겠지요.

 

2008년 12월 국방부 화생방 방호시설 설계, 시공 지침(p.186)에 따르면 “특급방호도 EMP차폐 효율 요구수준을 최소 100dB 이상의 요구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명시되어있으며, 2010년 7월 시공사(H건설)의 차폐시설공사 현장설명서 17번 시방서 내용에서는 “항파장/항전자 방호실은 100dB 이상의 성능을 보장한다”라고 송부되어있습니다. 또한 2011년 P모 시설본부장은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EMP 방호시설 전력화 계획을 보고하면서 “특급(전쟁 지도 본부)은 핵폭발 시 100dB 이상 차폐 효율 제공”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처음의 계획은 EMP 방호를 위해서는 최소 100dB이상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원청인 H 건설도 하청을 맡은 건설사도 이와 관련한 시공능력이 검증되지 않아 계획대로 공사가 어렵자, 핵심기능은 방호성능을 80dB로 낮춰버립니다.

 

80dB의 방호성능은 ‘마비수준’의 전자파는 차단할 수 있으나 ‘파괴수준’의 전자기충격파는 차단할 수 없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최첨단 방호시설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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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참모본부 신청사

 

우리 군의 상황을 보면 1995년도에 건설된 포항 해군 기지도 2003년에 건설된 국방부 지휘 시설도 1996년에 건설된 주한 미군 시설도 100dB의 기준으로 건설되었습니다. 민간 시설을 보면 2002년에 건설된 삼성전자 전자제품시험실, 2003년에 건설된 쌍용자동차 차량용 전자파 측정시설, 2008년에 건설된 LG전자 전자파 측정시설 등은 모두 110dB로 만들어져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결과적인 평가는 독자 여러분들께서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다들 의아해하실 것입니다. 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국방부의 EMP 방호 성능검증기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시공사인 H 건설과 자문계약을 맺습니다. 1년에 1억에서 1억5천만 원 정도를 자문료로 받게 되지요. 성능 검증 기관과 시공사가 이런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니 당연히 정상적인 성능검사는 어렵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의 시설본부장이였던 P 소장은 퇴임 이후에 EMP 방호시설의 시공사였던 H 건설 임원으로 취업하게 됩니다. 대략 어떤 그림이 그려지시는지는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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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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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과 통영함 방산비리





김광진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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