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유독 이번 주에는 경제와 관련된 주요 이벤트가 몰려있다. 이번 주 목요일(7월28일), 미국 연방준비은행에서는 모임(FOMC -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연방공개시장위원회 : 미국의 중앙은행제도인 연방준비제도(FRS)에 있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을 갖는다. 아주 높은 확률로 기준금리는 동결될 예정이지만, 과연 브렉시트를 이겨내고 미국 연준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지, 안할지에 대한 성명이 포함될 예정이라 아주 중요한 모임이다. 하지만 이보다 좀 더 중요한 이벤트가 있다. 다음 날 일본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중앙은행의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 경제가 지금 엄청난 전환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일본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꽤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 좀 디벼보겠다.


그럴라면 지금 일본이 과거 어떤 상황을 겪었는지 봐야한다.


114923408.jpg

 

위 그래프는 World Bank에서 제공하는 연간GDP 그래프이다. 1990년대부터 일본은 끔찍한 불황을 겪었다. IMF가 터졌던 98년을 제외하고, 일본은 지난 20년간 한국보다 한번도 더 높은 경제 성장을 거둔 적이 없다. 동시기 이렇다 할 호황기를 경험하지 못했고, 매번 불황에 대한 언급이 많았던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심각한 저성장을 기록한 나라이다. 절대적인 수치를 봐도, 일본은 이 기간동안 거의 제로에 가까운 저성장을 거두었다(그리고 불행히도, 한국은 그 전철을 밟고있다).


왜?


가장 간단한 답은, 엔화 가치를 단시간에 절상시켰던 플라자 합의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압박에 환율을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대폭 절상시켜버린 일본경제는 순식간에 가격경쟁력을 상실, 큰 타격을 입었고 이는 버블 붕괴로 이어졌다라는 게 가장 교과서적인 답이다. 근데 음... 어쨋거나 일본은 그 뒤로도 꾸역꾸역 무역흑자를 기록해 온 나라다. 즉, 일본기업들은 수출을 수입보다 많이 해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플라자에 같이 끌려가서 줘 터졌던 독일은 그 뒤로 쌩쌩했다.


1985년 9월 22일 G5(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맺은 합의로, 회의 개최 장소의 이름을 따서 플라자합의(Plaza Accord)라는 명칭이 붙었다. 플라자합의의 주요내용은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의 통화가치 상승을 유도하고, 이 조치가 통하지 않을 경우 각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서라도 이를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이 합의는 강력한 정치적·군사적 파워를 행사하던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쌍둥이 적자(재정과 무역에 있어서의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이 자국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플라자합의 체결 1주일 만에 일본의 엔화는 약 8%, 독일의 마르크화는 약 7% 평가절상되는 즉각적 효과가 나타났다. 또, 플라자합의 직전 달러당 240엔대였던 엔화는 1985년 말 200엔, 1988년에는 120엔대까지 평가절상되어 3년 만에 100% 상승했다. 한편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2년 만에 30% 이상 평가절하되었다.


플라자합의 이후 미국은 불황에서 탈출하여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회복했고, 1990년대에 들어 신경제 현상으로 불리는 고성장을 지속했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은 이로부터 오랫동안 경제불황을 겪었다.


특히 1980년대 초중반까지 4~5%의 안정적 성장을 지속했던 일본은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현상으로 인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내수부양과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해 정부가 시행한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투자로 이어져 거품경제가 양산되고, 이후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자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기업과 은행이 무더기로 도산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플라자합의 [Plaza Accord] (두산백과)



japan-economy-stocks-460020702-564978b7e21eb.jpg



플라자합의가 일본경제에 거품을 꺼뜨린 사건일 망정,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주된 이유는, 일본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부동산에서 시작된 거품이 너무 커져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만들어냈고,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은 순식간에 자산가격 붕괴와 개인파산등의 악순환을 빚어냈다. 이 빚잔치에 허덕이는 사이 일본은 고령화에 신음했고, 점점 줄어드는 노동인구는 경제를 더욱더 위축시켜 갔다.


이런 모습들은 지금날 한국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오늘날 일본 경제를 우리가 잘 살펴봐야 할 이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본이 손 놓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건 아니다. 제로 기준금리를 시행해왔고,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서 경기부양에도 나서봤다. 당대를 대표하는 석학들이 그럴 때마다 일본을 다녀갔고, 자기나름대로의 해결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정책들은 실패했고, 일본을 장기 불황의 늪에서 건져내지 못했다.


장기 불황이 낳은 괴물이 바로 디플레이션이다. 자산가격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되려 하락하는 상황이다. 지금 경제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20년간 불황을 보고 들으며 위축된 채로 살아왔다. 그 안에서 절약과 저축이 몸에 배었고, 이런 절약은 소비와 내수경제를 위축시켰다. 그결과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물건값이 내려가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절약을 유도하여(시간이 지나면 물건값이 내려가니, 디플레이션상에서는 그냥 소비를 안 하고 기다릴수록 이익이 된다!), 더 많은 디플레이션을 낳는다.


디플레이션의 공포 속에 일본이 시달리는 사이, 고령화와 저출산이 더해져 일본경제는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들어선 현 정권이 지금의 아베 정권이다.


michaelrands-abenomics-subbedM.jpg


첫 집권에서 우경화만을 내세우다 몰락한 아베정권은, 공격적인 경제정책을 앞세워 재집권에 성공한다. 아베노믹스라고 이름지어진 그의 강력한 팽창적 경제정책의 핵심은, 일본에 드리워졌던 대불황과 패배주의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경제 성장, 소비심리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제1과제가 인플레이션 혹은 물가상승률 2% 달성이다. 국가경제를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건강한 상태로 인플레이션 상태까지 끌어올리는 게 최우선 목표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유래 없이 과감한 카드들을 끄집어냈다.


재정정책, 통화정책, 구조개혁 세 가지를 병행하는, 이른바 '세 개의 화살'이 바로 아베총리의 경제 정책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i.jpg


재정정책은 쉽게 말해, 정부가 민간에게 쓸 수 있는 돈을 더 공급하는 것이다. 거시경제에서 기업, 가계와 더불어서 정부는 소비에 나서는 존재이다. 이런 정부가 공격적으로 예산을 늘리고, 세금을 감면해 준다면, 이로 인해 기업이나 가계는 더 많은 몫의 돈을 쓸 수 있게 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아베정권은 대규모 일본 재건명목에 예산을 확대편성 했으며, 2013년에만 무려 20조엔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이런 재정 정책은 소비를 직접적으로 늘림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약발이 잘 받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노벨 경제학수상자 폴크루그만으로 대변되는 케인즈학파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병행하여 일본경제를 건져낼 것을 아베에게 조언하였다.


여기서 통화 정책이란,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하여 시장에 통화량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에 통화를 더 공급하면, 소비가 늘어나고 경기 살아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일본은, 이미 아베 집권전에도 가장 공격적으로 통화정책을 시행한 국가였다. 대표적으로 기준금리를 1999년부터 제로에 고정해오면서, 싼 값에 은행들이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번 얼어버린 경기는 기준금리가 제로여도 쉽게 나아지질 않았고, 사실상 일본 중앙은행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와중에 집권한 아베정권은, 재무성에서 외환정책을 담당하던 구로다를 중앙은행 총재에 앉혔다. 어느나라에나 존재하는 게 재무부(경제 성장을 관여)와 중앙은행(물가안정을 관여)인데, 재무부에서 사람을 뽑아다가 중앙은행에 앉혔다. 경제성장 정책에 힘을 잔뜩 실어준 것이다. 구로다는 기대대로 미친듯이 중앙은행에 발권력을 동원하여, 양적완화에 나섰다. 쉽게 말해, 중앙은행이 시장에 들어가서 자산을 사주는 것이다. 이러면 자산가격도 올라가고, 판매대금 만큼이 투자자 주머니로 들어가서 시장에 돈이 돌게 하려는 것이다.


물론, 일본만 이런 양적완화를 한 게 아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으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앞다투어 일시적으로 양적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이었고, 경제위기의 진원지 미국에 경우 2013년도부터 차차 줄여나가 2014년도에 완전 중단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일본중앙은행은 그 폭을 되려 점점 늘려, 2014년도부터는 연간 80조엔 가량의 자산을 매입해오고 있다. 구로다 총재는, 연간 2%의 물가상승률을 달성하기 전까진 무제한으로 중앙은행 돈을 풀겠다고 시장에 엄포를 놓았다. 이게 얼마나 미칫짓이냐면, 중앙은행이 자금조달하는 일본 국채의 대부분은 다시 일본 중앙은행으로 되돌아간다. 그래도 물가상승률이 제대로 오르지 않자 일본은행은 질적완화를 단행, 중앙은행이 국채 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채까지 사주도록 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일본은행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대규모 개입을 해왔다.


그래도 신통치 않자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만들어버렸다. 은행에다가 돈을 넣으면 보관료를 받아버릴 테니, 돈을 끄집어 내서 쓰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381992_174177_295.jpg

2016년 1월 29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정책들은 실패했다.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제로에 가깝고, 이런 확장정책에도 엔화는 올해 선진국통화 중 가장 강세를 보인 통화였다. 글이 길어져서 상·하로 나누어, 다음 글에서는 왜 이런 정책들이 실패했는지, 그리고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최종병기는 무엇인지를 다뤄보겠다.






씻퐈


편집 : 딴지일보 꾸물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