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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어제 기사가 나간 직후, 아베총리는 28조엔에 달하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당일 블룸버그통신에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왔는데 (링크), 이번 부양책 발표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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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조가 투입되는 경기부양책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국가수반이 선거직후에 직접 발표하는데, 이걸 도쿄에서 기자들을 잔뜩 깔아놓고 대대적으로 발표하는 전례를 따르지 않고, 후쿠오카까지 가서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비교적 아주 조용하게 발표했다. NHK에서는 이때 마침 고등학교 농구 결승전을 중계하던 터라, 속보형식으로 짤막하게 전달됐다. 이벤트의 중대성에 걸맞지 않은 자리였음은 분명하다.


그 뿐 아니라, 이번 경기부양책에는 29조 엔이라는 수치가 툭하고 전달되었을 뿐, 이 중 얼마가 2016년도에 사용될 신규예산인지를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았다. 이상한 시기에, 알맹이가 쏙 빠진 탓에 이번 경기 부양책은, 시장에서 미온적인 반응만을 이끌어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기를 부양하고자 시장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푸는데(불과 전날 닛케이신문에서는 부양책규모를 7조엔으로 추산하는 기사를 냈다), 뭔가 확실한 판을 깔아 시장에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장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점을 지적한 블룸버그통신 기사에 따르면, 이번 발표는 어쩌면 시장이 아니라 일본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한 발표라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이번주 주요 일정을 훑어보자


목요일 –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다.

금요일- 일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및 양적완화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다.


이렇게 짜인 일정인데, 당연히 일본 중앙은행에서는 미국 연준이 목요일날 어떤 성명을 발표할지 보고, 이에 맞추어 금요일날 자체 성명을 발표할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지금 일본 중앙은행은 엄청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조사한 경제전문가 5명 중 4명은 이번 금요일 일본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확대하는 식의 더욱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정도로 한 나라의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대해 전문가 의견이 한 쪽으로 기운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이번에 일본은행이 움직이지 않으면, 일본 경제는망한다"라고 시장이 뒤에서 일본중앙은행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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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은행에겐 하나의 카드가있다. 만약 목요일(7월 28일), 미국 연준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기준금리를 인상해준다면? 혹은, 연내 2회 기준금리 인상이나 9월 인상 같은 깜짝 카드를 던져준다면? 이런식으로 간접적이나마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일본 중앙은행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일본은 상대적으로 금리를 낮춘 효과를 주기 때문에 일본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생긴다.


일본 중앙은행은 미국 연준의 눈치를 보면서, 적절히 대응할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블룸버그 통신이 최근 입수한 일본 중앙은행 성명 가안을 보면, 주요 내용이 이미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인 완화규모 등의 내용만 누락된 형태의 찌라시가 이미 돌아다닌다고 한다.


이런 일본중앙은행의 간 보기가, 아베총리에겐 영 맘에 안 들 수가 있다.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가 평화헌법 개헌과 같은 극우적인 정책을 밀어붙히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를 부흥 시키는 것이다(독일 재무장에 앞서 경제 부흥계획을 밀어붙히던 히틀러가 떠오른다면 이는 기분탓이다).


하지만 낙하산으로 앉힌 구로다가 자신을 위해 경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보다, 소극적인 정책으로 방관하는 게 맘에 안 들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먼저 나서서 화요일에 경기부양책을 먼저 터뜨린 거다. 경기부양책은 어디까지나 재정정책이고, 이게 성공하기 위해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만약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으로 뒷받침 해주지 못한다면, 그냥 일본정부는 돈만 쓰고 경기부양에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는 이런 선제적인 재정정책을 중앙은행회의에 맞춰 '지른거고', 구로다에게 그에 맞는 통화정책을 강요하는 모양새가 된 거다.


민주정부의 삼권 분립만큼이나 경제문제에서 중요한 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분리다. 지난번에 언급한 대로, 각국의 재정부는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자들로서 적정한 통화량을 유지하고,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재정부가 엑셀이라면, 중앙은행은 때론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한다.


과거 개발도상국시기에는 물론, 어디서나 성장이 제일 중요한 과제였다. 먹고사는 게 급하니까. 재정부는 국가주도 경제성장시기에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일본 재정부는 그래서 대장성이라고 불리우면서 모든 정책결정을 선도했고, 우리나라 재정부 역시 예산편성권과 국가경제기획을 동시에 유지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오죽하면, 한국은행을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 쯤으로 여겼다라는 비난이 한은에서 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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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 (링크)


하지만, 국가경제가 고도화 될수록 경제성장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된다. 민간부분이 성장함에 따라, 국가와 재무부는 경제를 이끌어가는 선수에서 경제에 올바른 정책을 조언하는 코치로 역할이 바뀌곤 한다. 반면,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에 안정을 유지하고, 통화를 관리하는 역할이 커지면서 더 중요해지는 추세이다. 국가의 발전에 발맞춰, 두 기관의 역할은 점점 세분화 되고 각자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베 집권 이후 이러한 분립이 역주행 한다. 아베는 경제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구로다를 포함한 재무부 인사들을 중앙은행의 주요직책에 앉혔고, 중앙은행을 장악해 갔다. 동시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재무부의 재정정책을 세 개의 화살로 묶어버렸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베노믹스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베노믹스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건 아직 이르고, 분명 아베노믹스가 일본경제의 분위기 정도는 바꾼 게 맞지만, 세 가지 지표를 봤을 때 나는 이게 실패라고 본다.


첫째, 경제성장률. 아베 집권 이후 일본은 미국보다 많은 양적완화와 경기부양책을 쓰고도, 미국을 밑도는 경제성장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의 정부 부채비율을 무려 245%까지 치솟았다. 너무나도 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바라던 성장을 기록하지 못했다.


둘째, 인플레이션. 아베정권은 인플레이션 2%라는 목표치 달성은 커녕, 디플레이션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지지부진한 성장과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아베는 약속했던 소비세 인상을 또 2년 뒤로 미뤄버렸고(재정 정책의 일환으로, 일시적으로 소비세를 낮춰줬으나, 경제가 그만큼 성장하지 못해서 당분간 낮춘 상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조세 감소 및 재정악화로 이어졌다.


셋째로 환율. 아베집권 동안 또 하나 공을 들였던 건 엔화약세였다. 돈을 풀고, 기준금리를 낮춤으로써 엔화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떨어뜨려 일본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강화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120엔으로 2016년을 시작했던 엔달러 환율은 120선에서 정착하지못하였고, 올 한 해 선진국 통화 중에 가장 강세를 보였다. 심지어 브렉시트 사태로 아베집권 이후 처음으로 99엔까지 떨어졌고, 추가 부양책을 최근 쏟아냈음에도 110엔선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은, 시장이 아베정권의 경제 정책을 크게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점은, 지난번에 내가 썼던 엔화 트레이딩 실패글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대부분의 외국투자자들은 일본주식을 공매도하고, 그 대금으로 엔화를 사는 식의 트레이딩을 하고있다. 엔화가 강세라는 말은 일본 주식, 즉 미래에 대해 시장이 부정적이라는 것이고, 일본 정책이 실패 중이라는 척도가 되어왔다.)


관련기사

1. 나는 왜 엔화에 손을 댔는가

2. 나는 왜 엔화로 돈을 날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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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실패했느냐. 일단 아베가 내세웠던 세 번째 화살, 즉 구조적인 변화가 미진했다. 규제개혁, 시장개혁과 같은 구호는 사실 수사에 불과하고, 진짜 중요한 노동문제가 개선되지 못했다. 일본은 고령화 국가다. 지난 10년간 약 7%의 노동인구가 감소해 왔다. 노동인구가 떨어지는 한, 경제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출산율을 늘린다 여성의 경제참여율을 늘린다 외국인 노동자를 유입시킨다 이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일본의 여성 경제 참여율은 전혀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극심한 남성중심주의적인 직장 문화가 개선되지 않고, 이는 출산율 감소 등으로 이어진다. 이민자 문제 역시 섬나라답게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그간 모두 팽창적이었다. 정부가 이렇게 앞 다투어 돈을 풀면, 민간분야가 굳이 구조를 뜯어고치고 살아남고자 발버둥칠 이유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팽창정책 때문에 구조개혁적인 부분은 그동안 미진해 왔다.


나머지 두 개에 화살 역시 부족했는데, 먼저 재정정책은 일회용 정책이다. 지속적인 효과를 누리기 위해선 지속적인 재투자가 이루어져야 되는데, 문제는 일본 재정상태가 지금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부채가 이미 GDP의 245%를 넘은 마당에, 국가가 더 빚을 늘려서 사업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점을 시장투자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정부가 부양책을 고심해서 내어 놓아도, 시장 투자자들은 이게 겨우 짜낸 것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만 효과가 있을 뿐, 투자심리 자체가 개선되진 못하고 있다.


통화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양적완화는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중앙정부가 빚을 내는 족족 중앙은행은 이 국채를 사들였고, 그 결과 정부 빚의 대부분을 중앙은행과 일본국민연금이 들고있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올 들어 야심차게 시작한 마이너스 기준금리는, 금 투자자만 배를 불려줬다.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한다고 예금자들이 예금을 인출해서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보관료를 안 내도 되는 금 등으로 자산을 갈아탔기 때문이다. 이에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어쩔수 없이 보관료는 받지 않고 0%이율의 예금구좌를 운행하고 있다.


이렇게 세 개의 화살이 부러진 최근, 유의미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전 미국 연준 의장이었던 전설적인 경제학자 버냉키가 일본을 방문한 것이다. 그 후 외환시장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덕분에 이번 투자로 인한 개인적인 손실은 다 털어냈다), 그가 바로 경기부양책의 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는 헬리콥터 머니(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새로 찍어낸 돈을 시중에 공급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영구채 떡밥이 돌기 시작했다.


짧게 쓸려고 했는데 앞부분에 최신소식을 다루느라 분량조절에 실패했다 ㅠㅠ. 헬리콥터 머니와 영구채 떡밥에 관한 부분은 내일 시간이 널널하면 올리든지 아니면 일본 중앙은행 소식 발표 후에 다 정리해서 같이 올리든지 하겠다. 미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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