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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리 마을전철이란 용어가 있다. 철도, 특히 그 중에서도 지하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이 용어는 분당선 내 ‘도곡~대모산입구역사이의 구간을 의미하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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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호선과 분당선의 노선도. By 네이버 지도>


이 사진만 보고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는 이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지하철에서 저런 승강장 배치란 심심하면 나타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당장 같은 그림의 3호선만 보더라도 매봉역-도곡역-대치역이 블록마다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저리도 괴상한 호칭인 강남리 마을전철이 이 구역에 붙었단 말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3호선과 분당선의 설립 목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3호선은 말 그대로 도시철도. , 도심의 각 포인트를 연결하여 시민의 효율적 통행을 돕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는 얘기와도 같다. 대부분의 도시 철도는 이러한 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해 승강장 바로 옆 블록이라도 타당성이 있을 경우 추가 역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서울 내에서 흔히 보는 블록 단위 지하철역은 이러한 목표에 충실한 철도 노선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최초 설계 당시 분당선은 서울과 경기, 정확히는 분당 신도시 간의 광역 연결을 목표로 설계되었다. 물론 그 이후 용인과 수원 등의 연장 요구로 인해 종래에는 수원과 서울을 잇는 초광역철도가 되었지만, 어쨌든 경기 남부와 서울을 잇는 광역철도임은 변하지 않았다 할 수 있겠다.


이제서야 조금 감이 오는가. 해당 구간의 분당선이 수많은 철덕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 이유는 바로 목적과 수단의 불합치성에 있다. 서울과 경기 간의 광역 연결을 통한 경기 시민들의 교통난 해소라는 소명 아래 태어난 분당선에 저런 블록 단위의 역사 건설은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런 괴노선이 분당선에 들어오게 된 것일까? 이를 위해 우리는, 1980년대 계획되었던 초창기 서울 지하철 계획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초기 서울 3호선 도시철도는 현재와 약간 다른 노선 계획도를 취하고 있었다. 바로 현재 3호선이 운행되는 대치동 구간이 아닌 현재 분당선이 운행되는 개포동 구간을 지나는 계획으로 수립된 것이다. 3호선 연장이 포함된 2기 지하철 계획이 수립된 것이 1983. 80년대 초반 개포동에 수많은 아파트들이 건설되기 시작했고, 곧 개포동은 서민들의 주요 거주 지역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에 발맞춰 당시 정부는 3호선을 개포동 통과 노선으로 건설함으로써 이들의 수요에 부응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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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3호선의 노선 계획도. By 네이버 지도>


그러다 일이 터졌다. 1987,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태우가 은마아파트에서 유세하며 ‘3호선을 대치동으로 끌어오겠다라는 공약을 내세워버린 것이다. 결과는 모두가 알 듯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 이후 3호선은 현재와 같은 대치동 노선으로 정말 바뀌어버렸고, 이미 공고까지 난 상황이었던 개포동 노선을 빼앗긴 주민들은 그야말로 벙쪄버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당연히 해당 주민들은 반발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를 무마하기 위해 구청장은 당시 계획중이던 분당선 계획에 개포동역을 추가하겠다는 복안을 내세우게 된다.


이후 도곡역에서 3호선과 분당선의 환승이 확정되었고, 타당성 조사 중 개포동역과 수서역 사이에 역이 신설되어도 괜찮다는 결과가 도출되게 된다. 이에 분당선 계획에 대모산입구역의 신설이 확정되게 된다. 이해는 된다. 이미 도곡역과 수서역이 3호선과 분당선 환승 역사로 결정된 상황이기에 대청역까지 환승역사로 만들기에는 부담이 컸을 것이다. 거기다 지도를 보고 있자면 대모산입구역과 대청역이 아닌 다른 곳에 역사를 짓기엔 마땅한 곳도 없는 상황. 여기까진 상황이 괜찮게 흘러갔다.


문제는 구룡역이었다. 최초 분당선 설계 당시 코레일은 타당성 조사 결과 구룡역이 들어설 경우 개포동역과 구룡역 두 역에서 20년간 548억의 적자가 날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여 보고했다. 즉 구룡역을 신설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코레일은 이러한 통계를 바탕으로 1990년 구룡역을 제외한 분당선 건설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분노한 건 역시 개포동 주민들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구룡역 주변에 거주하는 구민들의 집단적 반발이었다. 87년엔 대통령 때문에 뺏기고, 90년엔 철도청 때문에 뺏긴다. 라는 논리를 들었을 수도 있다. 여기에 서울시와 강남구도 편승했다. 서울시는 교통영향평가 결과 개포고앞역(현 구룡역)을 신설할 가치가 응당 있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강남구는 600억원으로 추산되던 건설비를 모두 부담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렇게 코레일은 1994년 현재의 선릉-한티-도곡-구룡-개포동-대모산입구-수서로 이어지는 선릉-수서 라인의 분당선 연장 계획을 최종 확정하게 된다.


이렇게 수많은 진통속에 건설된 분당선 선릉-수서 구간은 현재 어떠한 모습일까. 도곡역과 수서역 사이에 위치한 역들의 역간 거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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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수서 구간의 역간 거리. By 코레일>


세 역 모두 전 역과의 거리가 채 1km를 넘지 않는다. 분당선이 광역 철도임을 감안할 때 이는 지나치게 짧은 거리다.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표정 속도라는 개념이 있다. 구간 사이의 거리를 도달 시간으로 나눈 개념인데, 간단하게 말해 각 승강장 사이에서 달리는 열차의 속도다. 이 표정 속도를 분당선 구간에 적용해보자. 선릉-수서 구간과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수서-이매 구간의 표정 속도는 약 39.27km/h. 반면 도곡-대모산입구역의 표정속도는 약 28.5km/h. 단순 계산으로도 약 10km/h의 속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수서역까지 잘 달려오던 열차가 수서역부터는 갑자기 거북이 주행을 하는 셈. 결국서울과 분당을 빠르게 잇는분당선은 존재 의의에 대한 근본적 불만에 직면하였고, 이는 역설적으로 신분당선의 건립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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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당선의 노선도. By 네이버 지도>


신분당선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역 간 거리. 신분당선의 경우 역 간 거리를 늘림으로써 표정 속도 확보에 주력하였다. 또한 노선 자체를 선형으로 유지하려 최대한 노력했다는 점인데, 이를 통해 열차의 가속에 있어 유리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신분당선의 표정 속도는 약 48.3km/h, 운행 중 최대 속도는 약 90km/h에 육박하는 괴물과도 같은 지하철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과거 분당선의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신분당선 측의 강한 의지이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위에서 얘기한 분당선의 흑역사가 신분당선에서도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미 계획된 노선에 지자체가 역 추가를 위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러한 입김의 중심에 서있는 것은 바로 성남시다.


현재 강남-광교 구간이 개통된 신분당선은 다시 두 개의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2011년 개통된 강남-정자(이하 1단계) 구간과 올해 초 개통된 정자-광교(이하 2단계) 구간. 신설역 요구는 이 중 1단계 구간에서 총 4건이, 2단계 구간에서 총 2건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중 성남시는 총 3건의 요구에 관여하고 있다.


첫 시작은 옛골역. 2005, 성남시는 청계산입구역과 판교역 사이에 옛골역을 신설하라고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성남시는 해당 구역 그린벨트에서의 공사 허가를 반려하는 수까지 동원하게 되고 이는 당시 신분당선 개통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당시 국토부 측은 이에 난색을 표했고, 결국 신분당선의 1단계 노선은 옛골역을 제외한 채 201110월 지연 개통하게 된다.


이후 잠잠하나 싶던 신분당선 건설은 미금역 추가 설치 문제로 또 다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최초 신분당선 2단계 구간 계획에는 미금역이 포함되어 있지 않던 상황. 이를 뒤집기 위해 성남시는 또다시 강수를 두게 되는데, 바로 미금역 건설이 확정될 때까지 공사와 관련된 각종 인허가를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 성남시는 신분당선과 관련된 도로굴착 및 공공용지 점용 허가를 반려하였으며, 이에 수원시가 반발해 공사 분담금 지급 불가를 선언하며 갈등이 격화되게 된다.


이에 성남시는 총 두 가지 안을 국토부에 제시하게 된다. 첫 번째는 미금역 설치 비용. 성남시는 약 900억원의 신분당선 미금역 설치 비용의 70%를 성남이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환승역이 아닌 정차역 건설. 이전의 타당성 조사에서 미금역은 환승역으로 건설될 경우 경제성을 의미하는 분당선으로의 승객 유출 등의 연유로 B/C 수치가 1을 넘지 않아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 결과에는 단서가 달렸는데, 미금역을 환승역이 아닌 단순 정차역으로 건설할 경우 B/C 수치가 1을 넘어 건설이 가능하다는 부분이었다. 성남시는 이를 활용해 미금역을 단순 정차역으로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고 국토부는 최종적으로 이를 승인하기에 이른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성남시의 태도다. 당초 성남시는 이재명 시장이 주재한 기자회견에서 환승역이 아닌 정차역 설치가 확정됐지만 기능 보완을 통해 환승역 역할을 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 얘기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공사 현장은 환승 체계 설립이 아닌 환승 통로를 포함한 사실상의 환승역사로 건설되고 있다. 갈등의 불씨를 또다시 살려놓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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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금역 역사 건설 조감도>


사실 이 건은 성남시와 수원시 모두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었다. 실제 정자역과 동천역 사이의 거리는 약 3.5km. 미금역이 정자역과 약 1.8km 가량 떨어져있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가까운 거리도 아니다. 타당성 조사 결과 역시 미금역 미설치와 미금역 설치를 비교할 때 운행 시간 차이는 약 1분 남짓이라는 결과를 냈다. 반면 신분당선에 미금역이 환승역사로 신설될 경우 사업성이 없다는 사실 또한 타당성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런 여러가지 상황들을 비춰볼 때 미금역 신설은 애써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지난 5, 성남은 또다시 역사 신설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번엔 아예 협의도 아닌 일방적 발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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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백현지구 신분당선 역사 신설마이스산업 중심지로’ by 뉴시스>


이에 국토부는 성남시가 백현역과 관련된 협의를 한 바 없다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로 막무가내식 발표였던 것이다.


하나가 더 있다. 다른 쪽에서는 청계산입구역과 판교 사이에 판교창조경제밸리역을 설립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다고 나섰다. 발주 주체는 LH이나 판교창조경제밸리 자체가 판교신도시에 속하는 탓에 성남시와 관련되지 않았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심지어 신설 계획을 밝힌 두 역사 모두 성남시가 계획하는 판교트램 노선에 포함되어 있으며, 백현역의 경우 수내역과 도보로 5분이면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계획중이라는 얘기 역시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원시의회는 신분당선 추가역 설치 반대 및 연장사업촉구 건의안을 통해 국토교통부와 성남시는 당시 관계기관 회의에서 강남-광교 구간 내 더 이상 추가역 설치는 없을 것이라 주민들과 약속했다고 밝혔다. 미금역 설치 논쟁 당시 국토교통부 역시 미금역 설치 전제 조건으로 미금역 추가 설치로 인한 추가적인 역사 설치를 요구하는 도미노 민원 문제 해결을 제시했다. 그러나 성남시는 이러한 암묵적 혹은 명시적 합의를 모조리 무시하고 일방적 발표를 통해 이미 확정된 노선에 추가 역사를 건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재명 시장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수많은 일들은 보편적 진보라는 보다 더 나은 진보적 가치를 향해 뛰는 많은 사람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지 충만한 그의 행보는 때로는 독약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4개의 신분당선 추가 역사 건의 중 3개가 이재명 시장 부임 이후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물론 성남시민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동일한 대한민국의 시민이며 동일한 혜택을 받을 권리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지자체장의 배짱 하나만으로 이뤄지는 아니면 말고식의 행정 처리는 때때로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 더욱이 인프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철도라면 그 손해는 중장기적인 손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이미, ‘강남리 마을전철에서 그 손해가 무엇인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성게매니아


편집: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