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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5. 09. 목요일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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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만난 왕선생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중국 기차역은 공항처럼 역사로 들어갈 때 신분증을 확인하고 짐 검색도 한다. 이런 절차 때문에라도 적어도 출발시간 삼십분 전에는 기차역에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차표를 살 때 어떤 승무원도 그렇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내가 가 본 대부분의 기차역은 언제나 예상보다 넓었는데 텐진역사는 특히 광활하게 넓었다. 사람이 많아서 바글바글. 중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꼭 이렇다. 텐진역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두근두근 기차에 탔다. 출발하는 기분은 언제나 설렌다.






내가 구입한 티켓은 딱딱한 침대칸, 잉워였다. 잉워는 3층 침대가 설치되어 있고 양쪽이 마주보게 되어 있는 구조. 내 자리는 중간 침대인데 아래와 맞은편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심지어 맞은편 남자는 꽤 멀리 있는데도 술냄새가 훅 풍겨왔다. 내가 원래는 남자를 좋아하지만 모르는 남자는 무섭다. 승무원이 관리하고 있고 개방된 구조라 주변이 훤히 보이는 기차 내에서 별 일이야 없겠지만 잔뜩 긴장했다.





일단 차에 타자마자 일단 신발 벗고 슬리퍼를 꺼냈다. 차내에서 필요한 먹을 것과 마실 것, 치약, 칫솔, 책, 나머지는 모두 배낭에 쓸어 담아서 선반위로 올려두었다. 그리고 보온병을 꺼내 차를 담고 뜨거운 물을 투하했다. 이런 일을 능숙하게, 익숙한 일인 것처럼 해내면서 얻는 작은 즐거움이나 성취감이 있다.


해바라기씨 한봉지를 사서 오물오물 먹었다. 아무 말 없이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않아서 중국인인 척 해보면 통할까? 그러나 아무도 속지 않았다. 내가 씨앗 까는 솜씨는 형편 없기 때문에 평생 씨앗을 먹어온 중국인을 흉내낼 수가 없다. 씨를 한방에 깨물어 까지도 못하고 껍데기를 능숙하게 뱉지도 못해 손가락으로 집어내느라 침범벅 그래도 꿋꿋하게 반 봉지나 먹었다. 




한동안 말 없이 가다가 맞은편의 술냄새 폴폴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어디까지 가니?"

- "시안."

- "나도 시안에 가."

- "시안에 살아?"

- "응. 너는 어디서 왔니?"

- "한국에서 왔어."


그리고 직업과 나이와 가족관계에 관련된 기본적인 호구조사가 이어졌다. 술을 꽤나 드신 왕선생 아저씨는 -직업이 교사는 아니고 그저 존칭일뿐-  시안의 한 대학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텐진에는 출장을 왔는데 이곳 친구들과 친해져서 기차를 타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알고 보니 왕선생은 굉장히 친절한 사람이었다. 하긴 알고 나서 나쁜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인내력이 대단한 분이었다. 일테면 서안의 음식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봐 놓고, 시안 지리를 전혀 모르는 데다 중국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인을 위해, 시안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과 가봐야 하는 음식점의 목록을 적어주셨다. 현지인으로부터 나온 맛집정보가 진리일 거라 믿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메모는 기차에서 내리고 보니 사라졌고...)


왕선생에게는 두 살 먹은 딸이 있다고 했다. 그는 딸이 너무 귀여워서 집을 떠나 있을 때는 아내보다 딸이 그리워 집 생각이 난다고 했다. "네 아버지도 너를 보고 싶어 할 거야." 그가 따듯하게 덧붙였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아버지인 사람이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식이 있으면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겠지.


더조우(덕주)에서 기차가 한참 섰다. 왕선생께 물어보니 여기는 산동성인데 기차가 이제부터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한다. 철로가 ㄱ자 모양으로 꺾어지기 때문이라고. 이제 진짜 멀리 가는구나 실감이 났다.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기차에서 깊게 잠들지는 못했지만 열 시간 가까이 잤더니 개운하다. 오랜만에 많이 걸어서 잠들 때 다리가 뻐근한 느낌이었는데 자고 나니 아무렇지 않게 좋아졌다. 


눈을 떠 보니 기차는 어느새 산시성에 접어들었다. 어제 친해진 왕선생에게 황허는 언제 나오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자는 사이에 지나갔단다. 시안 사람인 그는 산시성의 '황투고위엔(황토고원)'이 허베이(텐진시가 있는 지역)에 비해 높은 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풍경이 바뀌어 진한 황토색의 들판과 툭툭 끊어지듯 불쑥 솟아오른 마른 산이 기묘한 느낌이었다. 


차병에 뜨거운 물을 받아들고서 내가 중국차를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왕선생이 중국차의 종류를 설명해주었다. 홍차, 칭차, 루이차, 바이차, 거기서 또 갈리지는 다양한 차들. "중국사람들은 정말 차를 좋아하는가 봐. 차경이란 책도 있고." 라고 말했더니, 기뻐하며 시경에 나오는 말을 인용했다. "차는 허차(차를 마시다)가 아니라 핀차(품차)라고 하거든."


그는 차경에 대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건 단지 그 책이 한국에도 전해졌었고 번역되었다는 정도의 사실일뿐, 직접 차경을 읽었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우리의 이야기는 공자 맹자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은 하나라는 이야기까지 뻗어나갔다.(이런 담론 좀 무섭잖아.) 내가 잘 못알아듣는 말은 필담으로 주고받곤 했는데, 음식점이나 음식 이름 같은 걸 써주다가 갑자기 이렇게 어려운 문자 쓰시면 곤란합니다. 


내 수준은 "나는 차를 좋아해요" 하는 어린이 중국어라 어버버대기 시작하자 왕선생이 갑자기 자기 짐을 뒤적이더니 차를 한 상자 꺼냈다. 푸젠(복건)에서 재배한 차라고 하며, 찻잎을 하나 집어줬다. 입에 넣고 오물거려보니 탄닌이 적고 향이 강한 녹차, 향이 참 좋다고 했더니 가지라고 주신다. 


허헛; 이러시면 무척 감사합니다. 내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들 중에 선물로 드릴 만한 거라곤 한국에서 사온 비상식량 초콜렛이 한 통 있었다. 그는 초콜렛을 안 먹는다며 사양했지만 딸에게 주라고 억지로 내밀었다. 그러나 과연 두살짜리 어린애가 72% 카카오의 쓴 맛을 좋아할 것인가... 몰라.





드디어 시안에 도착했다. 왕선생은 자기도 시안 사람이면서 시안에는 사기꾼이 많다고 조심해야 한다며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딸 가진 아버지의 마음인가, 내가 버스를 타겠다고 하는데도 굳이 종루까지 바래다 준다며 무허가택시와 흥정을 시작했다. 50, 30, 20, 15, 10... 이런 경이로운 흥정의 현장. 왕선생은 자랑스럽게 외인(외국인과 다른 지방에서 온 중국인)들은 이 가격에 기차역에서 종루까지 못 간다고 말했다. 


서안 기차역에서 종루로 가는 길은 제팡루를 지나 둥따지에로 꺾어서면 되는 단순한 길이었다. 이 오래된 도시의 도로를 계획했던 사람들은 길치를 위한 배려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나조차도 너무나 쉽게 지도에서 길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 차가 방향을 틀더니 안시루로 들어간다. 제팡루의 뒷길 같은 작은 길이었다. 큰 길에 차가 좀 막혀 돌아가나 싶었는데 우리를 내려준 곳은 옥제품 파는 가게.


기사는 차를 세우고는 옥제품 가게를 둘러보고 가라고 했다. 아니, 이것은 관광객을 상점으로 데려다 놓고 커미션을 먹는 전형적인 운송업자의 계략이 아닌가! 왕선생은 빠른 걸음으로 옥가게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는 내가 걱정이 되었다. 순간 왕선생을 의심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가 경보하듯 빠른 걸음으로 옥가게를 그야말로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무허가택시의 운전기사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가 아무 것도 사지 않았으니까 30위안을 내라고 했다. 왕선생은 차를 안 타겠다고 했고, 우리는 차에서 짐을 내리고 다른 차를 잡았다. 왕선생은 영 불편한 표정이었다. 시안에선 사기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본인이 당해버린 상황이 민망하기도 할 터이고,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외지인에게 이런 농간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싫었을 것 같다. 어쨌든 공짜로 꽤 많이 왔잖아요. 농담해도 안 웃는다.


분위기가 이러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배낭 하나 덜렁이지만 왕선생은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있어서 이동하기 쉽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의 집에서는 언제 오냐는 전화가 두 번이나 왔다. 옆에서 얼핏 듣기로는 누군가와 가족끼리 점심약속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괜찮으니 집에 가시라고, 혼자 찾아갈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내가 영 못미더운 모양이었다. 


사실 얼마나 계획이 없었냐면, 인터넷으로 대충 뒤적여본 정보가, 종루 근처에 청년여사(유스호스텔)가 싸고 괜찮다더라 하는 정도였다. 막연하게 대강의 위치를 짐작해보았을뿐 그곳의 주소도 전화번호도 모르고 무턱대고 간 거였다. 역시나 헤맸다. 난따지에와 시이루를 뺑뺑 돌았다. 


결국 왕선생이 손전화를 꺼냈다. 029114(시안지역번호 029+114)에 전화를 해서 숙소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숙소에 전화를 해서 위치를 알아냈다. 덕분에 덜 헤매고 짐을 풀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첫인상은 술에 취해서 기차를 탄 무서운 아저씨였지만, 알고 보니 엄청 친절한 사람, 나는 참 복도 많지. 기도한 보람이 있구나. 후훗.



이곳이 종루!
  

 




시안의 무슬림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시안에 도착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 8-9세기 동서양의 문물이 만났던 실크로드의 중심도시, 나는 이 오래된 도시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화려한 당삼채와 아름다운 자기들, 섬세한 당초문으로 장식된 호사스런 금속기의 사진들을 얼마나 탐욕스럽게 보았던가! 이 도시는 도시 그 자체가 위대한 역사유적이며 당시 도시설계의 모델이기도 했다. 


해는 중천인데 어디로 갈까? 숙소에 붙어있는 관광안내 포스터를 보다가 침대에 배낭을 던져놓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큰길을 건너 고루 쪽을 향했다. 남들이 다들 고루라고 하길래 대충 따라 불렀는데, Drum Tower라는 영문표지판을 보고서야 이게 북 고(鼓)자구나 알았다. 종루에선 종을 치고 고루에선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려줬다고 한다.



장안에 종을 울리던, 종루




종루에서 고루로 가는 방향에 있는 어마어마 큰 건물
이름이 한국성(韩国城)이다.




고루 뒤편으로 이슬람 사원이 있다고 했다. 고문화상점가라 적혀있는 작은 문이 보이고 길을 따라 어쩐지 이슬람풍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슬람교도의 상징인 히잡 스카프를 쓴 여자와 흰 모자를 쓴 남자들이 엄청 많았다. 양고기나 소고기 요리집이 많고, 말린 과일과 견과류, 석류 등 서역특산품을 파는 집도 많았다.






슬슬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아침에 기차에서 차와 귤을 먹고 오후가 되도록 아무 것도 안 먹었다. 혼자 다니면 밥 챙겨먹는 걸 너무 쉽게 잊는다. 마침 니우양러우파오모(牛羊肉泡饃 소고기 양고기 포막)란 간판이 보여서 들어갔다. 파오모(泡饃)는 소고기나 양고기를 진하게 우린 탕국물을 빵과 함께 먹는 음식인데, 기차에서 만난 왕선생은 시안에서 먹어 보아야 할 음식 중 하나로 파오모를 꼽았었다. 유목민족의 음식문화가 중국화된 것이라고 한다.





양고기 포막을 주문하자 닝닝한 양고기 국물에 허연 밀빵 조각이 가득 들어있는 대접이 나온다. 곁들여서 먹을 매운 양념장과 마늘장아찌가 몇 쪽 함께 나왔다. 보기에도 그럴싸하지 않은 모양인데 맛은 더욱 그럴싸하지 않았다. 꽤나 허기진 상태였는데도 시장이 반찬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유목민이었다면 진한 고깃국을 한 솥 끓여놓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빵을 뜯어서 말아 먹으면 맛있었을 테지만, 정착민이 굳이 이렇게 먹어야만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튼 유목민족의 음식문화가 한족문화에 흡수되어 정착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생각하면서 그저 먹었다.




무슬림 골목을 헤매면서 히잡을 쓴 여자들을 참 많이 보았다. 그런데 중국풍의 히잡은 이제까지 상상해 왔던 이슬람권 히잡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부르카나 차도르 처럼 멀쩡한 사람에게 시커먼 천을 뒤집어 씌워서 헝겁유령을 만드는 폐쇄적인 차림은 일부 보수적인 지역에서만 입는 복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히잡이나 룻싸리 같이 가장 개방적인 형태의 스카프 일지라도 적어도 머리카락과 목덜미는 감싸서 얼굴만 내놓는 것이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가. 중국에서 본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은 일단 색이 빨갰다. 이슬람교의 교리도 중국인의 붉고 화사하고 반짝이는 취향을 거스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위) 중앙아시아 무슬림 여성의 차도르

(아래) 중국 시안 무슬림 여성의 히잡






빨간 히잡, 노란 히잡, 빤짝이 히잡, 심지어 시스루 히잡도 봤다. 이래서야 머리를 가리는 의미가 없지 싶다. 시스루 히잡이라니 헤어가 직접 노출되지 않는 은꼴사 컨셉일까?


예전에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서점에 가서 무슬림 남자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보면 성적으로 흥분하는지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서점에서 일하던 무슬림 아저씨로부터 즉답을 피해, 사막 같이 건조한 지역에서는 천으로 머리를 가리는 편이 좋다는 우회적인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기회가 된다면 머리모양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시스루 히잡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다.






청진대사(淸眞大寺)를 찾아 헤매다 헤매다 찾았다. 그런데 찾고 보니 청진사(淸眞寺)네. 청진대사에서 큰 대자는 어디로 빼먹었니? 어쩐지 관광지는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골목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 작은 사원이 하나 있었다. 청진사는 보통의 이슬람교 사원(모스크)을 부르는 중국말인데 이 작은 사원은 일반 무슬림들이 모이는 장소, 관광지인 청진대사는 다시 골목을 나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란다.




시장을 헤매고 돌아다닌지 한 시간이 지나 진짜 청진대사(칭전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진대사는 중국의 모스크 중 제일 먼저, 당나라 때인 742년에 창건되었다. 당시는 모스크의 돔과 대칭형 기둥 같은 이슬람 건축의 양식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 원래 있던 불교나 도교사원 비슷한 형태로 지었다고 한다.









청진대사의 구조는 보통의 중국 절과 흡사했다. 큰 문 네 개를 지나 대웅전 위치에 예배당이 있다. 가는 길은 완전 중국식 정원으로 기암괴석과 화초로 장식했고 심지어 금붕어도 키운다. 그러나 일신교답게 신상이랄 게 없고 대신 곳곳에 해독불가능한 아랍문자가 써있다.





그런데 읽을 수 있는 한자 중에 기묘한 내용이 자꾸 보인다. 도법참천지(道法參天地)라고 하면, 도교와 불교를 섞어서 이슬람교로 천지를 정복한다는 포부일까? 지나가던 중국아줌마를 붙들고 물어봤다. "저게 도교의 도랑 불교의 법을 어쩌자는 뜻인가요?" 아줌마가 막 웃더니 대답해주길 그런 말이 아니라 '도법'이라 붙여 쓰면 그게 이슬람교의 교리를 의미한다고. 정말 한자의 세계는 놀랍다. 뜻글자를 이렇게 막 갖다 붙여쓰는 대륙의 기상이다.


고루에서 이 문 안으로 들어가면 청진대사로 가는 외길이 나온다.


사원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도 역시나, 헤맸다. 한참 헤매다가 길을 찾아 큰 길로 빠져나온 뒤에야 깨달았다. 고루 바로 뒤에 있는 좁은 길, 고문화상점가라 적힌 골목으로 들어가면 청진대사로 바로 갈 수 있었다. 길을 못 찾아서 한 시간 넘게 인파가 붐비는 시장통을 헤매고 다녔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이번 여행 컨셉은 길잃기라고 정했다. 신난다. 오늘도 마음껏 길을 잃었구나.



시안 숙소정보 : 종루청년여사
베이따제 2호, 전화번호는 87231203
종루광장 맞은편에 있는 큰 우체국, 바로 그 건물에 있다.
위치가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더 좋은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웨스턴바 느낌으로 꾸민 꽤 넓은 규모의 바가 딸려있다.
요금은 도미토리 45위엔 / 성수기 60위엔



숙소로 돌아오니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 몇 명 돌아와 있었다. 신장에서 온 언니는 등산을 좋아해서 화산에 오르려고 왔다고 한다. 어쩐지 얼굴이 신장위구르 쪽 느낌이 아니라 동쪽 사람 같았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조선족으로 고향은 길림성이라고 했다. 한국어를 자주 쓰지 않아 거의 잊었지만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한국어는 '문 닫아라' 어머니가 자주 말씀하셨다고 한다.


야오닝에서 온 두 아가씨는 수줍어하면서도 번갈아 계속 질문을 해왔다. 국적, 이름, 나이, 결혼여부, 여행의 목적 등등. 조금은 거짓말을 하기도 했지만, 여행지에서 만났고 평생 다시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도리어 편하게 사실을 털어 놓을 수도 있는 법. 서른 살이 되는 두려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난징에서 온 대학생 아가씨가 영어로 통역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중국어를 하면 한국어 스위치도 꺼지는 사람이라, 그럴 때 영어 스위치를 동시에 못 켭니다. 이유는 내가 영어도 중국어도 능숙하게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만, 일단 다른 언어를 동시에 받아 들이는 일이 엄청 힘들다. 동시통역하는 사람들은 뇌구조가 뭔가 다를 것 같다. 


같은 방 사람들 모두 여행자이다 보니 이야기는 시안 관광과 음식 이야기. 엄마가 조선족인 신장 언니가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음식으로 냉면을 꼽았다. 시안에도 차가운 면요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왕선생으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나서 이야기했다. '량피(凉皮)는 량미엔(냉면)과 비슷하지 않나요?' 물었더니 량피는 국물이 없고 면도 좀 다르다고 한다. 


그러다 이야기가 국수로 넘어갔다. 예전에 <누들로드>라는 다큐에서 본 이야기를 다 풀어놓고 밑천이 떨어져 할딱거리는데, 신장 언니가 서안에는 엄청 두꺼운 국수, 삐앙삐앙면이 있다고 했다. 별명이 아니라 진짜 이름이 삐앙삐앙이란다. 글자도 엄청 복잡하다.




biang biang 이라고 읽는 한자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중국사람들은 지역마다 괴이한 풍속 꼽는 걸 좋아하는데, 섬서십괴라고 해서 '섬서성에서는 국수가 허리띠 같이 굵다'는 이야기가 그 중 하나. 그 대목을 읽을 때는, 섬서성이 밀 재배지역이고 면 음식이 발달했다는 의미겠지, 설마 정말 허리띠 같은 굵기의 면을 먹는 건 아니겠지, 넘겨짚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언니의 디카 사진을 보니 정말로 면이 두껍다. 라자니아보다 넓은 듯. 이래서 허리띠 같이 굵은 면이라고 했구나,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당연히 뻥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진짜라니 대륙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이것이 삐앙삐앙면.
신장 언니가 직접 찍은 사진을 보고 너무 황당해서 사진찍는 걸 잊었다.
이 사진은 퍼온 것, 신장 언니가 보여준 사진은 더 흐물흐물하게 보였다.






이동현
트위터 : @Leetre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