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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션>에서 여성 우주인이 계획이 어긋나 보급물자를 못 받더라도 자신만은 생존해서 귀환한다며 부모를 안심시킨다. <링 월드>나 <노인의 전쟁>만 한 참신함은 없지만 잔잔하게 읽다가 생각할 만한 부분이 나왔다. 음식 섭취량이 가장 적은 여성 우주인 하나를 남겨두고 다른 동료들이 매뉴얼에 따라 약을 먹고 자살을 한다. 남은 식량을 배분해서 먹어도 몇 개월 분의 식량이 부족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인육을 먹어야 한다는 암시를 준다. 나사에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나 보다 하고 진지하게 받아드렸다.


시신을 먹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충격이야 받겠지만 생존은 할 수 있다. 복귀해서 직접 보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로 그만한 과정을 겪어야 할 가치가 있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동료의 시신을 먹기 위해 훼손하는 사람이 후에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의 답은 금방 나왔다. 그럴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다.


남성 한 사람의 시신을 식량으로 해서 두 달가량을 생존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작가의 유머와 트릭이지 싶었다. 극한 상황에서 사람이 사람을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렸다는 걸 알았다.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자신이 죽으면 타인의 식량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식인을 거부하고 굶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 살아있는 동안에만 동료고 죽음 이후의 사체는 단백질 덩어리라고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가끔은 스스로도 이인증이나 정서적 결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정상적으로 느껴질 때 조금은 안도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어울려 못 살 정도로 망가지거나 특별하지는 않다.


테드 강연에서 자신이 사이코패스라고 아웃팅한 뇌 과학자 제임스 팰런의 괴물의 심연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사이코패스의 뇌 사진을 보면 활성화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의 사진이 일반인과 다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도 상황예측을 통해 동정심을 품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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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ed>


자신의 사례와 다른 사례들을 추적해서 사이코패스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필요로 인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살인 범죄자들과 냉철한 선택을 해야 하는 지도자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품목이 적다는 안도감이 사이코패스도 인류 문명에 필요한 부분이었다는 주장을 곰씹어보게 했다.


다른 유인원에 비해 인간이 두뇌를 사용하기 위해 유년기의 일부를 길게 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털은 없는 게 아니라 일부분을 제외하고 아직 자라지 않았다. 근력도 부족하지만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두뇌활동의 영향으로 다른 포유류들이 유년기에만 갖는 호기심과 학습능력을 노년기까지 유지한다.


사이코패스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은 유대 간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에 대한 관심과 공감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가십에 열광하고 같은 의견과 진영에 동의하고 동참하기를 요구한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공감능력으로 유지할 수 없는 크기만큼의 사회가 되면 부족이 나뉜다. 탐험과 호기심도 있었겠지만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인류가 퍼져나간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나뉘던 부족들이 통합이 되고 크기가 국가 단위로 커지면서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을 영웅 혹은 위인으로 배우지만 사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일 수도 있다. 국가 단위의 운영을 위해서는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말의 목을 자른 김유신이나 전쟁을 나서면서 아내와 자식을 죽이는 계백이 필요했다.


가족과 일족이 우선순위인 사람들이 경영하는 조직의 병폐는 요즘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조직의 위계를 흔들려던 노무현에 저항하던 검사들이 만들어낸 검찰 조직은 특히나 지랄이 풍년이다. 노무현을 탄핵하던 국회의원들은 가족과 인척을 보좌관으로 채용해서 가족과 일족들에게 유리한 법안을 구상했다. 개돼지로 전락한 사람들이 헬조선과 탈조선을 유행어라고 한다.


지구 생태계에서 상위 포식자들을 제거하고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인류는 아프리카 호수의 시클리드처럼 분화하는 듯 보였다. 시클리드는 한 호수에 살면서 서식지에 따라 덩치와 모양이 변했다. 먹이도 초식 육식 잡식으로 나뉘어 서로 먹고 먹힌다. 나향욱 씨의 개돼지와 신분제 발언도 비슷한 인식에서 나온 것 같았다. 사람을 피식자와 포식자로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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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단지 개미는 개미굴에 거꾸로 매달려 자신의 몸에 당분을 저장한다. 먹이를 구해온 개미는 꿀단지 개미에게 먹이를 먹여 저장시키고 먹이를 구하지 못한 개미는 꿀단지 개미에게 먹이를 나누어 받는다. 일개미가 꿀단지 개미가 되면 거꾸로 매달려 움직이지 못하고 신체구조가 바뀐다. 꿀단지 개미로 태어나고 만들어지는 개미는 없다. 어느 순간 먹이를 저장할 꿀단지 개미가 부족한 순간에 일개미 하나가 꿀단지 개미가 된다. 인간 사회에서 영웅이 만들어지는 이유처럼 거기에 있었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개미들은 여왕개미의 클론이다. 모두 동일한 유전자를 가졌다. 필요와 유전자의 발현 방식에 따라 모양과 역할이 달라진다. 어류인 시클리드보다는 곤충인 개미 쪽이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인다. 분업과 협동을 하며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집단에 필요한 일군을 생산하지 못하는 여왕개미는 일개미들에게 끌려 나와 죽임을 당하고 새로운 여왕이 등극하기도 한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개미들이 역할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고 집단을 이룬 군체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 어쩌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뇌 간 심장 근육으로 분화되어 육신을 이룬 사람 개인은 군체다. 백조의 세포로 이루어진 인체와 공생하는 몇 배 많은 미생물들을 보면 인체는 작은 우주라는 말이 꼭 맞다. 그런 개인들이 모여 이룬 사회와 집단들을 포함하고 있는 국가를 보면 새삼 계층적 우주를 논하던 칼 세이건이 떠오른다. 위대한 이론들은 범용성이 있다.


유전자 구조가 아니라 유전자를 켜고 끄는 후성유전학을 다룬 대중 서적을 읽다가 전문가들은 눈을 보는 이누이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누이트들에게 눈의 종류는 수십 가지로 분류된다. 수많은 전문 분야로 분화된 학자들은 그들의 지식을 남긴다. 뉴턴이 거인의 어깨라는 표현한 그 지식들은 점점 커져간다. 언젠가 어디에 닿을지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전율이 인다. 과학은 이미 자연선택의 진화론을 넘어서 지적설계의 초입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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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사피언스>를 읽고 단편적인 생각을 정리하려 글을 시작했는데 사이코패스로 빠졌다.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빅 히스토리로 시작해서 문화 종교 생물학을 거쳐 미래예측으로 확장된다. 방대한 지식과 글 전반에 냉소적 낙관주의가 흐른다. 이런 류의 책들 중 수작답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추천사가 붙었다. 책 내용도 좋았지만 속표지에 누군가 적어놓은 글이 내내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투 원 사피언스 프럼 어나더'라고 영어로 적고 작은 이니셜 사인이 있었다. 기증한 책인 듯싶다. 선의의 확장으로 지식을 권하는 사람이 있다.


코끼리가 죽은 가족의 뼈 냄새를 맡으며 가족을 추모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묘한 감흥이 있다. 다른 동물들도 삶에 필요한 것들을 학습한다. 가뭄을 경험한 늙은 코끼리 암컷의 기억은 무리를 계속 생존하게 하고 전승된다. 수렵채집사회에서 노인의 지식과 같다. 사회구성이 발달하면서 지식을 전승하는 사람들과 생산을 전담하는 사람들로 신분과 직업이 분화되었다. 지식을 외부에 저장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신분이 사라졌지만 한번 생긴 것은 관성이 있다.


지식의 많음이 현명함을 의미하지 않지만 현명해지려면 지식이 많아야한다. 지금은 옳은 것이 나중에도 옳다는 보장이 없다.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생산을 전담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체계를 갖는다.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상상과 영감에 대해 끝없이 이어지는 집요한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확고한 대답을 들려주는 것은 종교의 몫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흉악범들의 이야기에 심리학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수긍한다. 역경을 딛고 이겨낸 영웅들의 이야기에 열광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에게는 생긴 대로만 살지 않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는 지구에서 자신의 종의 진화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 타인의 삶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면 생긴 대로 살다 가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기왕 사는 것 조금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조금 더 나은 삶의 정의는 당연히 각자가 다르다. 그 다양성이 각자의 방향으로 확산되고 충돌하면서 역사가 굴러간다. 

 

글이 산으로 굴러간다. 멋진 사람이 남긴 흔적을 보았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배설과 영역표시로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책을 쓴 작가들의 의도와 그 책을 기증한 독자의 선의가 느껴졌다. 내가 가끔 남기는 글도 냄새나는 배설물과 완고한 영역표시의 흔적은 아니었으면 한다.





범우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