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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본관 점거 농성,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

 

최근 이화여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이 큰 화제가 됐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교육부의 ‘2016년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에 이화여대(이하 이대)가 추가 선정되었고, 이대는 ‘미래라이프 대학’이라는 명칭으로 단과대학을 만들어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을 상대로 ‘건강-영양-패션을 다루는 웰니스(웰빙, 행복, 건강의 합성어)산업 전공’ 등을 운영키로 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학교 측이 이와 관련하여 학생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았고, 단지 돈벌이를 위해 학위 장사를 하는 데 불과하다는 이유로 본관을 점거하여 미래라이프 대학 폐지에 대한 서명을 학교 측에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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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교수와 교직원 일부가 건물 안에 발이 묶이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학교 측은 경찰에 연락해 경찰 투입을 요청했다. 이에 경찰은 1,600명에 달하는 경찰력을 학교에 투입하여 학생들의 농성을 진압하려 했으나, 되레 이슈만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농성은 이어졌다. 결국 8월 3일 이대 측은 미래라이프 대학을 설립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학생들의 농성은 졸업생까지 가세하여 최경희 이대 총장 사퇴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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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이대 시위의 경과다. 시위와 관련해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 자본의 학위 장사, 학벌 의식의 발로 등등 지인들 사이에서도 꽤 다양한 의견이 교차한다. 의견이 난무하는 판에 내 견해까지 얹을 생각은 없다. 이 글의 목적도 그게 아니고. 필자가 관심 있게 보았던 건 경찰과 대치한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이었다. 학생들은 살벌한 대치 상황에서 서로 팔짱을 끼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추임새까지 넣어 가며. 민중가요를 좋아하진 않지만 직업상 이런저런 집회 시위 현장을 다니며 주야장천 들었던 게 민중가요라 이대 학생들의 영상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시위 현장에 소녀시대라. 이들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알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했다. 모두가 알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대학 시절 민중가요(라는 단어 자체)가 싫어 노래패를 록 밴드로 바꾸다시피 했고 집회 현장에 가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외에는 따라 부를 노래가 거의 없어 팔뚝질만 하던 나로선 이러한 변화가 반가웠다.

 

 

 

 

 

30대, 대안 찾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속한 세대를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을 듯하다. 어떠한 시선에서 글을 써 나가는지 독자들도 알아야 하겠기에.

 

30대 중반. ‘국민학생’ 시절 반공 교육을 받다 느닷없이 평화통일 교육을 받고, 중학생 때는 영화 “아름다운 전태일”을 단체 관람했으며 IMF 광풍이 몰아치던 고등학생 시절 끝물로 교련 시간에 제식훈련을 받았던 세대. X세대의 등장을 지켜보며 그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으나 여전히 공고했던 집단 우위의 훈육 속에 자라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세대. 이미 사회의 중진이 되어 있는 소위 ‘꼰대’들을 비판하면서도 저도 모르는 새 꼰대들을 닮아가거나 그들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꼰대 코스프레를 하는 웃픈 세대.

 

술과 친구, 록밴드 생활로 20대를 보내고 밥벌이는 해야겠단 생각에 3년여 출판사 편집자 생활을 했다. 대학생 시절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운동권에 몸담고 있는 지인들과 어울리며 보고 들었던 것들이 뇌리에 남아 있는 터라 출판사 생활은 영 성에 차지 않았다. 아무런 보상 없이 이어지는 야근과 철야, 정황상 직업병이 틀림없는 허리 디스크 수술 후 입원 기간을 연차에서 빼라는 회사의 지시에 한숨만 쉬는 이들, 노조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아마 안 될 거야’라며 코웃음 치는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은 바닥을 쳤다. 업무 시간엔 엄한 꼰대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우리 권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단 말에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며 유약한 중년으로 변모하는 이들에게 연민과 환멸을 느끼며 대안을 찾아 나섰다.

 

 

왕년 꼰대, ‘꼰대의 추억’ 막을 올리다

 

고민 끝에 아내의 적극적인 동의에 힘입어 시민사회단체로 일터를 옮겼다. 기대와 불안이 공존했다. 대부분 운동권 출신인 이른바 ‘진보 인사’들에게 거는 기대와 그 기대와 어긋났을 경우의 불안. 대학 시절 이따금씩 어울렸던 운동권 중 일부가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이들을 깡그리 무시하거나 굉장한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내뱉었던 말들이 끊임없이 귓전을 쳤다. 나이만 20대였지 5, 60대 꼰대들이 할 법한 언행과 다를 바 없었다. 마치 그래야 대단한 혁명투사나 되는 것처럼. 평등을 외치는 이들이 자기 우월감에 빠져 꼰대 노릇 하는 거야말로 위선 중의 위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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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사회의 악습과 병폐 중에서도 가장 지질한 것이 학벌이라 여겨 누가 캐묻지 않는 이상 출신 학교나 학번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데 사무실 행사 후 뒤풀이 자리에서 불편하리만치 학교 이야기가 이어졌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술자리가 무르익자 여지없이 내 호구조사가 시작되었고 뒤이어 누군가 내 학교 선배라는 이를 가리키자 술에 얼큰히 취한 이 양반이 대뜸 말을 놓으며 말을 걸어왔다. 물론 처음 본 사이였다.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데다가 초면부터 꼰대 노릇을 하는 작태에 화가 치밀어 왜 반말이냐고 응대했다. 그렇게 ‘꼰대의 추억’이 개막되었다.

 

학벌, 학번 따지는 거 싫어한다고 해서 꼰대 노릇을 안 한 게 아니다. 삼수를 해 학교에 들어와 학번 관계없이 나이로 모두를 대했다. ‘스무 살 순딩이’ 동기들한텐 제대로 ‘형 노릇’을 했고, 내 기준에서 ‘버릇없는’ 동생들에겐 손찌검도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 흑역사들이 내겐 거울이 되었다.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하고 교감할 때 진정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걸 깨달은 지 나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도 노력 중이다.

 

 

꼰대 노릇,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보통 이 바닥에서 꼰대 노릇을 하는 이들이 처음 묻는 게 학번과 학벌, 나이다. “학번이 어떻게 되요?”, “그럼 학교는? 전공은?”, “나이가 그럼 … 애기네.” 대학을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이에게 대뜸 학번부터 물어보는 그 무례도 무례지만, 30대를 졸지에 젖비린내 나는 애기로 둔갑시켜 버리는 그 능력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말을 놓는 거야 다반사.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질문 하나로 찰나에 계층을 만들고 벽을 쌓아 버린다. 상대가 제아무리 자신보다 나이가 적다한들 살아온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텐데 이에 관한 교감을 하기도 전에 첫 대면에 상하 관계 정리부터 하려는 심보는 대체 뭔가. 진보임을 자임하며 저따위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게 여전히 신기하고도 가증스럽다. 

 

주목할 만했던 건 저런 류의 꼰대 노릇을 하는 이들은 (내 경험상 100%) 4, 50대 대졸 이상 고학력자들이란 점이다.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학번 학벌 따위는 화젯거리 축에도 못 낀다. 당연히 낄 이유도 없고. 그들 사이엔 부당한 상황에서 힘겹게 일해 온 이야기와 일상 이야기, 참다 참다 못해 노조를 만들고 악덕 사업주와 한판 대거리하게 된 경위 이런 이야기가 주다. 통성명한 후 둘러앉아 하는 이야기가 죄다 이렇다. 거기엔 계층도 우월 의식도 상대방을 낮추어 보는 눈빛도 없다. 애초에 엘리트 의식이란 건 없었으니.

 

그런가 하면 ‘아랫것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 꼰대도 있다. 학번상 ‘까마득한’ 이들에게는 발언할 권리도, 판단할 권리도 애초에 묵살해 버리는 최악의 꼰대다. 조직이 방대해 보고 단계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거니와 여러 저서와 강연을 통해 상당한 이름을 얻은 자가 내부에서는 소통을 단절하고 기본적인 인권마저 짓밟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다. 꼰대를 넘어서 모순 덩어리 그 자체로 퇴화한다. 최소한 이런 자는 출판사 편집자 시절에도 본 적이 없다. 소문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마주한 ‘진보 인사’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어지간해서 ‘절망’이란 표현을 안 하는 나로서도 그 꼰대 아니, 모순 덩어리의 행태를 보면 절망적이었다. 이런 자도 걸러내지 못하는 바닥이라면 과연 희망이 있을까 하고.

 

 

꼰대 노릇을 경계하는 이들

 

이 바닥 중년들이 다 꼰대 노릇을 일삼는 건 아니다. 나이 먹어가며 ‘꼰대’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꼰대 노릇’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그런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 인연들과는 나이 차가 무색하리만치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고 음주가무를 즐기며 지낸다. 아마 내 얘기나 글들이 그들에겐 더러 거북할 수도, 불편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 분들도 팔자지 뭐. 이렇게 글을 쓰고는 있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난 이들 나이가 되었을 때 이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고.


 

“농경사회의 노인네는 경험이 중요했지.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 이게 작동을 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하고 점점 더 욕구만 남는 노욕 덩어리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퇴계는 26살 어린 기대승이랑 논쟁을 벌이면서도 반말 안 했다. 형제끼리도 아우한테 ‘~허게’를 쓰지, ‘얘, 쟤…’ 하면서 반말은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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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넘은 채현국 할배가 하신 말씀이다. 경험이 곧 생산력과 직결됐던 농경사회의 연장자들은 경험 그 자체로 존중받을 이유가 충분했다.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서 말이다. 물론 그때도 세대 갈등은 있었을 거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 세상은 급변하는데 자신들의 경험을 뭐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떠벌리거나 나이가 적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함부로 하대하는 꼰대들의 행태는 채현국 할배의 말씀처럼 “점점 더 욕구만 남는 노욕 덩어리가 되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군다나 더 나은 미래를 일구고자 했던 소위 진보 인사들이 과거의 경험에 사로잡혀 구태를 벗지 못하는 꼴이란 얼마나 볼썽사나운가.



모두가 알 수 있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다시 서두의 이대 시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경찰과 대치한 학생들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합창했다. 십수 년 전 시위 현장에서 민중가요만 불러야 하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세월 좀 흘렀다고 감을 잃고 있었다. 영상을 보는 순간 느꼈던 놀라움은 ‘어색함’이었으니.


군대를 제대하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OB 공연 때 공연을 보러 왔던 졸업생 선배는 이미 록밴드가 돼 버린 후배들 공연을 시무룩하게 보다 말없이 가 버렸다. 민중가요 노래패가 미 제국주의의 음악을 하는 밴드로 변해버린 게 어색하고 못마땅했을 테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저 영상을 보며 순간 느꼈던 마음도 별반 다르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내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건 난 겪어보지 못했던 저들의 문화가 더 자연스레 와 닿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모두가 알 수 있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진보를 표방했던 이들이 바랐던 것 역시 ‘모두가 알 수 있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거 아니었을까. 나는 알고, 너는 모르니, 넌 아웃. 이건 밑도 끝도 없는 엘리트 의식의 발로이거나 교조적 정파들의 상호 배척, 혹은 그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독재자들과 악덕 재벌들이 민중을 개돼지 취급하는 방식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멀지 않은 때 나 역시 기성세대가 될 테고 그땐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던 학생들이 지금의 내 나이쯤 돼 있을 거다. 글을 쓰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운 것이 날 서게 꼰대들을 비판하는 내가 그 즈음엔 날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새로운 꼰대로 등극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앉아 있을 순 없는 노릇이지. ‘꼰대’가 되는 건 숙명이지만 ‘꼰대 노릇’이라도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내가 겪었던 꼰대들, 그에 대한 생각을 써 달란 죽돌 부편집장님의 제안을 덜컥 받고 글을 쓰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경험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고 이런 생각들을 긴 호흡으로 해 봤던 적도 없으니. 내 안에도 꼰대 기질이 가득하고 그걸 털어내고자 나름 애쓰고 있는 과정이라 오히려 나를 더 들여다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글을 썼다 지웠다 아주 난리를 피웠다. 그러다 보니 글이 두서가 없다. 딴지스 님들의 양해 바란다.

 

 

 

P.S.

 

제가 팟캐스트를 하나 합니다. ‘삼국지 인물전’이라는 팟캐스트인데요, 정계·학계·문학계 인물들과 삼국지 인물을 매칭하여 쓴 단행본 《삼국지 인물전》의 저자 김재욱 형과 현재 대학생인 이동준 씨, 저 이렇게 세 명이 모여 정치인을 중심으로 노가리를 풀어내는 방송입니다. 1부에서는 삼국지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2부에서는 그 인물과 매칭한 정치인을 낱낱이 해부합니다. 간혹 실제 인물이 출연하기도 하고요. 현재 6회까지 업로드되어 있으니 ‘팟빵’앱 설치하셔서(팟빵에서만 들을 수 있다고 하네요) ‘삼국지 인물전’ 검색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별점과 구독하기는 서비스로다가.

 

 

 

 

 

 

쫄깃한기타

 

편집: 딴지일보 꾸물,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