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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가 온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해주는 것이 중요함은 삼척에 사는 동자도 아는 사실이죠. CPR을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도 다들 아실 겁니다. CPR이 지체될 수록 생존율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살더라도 제대로 회복이 되지 않을 확률 역시 높아집니다 

 

과장해서 CPR이 1분 늦어질수록 환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몸은 그대로인데 마음만 돌아간다는게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 중에 CPR을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모를리가 없죠. 하지만 CPR이 필요한 상황에서 CPR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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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R이 필요한 환자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선뜻 나서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CPR에 자신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CPR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CPR이 필요한 당사자가 여러분의 가족이라면 여러분들은 99% CPR을 시행할 거란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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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처럼 심폐고문술을 일부러 시행하지 않는 이상 군대나 민방위 교육 때 교보재 인형에게 하는 것처럼 하면 최소한 안한 것 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저조한 CPR 시행율을 높히기 위해 높은 분들이 만든 법 중에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란 게 있습니다. CPR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구호에 대한 참여율을 법으로 좀 늘려보겠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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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일부 나라나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을 때 처벌을 하는 조항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응급 처치를 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어느 선까지는 죄를 묻지 않겠다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CPR을 했는데 결과가 안 좋게 된 경우, 피의자의 민형사상 책임이 100% 면책되는 것은 아니란 것도 아셔야 합니다. 

 

이 면책조항은 응급처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하는 면책 조항이다. 응급처치를 어설프게 이해하여 환자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의 책임을 면해주는 조항이 절대 아니다. 완벽한, 흠잡을 데 없거나 최소한 그에 버금가는 응급처치를 해야 실질적으로 보호를 기대할 수 있는 조항이다.

-나무위키의 '선한 사마리아인 법' 항목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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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R을 시행해서 환자를 살리고 저렇게 뉴스에도 나오면 참 좋겠죠. 하지만 CPR이 항상 원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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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독자 중에서 실제로 CPR을 해본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고 의료인, 소방직이나 경찰직 등 관련직을 제외하면 2번 이상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마네킹을 가지고 실습을 해본 사람이 대부분이겠지요. 이 때 대략 5~6cm 깊이로 압박을 하라고 배우게 되는데 실습해본 분들은 그렇게 깊이 눌러도 괜찮나 하는 생각을 한 번 쯤 해봤을 겁니다 

 

흔히 갈비뼈(늑골)가 흔하게 부러진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CPR을 할 때 두둑 거리는 느낌이 손바닥에 전달되는 경험을 매우 흔하게 합니다. 

 

늑골이 부러질 정도로 늑골이 부러지지 않게 압박해라

 

이게 CPR에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 CPR을 수백번 이상 해본 제 경우도 CPR을 할 때 늑골이 부러진 사례가 흔하다는 것만 알고 있지, 어느 정도 힘에 부러지는지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관련 논문이 있나 구글링을 해보았습니다  

 

2015년 resuscitation 지에 실린 'Frequency and number of resuscitation related rib and sternum fractures are higher than generally considered'이라는 논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목을 한글로 옮기면 'CPR 중에 흉골과 늑골의 골절 빈도 및 갯수는 생각보다 많다!' 정도로 번역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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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슬로베니아의 한 대학에서 발표한 것으로 2004년 부터 2013년 까지 CPR을 시행한 비외상성 심정지 환자 2148명에 대해 사후 부검을 통해 늑골과 흉골의 손상 빈도를 조사해 기록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남자에게서 86%, 여자에게서 91%의 늑골, 흉골 손상이 발생 했습니다

 

이전의 논문들은 (조사자에 따라 차이가 좀 있지만) 늑골 골절은 대략 30%, 흉골 골절은 대략 15% 정도 내외의 빈도를 보인다고 보고한 반면 이 논문에서는 그 빈도가 크게 증가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논문의 제목이 저렇게 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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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 골절 빈도가 늘어난 이유는 슬로베니아 의료진, 국민들이 무지막지하게 CPR을 해서가 아니라 CPR 가이드라인이 심장 압박의 깊이와 횟수를 늘리는 쪽으로 변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여러 스터디에서 더 깊이, 자주 압박할 수록 생존율이 높다고 보고 되었기 때문에 CPR 가이드라인 자체가 업그레이드 되었고 그에 따라 골절 빈도는 증가하게 된 것이죠

 

저 가이드라인의 변화는 CPR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뼈 멀쩡하게 죽기 vs 뼈 부러지고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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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Skeletal chest injuries, 흉골 및 늑골 손상)의 빈도는 나이가 많을 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아무래도 뼈와 관절이 약화된 것이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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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 부위에 가까울 수록 늑골과 흉골의 골절 가능성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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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에서 남녀 성비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c 그래프) 디테일하게 들어가보면 여성에게서 골절이 좀더 많았고(a그래프) 남성의 경우에는 흉골과 늑골의 탈골 및 늑연골의 부상이 여성보다 많았습니다. (b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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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를 보면 ERC guideline이 점차적으로 좀더 깊게 좀더 빠르게 압박하도록 변화되어 오면서 SCI의 빈도 또한 늘어났음을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모두 사망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관계로 CPR 시간이 좀더 길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심정지 후 CPR을 하다가 ROSC(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 자발 순환 회복)가 되면 CPR을 중단하지만 사망자의 경우는 CPR이 의미가 없을 때까지 30분 이상 시행했을 테니까요. 

 

또한 이 논문은 CPR에 의해 내부 장기 손상이 66명의 환자에게 있었고 그중 내출혈, 간파열, 비장 파열, 긴장성 기흉, 대동맥 손상 등으로 30명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보고 하고 있기도 합니다. 늑골 골절에 의한 폐손상으로 사망한 케이스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서너개 미만의 늑골골절은 대부분 큰 합병증 없이 안정을 취하는 정도로 완치가 가능합니다. 

 

CPR을 시행하는 경우는 환자의 심장이 멎어있을 때입니다. 그에게 CPR을 해줄 사람이 나 밖에 없고 5분 안에 119가 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했을 때 내가 가만히 있는 경우 그는 99% 죽거나 심한 뇌손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런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을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구해주면 진상짓할 사람 이마에 '犬' 마크를 달고 다니게 하면 CPR 참여율이 올라갈까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국민 모두가 CPR을 제대로 할줄 알도록 교육이 되어있고 타인의 생명을 내 편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타인의 선행에 대해 결과에 관계 없이 마음으로 감사할 줄 아는 배려가 있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 따위 필요 없이 아름답게 굴러가겠지만 아직 그런 세상은 먼 것 같습니다.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놈들이 정책과 법을 만드는데 인간적인 정책, 법이 나올리가 없으니까요.

 

 


세줄 요약 

 

1. 심정지 환자에서 빠른 CPR은 매우 중요합니다. 


2. CPR을 하면서 늑골, 흉골 손상이 쉽게 발생하지만 대개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3. 본인의 역량과 의지에 맞게 CPR을 시행합시다. 

 


 

P.S. 


응급의학과 전공 선생님들의 부연 설명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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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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