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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누리 없는 상품


우리가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 구매하는 상품의 숫자나 양이 증가하면 상품의 개당 가격, 즉 단가는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건 일회용 컵이나 물티슈, 과일 이런 물리적 상품에도 적용되고 눈에 안 보이는 각종 요금제나 서비스료 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월 1기가의 데이터 요금제가 2만원이라면 월 3기가의 데이터 요금제는 그 3배인 6만원이 아니라 3~4만원이기 마련이고 역시 단가(데이터 단위당 요금)는 낮아진다. 때에 따라 이러한 '다량구매=에누리' 원칙이 좀 덜 적용되는 상품들도 있다. (예: 자동차 기름을 50만원 넣는다고 더 싸게 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상품의 에누리 가능성이 떨어질 수록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이 있다.


① 일반인이 쉽게 덤벼들지 못한 전문적 영역이지만 동시에 삶에 필수적인 상품 및 서비스

② 시장에서 독과점적인 지위를 지닌 상품 및 서비스

③ 희소성이 높거나 한정적인 상품 및 서비스 


등등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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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눈치 채셨겠지만, '전기'라는 상품(혹은 서비스)은 위의 3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게다가 '전기'는 일반적인 상품과는 차별되는 특징이 있다. 우선, 사회적으로 다함께 사용하는 공동 자원이며, 국가의 존망이 달린 기간 자원이다.


내가 만수르라서 돈이 넘쳐나므로 우리나라 발전량의 99%를 다 써버리겠다고 지갑을 활짝 열어도 99%를 쓰게 내버려 두어선 안된다. 현대 사회에서 전기는 이미 필수불가결의 자원이므로, 어떤 특정인이 이를 독차지 해버린다면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망가져버리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뭐 명쾌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공동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즉 모두에게 소중한 이 자원을 남들보다 더 쓰려는 이들에게 브레이크를 가하기 위한 것이 바로 누진세의 핵심이며 이는 징벌적(punitive)인 성격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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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쓸 생각해서 죄... 죄송합니다


원문 - 링크


2.  과연 징벌이 필요할까?


어느 누구도 필요 이상으로 재화를 구입하여 쓸데없는 돈 낭비를 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난 한 달에 2기가 밖에 안 쓰는데 별 이유없이 5기가 요금제를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 가족은 4인 가족인데 어느날 장보러 마트에 갔다가 수박 5개를 사는 주부는 드물다. 심지어 많이 살수록 에누리 폭이 커진다고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필요 이상의 지출을 하는 순간 그 과다지출 자체가 이미 해당인에게 징벌적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수박 1개에 1만원라고 할 때, 아무리 5개에 3만원이면 뭘하나 4개 썩어서 버리면 결국 난 2만원을 버린 꼴인데.


그래서 누진세가 없이 요금이 정비례한다고 해도 이미 논리적이고 이상적인 소비자에게는 필요 이상의 지출 자체가 징벌적 기능을 한다.


물론...


위에 '드물다'라고 썼고, '논리적이고 이상적인 소비자'라고 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여러 변수는 존재한다.


당장 마트에 가도 1+1 행사등 각종 미끼 상품들이 과지출을 유혹하고 우리는 이 유혹에 넘어가 '논리적이고 이상적인' 소비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 돈이 넘쳐나거나 낭비벽이 심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특히 전기처럼 소중한 공동자원의 경우 이러한 변수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과소비 충동'이나 '일상적 낭비'에 대해 좀 더 강한 상기를 시켜줄 필요가 있다. 요컨대 1+1행사에 넘어가 수박 3개를 카트에 집어 담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이크크... 조심하세요. 님 지금 과소비중임" 이런 리마인딩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ㅇㅋ.  징벌 필요성 인정.


근데 6단계 / 11.7배는 아니지. 이 개새들아.


과소비 충동과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일상의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아주 마일드한, '상기를 위한 징벌'이면 된다. "어이쿠 내가 좀 많이 썼구나. 아껴야겠다"라는 인식이 심어지고 실제로도 행동으로 이어질 정도의 수준 말이다.


따라서 미국이나 일본 등은 당연히 10%~50% 정도의 누진세를 적용한다. 이게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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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치 출처 - 링크


하지만 우리나라의 누진세는 '잔혹한 응징'에 가깝다.


"님 지금 과소비 중이니 소중한 우리의 자원을 아껴 써주세요"


가 아니고


"으하하하하하~ 한번 좃 돼봐라!!!!!!"


에 가깝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좃 되고 있다. 단지 밤잠 좀 편하게 자고 싶다는 이유 만으로.




3. 누구를, 그리고 '왜' 징벌하는가?


주지하다시피, 가정용 전기는 전체 전기 사용량의 불과 20%에 불과하고 산업/상업용이 80%를 차지한다. 하지만 누진세, 즉 징벌의 칼날은 가정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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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다뤘다시피, 만약 전기가 공공의 자산이어서 제동장치가 필요한 거라면 당연히 다량을 소비하는 주체에게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전기가 기간산업이고, 만약에라도 대규모의 전력 공급 마비 상태가 야기 된다면 그 사태를 초래할 원인은 80%를 사용하는 쪽일 확률이 100%이고 당연히 그쪽을 더 각별히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야 하니까.


...하지만 정확히 반대다.

 

우리나라의 정부는 20%의 사용자에 대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며 6단계 / 11.7배의 방망이를 휘드르는 반면, 정작 대규모 블랙아웃을 초래할 가능성이 백퍼에 가까운 당사자들에게는 부처님의 자비와 달마대사의 방관을 보여준다.


아니 왜... 대체 왜냐구...


이 X같은 괴리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해본 결과, 우리나라의 누진세의 기저에는 다음과 같은 가치가 반영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산업에 관련되는, 경제를 위한 활동은

보호되어야 하고


개인의 안락함은

당연히 희생되어야 하는 것.



즉, 뭐라도 돈 되는 일을 하는 건 보호해줘야 하지만 그 외의 비생산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얄짤 없이 완장을 차고 감시하는 천박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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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누진세도, 천박한 논리도 70년대에 머물러 있다


제품이라도 한 개 만들고, 공장 라인 돌리고, 자동차팔고, 수출하면 돈이 되는 소중한 일이지만 소파에 누워 에어컨 틀고 티비나 보는 너님의 행위는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행위이므로 조금이라도 과소비를 할 경우에는 피의 보복을 해주갔어...


딱 이거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는 보상을, 사적인 편안함에는 희생을.


(여담이지만... 대한민국 곳곳에서 난 이런 논리를 본다. 음주운전 단속에서 택시들은 그냥 걸러 보내주는 경찰들을 보면서도 느꼈다. '그래 니들은 돈 버는 중인데 설마 술 마셨겠어'라는 생각이 있으니까 그냥 보내주겠지)


외람되옵게도, 이건 근혜옹주의 선친께서나 하실만한 발상이지만 이 가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누진세에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생계활동, 당연히 중요하다. 오늘도 생활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욕되게 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 분들은 집에 돌아가면 전기 안 쓰냐? 옷가게 하는 김사장님에게 상업용 전기 싸게 해주는 대신 고된 일 마치고 집에 가서 에어컨이라도 좀 틀고 잘라하면 전기세 원자 폭탄을 정수리에 투하해주는 게 경제활동을 도.대.체.어.떻.게. 독려해주는지 이 정책을 만든 이들의 두개골 속이 궁금하기만 하다, 나는.


아니, 개인의 삶 속에서 충분한 휴식과 안락을 누려야 산업현장의 생산성도 올라가고 그런 거 아니었냐.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는 김사장이나 쇼파에 누워서 올림픽 경기 보는 김사장이나 동일 인물인데...


아, 퇴근하지 말고 가게 24시간 풀로 돌리면 되겠다 그치?


대체휴일제를 도입하고 근로시간 단축하면 경제적 손실이 몇 조네 어쩌네 입말 열면 반복하는 기업인들이나, 법인세는 감면하고 가정용 누진세는 혹독하게 징수하는 정부 인사들이나, 결국은 그걸 원하는가 보다.


우리 다함께 공장에서 먹고 자고, 옷팔다가 가게에 침낭 펴고 자고 새벽같이 다시 물건 만들고 옷 팔고 그래서 산업 역군 함 되어보자. 국가를 위한 일인데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이런 우매한 개돼지들...


몇 년전 전경련 모 인사가 "대부분의 가장들은 일찍 퇴근하는걸 원치 않는다"고 했듯이 집에는 되도록 돌아오지 않되, 행여나 잠시라도 들릴 경우 꼭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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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실제 한전 홈피에 있는 퀴즈다. "도전! 편집증" 내지는 "도전! 미치광이" 쯤으로 퀴즈 이름을 바꾸라고 건의한다. 이 10새들이 에어컨 하루 4시간 운운할 때도 난 이놈들이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것도 정말 많이 양보한 거였다. 얘네들은 우리들에게 컴터에 CD가 들어있나 체크하는 싸이코적인 삶을 살라고 제안하고 있다...)




4. 너무 슬퍼하긴 이르다


덕헤옹주, 건희제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영도자들께서도 궁민들에 대한 지나친 압박은 역폭풍을 불러올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가끔 노비들에게 은전을 베풀어 주신다. 7,8,9월의 누진세가 감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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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걸 보고, 덕혜옹주가 과거가 하사해주신 특별 임시공휴일이랑 얼마나 닮았는지 부랄을 탁 치게 된다.


대체공휴일 도입하고 근로시간 단축해서 수출 대한민국의 앞날을 저해하고, 32조의 경제손실을 가져오는 일은 절대 불가하지만, 마치 조선시대 노비들에게 1년 중 하루 삭일 휴가를 하사하시듯 특별 휴일를 하시하시어(심지어는 하이패스 무료라는 특전까지 함께 하사하시어)노비들에게 그날 하루 마음껏 풀밭에서 자유롭게 뛰놀게 해 주시듯이 수십년만의 기록적인 폭염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뒹구는 노비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삼개월의 누진세 20% 할인을 하사해주시는 이 관대함...!


이 어찌 그 은혜로움에 눈물 흘리며 다시금 렌치를 힘껏 움켜쥐고 산업현장으로 뛰어나가지 않을쏘냐.


특별 휴일이 가져오는 경제 효과가 몇조 어쩌고 하는 한편, 대체휴일은 반대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라서 약간 헷갈리긴 하지만, 어찌 우매한 내가 고위관리들의 혜안을 짐작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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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번 7,8,9 삼 개월의 누진세 감면 혜택 역시 일자리 70만개 창출이라는 감격스러운 수치를 경제부의 어느 관리가 쾌도난마로 계산해 낼 것을 의심치 않는다 나는.


누진세 제도를 보완하려는 태스크 포스팀을 만든다고 하지만, "경제손실효과"라는 메들리를 불러대는 관료들과 경제인들 앞에서 아니, 개인의 삶을 죄악시하는 이 천박한 가치관이 존재하는 한 얼마나 근본적으로 개선이 될지 나는 회의적이다.


오히려 제안한다.


누진세가 가져오는 낭비 방지 효과 및 부의 재분배효과가 이렇게 놀라울진대 여기서 멈출 일이 아니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으러 멈춘 차에게 "저, 손님. 지금 이 차의 운행목적은 직무 수행입니까, 하릴없이 노닥거리러 가는 중입니까" 라고 확인 후, 돈이 안 되는 뻘짓 목적일 경우 리터당 5만원을 부과할 것을 제안한다. 석유자원 역시 유한하고, 행여나 엠바고라도 당하면 우리나라의 산업은 올 스톱 된다.


수자원은 또 얼마나 소중한가. 물이 없으면 전국민은 죽는다 으어어. 건설현장에서 들이키는 생수 한 병은 1단계 세액을 적용, 200원을 받고 '갈증해소'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안위를 위해 처먹는 삼다수 한 병에 7천원의 세금을 매기자.


그리고 사무용 마우스와 게임용 마우스를 구분하는 징벌적 세재 제도를...


아 무궁무진하다.

 

창조경제에는 창조세제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기본아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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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니까 이 날씨에 청와대는 정장 입어도 안 더운거 같더라



5. 맺음


누진세가 부의 재분배 효과가 있다는 개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진세가 완화되면 저단계의 요금이 올라 극빈층이 더 괴로워진다는 개소리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최상위층은 현재의 누진세 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쪽방촌에서 선풍기로 버텨가는 극빈층에게는 1단계 전기세가 올라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생존이 문제지. 1단계 전기세고 엿이고 극빈층에게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전기를 지원해줘야 되는 거지, 그따위 숫자놀음으로 고충이 더해지네 어쩌네 하지 말란 말이다.


온열질환 발생건수가 2011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대치인 1,237명이고 사망이 10명이라고 한다. 과연 그 피해자들 중에 상위층이 많을까, 하위층이 많을까?


부의 재분배? 시벌넘들아 극빈층에게는 생존이 문제란 말이다.


'누진세'가 존재함으로써 생기는 상징적 효과. 그 단어가 가져오는 공포감. 이것 때문에 가난한 어떤 할머니는 찜통 같은 방안에서 부채질로 버티다가 쓰러져 죽는다. 그 할머니에게 동사무소 직원이 손 꼬옥 잡아주며 이렇게 말해주면 되겠네.


"누진세가 없어지면 1단계 요금이 오히려 올라가니 할머니께는 오히려 손해세요."


"이렇듯 훌륭한 누진세 정책을 적극 활용하시어, 부의 재분배를 통해 더 부자가 되세요."


결국 누진세는, 최상위층에게 제동 효과도 미미하고 극빈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피해는 고스란히 중간의 절대 다수 일반 중산층들에게 돌아간다.


어린 아기가 잠못들어 괴로워하지만 요금 폭탄이 걱정되어 맘편히 에어컨 버튼을 못누르는 어머니에게, 낮에 회사에서 격무에, 야근에 시달리다가 집에 와서도 편히 쉬지도 못하고 뒤척이는 직장인에게.


정부는 '돈이 되지 못하는 행위'이므로 지금 너의 전기소비는 낭.비.라고 하고 있다.


너희는 너무 천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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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을 다해 천박함을 보여준다

 

 


 


글이 너무 다크하게 끝나는거 같아서....

근혜옹주 이하 관리들에게 조언한다


가정에서 왜 생산이 안 일어나니...

밤에 덥고 짜증나면....


...하겠어?

 

 

 


 

돌퐁


편집 :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