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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웨덴의 공공보건장관 'Gabriel Wikstrom'의 행보가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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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한 시민과 주고 받은 질문과 답변이 기사로 쓰여졌는데 그 소재도 그렇지만 장관의 능글능글한 대처가 유쾌, 상쾌한 느낌을 주는 일화가 아닐까 한다. 단 번에 내 눈길을 '탁'하고 잡아 버렸다.

 

사건의 발단이 된 트위터 메시지는 하나의 청원과 같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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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neighbours are once again having noisy sex. 
You’re my only hope: could you ban risqué exercises after 10pm?"
(이웃이 또 시끄럽게 성관계를 나눈다. 당신이 나에게는 유일 희망이다.

밤 10시 이후 음란행위를 규제하면 안 되는가?)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보건장관에게 보낸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10시 이후 규제'라고 구체적 시간을 언급한 까닭은 무었이었을까? 알아보니 스웨덴에 있는 다가구 주택에서는 기본적으로 밤 10시 이후 이웃에게 방해 되는 큰 소음(청소기, 망치, 드릴 돌리는 등)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한다.

 

아무튼 중요한 건 메시지를 받은 장관의 답변이었다.


장관답변.JPG  

"Good for their wellbeing and thus, public health as well"
(그건 멋진 소리다, 그들의 건강 뿐만 아니라 공공 보건 측으로도 좋은 거다)

 

즉, 한마디로 '좋은 일 하는 거니 좀 너그럽게 참아줘~'라는 식으로 말을 한 거다.

 

이 장관은 후에 BBC 인터뷰에서 위 답변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I wanted to reply in a funny way," 

(나는 재미있게 답하고 싶었다.)


"Sex is a political matter as well,"

(섹스는 정치적인 문제다.)


"We often discuss sex in negative terms, like, for example, we relate it to rape, we relate it to sexual abuse…. but not to the positive thing that sex really is." 

(우리는 성적인 부분에 부정적인 면만 논하고 긍정적인 부분은 논하지 않았다.)


"I think we should really start to talk about sex as something positive." 

(이제는 긍정적인 부분을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I think Swedes should have all the sex they want to have"

(나는 스웨덴 사람들이 하고 싶은 섹스를 했으면 한다.)

 

"Many swedes feel they don’t have as much sex as they want to because of stress and work – related problems"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업무로 인한 문제와 스트레스로 인해 원하는 대로 섹스를 못하고 있다)


- BBC 인터뷰에서 발췌

 

인터뷰를 통해서 그는 트위터의 답변이 그저 농담이 아니라 나름 진지한 태도로 쓴 것임을 드러냈다. 또한 이 사안을 단순히 개인의 성관계 문제가 아니라 스웨덴이라는 국가 차원의 고민-인구 감소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인상도 받을 수 있다.

 

알고 보면 스웨덴은 굉장히 오랫동안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국가였다. 그 해결책 중 하나로 이민을 적극 받아온 국가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민자들로 인한 유럽의 여러 문제가 스웨덴에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에 과거와 같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스웨덴의 사회문제가 이런 재미난 트위터 답변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정부 관료로서 가브리엘 장관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훈훈하고 젊은 장관의 태도를 보면 사뭇 영혼 없고 생각이 단절된 공무원의 언사와 달라, 상당히 조심스럽고 사람에 대한 인권적 존중이 기본으로 몸에 배어있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이를 드러내주는 또다른 기사가 있다.

 

저번 달 29일 뉴시스 AP 통신원 김재영 기자의 기사다.


뉴시스스웨덴기사.JPG

기사 원문 - 뉴시스

(위 기사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건 

스웨덴의 진보성향 신문이라고 하는 Dagens Nyheter의 기사로 보인다. 

스웨덴어라 BBC 기사를 같이 보며 내용을 비교했는데 

디테일과 부가 설명의 차이가 있을 뿐, 딱히 다른 점은 없었다.)

 

내용을 축약해보면, 대략 가브리엘 보건 장관이 스웨덴인들의 성관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에 심각성을 느끼고 있으며 정치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국가 차원에서 시민들의 성 습관에 관한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 보건 당국은 2019년까지 연구를 마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는 것. 


이러한 조사와 연구의 추진은 트위터와 인터뷰 등을 통해 그가 이야기한 부분과 일치한다. 그런데 기조를 그대로 이어 생각을 드러내는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정책 차원에서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맨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유럽이지만 좀 오버한다 싶었다, 국가까지 나설 필요가 있나 싶었고 인구 문제에 대한 것을 유럽에서는 굳이 저런 식으로 이야기 하나 싶기도 했다. 애 좀 낳으라는 말을 돌려 하는 건지 아니면 저 장관만 저런 스타일의 정책을 좋아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필자가 그렇게 느낀 것은 한국이라는 국가에 살면서 관계부처의 공직자들이 보여온 태도와 언사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치인이나 관료 등이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결국 그 사람이 미는 정책이나 기조, 언사 등을 보면 드러나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인구정책' 혹은 '인구조절'이라는 등의 단어를 곧 잘 쓰는데 단어 자체의 딱딱함도 그렇지만 문맥에서 사람에 대한 존엄과 존중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것이 불쾌했다. 더욱이 사회 현상의 원인보다 현재의 수치와 통계 부분만 내놓고 이런 말들을 해대는 것을 보면, 마치 사람이 국가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사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가축 쯤으로 여기는 태도가 깔려있는 게 아닌가 싶은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들이 국민을,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최상위 0.1%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많다.)

 

'인구!'하면 딱 떠오르는 과거 박정희의 인구정책부터 시작해서 각 정권마다 쭈욱 관련 된 부분을 검색해 보면, 최근 모 공직자가 국민을 개, 돼지에 비유한 사건은 이미 예정된 일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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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스웨덴 얘기로 돌아오겠다.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인구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저 섹스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좋게 듣자고 한 트위터랑 국민들의 성생활을 연구하자는 것을 두고 왜 배려와 존중이 느껴진다고 썼는지, 이제 이해가 되셨을 것 같다. 


가브리엘 장관의 말 중에는 '부정적인 면만을 논하지 말고 긍정적인 면을 적극 논하자'라는 부분에서도 적극적으로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의 성생활 문제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대중적이지 않은 편이다. (최근 노년의 섹스 문제만을 그나마 양지로 조금 꺼내온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스웨덴이 굉장히 부럽게 느껴졌다. 


단순히 훈남에 젊고 패기 넘치는 사람을 장관 자리에 앉히고 일을 시키는 모습 때문이 아니라 좀 더 시민들이 편하게 건강한 생활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책을 만들어가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인구 증가로 이어지게 만드는 혜안 때문이다. 여기에는 관료로서 위압적이거나 일방적인 모습이 없다. 단순히 수치로 나열해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자는 무리함도 없고 사안을 얘기할 때의 언어적인 딱딱함도 없다. 

 

물론, 이것으로 스웨덴 사람이 우리보다 뛰어나다는 식의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배려를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의문을 품고 조사를 해보면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는 실제로 저출산 해결 방안에 대해 가브리엘 장관과 놀랍도록 유사한 접근을 보여준 적이 있다. 

 

2013년 슬로우 뉴스에 자작나무라는 필명을 쓰는 분이 작성한 기사 한 부분을 참고해 보자.


슬로우노무현인구정책.JPG

기사 원문 - 슬로우뉴스


그가 저출산에 대한 대책반을 구성했을 때 관련 장관들은 대책반의 정책이 돈만 많이 들뿐 출산율과는 무관할 것이라고 반대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출산율 수치에 연연하지 말자, 결혼을 안 하고 애를 안 낳는 건 인간 기본권 문제인데 그 원인을 치료(해결)해줘야지 결과만 보면 안 된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언사는 그가 사람을, 국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드러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다음 대에서는 '돈!', 그 다다음 대에서는 '권력!'만 지향하니 이와 대조적인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권 이후로 정부가 인구 문제, 사람 문제를 다루는 태도는 많이 변해버렸다. 스웨덴의 보건 장관이 중요하다 강조한 '건강한 성생활'은 꿈도 못 꾸는 세상이고 Well being이라는 말도 오직 다른 나라 장관에 입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가 된 것 같다. 현 대통령의 언사를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온다. (간혹 섬뜩함도 느껴진다.)

 

말 한마디에도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특히 이번 정권은 시작부터 사람을 대놓고 바보로 취급하고 그것도 부족한지 처참한 수준으로 비참함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최근 전기 누진 요금 관련만 봐도 알 수 있다)


국가라는 존재로서 인구 문제에 숫자로 접근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영화 매트릭스 속 건전지 같은 존재라 치더라도 너무 대놓고 이런 취급을 받으면 불쾌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아이를 낳지, 세금과 연금, 재벌의 배 등을 채우기 위해 살고 아이를 낳는 건 아니다. 그러니 최소한의 선은 지켜서 접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일한다면 항상 생각해 봐야 한다. 국민을 그저 국가라는 존재를 살리기 위한 가축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 우리도 할 수 있다면 끝임 없이 세상이 거꾸로 가는 걸 경계하고 내 가치를, 사람의 가치를 지키는 것에 힘써야 할 것이다.





틀림없이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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