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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말 송년회 무렵이었나 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차원에서 송년 모임을 가진다고 했다. 주체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시민단체협의회인가 하는 단체.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이 주축인 듯 했다. 


구시가지의 한 3층짜리 빌딩. 허름하기 짝이 없는 건물의 입구에 '박근혜는 퇴진해라'가 새겨진 천으로 된 간판이 세워져 있다. 옛날 건물 특유의 계단을 올라갔다. 벽에서 나오는 담배 찌든 냄새와 화장실 냄새를 헤집으며 2층으로 올라가니 사무실이 나왔다.


'송년 모임이라더니, 사무실이네.'


사무실 한편에 가스버너(일명 부루스타) 몇 개 갖다놓고 전 같은 걸 부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하얀 전지로 대충 싼 책상에서 나무젓가락과 종이컵, 그리고 일회용 접시에 놓여진 오징어 땅콩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놓고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도...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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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차원에서 송년회 쿠폰을 이미 구입했던 터라 함께 온 선생님들과 맥주와 안주를 주문하고야 만다. 두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를 포대기에 업기까지 한 여성분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오기 시작한다. 함께 온 선생님은 아는 사이이신지 이름을 부르며 안부도 묻고 한다. 선생님과 함께 풍물패를 했었다는 밝은 표정의 여성분은 '오빠 너무 오랜만'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송년 모임 준비하느라 힘도 들었을 것 같은데, 사람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우리마저 가버리면 왠지 그냥 파장일 것 같아 들썩거리는 궁뎅이를 달래고 있을 무렵 그분이 오셨다.


학교비정규직노조 XX시지회장.


동시에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함께 급식실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시는 분.


함께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지 2년. 나는 그분의 얼굴을 이날 처음 보았다. 늘 마스크에 조리 모자에 가운과 앞치마를 하고 있어 눈 외에는 본 적이 없었던 분. 1주일에 5번을 만나는 사이이지만, '잘 먹겠습니다' 외의 말을 나누지 않는 사이. 교직원노조랍시고 아이들에게 노동의식에 대해 알려주려고 하는 놈이 정작 본인은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도 몰랐다. 통성명을 하고, 호칭을 여쭈어본다. 나는 선생님, 그분은 '여사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셨다.


학교 같은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해내고 있는 이 상황. 나의 소원은 비정규직, 꿈에도 소원은 비정규직이라던 어떤 분의 수필을 읽고 나니 이런 말도 정규직에 어쩌면 퇴직 후 연금까지 보장되어있을지도 모르는 나 같은 놈의 말이야 배때기에 기름이 껴도 한참 껴서 하는 소리이겠지만, 이 상황에 가슴이 아려온다. 


저녁9시정도에 오신 여사님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하며 몰랐던 것을 계속 물어보았다. 게을러서, 귀찮아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외면해왔던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른 모습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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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이렇게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시는 줄은, 사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쭈욱 설명해주시는 여사님,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왜 알려고 하지 않았지? 라는 생각에 몹시 부끄러웠다.


우선, 급식실에서 급식 관련 노동하시는 분들, 청소 관련 노동을 하시는 분들, 행정실무사라는 이름으로 교무실/행정실/과학실 등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정규직 사서가 없는 학교의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 정규직 영양사(영양 교사라고 부른단다)가 없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영양사, 유치원/특수학급 등의 보조교사, 유괴사건 이후로 생겨난 학교 지킴이 등등. 알고보니, 학교에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비슷하거나 더 많다. 그리고, 이분들 대부분은 여성이다.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비정규직 노동자분들도 노동조합을 설립했는데,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줄여서 '학비'라고 부른다고 한다. 민주노총 산하에 있다고 들었다. 나와 만난 여사님은 이 노조의 노조원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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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학교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도 3개가 있는 모양인데, 각 노동조합의 노선이 조금씩 다른 모양이어서, 사안별로 조합별 노선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셨다. 예컨대 단결권을 행사하려는데 다른 노조에서 반대해버리면 김이 팍 새는 일 등이 있다고 한다. 여사님이 가입하신 '학비'가 사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인 것 같았고, 다른 조합들은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하는 모양이다. 여사님말로는, 여사님처럼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중에서도 노동강도가 높은 노동을 하는 분들은 학비 가입자가 많고, 노동강도가 널러리 한 일명 사무직에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온건한 입장의 타노조에 가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여사님 설명이었다.


열 명정도 되는 급식실에는 조리 종사원 여사님들과 영양사가 함께 근무하는데, 이 몇 안 되는 사람들이 3종류의 노조에 가입되어 있어 단결투쟁은 꿈도 못 꾼다며 푸념 아닌 푸념을 하신다. 


그나마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예전에는 학교장과 직접 계약을 맺어왔는데, 지금은 교육청과 계약을 맺게 되어 학교장과 직접 교섭을 해야 했던 과거보다는 나아졌단다. 학교장이 지랄 맞으면 얼마든지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구조였던 모양이다. 명절마다 교장에게 금품을 상납해야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거의 모든 교장은 지랄 맞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학교 특히 그것도 초등학교에서 교장은 제동장치 없는 폭주 기관차이다. 견제 세력도 없고, 잔소리하는 교사도, 잔소리하는 부장도, 잔소리하는 교감도, 잔소리하는 운영위원회도, 잔소리하는 학부모도 없다. 그래서인지 가끔 교장실로 직통 전화 걸어서 본인이 누구의 학부모인지도 밝히지 않고 민원을 넣어도 다른 교직원들보다 여유롭게 전화를 받는 편이다. 우스갯소리로, 직원인 내가 음성 변조한 다음 교장실로 전화해서 당신 좀 똑바로 하라고 이야기해도 도중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아무튼, 교육청과 임금교섭을 하게 되어 교장과 면 대 면으로 계약서 작성하던 때보다는 나아졌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였다. 


해마다 조리 종사원들에 대한 평가가 있는데, 그 평가 권한이 교장에게 있다고. 교장이 조리 종사원의 업무를 일일이 알 수 없으니, 영양사의 의견을 수용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양사에 대한 평가는 교장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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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라미드 구조에서 교장의 뜻은 영양사를 거쳐 조리 종사원에게 전달되는 구조이고, 그에 대한 거부는 평가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쉽다. 어지간한 강심장의 영양사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평가권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절대 수용하는 쪽으로 행동할 것이고.


평가 결과가 나쁘면 재계약대상에서 제외된단다. X인시에서도 1건 그런 경우가 발생했던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장에게 요구사항이나 불만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듯 했다.


일례로, 노동환경이 급속히 악화되는 여름철. 여사님 말로는 빤쓰까지 다 젖도록 더운 조리실이지만, 누구 하나 냉방가동 좀 하라고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단다.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내가 근무하는 학교장은 그나마 말이 좀 통하는 사람임에도 이 정도인데 정말 성질 더러운 교장인 학교에서는 그야말로 찍소리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사님의 기억은 명바기의 낙하산이 원전 꺼뜨려 먹은 덕에 '국민 너네가 전기 아껴야 되는 거'라면서 학교사용전기 요금을 확 올려버렸던 해의 것이었다. 반팔 남방을 스쳐내리는 등줄기의 땀을 느끼며 수업을 하다 너무 화가 나서 냉방가동 좀 하자고 행정실과 교장실을 항의 방문했던 그 해. 600인분의 밥과 반찬과 국을 준비하는 조리실은 어떠했을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이분들이 만들어준 밥을 넙죽 받아먹었던 나는, 아직 공감능력 배양이 덜 됐나 보다. 


여사님과의 학내 연대투쟁을 약속하고, 비정규직조합 차원에서의 요구가 불발될 것 같은 사항에 대해서는 전교조와(그래봐야 30명 교사 중 꼴랑 2명) 함께 요구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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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에 온 여사님과의 술자리는 어느새 밤1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노조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함께 근무하고있는 우리 학교에 대해 화제가 넘어갔다. 여사님들은 학교친목회의 회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에는 학교마다 'XX초등학교친목회'라는 이름의 사조직이 있다. 이 조직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 정도인데,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1. 친목 도모의 자리를 마련하고, 


2. 경조사를 챙긴다. 


회비는 회원이 다달이 내는 돈으로 충당되며, 회원 간 회비의 차등은 없다. 이 돈은 여행/경조사 부조/송별금/전입환영 등에 쓰인다. 회장과 총무를 두는데, 회장과 총무를 하고 싶다고 나서는 사람이 보통은 없다. 교장 점수 따고 싶은 선생들이 많은 학교이거나 정말 구성원 사이의 분위기가 좋은 학교에서는 서로 하려고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카더라만. 친목회장이 기피하고 싶은 자리이다 보니 친목회장과 총무를 버젓이 학교 공식업무분장표에 올려놓거나 개인 성과급 여부를 평가할 때 가산점을 준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근무하던 지난 학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해마다 2월이 되면 3월부터 새 학기 친목회를 책임질 친목회장을 선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똑같은 회원인 교장과 교감은 선출자리에서 스르륵 사라져버리고, 이어 교사들끼리 모여 서로 눈치를 본다. 회장 추천을 받은 후보들은 '내가 회장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저마다 설득력 있게 호소한다. '아들이 올해 고3입니다. 제발 봐주세요'.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수발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봐주세요'. '저는 하기 싫어요. 어쨌든 나는 아니에요', 뭐 이런 식이다. 그리고 쪽지에 이름을 쓰고 개표가 되고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교사가 그해의 친목회장이 된다. 그리고 친목회장이 지목하는 미혼의 교사는 총무가 되어 돈 계산과 사전답사 등의 실무를 보게 된다. 그해에는 미리 술자리에서 약속했던 대로, 평소 자기 일을 후배 교사들에게 넘겨주기만 한다는 이유로 후배 교사들에게 찍힌 한 중년 교사가 친목회장에 당선되었다. 당선원인은 당연히 표를 몰아준 후배교사들. 이쯤 되면 도편추방제(고대 아테네에서 위험이 될 수 있는 인물을 도자기 조각에 적는 식으로 투표해 10년 간 추방했던 제도)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저는 못 해요. 흙흙."


당선된 그녀는 울었었다. 친목회라는 이름이 참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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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감투인데 왜 이렇게 쓰기 싫어할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학교 성원들이 모여 똑같은 돈을 냈기에 똑같은 회원이어야겠지만, 최종 결정권은 교장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이기 때문 아닐까? 내가 거쳐온 학교와 내 주변 사람들이 거쳐온 학교는 100%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전에 교사 커뮤니티에 친목회관련 비판글을 올렸더니 '우리 학교는 안 그런데 왜 그러느냐'며 거품 무는 선생들이 있더라. 세상은 넓고 학교는 많으니 내 경험의 좁음으로 치부하련다. 투표로 정해놓은 친목여행지나 친목회식식당이 교장이 반대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바뀌는 일은 내가 친목회를 지켜본 이래 늘 있던 일이더라만, 아닌 학교도 있을 거다. 한 술 더 떠서 취했답시고 여교사들 뒤에서 와락 껴안고 여행가는 버스에서 술 돌린답시고 여교사 옆자리에 앉아서 허벅지 쓰다듬고 했던 건 그 교장 교감 놈들이 특별히 미친놈들이라 정말 나만 겪은 극소수의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노래방에서 여교사들끼고 부르스 추는 것도 그 사람들이 특별히 미친놈들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말이다.


어쨌든 난 학교를 옮기고부터 친목회를 들지 않기로 했다. 옆 반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는 이전 학교와 다르다고, 학교 분위기도 좋고 민주적이라고 설득했다. 그래서 속는 셈 치고 첫날 환영회에 갔더니 술잔 돌리고 노래방 가길래 3달 치 회비 내고 탈퇴, 그렇게 나온 친목회였다.


그런데, 그 친목회원이 되고 싶다는 여사님이었다. 나는 "거기 못 나와서 난린데, 왜 못 들어가서 안달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것은 다른 거"라고 하셨다.


나는 친목회원이 아닌지라 친목회 회의를 하면 스르륵 빠져서 교실로 오곤 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같은 급식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같은 비정규직인 영양 교사(언제부터인지 영양사에서 영양 교사로 바뀌었다.)는 친목회원인데 여사님들은 자격이 없다더라고. 그 사람 열 받게 하는 '차별'이 오기로라도 친목회원이 되어야겠다는 이유였다.


이 학교 친목회의 규약에 'XX초등학교 친목회는 XX초등학교 교직원으로 구성된다'고 되어 있단다. 그런데, 개교 이래 급식실 여사님과 청소 여사님들은 친목회원이 아니었단다.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라도 행정실과 교무실에 있는 사무직 비정규직 노동자(영양 교사포함)들은 친목회원이란다. 급식실 여사님들은 '우리도 친목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단다. 그랬더니 '회의를 통해서 결정 후 알려주겠다'고 했단다. 친목회 규약에 규정된 'XX초등학교 교직원'에 급식실 여사님들이 포함되는가라는 질문은 회의가 필요한 정도로 어려운 개념인가보다. 결국 일부 교사들의 강한 반발로 'XX초등학교 급식실에서 XX초등학교 교직원과 아이들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XX초등학교 급식실 여사님들은 XX초등학교 교직원이 아님'으로 결정되었다. 다수의 여사님이 회원자격이 있음에 찬성했지만, 일부의 강한 반발로 인해 '친목이 저해'될 소지가 생겼기 때문에 회원자격을 주지 않는 것으로 결정한단다. 이에 반발한 1명의 교사가 추가로 친목회를 탈퇴했지만 그뿐이었다. 


일부 교사의 반발로 여사님들은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님을 통보받았지만, 학교는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계속 굴러갔고, 다수는 침묵하면서 여사님들이 해주는 밥을 그 후로도 맨날 맨날 목구멍으로 넘겼나보다.


할 말이 없고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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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시작되고도 벌써 십여 년이 흐른 이 시점에도,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직업에 귀천이 있어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나랑 같은 건물, 같은 시간대에 일하고 있지만 나랑은 밥 먹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선생이다. 아이들에게 은연 중에 그런 것들을 가르치고 있을까? 아니면 자기 생각이랑은 다르지만 사람은 평등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을까? 그 사람이 곧 선생을 그만두고 교감이 되어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게 된다고 하니 퍽이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더 큰 권한을 휘두를 테니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여사님은 학교에서 누가 반대했는지 알고 있었다. 학교 급식에 대한 반찬투정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막장 드라마나 조폭영화에서나 나오는 '아줌마, 반찬이 이게 뭐야? 아직도 내가 뭐 좋아하는지 몰라?' 뭐 이런류의 대사가 현실에 존재하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노하샘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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