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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외국에 갈 때 종 세 명에게 각각 다른 액수의 달란트를 준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외국에 갔다 오니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남겼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당신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라고 말한다. 주인은 펄펄 뛰면서 “이 게으른 녀석아. 내가 뭘 심지도 않고 거두는 줄 알았느냐”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하면 ‘나는 땅 파면 돈 나오는 줄 알았냐’는 말이다. 주인은 그를 꾸짖고는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이에게 주어버린다.


이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예수를 자본주의 찬양자처럼 묘사하며 ‘돈 버는 자의 미덕’을 얘기하는 사람부터 달란트 금화를 실제로 땅에 묻어 놓고 재산 가치의 상승을 노렸던 그 시대의 불로소득자에 대한 분노라는 설까지, 해석은 각양각색 컬러풀하다. 그 와중에 고개를 끄덕인 해석 중의 하나는 이 달란트는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주신 능력, 인성, 환경 등을 빗댄 개념이라는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그릇’이라고 할까, ‘팔자’라고 할까.


살다 보면 참 달란트 많이 받았다 싶은 사람도 있고, 저 달란트 가지고 왜 저렇게 사노 싶은 사람도 있고, 달란트는 적게 받았어도 묵묵히 그 이상을 해내는 사람도 있다. 가끔씩은 자신의 달란트를 모두 소진해 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달란트를 만들어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이들을 ‘위인’ 또는 ‘인물’이라고 표현한다. 돌아가신 박형규 목사님도 그런 분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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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부활절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박형규 목사(맨 오른쪽)


박형규 목사가 서울 제일교회에 담임목사로 초빙됐을 때 장공 김재준 목사는 이런 설교를 하셨다고 한다.


“목사가 설교하는 이 강단은 목숨을 거는 곳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 진리와 교회를 지켜야 한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더라면 김재준 목사는 결코 위와 같은 당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의 목사 시무실에 폭력배들이 난입해, 목사 앞에서 “열 셀 때까지 교회 포기한다고 안하면 죽인다.”며 숫자를 세고, 주먹을 휘두르고, 전도사들이 울부짖으며 몸을 던져 막는 저편에 있던 깡패가 “내 이 목사 새끼를 오늘은 죽여 버린다.”며 망치와 함께 봉투에 든 못을 쩔그렁거리던, 그 끔찍하고도 길었던 제일교회의 수난을 한 치라도 예감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박형규 목사는 자신의 미래를 예감했던 것일까. 원래 눈물이 흔치 않던 양반이 ‘비장감에 휩싸여’ 펑펑 울면서 축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장공 김재준 목사의 당부를 자신의 몸뚱이를 내던져 지킨다.


이미 유신이라는 민주주의의 막장이 펼쳐진 상황에서 박형규 목사는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하느님이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휘한다. ‘제일교회’의 이름은 유신 때부터 눈엣가시였지만 전두환 때로 접어들면 국군 보안사령부가 대놓고 때려 부숴야 할 ‘주요 타격 대상’으로 부상했다. 교회에 폭력배를 투입해 예배 방해에 나서는 세계 기독교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 깡패 중 한 명은 서진룸살롱 사건을 일으킨 서울목포파의 별동대장이었다.


깡패들이 교회를 뒤덮었다. 교인들은 쫓겨났다. 목사와 전도사들은 감금됐다. 청년교인들이 깡패들과 사투를 벌이고 목사가 깡패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하던 상황, 60시간 감금당한 목사 앞에 대학생이던 아들이 나타난다.


“아버지! 항복하시라고 설득하러 왔다고 말하고 들어왔어요. 하지만 항복하시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저도 여기 있겠습니다.”


청년들도 외친다.


“목사님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저희도 끝까지 함께 있겠습니다.”


박형규 목사는 그때 유신의 법정에서 심문받던 도중, “했으면 했다 하고 안했으면 안했다 해라. 사내 자식이 비굴하게 굴지 마라.”고 호령하던 어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용기의 달란트는 서로를 부추기고 서로에게 나눠지면서 커진다. 박형규 목사는 깡패들의 폭력에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고개를 쳐들고 싸운 깡다구 넘치는 신도들을 이끌고 중부경찰서 앞으로 간다. 언뜻 보면 ‘적의 심장부’에서 도전장을 내미는 행위 같이 보였지만 내막은 안쓰러웠다. 그래도 경찰서 앞에서는 깡패들이 난리를 치지 못할 것이라는 빈약한 믿음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중부경찰서 앞에서 제일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됐다. 하늘을 지붕 삼고 서울 명동 근처를 감싸고 수천 명의 예배 관전자에 경찰서의 호위(?)까지 받는 교회가 세상에 어디 있었으랴. 처음에는 육성으로 손나팔에 목이 쉬어가며 예배를 봤지만, 핸드마이크가 등장했고 나중에는 전자오르간까지 꾸역꾸역 들고 왔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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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삶이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듯이 주 뜻이 이뤄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세상에서 그보다 아름다운 찬송이 있었으랴. 그보다 예수를 기쁘게 한 노래가 있었으랴. 그보다 더 예수의 뜻에 맞는 예배가 예수 승천 후에 얼마나 되었으랴. 그 가운데에 박형규 목사가 있었다.


“교회를 파괴하자는 공작은 1981년경부터 국군보안사령부가 비밀리에 수행해 온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여기서 도저히 폭력에 굴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분들에게도 분명히 했고, 일단 이 폭력에 굴복하면 이제 마지막 보루인 교회마저 그 음성적인 폭력에 굴복하게 되니까 이제 국민을 대변할 어떠한 기관도 없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최후의 보루를 순교의 각오로 지키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대한 현대사’에 대한 폄하를 개탄했다. 나는 그 개탄에 동의한다. 우리 현대사는 위대했다. 유신 독재, 흡혈귀 같은 전두환 독재에 맞서서, 사람 백정 같은 깡패들에 맞서서, 그토록 결연히 싸우고 결코 지지 않았으며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고개 쳐들어 눈 부라리던 그 위대한 용기의 달란트의 역사, 하느님이 준 달란트를 열 배 스무 배 생산해 내던 ‘선하고 부지런한’ 종들의 역사를 어찌 헬조선의 역사라 오도할 수 있으랴, 찌질한 역사라 깎아내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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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 출두 중인 박형규 목사


박형규 목사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그리고 그를 우리 역사에 주심을 하느님께 감사한다. 목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했습니다.




산하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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