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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부산에 가서 방콕 생활 하는 동안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 홍범도 장군을 따라다니던 할아버지(1899년생)는 독립군 부대를 떠나 부모형제가 있던 만주의 ‘일도구(아버지 기억)’로 돌아온다. 평생 공산주의자들을 증오하셨고 그놈들은 동지도 뭐도 없는 놈들이라고 푸념하셨다는 걸로 추정컨대, 자유시 참변(1921년 러시아 자유시에서 일어난 일로, 러시아 군대가 독립군을 사살한 사건)까지 경험하셨을 수도 있겠다. 돌아와서는 소학교 교사 노릇을 하셨는데 1930년대의 어느 날,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온 가족이 야반도주하다시피 두만강 너머 함경북도 남양으로 이사를 하셨다고 한다.


야반도주 사건으로부터 10여 년 전, 분대장 비슷한 직책을 맡아 부하 예닐곱 명을 데리고 이동하던 할아버지는 한 조선인 마을에서 한 나무꾼이 너무도 불쌍하게 두들겨 맞는 것을 목격한다. 나무꾼은 엉엉 울면서 자기는 밀정 아니라고, 살려 달라고 빌었지만 무슨 확신이 있었는지 마을 사람들의 매질에는 살기가 돋아 있더란다.


새까맣게 탄 얼굴에 꾀죄죄한 복색, 덮어놓고 엉엉 울면서 아이쿠 소리만 내뱉는 품이 불쌍하여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죽이지는 맙세. 얼굴 알려져서 밀정 노릇 하지도 못할 것 아님메.” 그리고 진짜 밀정이면 이 짓 하지 말고 숨어 살고 양민이거든 배 밭에 가서 갓끈 고치지 말고 조심히 살라고 이르고 풀어 주었다고 했다.


다시 10년 뒤 만주국이 서고 일본인들이 판을 치기 시작하던 즈음, 할아버지가 근무하던 소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다고 한다. 조선인들이 다니던 학교라 영차영차 소리도 요란하고 청군 만세 홍군 만세도 드높은 운동장에서 이리 저리 아이들을 살피던 할아버지에게 웬 까만 복색에 금술 단 일본 순사가 다가왔다.


웬 재수 없는 놈인가 하고 얼굴을 살피는데, 갑자기 이 순사가 코가 닿을 정도로 성큼 다가서서는 한 마디 하더란다. “이보오, 김우용 씨. 당신이 나를 한 번 살려 줬으니까 나도 당신 한 번 살려 주겠음. 내일 이 시간 전에 일도구에서 떠나기요.” 아뿔싸, 그때의 나무꾼이었다는 것이다. 걸음마 걷는 딸과 갓난 아들과 영문 모르는 아내를 데리고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두만강을 건넜다.


“이 얘기를 네 할아버지는 늘 했다. 밀정이 무서운 거라고. 정말 그 놈이 밀정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밀정’이라는 두 글자에는 우리 아픈 현대사가 시커멓게 덕지덕지 묻어 있다. 일제 당국과 조선인 독립운동가와 조선인들 사이에 전개된 첩보전은 독립투쟁사의 막중한 그러나 지금껏 명료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영역이다.


1930년대 동만주 일대를 쑥밭으로 만들었던 사건, 중국인들이 조선인들을 의심하고 조선인들끼리 서로 밀정이라고 지목하고 죽고 죽였던 민생단 사건은 일제의 밀정 공작의 성공 사례일 것이다. 그 외에도 독립운동가와 조선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밀정이 있었다. ‘붉은 치마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던’ 한국군 특무대 사령관 김창룡도 최고로 유능한 밀정이었다.


1924년. 일본 천황의 궁성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 김지섭을 변호한 것은 일본의 빛나는 양심 후세 다츠지 변호사였다. 그런데 그의 변호 도중 김지섭이 날카롭게 가로막고 나선다. 후세 변호사는 일본 당국이 독립운동 진영에 프락치, 즉 밀정을 투입시키는 공작에 대해 비판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한 인물의 이름이 나왔고 김지섭은 거기에 반발했던 것이다.


“황옥이 밀정이라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황옥. 황옥이 아마도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의 주인공 격 인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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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현(좌)과 황옥(우)

(출처: <동아일보>)


황옥은 일본 경찰의 경부라는 꽤 높은 지위에 있던 이다. 일본 경찰은 실제로 조선인 경찰을 의열단에 위장 가입시켜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엄선된 이가 황옥이었다. 황옥은 이른바 ‘고등계 형사’였다. 그런 일을 한 자체로 친일파 혐의를 벗어나기는 무망하지만 그의 행적은 미스터리하기까지 하다. 고등계 형사로 복무하면서 그는 적잖이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고, 앞서 언급한 의열단의 폭탄 반입 사건 때에는 직접 폭탄 반입에 나서는 임무를 맡았다.


고등계 형사로서 밀정 노릇을 했다고 현재까지도 의심받고 있으며, 의열단에 가입한 뒤에도 이중스파이로 의심받았던 황옥과 굳게 맺어졌던 것은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시현이었다. 둘은 의형제를 맺고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황옥은 대담하게 폭탄에 총독부 공용 물건 딱지를 붙여 국경을 통과시켰지만 또 다른 밀정에 의해 정체가 폭로되고 김시현과 함께 체포되는데, 막판에 김지섭을 국외로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김지섭으로서는 후세 변호사가 황옥을 밀정이라 부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황옥은 후일 반민특위에서 그의 상관이자 일제 치하 최고의 악질 조선인 경찰 김태석을 고발했고, 6.25 이후 납북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이 황옥이 정말 밀정이었는지 아니면 적의 심장부에 침투한 우리 쪽 ‘요원’이었는지는 아직도 설이 분분하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독립운동가는 죽을 때까지 위에서 언급한 최고의 악질 김태석을 일본 경찰로 위장한 독립운동가로 굳게 믿기도 했다. (이 사연은 이 책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그야말로 적인지 동지인지조차 분간이 안 갔던 안개 속의 전선. 그 숨 가쁘고 피 말리는 눈치 싸움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은 항상 신경을 활시위 당기듯 팽팽하게 곤두세워야 했고, 아차 하면 밀정의 꾐에 빠져 목이 날아갈 위기를 감수해야 했다. 과연 황옥은 어느 쪽이었을까.


다 아는 바이겠지만 의기(義氣)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영웅이어도 아들이 잡배인 경우는 흔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은 있고 대를 이어 빛을 발하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고 할 때, 황옥의 손자 황정하를 보면 ‘적어도 황옥은 밀정이 아니었겠다’는 심증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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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대저널>)


황정하는 서울대 80학번이었다. 그는 1983년 11월 8일 졸업을 앞두고 시위 주동자로 나선다. 레이건 방한 반대 시위였다. 캠퍼스에서 전경들이 족구하던 시절이었다.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민주화 투쟁”이라는 유인물이 휘날리는 가운데 황정하는 도서관 6층 창문 방충망을 찢고 나와 밧줄을 맨 채 5층의 베란다 창틀에 발을 디디려고 했으나 한국일보의 첫 보도에 따르면 “관계관의 저지를 뿌리치려다가”, 그리고 후속 보도에 따르면 “본인의 실수로” 15미터 아래로 추락해 목숨을 잃는다. 황옥은 그의 할아버지였고 황정하는 황옥의 손자였다.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스타일 하나는 죽여주지만 주제 의식에 접어들면 도대체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싶게 만들어 버리는 묘한 재주가 있는 양반인데, 개봉작 <밀정>에서 밀정들과 독립운동가들,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엮이고 뿌리치고 목을 죄고 다시 그 멱살을 거머쥐는지를 그려낼지 궁금하다. 볼 영화가 하나 더 늘었다. 역시 우리 현대사는 영화 소재의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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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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