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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준생이다.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을 처음 들었을 때 ‘오 제발. 나도 필요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상자가 3,000명밖에 안 되기도 하고, 부모님께 기생할 여유가 있는 나보단 더 힘든 친구들이 받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 신청하지 않았다.

 

얼마 전 엄마가 “이건 어떻니”하며 폰을 들이미셨다. 또 되도 않는 채용정보일 터였다. 내 적성에 대한 고려도, 일자리 질도 형편없는. ‘묻지마 취업’이 이런 걸까. 결국 승질을 냈다.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근데 이번 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자세히 봤더니 영상/디자인 교육과정으로, 전액 국비 지원에 최대 월 40만 원도 받는다는 솔깃한 내용이었다. 알량한 졸업장 한 장에 기대기엔 대한민국 취업 시장이 너무나 미쳐 돌아가고 있음을, 자다가도 울컥하며 느껴오던 나였다. 마침 영상/디자인 툴을 배우고 싶었던 터라 관심이 갔다. 심지어 전액 지원에 돈까지 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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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니 이 수업을 수강하려면 고용노동부에서 하는 '취업성공패키지'를 신청해야 했다. 즉 그 프로그램은 취업상담, 직업훈련, 취업알선 순으로 진행되는 취업성공패키지(이하 취성패)의 지원 교육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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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패키지의 3단계 프로세스

출처 - <고용노동부>

 

나는 그렇게 취성패를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정책이 그렇게 시끄러워질 줄 몰랐다. 정부는 여전히 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와 서울시 청년수당이 중복된다며 청년수당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여당과 보수 언론에서는 청년수당이 청년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며 대차게 까고,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하는 취성패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그렇게 좋다고 하니, 어디 나도 혜택 좀 받아볼까, 하고 취성패를 신청했다. 드디어 개털에, 부모에게 빌붙는 생활을 청산하는가 싶었지만, 역시는 역시. 헬조선에서 밥 먹고 살기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고용센터를 방문해 취성패를 신청하면 발급까지 약 6주가 소요된다. ‘취업상담’ 기간이다. 나는 이 1단계부터 동공 지진을 겪었다. 취성패를 개강일 전까지 발급돼야만 수강이 가능한데, 내가 들으려 했던 교육은 4주 후 개강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 못 듣는 거...? 도대체 뭘 하길래 신청부터 발급까지 6주나 걸리는가 싶었다. 다행히 민간위탁기관에서 일정을 빨리 진행해 주겠다고 해서 겨우 신청할 수 있었다.

 

신청 과정을 겪어보니, 왜 그리 시간이 걸리는지 알 수 있었다. 3~5차례에 걸쳐 방문 진로 상담을 받아야 했으며, 찾아야 할 정보나 작성해야 할 서류들이 많았다.

 

 ‘...이거 굉장히 피곤하다.’

 

첫 상담을 받으면서 이건 나에게 맞는 게 아니구나, 확신했다. 숨 막히는 중단 안내문이 결정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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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참여하면 넌 무조건 교육받은 분야에서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해야 하고, 그걸 증명해야 하며, 그 외 잡다한 요구사항들도 꼭 지켜야 해. 안 그럼 지원 중단!”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테지만, 나는 이런 걸 원하지 않았다. 불현듯 ‘묻지마 취업’에 대한 노이로제를 느끼며, 나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론 정부 지원 사업이니 토 나오는 절차가 엄청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진로 탐색 차원에서 수강을 희망했고, 취업 준비(스펙)도 동시에 하고 있는, 몸도 마음도 지친 취준생에겐 이런 절차 하나하나가 부담이었다. 자칫 시간 낭비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생기고.

 

나는 취성패를 중단하고 싶어졌다. 그러자 아래와 같은 '협박(?)'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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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했다. 시작도 전에 부담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중단 의사를 밝혔다. 상담사는 중단의 불이익을 알려주며 일단 1단계까지라도 진행할 것을 설득했다. 1단계 참여엔 약 15만 원의 수당이 나온다. 결국 나는 추후 방문해 1단계까지만 완료하기로 얘기가 됐다. 거칠게 말하자면 15만 원 때문에 중단을 유보한 거나 다름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신 취성패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서울시 청년수당을 받기 위해 취업성공패키지 신청을 취소한 청년이 38명이라고 한다. 나는 그들이 이해가 된다. 취성패는 청년을 섣불리 '보살피려' 들고, 지원의 대가로 취업을 '압박'하는 듯하다. 이건 정말이지 너무 피곤하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2014년 취성패로 취업한 청년이 4만 3000여 명인데, 이 중 1년 이상 고용을 유지한 비율은 45.5%로 절반도 안 된다. 월 평균 150만 원 이상 임금을 받은 청년은 46% 남짓에 불과했다. 심지어 국회예산정책처는 성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 사업을 예산 감액 조정 대상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근데 고용부는 무슨 근자감으로 취성패를 청년수당과 비교하는 걸까? 취업수당(취성패의 취업알선 단계에서 현금 지급)을 급조하곤 청년수당과 차원이 다른 정책이라고 하는데, 뭐 어디가 그렇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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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

  

한 해 청년정책 예산은 2조 원대라고 한다. 주로 청년에게 직접적으로 가는 지원이 아니라 고용촉진지원금, 청년취업인턴제 등 청년들을 고용하는 사업주들에게 지급되는 형태다. 청년을 채용한 회사에 돈 주는 건 괜찮고, 취업 준비하는 청년에게 돈 주는 건 기를 쓰고 막는 아이러니.

 

비록 내가 취성패를 약간 돌려까긴 했지만, 그건 현 내 상황과 맞지 않았던 거지, 그 자체로 의미 없는 정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환경이나 직종 등 각자의 상황이 다른 것이니 누군가에겐 취성패가, 누군가에겐 청년수당이 필요할 뿐이다. 취업성공패키지든 청년수당이든 선택은 청년들의 몫인데, 지금 상황은 이웃 잘되는 꼴 보기 싫어 다 같이 죽자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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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라디오에 청년수당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이 나와서 '청년수당, 술 먹고 노는데 안 쓰고 취업 준비하는 데 쓰는 겁니다'라 어필하는 데 짜증이 났다. 아니 왜 청년들이 이런 변명을 해야 하는 거냐고.


나는, 청년들은, 안 그래도 힘들고 피곤해 죽겄다. 공부해야 되는데 이런 거 쓰게 하지 말란 말이다.





호가든과먹태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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