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trexx 추천33 비추천-1






미리 예측: 여전히 혁신은 없었다.

 

1.jpg


애플 이벤트 다음 날 9월 8일 아침 뉴스 제목을 예언하자면, “애플, 혁신은 없었다” 겠다. 그럼에도 언론은 혁신이 없다는 애플을 가장 큰 이슈로 하루종일 다룰 것이다. 지금 아이폰 발표 시점에 괴로워하고 있는 국내 모 기업과 연관 지어서.


그런데 언론에서 말하는 ‘혁신’이 도대체 무엇인가. 완전히 새로운 것, 최초의 것,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것 등 남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말하는 걸까? 사전적 의미의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하는 것(renewed, altered)'이다. 그렇기에 2007년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했을 때 “혁신”이라는 말 대신 과장되게 “혁명”의 시작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국내 언론이 떠드는 혁신은 꼭 혁명처럼 들린다. 그들 말대로라면 아이폰은 매년 혁신이 없었다.


하지만 애플은 매년 새로운 주력 기술들을 발표했다. 아이폰 3G(2008)에서 앱스토어, 3GS(2009) 때 성능향상(국내 출시), 4(2010)에서의 레티나 디스플레이(FaceTime), 4s(2011)에서 시리, 5(2012)에서 4inch 디스플레이, 5s(2013)에서 TouchID, 6(2014)에서의 두 가지 선택 디스플레이, 6s(2015)에서의 포스터치 등.


아이러니하게도 새롭운 기술에 해당하는 앱스토어, 레티나 디스플레이, 시리, TouchID 등은 경쟁 플랫폼인 안드로이드에도 적용되었다. 발표 다음 날 국내 언론들이 "혁신은 없었다"고 평했던 기술들이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이 기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언급을 안 했다고 봐야겠다.


20년 전의 애플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 당시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국내에서 1% 정도였다. 맥킨토시는 비싸기도 했거니와 그래픽 전문가용 컴퓨터로 간주되었다. 당시 애플은 국내에서는 망한 기업일 뿐이었다.


아이폰이 처음 소개된 건 약 10년 전인 2007년이었다. 당시 애플은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성공한 기업이었다. 아이팟이라는 전세계를 놀라게 한 괴물 상품을 만들었고, 잘 팔리고 있었다. iTunes Store는 음악산업을 바꿔 놓았다. 아이폰을 발표했던 시기였던 2007년 애플은 이미 기반이 있었다. 아이폰은 아이팟, 아이튠즈라는 기반 위에서 만들어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기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과거인 18년 전 여름으로 돌아가서 애플의 '혁신'에 대해 알아보자. 


2.png

디자인만 새로웠던 1998년 iMac, 그러나 애플의 도약이 된다.



1998 여름


잡스가 (망해가고 있는) 애플에 iCEO(interim:임시)로 복귀 후 1998년 5월 iMac을 선보였다. 당시 PC는 베이지색 일색이었는데 iMac은 투명한 본디블루색 본체로 매우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iMac 발표 후 세상은 들썩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상당히 이목이 집중되었기도 했지만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하드웨어 스펙이 형편없다."

 "플로피디스크를 빼다니 미친 짓이다."

 "뭐 USB? 그것을 지원하는 주변기기가 어디 있나!"

 "기존 맥 사용자들에 배려가 전혀 없다."

 "아이들이나 좋아할 애완용품이다."


사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이런 비난은 너무나 타당해 보였다. 당시 PC 산업은 CPU 클럭스피드 경쟁에 미친듯 열을 올리고 있었다. iMac에 들어있는 CPU는 PowerPC(G3) 233MHz였는데, 인텔 팬티엄 II는 333~450MHz를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둘은 전혀 다른 CPU로 1:1 비교는 어렵겠지만 클럭스피드에 민감했던 당시 기준으로 PowerPC 233MHz는 상당히 후져 보이긴 했다. 


게다가 iMac에 플로피디스크를 빼버린 건 충격에 가까웠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이동형 저장매체가 플로피디스크였는데 이것을 없애버리자 ‘극혐’의 반응이 일어났다. 플로피디스크는 당시 가장 저렴한 저장매체였고 맥킨토시를 비롯 모든 컴퓨터는 플로피디스크를 가지고 있었다. 용량은 적고 속도도 느렸지만 OS를 설치할 때, 하드웨어 드라이버를 설치할 때, 소프트웨어 패키지에 플로피디스크는 ‘어김없이’ 사용되었다. 컴퓨터가 있는 집에는 플로피디스크 상자가 없을 수 없었다.

 

3.jpg
PC 메인보드: 시리얼과 병렬포트는 USB가 정복한 이후까지 지원되었다


USB 도입한 것도 의문이었다. 맥에서는 처음으로 iMac에 도입된 ‘유일한’ 인터페이스인 USB는 기존 저속 인터페이스(시리얼, 병렬포트 등)를 대체하기 위해 인텔에서 1994년에 이미 발표되어 있었다. 1998년 당시 PC에서는 시리얼포트(모뎀, 마우스 등), 병렬포트(프린터) 아니면 PS/2(키보드, 마우스) 포트를 주로 사용했다. 시리얼포트 등 기존 인터페이스는 속도가 느리고 설정이 까다로웠지만 굳이 USB로 메인보드 제작사와 사용자는 바꿀 마음이 없었다. 비록 USB를 메인보드가 지원하였다 쳐도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주변기기가 USB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꿀 마음이 없었다. 맥킨토시 또한 당시 독자적인 인터페이스인 ADB, Serial 등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었다. iMac에서 USB만 지원하는 것은 기존에 사용 중인 주변기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여 맥킨토시 사용자들 또한 반발하게 만들었다.

 

4.jpg
2년 뒤 CPU와 그래픽카드를 바꿔준다는 삼보체인지업


iMac 이전에 일체형 데스크탑은 있었다. 1984년 처음 발표한 맥킨토시 또한 일체형이다. 하지만 1998년 당시 대부분의 컴퓨터 회사에서는 일체형 데스크탑을 만들지 않았다.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게임을 위해서는 CPU와 그래픽카드를 업그레이드는 꼭 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컴퓨터 좀 한다는 인간들은 으레 본체 옆구리를 열어놓고 허세 부리기도 했다).


여하튼 iMac은 컴퓨터 좀 쓴다는 이들에게 많은 무시를 당했다. PC를 사용하건 맥킨토시를 사용하건 말이다. 5월에 공개되어 3개월 동안 연신 두들겨 맞은 iMac은 8월에 시장에 나오게 된다. 결과는? iMac은 신화가 된다. 애플과 잡스에게 모두.



iMac을 생각한다


5.JPG


필자는 애플 제품 중 가장 혁신적인 제품을 iMac이라 생각한다. iMac은 망해가고 있었던 애플의 첫 성공작이었다. iMac의 스펙은 별 볼 일 없다. 1984년 이후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OS는 완전히 낡은 상태였고 CPU 성능은 그저 그랬고 화면은 작았으며 아이스하키 퍽처럼 생긴 마우스는 사용하기 불편하고 감도는 거지 같았다. 하지만 iMac은 애플이 가야 할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 그리고 가야 할 곳에 완전히 집중하는 것.'


1998년 당시 맥킨토시는 가격경쟁력이 전혀 없었다. 모델은 산재되어 있어 스펙을 서로 비교하여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상위 데스크탑 컴퓨터 모델인 파워 맥킨토시만 보더라도 기본 모델이 7가지 이상으로 4400, 5500, 6500, 7220, 7300, 8600, 9600 등이었고 세부 스펙을 보면 더 복잡해진다. 가격은 일반 소비자들은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비쌌다.


기존 맥킨토시 사용자는 전문가 집단에 가까웠다. 전문가 집단은 자신의 생계에 필요한 도구 구매를 하기에 가격탄력성(상품가격에 따른 수요변화, 0에 가까울수록 가격이 수요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 시장의 크기는 매우 적다. 90년대 이후 MS와 IBM 호환PC로 인하여 가격이 떨어지자 더욱 많은 사람들이 PC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대부분 사용자는 컴퓨터를 생산 도구가 아닌 가정에 한 대쯤 있을 놀이기구(소비상품)로 생각하게 되었다. 빌게이츠와 MS는 그것을 완전히 간파했고 윈도우즈 95를 사용자들에게 소비상품으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윈도우즈는 게임산업으로 게임체인저가 된 것이다.


1997년 애플의 맥킨토시는 벼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전문가 집단마저 맥킨토시를 버리고 있었다. 윈도우는 만족스럽지 못해도 ‘대안’은 되었다. 맥킨토시 가격으로 성능이 더 좋은 PC를 구할 수 있었고 윈도우즈 사용자가 늘어나자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맥에서만 지원했던 전문프로그램을 윈도우 용으로 내놓게 되었다. 하지만 맥킨토시는 가격을 낮출 수 없었다. 애플의 물류시스템은 개판이어서 재고는 싸여만 갔고 모델은 너무나 많아서 관리하기도 어려웠다(잡스가 물류시스템의 대가인 팀쿡을 러브콜한 건 이때의 뼈아픈 기억 때문일 것이다).


1998년 애플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기에 몇 달이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회사를 다시 인공호흡을 할 제품을 만들어어 할 급박감이 있었다. 정말로 혁신적인 제품이 아니면 어려웠다. iMac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단지 본디블루 디자인 때문이었을까?


잡스가 아이맥을 소개하고 있다.



iMac 애플의 혁신이 되다


iMac의 혁신은 물론 디자인에도 있다. iMac이 나오자 경쟁사들은 더이상 베이지색 본체를 고집하지 않게 되었고 투명케이스 디자인은 식상할 정도로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것 하나만 놓고 봐도 iMac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iMac의 혁신을 디자인만으로 보면 섭하다.


 · 낮은 가격과 모델의 단순화


아이맥의 혁신은 하드웨어 스펙에 있지 않다. 위에서 언급했듯 하드웨어는 못 쓸 정도는 아니었지만 좋은 스펙은 아니었다. 스펙을 낮추고 가격을 조정하여 $1,299로 출시되었는데 당시 PC 데스크탑하고 경쟁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아이맥의 공략 소비층은 기존 전문가 집단 맥킨토시 사용자가 아니었다.


임시 CEO 잡스는 보급형 모델군인 Performa(이 모델 또한 최소 8개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5260CD, 5270CD, 5280, 5400 Series, 6400, 6410, 6420, 6360 등 미친듯이 많았다. 입문자들이 8가지 모델에 대해 구별하기 전에 PC를 구매했겠다)를 아예 없애버리고 iMac 단일 모델로 으로 퉁친 것이다.


 · 인터페이스의 통일, 과감한 생략


USB는 인텔에서 1994년 발표한 규격이다. 물론 PC 메인보드에서 먼저 도입되었지만 확산은 지지부진했다. 새로 출시한 메인보드에도 기존 인터페이스인 시리얼과 병렬포트를 지원하고 있었기에, 사용자들이 굳이 USB 주변기기를 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잡스는 초 강수를 둔다. 외부 주변기기 인터페이스를 ‘오직’ USB만 채택했던 것이다. 아이맥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USB 주변기기는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 같은 소형기기에 더욱 확산된다.


플로피디스크의 삭제로 구매 전 많은 욕을 선사 받았지만, 막상 출시되자 플로피디스크의 부재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플로피디스크의 속도는 느렸고 용량은 1.44MB로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인터넷을 통해 이메일로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용량이었다. 이내 플로피디스크 시대는 종언하게 된다. 이는 인터넷시대의 시작을 예고했다.



인터넷


당시 잡스가 iCEO(임시 CEO)였기에 iMac에 i가 붙었다는 농담이 있지만, 이는 인터넷 시대에 편승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었다. 웹브라우저는 인터넷(정보)이 더이상 전문가만의 것이 아닌 일반인의 것이 되었다는 선언이었다. 웹은 컴퓨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잡스는 그 흐름을 간파했고 일반 사용자들이 인터넷을 접근하기에 편한 제품을 구상하게 된다.


많은 가정이 고속 인터넷이 불가능하니 iMac에 모뎀을 기본 장착하였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PC와 맥킨토시에서 옵션에 해당했던 이더넷을 iMac에 기본으로 넣었다(이는 추후 보급형 노트북 iBook에 WiFi를 기본으로 도입하는 근간이 된다). iMac은 인터넷 사용자를 위한 제품이라는 접근은 매우 유용했다.


iMac의 혁신은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더이상 ‘작업용’이 아니다. 거실에 놓아도 손색없는 가전제품으로서 잡스는 iMac을 재탄생시켰다. 물론 그전에 빌게이츠는 천하통일을 했지만 잡스는 멈추지 않았다. 잡스는 인터넷이라는 시대에 흐름을 간파하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집중하여 그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유일한 상품을 만들었다. 차별화하여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 이후 잡스가 이끄는 애플의 DNA가 된다.

 

6.jpg
해석의 여지가 많은 9월 7일 이벤트 초대장



2016년 9월 7일 애플의 선택과 집중은?

 

7.png
iMac 기본디자인은 2004년 이후로 바뀐 게 없다. 


9월 7일 애플의 하드웨어 발표에 대한 글을 쓰면서 iMac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애플은 매년 아이폰을 발표할 때마다 주력하는 기술을 하나씩 넣어왔다. 시리즈의 S모델은 디자인을 그대로 두고 성능 향상과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술을 선보였다. 근데 이번 7의 루머를 보면 하드웨어 외형 변경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마치 아이맥이 2004년 기본디자인에서 거의 변경이 없던것 처럼 말이다. 물론 iPhone과 iMac을 1:1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필자가 위에서 iMac의 혁신을 이야기한 건 1:1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iMac이 가지고 있는 혁신에 대한 철학이 iPhone에도 고스란이 들어있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번 아이폰 7에서 유의해 볼 것은 선택과 집중에 있다고 본다.


아이폰7은 무엇에 집중했을까?


 · 아날로그 오디오잭의 삭제

 

8.jpg
iPhone 7 Plus에 Airpods Wireless Earphones가 적혀있다.


지금 커뮤니티에서 극혐에 시달리는 루머가 바로 3.5mm 오디오 잭이다. 작년 말(2015.11.27)에 Mac Otacara에서 차기 아이폰에서 두께 1mm를 줄이기 위해 헤드폰 잭을 없앨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에 필자는 애플이 3.5mm 헤드폰 잭을 버리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3.5mm 헤드폰 잭은 아날로그다. iPhone에 들어있는 음악을 헤드폰잭에 연결해서 듣기 위해서는 DAC(Digital Analog Converter)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우리가 귀로 듣는 건 디지털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DAC가 폰안에 있게 되면 여러 가지 고려사항이 생긴다. 아날로그는 근본적으로 노이즈를 동반한다. 레코드(LP) 혹은 카세트 테잎을 듣다 보면 물리적인 혹은 전기적인 잡음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하드디스크 타입 MP3 플레이어 또한 하드디스크 모터 소리가 아주 작게나마 이어폰으로 들리게 된다. 이는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한계다. 아날로그를 완벽하게 제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시 말하자면, 아날로그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노이즈를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애플은 아날로그 오디오 기술에 있어서 어느 테크기업보다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휴대형 기기뿐 아니라 랩탑, 데스크탑 맥의 3.5mm는 노이즈가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런데 애플은 이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날로그 기술을 ‘미래가치’를 위해 던져버리려고 한다.


아이폰에서 DAC를 빼버리면 폰 자체에서 아날로그 노이즈에 신경을 덜 쓸 수 있다. 이는 설계 및 제조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아직까지 블루투스 음질은 오디오 파일(AudioPhile, 오디오 애호가)에게 조소를 받고 있지만 올해 발표할 블루투스 5.0에서 대역폭이 8배나 늘어나 음질에 대한 비난을 상당히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 


대안으로 음악애호가를 위해 디지털 포트인 Lightning에 직접 연결할 고사양 헤드폰을 강제할지도 모르겠다(아래 사진 참조).

 

9.png
2014년 6월 WWDC에서 Lightning to Audio Jack 규격이 이미 나왔다


필자도 헤드폰 잭의 부재는 아쉽다. 사람들의 말처럼 미친 짓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플은 성공과 실패와 관계없이 iMac에서 USB를 적용하듯 플로피디스크를 삭제하듯 3.5mm 오디오잭을 과감히 삭제할 것이다. 사용자들이 무선 헤드폰으로 옮길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말이다. 좋든 싫든 애플은 그래왔다.


 · 포스터치 홈버튼


10.jpg 
물리적인 홈버튼은 취약하기로 유명하다.


바로 체감할 수 없지만 디지털로 옮기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아이폰의 상징과 같은 물리 홈버튼이다. 아이폰의 홈버튼은 악명이 높다. 5s부터는 상당히 안정화 되었지만 그 전까지 홈버튼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물리적인(아날로그) 버튼을 햅틱 피드백(디지털)으로 변경하는 것은 근본적인 취약성을 삭제하는 것이다. 애플와치, 맥북 그리고 아이폰 6s 디스플레이에 도입된 햅틱 피드백 사용성은 이미 검증이 끝났기에 도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이번이 안 되면 2017년에는 반드시 도입될 것이다.


  · less is more

 

11.jpg
아이폰7 루머사진: 안테나선이 하나 줄었다.


아이폰7에서 유일하게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디자인은 안테나 선이다. 정말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아이브의 메탈(알루미늄) 사랑의 극한을 보는 것 같다. 조금 더 발전하여 안테나 선 자체를 없애버릴 심상이다. 아이폰 7의 선택과 집중은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 기타 등등 : 와이드칼라 디스플레이 등



Webkit-logo-P3.png
와이드 칼라가 적용된 디스플레이에서는 표식이 나타난다


아이폰7에 주목할 기술은 바로 와이드 칼라 디스플레이가 아닐까 싶다. 아이폰4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디스플레이에 관념을 바꾸듯 와이드칼라 디스플레이 또한(비록 한정적이긴 할테지만) 디스플레이 기준을 많이 올려놓을 것이다. 와이드칼 라는 보다 넓은 색 재현율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기술은 iMac 5K(2015)와 아이패드 프로에 이미 적용되어 많은 전문가로부터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카메라: 7의 5.5인치 모델 카메라는 듀얼렌즈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줌인 줌 아웃 처리기술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렸느냐는 거. 만약 광학 수준까지 된다면 사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5.5인치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 같다.


애플와치: 애플 와치 2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GPS 지원, 빠른 AP, 얇아진 본체 등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 이미 2016년 6월 WWDC에서 새로운 WatchOS 기술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맥: 발표 루머는 대부분 10월로 되어있어 이번에 발표하지 않을 것 같다. Macbook, iMac, Mac Pro,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기다리는 분들은 10월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12.jpg
1세대 아이팟은 물리적인 휠이었다. 첫 모델 이후 터치 방식으로 바뀐다.
이동기기 시대를 연 제품.



진정한 무선시대의 시작, 아날로그 시대의 종언


9월 7일에 애플에서 발표할 하드웨어는 이미 중국발로 모두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루머의 정확성은 언제부터인가 어긋남이 없었다. 안테나선은 줄 것이고, 색상은 5가지일 것이다. 발표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하다. 국내 언론은 역시 이렇게 쓸 것이다. "아이폰7, 혁신은 없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하드웨어 이면에 숨겨있는 애플만의 선택과 집중, 더하는 것이 아닌 빼는 것, 목표로 하는 것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3.5mm 헤드폰잭 삭제가 가져오는 건 진정한 무선시대의 시작이자 아날로그 시대의 종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어폰을 잭에 꼽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인식될 날이 올 수 있다. 애플은 그걸 바랄 것이고, 시장은 가열차게 유선에서 무선으로 옮겨갈 것이다. 애플뿐 아니라 다른 기업 또한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면, 그런 게 혁신 아닐까? 시장을 재편하는 것 말이다.


그래도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쉽다. 가야 할 곳으로 가는 애플이 이해는 되지만 사용자들이 진정 원하는 건 ‘훅’이 아닐까 싶다. 


이번 이벤트의 최대 조력자는 애플이 아닌 경쟁사가 아닐런지. 9월 7일에 아이폰을 발표하는 애플은 운도 기가 막히게 좋다.


이벤트 끝나고 다시 정리해 보겠다.





trexx

트위터 : @trexxcom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