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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23. 화요일

raksumi








이 이야기를 우리 병원 원장님이 보시면 아마 대노 하실 거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는 원장이 아니고 또 딴지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없는 살림에 좀 보탬이 될까 해서이다. 그럼 시작한다.

배신자.JPG
배신자???

건강 검진이 유행이다. 그냥 시키는 대로 피 검사하고  엑스레이 찍으면  바로 알아서 내 몸의 이상을 체크해주니 귀찮은 현대인에게는 안성맞춤이다.

평소 몸이 안 좋긴한데 뭔가 꼬집어 얘기하기 어렵게 몸이 불편하거나 아님 그렇게 말하는 게 귀찮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천군만마와 같이 고마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건강 검진이 얼마나 유익하고 효과적일까?

여기서 문제 하나를 내자. 여기 팔 엑스레이 사진이 있는데 엑스레이 사진에서 미세하게 금이 간 것 같다.(실제 미세하게 금이 간 것은 전문가들도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면 의사는 다음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될까?

1. 엑스레이 검사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니 CT를 찍어본다.
2. CT로도 알기 어려울 수 있으니 정확하게 MRI를 찍어본다.
3. MRI로도 어려울 수 있으니 병원에서 제일 비싼 검사인 PET CT를 촬영한다.
4. 환자에게 금이 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만져 보고 아픈 지 물어본다.

정답은 당연히 말 안 드려도 다 아시리라 믿는다.

의대 다닐 때 환자를 만나면 항상 생각하라는, 진단학 선생님이 하신 정말 금과옥조 같은, 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 있다.


History taking (히스토리 테이킹)

이게 무슨 말이냐면, 환자에게 과거력이나 주된 불편한 점을 묻지 않는 의사는 의사가 아니라는 말씀이 되겠다. 바꿔 말하면 환자의 이야기만 잘 들으면 60% 정도는 진단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연후에 나머지 40%를 구별하기 위해 의심을 가지고 필요한 검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다시 말해 환자 말을 들으면 보통 진단명 4-5 개 정도가 떠오르고 그 4-5개 중 하나를 맞추기 위해서 나머지 검사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배가 아픈 젊은 여자가 병원에 왔다. 그럼 의사는 환자에게 묻는다.

어디가 아프냐(아랫배냐 윗배냐 우측 배냐 좌측배냐)?

언제 부터 아프냐?

생리랑 연관은 없냐? 생리는 언제 했냐?

냉이 심하거나 그렇지 않냐?

토하거나 설사 하거나 미식거리는 소화기 질환과 관련이 있냐?

이런 후에 그냥 약을 그냥 주던지 초음파를 보던지 피 검사를 한다. 만일 이 사람이 과거부터 생리통이 있었는데 최근 더 심해지고 양도 많아지고 그랬다고 치자. 그럼 의사는 초음파를 보고 난소에 혹이 있는지 확인을 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난소에 혹이 있다면 아마 난소암 수치인 CA 125 검사를 나갈 것이다. 만일 이 수치가 높고 혹이 크고 환자가 증세가 있다면 수술을 해야 될 것이다. 암튼.

그런데 만일 이 사람이 병원에 온 것이 아니고 건강 검진을 했는데 난소암 수치인 CA 125가 우연히 높아져 있다면? 사실 실제로 외래에 이런 사람 정말 많이 온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위의 과정을 다 해야 된다. 웃긴 것은 생리 중이거나 감기나 골반염 같은 감염이 걸렸거나 혹은 근종 같은 게 있어도 이 수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때그때달라요.jpg
그때 그때 달라요.

이런 경우 정말 아무 문제가 안 된다. 특히 수치가 조금 올라가는 경우 대부분 이 경우이다. -이 비슷한 예로 산부인과 영역에서는 20대에 시행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검사가 있다. 이거 건강 검진을 시행하는 20대 여성은 할 필요가 없는 검사이다. 검사비도 굉장히 비싸다.

다시 말하면 이 수치는 난소 혹이 있을 때나 의미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위에서 말한 사람은? 맞다. 다 쓸데 없는 검사를 한 것이다. 건강 검진해서 필요 없는 검사를 더 하게 된 것이다. 그럼 병원 입장에서 볼 때 어떤가?

이건 당연히 남는 장사다. 피 검사 이상이 있어서 추가 검사로 더 정확하게 보자는 것이니 윤리적으로도 떳떳하고 병원 이익도 남는다.

나는 사실 지금은 생리 끝나거나 혹은 일정 시간 후 다른 추가 검사 없이 그냥 재검 하자고 하지만 만일 내가 개업하고 있거나 원장이라면 이럴 자신 없다. 검사 하는 만큼 수입이 늘어나는데 아마 스스로 합리화 될 것이다(지금도 울 병원 포함해서 대학 병원 급에서는 병원 수입 연계가 개개인 의사의 인센티브에 많이 반영된다. 사실 인센티브가 적은 나 같은 의사는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건강 검진으로 덤핑 많이 한다. 이건 대형 병원도 똑같다. 싸게 해서 손해를 좀 보더라도 이렇게 외래를 많이 보게하고 검사를 많이 하게 해서 병원 손해를 메우는 것이다.

건강 검진을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위신도 서고 괜찮은 장사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파생되는 이득을 제외하고서라도 병원의 진료 파트에서 대부분 이익이 남는 곳이 건강 검진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참고로 그 외 병원 장례식장과 편의점, 빵집, 커피집, 식당의 월세 그리고 주차료에서 많은 부분의 적자를 메꾼다. 병원 편의점의 월세는 상상의 초월한다).

불만제로.jpg
이런 식으로 적자를 메꾼다.

제대로 교과서적으로 진료했는데도 병원 이익이 남는다면 암튼 내 상식으로는 좀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잘 아시다시피 건강 검진은 의료 보험 적용도 받지 않는다. 같은 검사도 더 비싸다.

예를 들어 같은 CT를 찍어도 내과에 와서 배가 아프다고 하여 찍는 것은 보험이 되지만 검진에서 찍는 것은 안 된다. 내과에서 찍는 경우 의사가 귀찮게도 보험 요건을 적어내는 것이 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보험이 해당되는 조건이 아니어도 웬만하면 보험으로 해 준다. 가끔씩 의사들이 집요하게 뭐뭐뭐 하시죠? 어디 불편 하시죠? 하고 물을 때는 그냥 눈치껏 그렇다고 대답하시라. 다 보험으로 해 줄려고 꼼수 쓰는 거다.

그럼 모든 것을 다 커버하는 비싼 건강 검진(요즘은 100만 원 넘는 것도 나왔다)은 어떠한가? 이런 비싼 것을 하면 추가 검사가 필요 없을까?

걱정마시라!! 병원에는 다양한 검사가 있고 항상 이것보다 윗 레벨의, 혹은 비슷하지만 다른 검사가 있다. CT가 있다면 MRI를 찍으라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검사를 추가적으로 시행하라고 할 가능성이 있다(우리 외삼촌이 그랬다).

오히려 검사를 많이 하면 많이 할 수록 이상 소견이 발견 될 확률은 더 높고 아이러니 하게도 다른 검사를 요구하거나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건강 검진 시 문진하거나 결과를 확인 해서 어느 과로 가서 정밀 검사 받으라고 하는 분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니다(인턴 선생님이거나 가정의학 의사다).

이런 분들은 아무래도 조금만 이상해도 검사 더 받아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괜찮다고 했는데 이상이 있다면 안 되므로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일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과거 보건소에 있을 때 건강 검진 엑스레이 판독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조금만 이상하면 재검을 하거나 주치의에게 보낸 경험이 있다. 다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병원 외래에서는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므로 조금 이상하면 다음에 보자고 하면 되는데 건강 검진은 이런 게 안 되니 다른 과로 가라고 한다. 비싼 돈 들여 건강 검진 했는데 암이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나? 그 뒷감당을 못 한다.

그리고 대단히 죄송하지만 건강 검진을 하는 의사분들 보다는 환자를 직접 보는 의사가 일반적으로 임상 경험이 많다. 같은 엑스레이를 보아도 병원 외래 소속 의사가 더 잘 본다는 뜻이다.

내시경이나  산부인과 초음파도 마찬가지다. 검진 선생님들 보다는 직접 환자 보는 선생님들이 더 잘 보고 초음파 기계도 좋다. 암튼 더 자신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특히 초음파 기계는 정확한 진단에 몹시 중요한 요소인데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비싼 병원 건강 검진에서 쓰는 기계가 좋지 않은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크기변환_장비 차이.jpg
장비빨? 그런 거 없는 거다...

또 증상을 모르고 검사 결과만 알고 있으니 놓치는 병도 있고 그렇다(어떤 검사 결과는 정상 범위여도 올라가는 추세이면 위험한 것이 있다. 검사가 정상 범위라고 안심하면 안 된다. 이럴 때 증상이 있다면 피 검사를 한 번 더 해서 어떤지 봐야 한다).

한 가지 더, 많지는 않지만 결과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직접 본인을 찾아온 환자를 자기가 직접 오더 내고 처방하면서 책임 지고 보는 것이랑 건강 검진처럼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 환자들을 불특정 다수 진료하는 게 의사 입장에서도 같은 환자일 수는 없다.

물론 건강 검진이 효과적인 분들도 있다.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 들이다. 이런 분들은 본인이 어디가 아프신지 잘 표현을 못 하는 경우도 있고 몸의 시스템이 고장이 나서 어디 이상이 있어도 증상이 없을 수 있다(염증이 심해도 열이 안 나거나 맹장염이 걸려도 배가 안 아플 수 있다. 몸이 망가지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저기 안 좋아서 포괄적으로 검사하는 것이 필요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위 내시경이나 자궁 경부암 검사처럼 정말 그 부분을 직접 보거나 채취하는 경우, 의사의 경험이 덜 중요하고 진단이 어렵지 않은 것 역시 건강 검진이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젊고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경우는 그냥 병원 외래에 오셔서 불편한 점을 이야기 하고 거기에 맞는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회사에서 공짜로 해 준다고? 공짜면 당연히 하는 거지만 거기에 돈을 더 내서 더 비싸게 검사하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없는 살림에 더 손해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건강 검진 괜히 큰 병원에서 하려고 오래 기다리지 마라. 건강 검진 기계는 똑같이 후지고 불친절하다. 오히려 작은 병원에서 검사 받고 그곳에서 이상 있다고 하면 큰 병원 가시라. 원래 건강 검진은 그러라고 생긴 것이다.


다시 액기스(extract)만 말하면,

1. 본인 나이가 젊고 특별히 아픈 데 없으면 건강 검진 하지 말고, 불안하시다면 그냥 병원으로 와서 좀 귀찮더라도 아프거나 불안한 점을 직접 이야기 해라.

2. 만일 그래도 건강 검진을 하려면 최소한의 범위만 하시라.

3. 건강 검진하러 일부러 큰 병원 찾아 다니지 마시라.

4. 의사가(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검사 결과만 보고 진단을 척하고 알 거라는 생각은 버리시라.(정확히 본인의 증상을 말씀하시라!)

체어맨.jpg
병원도 본인 상황에 따라(?) 슬기롭게 내원하시길...



raks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