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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04. 목요일

군사부장 펜더 








검도.jpg


개칼인생

 

죽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호완의 가죽이 이렇게 질척거리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호면이 갑갑하다. 벌써부터 턱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소드아트 온라인>의 키리토? 호면을 쓰고도 그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1년 가까이 호면을 썼지만, 시합에서의 시야는 언제나 과천 경마장의 경주마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딱 눈앞만 보인다) 시야가 좁아진다. 스노클링 장비를 잔뜩 짊어진 채 마라톤을 하는 느낌이랄까? 정면을 바라봐야 하는데, 시선은 이미 효인이의 검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자연스레 뒤로 주춤거리게 된다. ‘졌다?’란 말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이 말을 지우기 위해 기합을 토해낸다. 똥개의 그것처럼, 뱃심이 아닌 목에서 쥐어짜낸 기합을 뽑아내고 있다. 역효과였다. 물음표는 느낌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효인이의 선혁에 맞췄던 검 끝이 밀린다. 시나브로 중혁까지 밀려들어오는 검! 빠질까? 제칠까? 젠장 제칠 힘이라도 있어? 생각할 틈도 없이 왼발과 왼팔이 움직였다.

 

머리!!

 

고명관 10월 월례대회. 그날 난 4전 전패를 기록했다.


루피(얻어터짐)_jiniwar.jpg

 


1. 미친 관장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대한 검도회 고명관. 여기에는 미친(!?) 관장이 있다. 관장은 확실히 미쳤다. 입관하고 석 달째인가?

 

"합숙하러 갑시다"

 

뭐지? 워크샾인가? MT인가? 볕 좋은 5! 강촌 거쳐 가평으로 가는 길! 대학시절 MT 가던 생각이 떠올랐다. 12일간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에 찌든 몸을 털어보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이 생각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정확히 10분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나중에 알았다. 이곳은 검도 국가대표선수들이 찾아와 합숙을 하는 곳이라고(오월당이다. 검도펜션이라니)... 도착하자마자 호구를 쓰고,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를 정도로 죽도를 휘둘렀다. 뺄 수도 없었다. 경기북부와 강원도 쪽의 타 검도관 사람들까지 모여 합동으로 수련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검도관의 이름이 걸린 문제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들은 가끔 우리 검도관으로 찾아와 대련을 했다. 그들이 찾아오는 날은 우리 관원들도 잔뜩 긴장을 했다. 준비운동 할 때는 기본적으로 호구를 착용하지 않았지만, 타 도장 사람들이 올 때에는 기합이 잔뜩 들어가 준비운동 전에 호구를 착용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선배관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검도는 폼생폼사야! 폼에 죽고, 폼에 사는 거야! 당연히 폼 잡아야지!

 

그렇다. 폼 잡아야 한다. 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타 검도관 사람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어쨌든 일상에서 벗어나긴 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새벽 단체 훈련이란 걸 해 봤다. 이런 건 태릉선수촌에서나 하는 건 줄 알았다. 이런 일이 실제로 내 인생에서 벌어질 줄이야! 새벽부터 침을 질질 흘려야 했다. 미친 관장은 날 물 한 잔에 영혼을 팔 놈으로 만들었다(수련이 끝나고 마시는 물 한잔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생명수였다!). 신기한 건 관원들이었다. 뭐가 좋다고 우르르 달려온 걸까?(선발대로 못 온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차를 몰고 와 합류했다. 2시간 넘게 걸리는 그 길을 말이다. 와서는... 침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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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침을 흘리게 됐다. 석 달까지는 그냥저냥 봐 준(!!) 것이었다. 호구를 쓰면서부터 관장의 입에서는 독기서린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인데, 살 빼려면 헬스 하라고! 다이어트 하려고 검도 하지 마세요!"

 

(그런데도 살이 쑥쑥 빠진다. 침을 질질 흘리다 보면 알게 된다)

 

"뭐라도 하나 배워서 나갈 생각을 하세요!"

 

(뒷걸음질 치거나 어설픈 상단 자세 취하면 바로 찌르기가 들어온다. 힘 빼고 가볍게 들어오는 것이지만, 그래도 하고 숨이 막혀온다. 찌름의 그 중압감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적어도 뒷걸음질 치면 안 된다는 걸 몸으로는 배우게 된다!!)

 

"검도에는 전진 밖에 없어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딱 3개월만 호구를 써 보면 알게 된다. 검도도, 인생도...결국은 전진 밖에 없었다)

 

"우리가 선수 되려고 검 잡은 거 아니잖아요? 여기서 실업팀 선수 되고, 국가대표 되려는 사람 없죠? 그럼 이기려는 꼼수 대신에 정정당당한 검도를 합시다. 좀 늦게 가도 정도를 익히면, 절대 무너지지 않아요!"

 

(내가 보기엔 선수를 육성하려고 작정한 것 같다! 30~40대 아저씨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굴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좋다고 죽도를 휘두른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관한 동기(?)3명 있었다. 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였다(30대 중후반의 나이대였다). 이들 중 아직까지 검도관에 나오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기본 수련을 할 때에는 호구를 같이 맞추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3개월이 지나자 결국 나 혼자 밖에 남지 않았다. 가장 불성실해 보이던 내가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었다. 관장은 무신경했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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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말이죠. 상황만 된다면, 검도관을 그만 두고 싶어요. 근처 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일주일에 3번 정도 정말 배우고 싶은 학생들 모아서 합동수련을 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 수련을 하고 싶어요. 생계는... 검도관 하는 것 만큼은 안 되니까, 제가 대리운전을 뛰거나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이죠. 그러다 말년이 되면, 경기도 쪽에 검도펜션 같은 거 하나 열었으면 해요."

 

허세인 줄 알았다. 그러나 1년 가까이 생활하다 보면, 허세가 아니란 걸 몸으로 느끼게 된다(38년간 살아온 인생의 경험치에 대입해 보면 말이다). 짐작은 확신으로 변했다.

 

'아, 내가 정말... 이상한 검도관에 들어왔구나.'

 

관원들의 증언도 일치했다.

 

"화성시만 보면, 우리 검도관 성인부가 제일 활성화 됐을 거야. 그런데... 우리가 약간 아웃사이더란 느낌이지. 왕따까지는 아닌데, 우리가 좀 튀잖아?"

 

(튀긴 좀 튄다. 휴관인 일요일 날 자청해서 검도관을 찾아와 운동을 하는 관원들... 관원들도 관장에게 전염된 것이다. 5일 주야 12시간을 근무하는 용접기능공이 주말에 관원들에게 연락해서 같이 운동을 하자고 말한다. 피곤해 죽을 것 같다면서도 검을 쥐고는 대련을 요청한다. 관장은 좋다고 도장의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주말은 좀 쉬자고... 제발!!)

 

"학생부 봤냐? 초등학생들 방학되면, 일본 가서 원정(?) 뛰잖아. 선수로 키울지 안 키울지는 모르지만, 설마 부모가 검도 선수 시킬까? 초등학생만 보면, 우리 애들이 전국 탑 3 안에 들 걸? 이번에 SBS 검도왕 대회 준우승 한 애 있잖아. 말 다했지. 이 쪼그만 검도관에서 한 팀 꾸리면, 성인부는 모르겠지만, 학생부는... 전국 4강 가능할 걸?"

 

(사실이다. 학생부는 펄펄 날라 다닌다. 쪽팔리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랑 대련을 했다가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신장 차이가 50센치는 넘을 거 같은데, 끈질기게 내 손목만 물어뜯었다. ~한 놈들...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검도대회 중에서 제일 유명한 SBS 검도왕 대회에 나가 결승까지 올랐다는 것... 이 조그만 검도관의 실력이다. 잠시 학생부 운동하는 걸 봤는데, '애들을 미야모토 무사시로 만들 셈인가?'란 말이 무심결에 튀어 나왔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은 공부를 하는 애들이란 사실이다. 멀쩡하게 학교 다니고, 학원 잘 다닌다. 건강을 위해 검도관을 찾은 것이다. 그들의 실수는... 검도관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이다. 다른 검도관을 갔다면, 즐겁게 친구들과 놀면서 체력단련 수준에서 끝났을 그들의 검도 인생이 어느 순간 전국 4강을 말할 정도의 검사劍士의 인생이 된 것이다. 미친 관장은 학생부의 분위기를 성인부까지 끌고 가길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틈나는 대로 성인부들을 꼬셔서 대회출전을 유도... 종용? 아니,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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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잡았으면 이정도는 휘둘러줘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초등부는 경기도권 내에서는 무적이다. 이 무적의 팀을 만들어 낸 게 미친 관장이다(SBS 검도왕대회 준우승자를 배출해 냈다면, 말 다한 것이다. 전국에 검도관이 600여개 정도 되는데 그 중에서 2등을 배출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성인부도 무적을 만들려는 게 문제다! 난 미야모토 무사시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씨바... 내가 검도관을 잘못(!) 왔구나.'

 

1년 째 이 잘못된 선택을 고수하고 있다.

 



2. 아니오

 

졸업한 지 10여 년 만에 대학 동문회를 나갔다. 인맥을 친구로 착각하는 세상에서 대학 동문회는 어쩌면, 남자들의 허세와 푸념으로 가득 찬 하나의 연극판과 같았다. 섭취한 알코올의 양에 따라 허세는 푸념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불멸의 락커를 꿈꾸던 S형이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살고 있다는 소문... 


아니, 사실이었다(대학병원 취재 간다는 소식을 듣고, S형의 연락을 받았다). 대학가요제 본선에 오를 정도의 실력파 드러머였던 S. 후배들과 소주방을 갈 때면, 키보드나 피아노가 있는 곳을 골라서 갔던 S.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곡 하나면, 사장님의 서비스 안주와 여자 손님들의 대시를 받았던 S. 그 형이 장발머리를 자르고, 평범한 영업사원으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다른 사람 다 몰라도 그 형만은 음악의 길을 걸을 줄 알았는데...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털어 넣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했던가?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없었다. 현실과의 타협이란 이름으로 다른 껍데기를 뒤집어 쓴 모습. 아니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20대에 썼던 탈을 벗어버린 모습이었다. 민족을 말하던 단대학생회장은 기획부동산 업자가 돼 아직까지 부동산은 죽지 않았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고, 벤처 끝물에 IT업체를 차렸던 동기는 경비업체의 영업사원으로 구르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애들 교육비와 대출금을 고민하고(집이 내 집이던가? 은행에 월세주고 사는 게 우리 인생 아닌가?), 와이프가 들이미는 가계부에 고개 숙이고, 상사들의 호통 앞에 움츠러드는 평범한 남자... 아니, 가장이 돼 있었다. 알코올이 아니라면, 잃어버린 옛 과거를 떠올릴 수 없는 그저 그런 나이,

 

"남들 다 이렇게 사는데, 너 혼자 유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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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까지만 해도 호기롭게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 세상이 던져 준 가장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내겠다던 그들의 포부는 3차에 이르자 세상이란 풍파에 찢겨진, 이 시대의 불쌍한 가장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알코올에 가면이 씻겨 나가고 이제야 본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야 할까? 너나 할 거 없이 은행 대출 이자를 걱정했고, 아이들 교육 문제를 고민했으며, 불안한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했다(개중에는 주식이란 도박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테마주를 말하던 미친x도 있었지만 말이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단대회장 형에게 푸념 한자락을 던졌다.

 

"형, 어른이 된다는 게 뭘까?"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던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아니오란 말을 점점 할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


"무슨 소리야?"


"우리 졸업할 때쯤인가? 어떤 신문에서 광고 하나 한 적 있었잖아. 남들 다 '예'라고 말할 때 자기네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아..."


"너 누구한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냐? ‘말고, ‘한테 말야. 지금은 네 자식들이나 마누라 한테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 선배들 보니까... 나이 들수록 자식들이나 마누라 한테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게 되더라. 사회에서나 집에서나... 우리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거 같다. 다시 공부해서 언론고시나 볼까? 나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게?"

 

상투적인 표현 같지만, 정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아니오라고 시원하게 내뱉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내가 있고, 자식이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남자란 이름 대신 남편’, ‘아빠’,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정의 내려졌다. 남편과 가장이란 이름으로 살았던 지난 10여 년 문득 내가 남자였던 시간이 얼마나 됐던지 헤아려봤다. 불의까지는 아니어도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그 모호한 경계선 어딘가에 있는 그 무엇에 대해 고개를 돌리거나 수긍을 했던 기억. 타협이란 이름의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인정하면서부터 나는 남자로서의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아니,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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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이렇게 살아.'

 

라는 마약과도 같은 주문을 되뇌며 하루하루 남자로서의 이름을 지워나갔다. 그리고 서른여덟이 됐다. 내일 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즈음에,

 

'광석이 형... 살아서 마흔즈음에란 노래 만들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며, 옛 추억을 더듬는 날 보면서 나이 듦을 깨달았고, ‘현실이란 이름을 인정하면서 나도 이 시대의 가장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내 몸을 내던져 본 게 언제였지?'

 

그게 일이든, 삶이든, 가정이든, 그 무엇이었든지 간에 내가 내 모든 걸 걸고, 한번 부딪혀 봤던 기억이 언제였을까? 기억은 내가 대학교 졸업사진을 찍던 그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헛웃음만 나왔다. 나도 어느새 이 사회의 번듯한(?) 어른 가장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인정했다? 아니, 수긍을 했다. 이런 생각 자체가 마흔으로 넘어가는 보통 남자들의 통과의례라고 내 스스로 정리를 했다. 그리고 그 정리된 결과를 내 마음속 어딘가에 봉인하는 것이 통과의례의 마지막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 얼마 뒤 내 인생은 뒤바뀌게 됐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다가 못 볼 걸 보게 된 것이다. <고명 검도관>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승합차가 지나가는 걸 봤다.

 

'어, 여기에도 검도관이 있었네?'

 

내가 알고 있던 검도에 대한 기억이란, <배가본드>의 미야모토 무사시, <바람의 검심>의 켄신. 그리고 언제인가 채널을 돌리다 SBS 검도왕 대회에 나온 배우 최민수가 짚단베기를 하는 모습이 다였다(학교 다닐 때 검도하는 사람이 신문지 돌돌 말아 사람 패면 죽을지에 대한 잡담을 하던 기억 정도가 검도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멀어져 가는 승합차의 미등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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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한 번 해볼까?'

 

란 말이 튀어나왔다. 충동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중에 사범님의 말을 들어보니,

 

"처음에 오셨을 때... 양아친 줄 알았어요."

 

시뻘겋게 물들인 빨간색 머리(목까지 내려왔다), 트레이닝 복 바지에 목까지 늘어진 티셔츠, 삼디다스 슬리퍼(쓰레빠다)를 꿰 찬 난 영락없는 동네 양아치였다(담배 사다말고, 바로 검도관으로 달려갔다).

 

"얼마죠?"


"예?"


"관비요."


"...10만원이요."


"할게요."

 

충동적인 선택, 별 의미 없이 시작한 검도였다. ‘하다가 재미 없으면 그만두지... 보푸라기 보다 가벼운 마음이었다. ‘개칼인생의 시작이었고, 후반생의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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