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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04. 목요일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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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거고, 모르는 사람들은? 그랬어?’ 할 수도 있는 일들을 시간 순서로 나열해본다. 기본적으로 언론 보도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기자가 사실 확인을 제대로 안하고 기사를 썼다면, 일부는 확인되지 않은 사안들이 있을 수 있다. 그니까 그런 건 내 잘못 아니라고 우겨본다.

 

 

1. (보도된)사실들

 


2008 2 25일 이명박 17대 대통령 당선


다들 아는 얘기니까 넘어간다.


2008 1 15일 김만복 국정원장 사의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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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복 국정원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의 대화록 유출'을 주도한 김만복 국정원장이, 유출 사실을 고백하고 사의를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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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politics/administration/263286.html


국정원장이 북한 관련 대화록을 유출한 건 나름 역사가 깊었나보다. 유출된 내용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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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006178


2008 3 26일 김성호 국정원장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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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름대로 민주당(또는 열린우리당, 뭐 암튼 민주당) 집권기에 잘나갔던 인사라는 점에서 의외의 인사로 여겨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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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8143&code=113


(전략)‘왜 하필 김성호냐는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하필이면 직전 정권에서 잘 나가던 인사(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법무부 장관)를 국정원장으로 발탁했느냐는 것이다.(후략)

 

2008 5 2일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이것도 다들 아니까 넘어감.

 

2008년 하반기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을 불법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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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된 내용들에 따르면, 정권 비판적 컨텐츠를 웹 상에 업로드한 민간인들, 한국노총 간부, 게다가 여당 국회의원들, 나아가 박근혜 당시 의원까지 사찰했다고 전해진다. 종합적으로 추려진 건 위키가 제일 나아, 위키 링크로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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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o.wikipedia.org/wiki/%EA%B5%AD%EB%AC%B4%EC%B4%9D%EB%A6%AC%EC%8B%A4%EC%9D%98_%EB%AF%BC%EA%B0%84%EC%9D%B8_%EC%82%AC%EC%B0%B0_%EC%82%AC%EA%B1%B4#cite_note-11


2009 2 12일 원세훈 국정원장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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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은 이명박 서울시장시절 행정1부시장을 맡은 바 있고, 이명박 전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했다고 한다. TK라인이자(고대가 아니라 TKK는 아님), 일명 S라인(서울시장 당시 측근)이며, 정보 문외한이 국정원장이 됐다는 비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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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9279&code=113

 

일설에 의하면,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해임된 배경에는 김주성 기조실장과의 불화가 있었다고도 한다. 김주성 기조실장은 코오롱 출신으로 이상득 라인으로 분류된 바 있다.

 

(전략)국정원에는 이미 코오롱 출신의 김주성 기조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코오롱 출신인 이상득 의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더구나 이번 국정원장 경질 사유 중에는 김성호 전 국정원장과 김주성 기조실장의 불화설도 유력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실장이 아닌 원장을 교체하는거꾸로인사를 단행한 것을 보면 김 실장이 실세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후략)

 

원세훈은 임명 직후부터 조직 장악에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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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48839

 

원세훈 전 원장은 조직장악을 위해 6급 인사까지 챙겼다. 앞서 언급한 현직 간부는 "원세훈 원장은 6급 인사카드까지 다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을 다 외워서 인사를 챙겼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국정원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원 주사'다운 조직관리"라고 꼬집었다.

 

 

2009 5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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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명복을 빈다.

 

2009 5월 국정원 댓글여론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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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다시피, 검찰이 작성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범죄일람표'에 따르면, 2009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부터 국정원에서는 고인의 명예훼손 및 당시 정권 찬양 등의 댓글을 달고 다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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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0159


(전략)국정원이 지난 2009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다음 아고라' 정치 토론방 등에서 대대적인 추모열기를 비판하거나 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게시글을 유포했다(후략)

 

이대로 꾸준히 댓글 알바질은 최근까지 유지.


2009년 상반기 청와대의 여론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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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구 바른민주개혁시민회의장의 증언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부터 청와대 김석원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의 요청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 재산 640만달러 국고 환수 운동등을 벌였다고 증언했으며, 이 외에도 청와대 김 행정관은 다양한 이슈에 대해 보수단체의 대응을 요청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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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72585.html


윤 의장은김석원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이 청와대에 불리한 여론이 일 때마다 보수 시민단체에 부탁해 대응을 선동해왔다고 주장했다.

 

2012 12 14  김무성 의원, 부산 대선 유세에서 NLL 대화록 원본과 동일한 문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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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인용만으로 충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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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272233005&code=910402


(전략)김 의원은 이후 쪽지를 꺼내들고제가 그 내용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6분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 전 대통령이 했다는 발언을 읽어내려갔다. “제일 큰 문제는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가 사실 세계인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미국에 대한) 저항감도 갖고 있습니다.” “저항감도 갖고 있습니다라는 부분은 국가정보원이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위원들에게 기습 열람시킨 회의록 발췌본 7쪽에는 들어 있지 않다.(후략)


자 여기까지만 하자. 이후에 뭐 대선 기간에 경찰이 수사결과 중간발표하고 그러는데, 암튼 대선 이후의 사건은 다들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을테니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위키에 정말 졸라리 자세히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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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_%EA%B5%AD%EA%B0%80%EC%A0%95%EB%B3%B4%EC%9B%90_%EC%97%AC%EB%A1%A0_%EC%A1%B0%EC%9E%91_%EC%82%AC%EA%B1%B4


이 내용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 보자.



2.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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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순서로 재정리한 저 사건들을 보면, 아무래도 이명박 정권에게 있어서 2008 5월의 촛불은 졸라게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 이전의 국정원장이, 나름 큰 안보 스캔들로 해임됐음에도 불구하고, 임명 과정에서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중간 간부에 코오롱 라인 김주성 등을 박아놓고, 원장은 이전 정권 인사를 대충 앉혀놨다는 점에서, 이 정권은 정보/안보 분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촛불 이후에, 시간적으로 볼 때 촛불 때문에 준비하기라도 했다는 양, 민간인 사찰이 시작된다. 촛불 당시에 배후가 누구냐느니, 좌익집단의 선동이라느니 뭐니 말은 많았지만, 지들도 대가리에 버터 채운 게 아니면 진짜로 누가 배후에서 그 많은 시민들을 불러모았다고 결론 내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결국 인터넷과 시민의 힘이라는 걸 느꼈을 테고, 이 정권은 그러한 세계에 익숙치 않았을 거다. 그 결과로 그 세계를 스캔하기 위해 사찰 조직을 셋팅하고 대포폰 지급하고 한 건, 이미 5년을 겪은 지금 상황에선 차라리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찰은 꽤 요긴하게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계속 해댄 걸 보면.

 

이 일련의 과정에서 이명박이 정보 분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추정할 수 있겠다. 서울시장 시절 버스 개편에 공을 세운 실력파 심복 원세훈이, 다소 무리한 상황에서 국정원장으로 임명된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추측 가능하다. 어쩌면, 이전에 김성호 국정원장과 김주성 기조실장의 불화라는 게, 국정원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국내 여론에 개입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다툼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추정대로라면, 촛불 - 민간인 사찰 - 대통령의 국정원 사유화가 한 흐름이 된다. 어디까지나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는 거지, 나는 이렇게 생각 안한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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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정보 문외한 원세훈은, 실력파답게 존나게 디테일하게 조직 장악에 들어갔고,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앞선 추정대로라면, 상대적으로 40대 이하 세대에게 지지도가 높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촛불 이후이명박이 가장 빡세게 여론개입을 해야하는 사건'이었겠다. 원세훈이 장악한 국정원의 댓글 알바질이 그때부터 조직화된 것도 이 흐름에서는 자연스럽다. 오프라인에서의 보수단체 동원을 청와대에서 직접 진행한 것과도 같은 흐름이다.

 

나꼼수에서 밝혔던 바 있는, 청와대 직속 댓글 알바 조직이라던가, 역시 나꼼수 및 진보언론들에서 보도됐던 철도시설공단의댓글 알바질 공문' 사건, 그리고 이른바십알단'까지, 이명박 정권의 여론개입은 정말 꾸준했고, 일관적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대통령을 모시는 청와대, 대통령의 최측근이 수장을 맡은 국정원, 국무총리실이 직접 움직인 사찰 조직, 대통령의 숙원이었던 4대강을 진행했던 국토부의 산하 공단, 대통령의 종교인 기독교계의 일부 집단이 여론에 개입해왔다는 점. 존나 포인트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이나 정치권 인사, 나꼼수 등의 매체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그닥 친하게 보진 않았다. 오세훈의 꼬깔콘 되기 프로젝트의 과정에서 드러난, 오세훈과 여당 주요인사의 갈등구도라던가, 민간인 사찰 대상에 여당 인사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 등에서 최소한의 실마리는 찾아볼 수 있다하지만, 친이계에서는 결국 박근혜 당시 의원 이외에 다른 후보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겠고, 결국 박근혜 당시 후보가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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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다들 알다시피, 박근혜 캠프의 선거전략은 대부분 후보 본인이 주도하지 않는다고 여겨져왔다. 소위브레인'들이 있다는 얘기고,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그 브레인 중 정치적 행위의 전략적 브레인은 김무성으로 여겨진 바 있다. 무간도설 다들 기억하실 거다.

 

일련의 국정원 여론개입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이난 모름'이었다는 점을, 대통령 말쌈이니 100% 신뢰한다고 치면, 결국 정치적 브레인이었던김무성이 앎'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여기서 쓸 수 있는 소설은, 김무성이, 친이계와의친해지길 바라'의 일환으로 뭔가를 내주고원세훈 자유이용권'을 받았다는 추정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건 김무성의 단독 행동이다. 대통령은 모른댔으니까.

 

김무성은, 원세훈 자유이용권을 통해, NLL 대화록을 받아보고, 유세 현장에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단어가 들어가있는 부분을 인용하고, 이 내용은 이내 새누리당 전체의 정략적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이 말도 안 되는 소설에서 설명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얘기가 좀 미묘한데, 그래도 쫌만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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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의원의 말에 따르면, 그 대화록이 국정원에 존재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당시 회담내용 녹음파일의 녹음 상태가 안 좋아서 청와대에서의 녹취가 불가능했고, 이러한 열악한 녹음본의 녹취가 업무 특성상 빈번한 국정원에 녹취를 맡겼다. 이 과정에서, 정보를 다루는 국정원이 녹취록을 청와대 혹은 국가기록원에 전달한 후, 굳이 그 파일을 본인들은 파기하는 것 보다는, 사본(혹은 사실상 원본)을 보관해두는 게 자연스럽다.

 

새누리당이 애초에 NLL을 걸고 넘어질 때, 그들의 스탠스는 '의혹은 크게, 확인은 늦게'였다. 의혹만 확산해서 재미는 보고, 어차피 외교적 문서를 바로 일반공개 할 수 없을테니, 문재인만 괴롭히고 나머지는 어떻게든 나중에 수습하자는 전형적인 새누리표 스탠스. 여기까지는 원본이고 나발이고 별 상관이 없다.

 

문제는 '한번 더'에 있다. 국정원 여론개입 문제가 확산되자, NLL을 다시 띄운다. 그리고 연이어, 현직 국정원장이, ‘발췌본'을 깐다. 그리고 그 발췌본은 원본과 일부 표현이 다르고, 그 다른 내용은 전적으로 새누리당에 유리하다는 점을 뉴스타파에서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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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30629172805300&sp=1

 

여기서 뭔가 스텝이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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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발췌본에서 왜곡한 내용이 아주 심각한 수준이라면, 내용이 다른 원본(정확히는, 국정원이 갖고 있는 풀버젼 사본)이 공개됐을 때 새누리당에 큰 타격이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보다시피 왜곡이 그닥 심각하진 않다. ‘''로 낮추는 정도이지, 어차피 왜곡할거 '제가 포기하겠습니다' 뭐 이딴 건 없단 말이다. 결국, 풀버젼이 공개 됐든 말든, 발췌본이 어쨌든 간에, 새누리당의 대응 스탠스는 동일하다. '포기라는 단어는 없지만 사실상 포기'. 이건 애초에 원본이 공개됐어도 그대로 유지하면 됐을 스탠스다. 뭐지? 살짝 마사지해서 여론몰이가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됐어? 게다가 그거 까서 새누리당이 얻은 게 하나라도 있나? 오히려 국정원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NLL 이슈가 국정원 개입과 한몸이 돼버렸다. 뭔가 너무 어설프다.

 

그리고, 애초에 국정원장이옛다'하고 깔 수 있는 거였으면, 국가기록원에서는 왜 못까나. 누가 뭐래도 원본은 거기 있는데. 어차피사실상 포기'드립 칠거면 그냥 원본을 깠으면 되는데 말이야. 그러면 국정원 개입건이랑 완전 별개로 갈 수 있는데.


여기서 추정 가능한 사실은 2가지다.

 

1) 이명박 정권도, 박근혜 정권도, 모든 정부부처를 다 똑같이 장악하는 건 아니다. 국가기록원 원본을 못깐 건 그럴 능력이 없어서였던거다. 최소한, 국가기록원보다는 국정원이 편했던 거다.

 

2) 혹은, 남재준의 의견이 강하게 개입된 행동일 수 있다. 말 그대로, 원세훈이 싸놓은 똥 땜에 자기 밑에 애들이 좆같이 취급받는 게 짜증나서, 시발 그냥 깐다고 한 것. 남재준 현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깠다고 증언했고, 그는 전형적인 군인 스타일로 알려져있으니, 그는진짜로 명예를 위해서' 깐 거일 수 있다.

 

이 소설대로라면,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파고들어야 할 점은, 이명박-원세훈-김무성의 커넥션 형태다. 원세훈이 너무 잘난 심복이어서, 청와대랑은 상관 없이 알아서 한 일인지, 아니면 이 내용이 보고된 적은 있는지. 그리고 새누리당이 NLL 이슈를 터뜨린 배경에 원세훈과 김무성의 커넥션 있는지, 있다면 무엇을 댓가로 어떻게 진행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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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원세훈의 연결고리에, 만일 일정한 보고내용이 발견된다면 이 내용은 청와대의 직접적인 여론개입에 대한 단서로써, 민간인 사찰부터 다시 파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 아무리 새누리당이어도 국가기록원과 국정원에만 존재하는 회담록을 열람해 볼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자체작성한 문건’ 드립 따위는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드립이므로, 김무성-원세훈의 연결고리가 발견되면 이건 정권 유지를 위한 선거개입이 확실해진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른다. 아마도, 이 소설은 다 틀렸을 거고, 그러므로 저 커넥션은 실존하지 않겠지.

 

소설은 무시해도 좋다. 어차피 재미도 없으니.

 

하지만 사실들은 말 그대로 사실들이다. 그 사실들 사이의 흐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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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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