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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아래에 있는 신축 주택 단지에 터를 잡고 산 지 어언 4년. 우리 부부가 평생 번 돈 + 앞으로 5년간 벌 돈 + 부모님들이 노후자금으로 꼬불쳐놓은 돈 + 우리 아이들 돌, 백일 등등에서 받은 아이들 돈을 모두 꼴아 박아서 '마당이 있는' 집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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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좋게 된 이야기는 이미 2년 전에 연재한 바 있다. 일단 집 짓기 전에 집 짓다가 좋게된 경우를 좀 보시고 기왕 집을 지으려거든 괜찮게 해보시기를 바란다. 


자, 그럼 집을 다 지었다 치고 그 다음에는? 집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이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아 망했어요.


아직도 딴지스들이 주택에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정보를 입수, 아파트에서 주택 단지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첫 번째, 아파트 관리실이 없다


어느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에는 관리실이 있다. 간혹 관리비 꼬불치고 눈탱이 쳐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하지만, 어쨌거나 관리실에서 관리 업무를 맡아서 해주고 있다.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가게 되면 그 관리실에서 하던 것이 다 너님의 해야 할 일이 된다는 말씀.


시설 관리: 전구/형광등 등을 가는 것은 기본, 스위치가 나가거나 배선이 꼬이거나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몇 년 안 된 우리집 3로 스위치는 스파크가 일면서 단선되어 버렸다. 전기업체를 부르면 돈 십만 원은 우습게 나가기 때문에 실리콘을 개떡같이 발라 직접 고치기는 했지만, 많은 열정과 노오력을 필요로 한다.


보일러 관리: 이놈의 보일러는 1년에 한두 번은 꼭 말썽을 부린다. 동네에 있는 믿음직한 보일러 업체 연락처 하나 정도는 있어야 든든하다. 전화만 하면 금방 달려와서 봐주는 아파트 관리실은 없다. 물이 갑자기 쭐쭐 나온다거나 한다면 시청 수도과 공무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빙글빙글 전화 돌리기 당하느라 시간 버리고 전화 요금 버리고 마음도 상한다.


조경: 큰 나무 주변에 자라는 꽃나무에서는 꽃이 만발하고, 그 앞에 자라난 풀과 꽃으로 가득한 커다란 화분들. 이런 것들을 직접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이쪽 방면으로 욕심도 내고 취미도 있으면 즐겁게 지낼 수 있다. 해마다 때 되면 꽃 심고 풀 베고 텃밭도 일궈보고 진드기도 잡고 두더지와 싸우고 낙엽 치우고. 쥐라도 나오면 쎄*코도 불러보시고. 이런 소 일거리에서 소소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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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


조경의 꽃은 아무래도 잡초 제거가 아닐까? 이름을 아는 풀도 모르는 풀도 참 어마어마하게 잘 자란다. 쑥이 사람 키만큼이나 크게 자라는 풀이라는 걸 예전에는 왜 몰랐지? 며칠 전에 마당에서 쑥 뽑다가 땅벌에게 쏘였다. 내 손이 그렇게 커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겨울이면 눈이 내린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환경: 모든 쓰레기 처리도 알아서 해야 하는데, 이 점에서는 오히려 주택이 더 편하다. 배출일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로 제한하는 아파트보다 덜 까다롭기 때문. 계단청소 해주시는 청소 노동자분께서 해주시던 작업도 이제는 당신의 몫.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날 쓰레기봉투를 내어놓으려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대기 중인 바퀴벌레 세 마리가 쪼르르 집 안으로 들어가서 황당해했던 기억이 난다. 집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많은 종류의 생명체들과의 한 판 승부도 벌일 수 있어서 너님은 좋겠다.


보안: 경비 노동자가 없다. 다시 말해 택배 받아줄 사람도 없다. 내가 자거나 집을 비우는 동안 우리 집을 지켜줄 사람은 없다(사실 경비실이 있다고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살아보니 보안 걱정은 덜게 되었지만, 처음 왔을 때 불안감이 상당했었다. 택배를 집 앞에 둬도 사라지거나 한 적은 아직까지는 없다. CCTV를 설치했었는데, 범죄예방 효과도 없다고 하고, 검거 효과도 없다고 하고, 전기 요금은 전기 요금대로 나오고 해서 현재는 내가 켜고 싶은 날에만 켜고 있다. 그런데 켜고 싶은 날이 별로 없다. 마당이 있으니 집 지키는 개를 키우려고 생각하고 무작정 키우는 사람도 제법 있다. 아침 저녁으로 산책시켜주고 자주 목욕시켜줄 자신 없으면 엄한 개를 데려와서 묶어놓고 괴롭히지 말자. 마당이 뭐 무지 넓다면 부럽습니다. 라고 썼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관리할 마당이 늘어난다고?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장기 수선: 집 앞 도로가 지자체 소유가 아니라면 도로 관리도 여러분의 몫. 아스콘 한 번 깔아보실래예? 집에 나무로 만든 갑판(일명 데크)라도 있다면 2년에 한 번 정도 도색도 해주어야 하겠다. 물론, 고소득 연봉자라 이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겠다면 이 나라에서 돈으로 안 되는 것이 뭐시 있겠는가.


대신 이런 모든 일을 알아서 하는 대신 일반관리비와 장기수선충당금이라는 명목으로 매월 지출하는 돈이 없게 된다. 매월 일정액의 관리비를 지불는 것과 알아서 해결하는 것.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



두 번째: 사람과 사람


아파트에서 이웃과 주로 만나는 공간은 엘리베이터나 쓰레기장이다. 엘리베이터 도착했는데 안 내리고 이야기하고 있기가 쉽지 않다. 음식물 쓰레기 국물 뚝뚝 떨어지는데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다. 재활용 쓰레기 종류별로 낑낑거리고 끌고 가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아파트에서 살면 아이들 나이에 맞추어서 이웃을 만나기는 좋다. 미혼과 아이 없는 부부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이가 있으면 아이를 징검다리로 서로 말 걸기가 정말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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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개월이에요? "로 시작하면 십중팔구 대화를 시작해낼 수 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이야기를 시도하면 100%다.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고 육아 팁을 나누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금방 친해질 수 있다. 같은 동이면 아이들끼리 교류를 시작할 수도 있고 아이들 궁합만 잘 맞으면 어른들도 교류를 해야만 한다. 그 편이 훨~씬 아이보기 편하고 좋으니까.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같은 문화센터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저녁 초대하고, 주말에 같이 놀이터나 놀이공원이나 키즈카페 같은 곳으로 돌아다니면서 만나면서 서로의 의존도는 높아지게 된다. 두 집이서 이렇게 지내면 단짝이고 세 집 이상이면 육아공동체가 된다. 육아 문화가 실종되고 그 자리에 자본의 이름으로 각종 업체들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기 때문에 맨날 모이면 돈 쓰러 다녀야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파트라고 맨날 층간 소음 때문에 야구빠따로 위협하는 일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야그.


주택에 살게 되면 아파트 보다는 확실히 더 자주 이웃 사람들과 얼굴을 보게 되더라. 아무래도, 주택에 산다는 사실이 아파트에 살 때와는 다른 마음 가짐을 가지게 하나보다. 주로 만나는 장소가 골목이다 보니 멈춰 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다. 엘리베이터처럼 폐쇄된 공간도 아니고, 재활용 장소처럼 지저분한 곳도 아니고. 두세 집이 골목에서 얘기하다 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더 모여서 와글와글 이야기하게 될 경우도 많다. 일단, 아파트처럼 누가 몇 층에 사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은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 서로 얼굴이랑 어느 집에 사는지 정도는 안다. 그래서 굳이 애들 얘기가 아니더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 5세 이상의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두면 동네에서 논다. 엄마아빠한테 들러붙어서 징징거리지 않는다. 자전거도 타고 공놀이도 하고 뜀박질도 하면서 논다. 노는 것처럼 보인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논다. 주로 술 마시고 떠들면서 논다.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



세 번째: 우리 아이들


'아이들이 마당에서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집에서 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응8에 나오는 동네 아줌씨들 처럼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돌봐주는 동네에서 자랐으면 좋겠다, 응8에 나온 바둑천재네 집처럼 남의 집에도 우리 집에도 동네 아이들이 몰려다니면서 놀 수 있는 동네면 좋겠다.'


공동주택에서 단독주택으로 주거형태를 바꾸어보려는 이유 중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집을 산다는 것은 몇억이 들어가는 거대 프로젝트다. 외제차 한 대 굴리는 것보다 더 큰 결정인 거다. 그런데, 집을 구매한다는 것은 그 건물을 구매하는 것이지 동네의 문화 인프라까지 구매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해, 주택단지에 내 아이를 던져놓으면 지금의 40~50대가 어린 시절에 놀았던 것처럼 아이들이 놀면서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귀댁의 자녀가 마당의 햇볕 따스한 그네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마인크래프트하는 모습을 보게 될 확률이 훠어얼씬 높다.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것도 맞고 동네 어른들이 한 마디라도 말 더 걸어주는 것은 맞지만 아이들이 잘 노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특히나 어른들끼리 모여서 술 퍼마시고 앉았을 무렵 아이들은 집단적으로 방치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 문화는 아이들을 떼로 뭉쳐놓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수 십년 전에 단절된 공동체 문화를 우리 아이들에게서 되살리려면 물리적 공간을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옮겨주는 것만으로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유리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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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읽으시는 분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싶다.


'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아이들끼리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


어느 쪽이 더 나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읽으시는 분이 얼굴도 모르는 미래의 이웃과 술 한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소중한 당신의 아이를 방치하는 데에 몇억을 주고 주택이라는 물건을 구매하려 한다면, 신중히 생각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어떠신가...?



네 번째: 어른들의 관계


아파트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도 있고, 그것이 그 사람의 흠결은 아니다. 좋은 관계를 맺으면 좋고 아니면 본전. 


층간소음이나 담배 연기 올라와요, 같은 문제로 분쟁이 생기면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겠지만, 그런 일이야 주택에서도 마찬가지로 있다. 토지경계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수도 있고, 옆집 피아노 소리에 신경이 곤두설 수도 있고, 주말마다 마당에서 벌어지는 술판에 시끄러울 수도 있고, 애들이 마당에서 밤에 우당탕 거리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이웃 방문객이 우리 집 주차장을 막아놓을 수도 있고, 이웃집 개가 마당에 똥 싸놓고 갈 수도 있고... 일이 날라치면 아파트나 주택이나 매한가지다.


주택에선 아파트보다는 관계를 맺지 않고 살고 싶어도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다. 아파트처럼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리고 각종 뒷담화, 억측, 뜬소문, 확대재생산 등에 의한 가슴앓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동네에서 왕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아파트에서는 모두가 파편화되어있는 상태로 출발하기 때문에 특별히 다수로부터 실질적인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공격을 당하는 것이 아니면 그냥 출발선에 있는 상태가 되지만, 주택에서는 특별히 공격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도 소외당하는 것만 해도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아파트와는 다르게 어느 집 마당에서 누가 모여 있는지 다 보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당신은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섭섭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나 당신도 함께하고 싶은 자리라면.


어떠신가?



다섯 번째 질문 : 마을 자치


아파트에는 관리규약과 아파트관리위원회, 부녀회, 노인회 등의 기구가 있고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정기회의를 통해 안건을 처리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권이 개입하고 담합하고 비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하면 그 유명한 난방비 0원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주택단지를 만들었다. 마을 자치규약을 만들어볼까 말까에 대한 논의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의 집에서는 논쟁을 원치 않는다. 새로 생기는 많은 주택단지에서 초창기에 전두환 같은 사람이 마을 자치 일을 끌고 나가다 쌓인 불만의 폭발로 쿠가 일어나고 제2의 전두환이 나오거나 무정부 상태가 되거나 하는 과정을 거친다. 전두환을 귀화시켜 마을 공동체에 귀속시키고 이후 마을공동체는 직접민주주의의 꽃을 피워 모든 세대가 공동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여 해결해 나아가는 알흠다운 일이 일어났다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하기사,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우리가 평생 학교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민주적인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당신이 무언가 해보자고 제안한다면 상당한 시간자원을 지불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닫으며


주택 단지에 살면서 마을 공동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이런 시도들을 굳이 주택단지에서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파트에서도, 빌라에서도 할 수 있었는데.


내가 원했던 동네는 동네 아이들이 평화롭게 놀이하면서 서로를 돌보고 특히나 약자를 돌아볼 줄 아는 그런 동네였고.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다시 아이들과 놀면서 자라나는 그런 곳. 그런 곳이 되어 가는 과정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단독주택이 아니라 뜻을 함께할 사람이라는 것을 몇 년 전에는 알지 못했었다.


육아라는 공동의 의제로 접근하면 풀리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바쁘고 생각보다 의욕이 없고 생각보다 육아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다름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쳐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러는 사이 4살이었던 아이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 다행인 것은 아직도 내 아이에게는 늦지 않은 때인 것 같다는 사실이다. 아직 7살이니 말이다. 또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실패하면 또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볼 수 있겠다.


그래서 아이와 마을에 대해 푸닥거리를 하다가 잡게 된 동아줄, 평화샘 프로젝트에 대해 마을과 육아에 대해 고민하는 딴지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 8월부터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터라 쉽지는 않겠지만서도, 서두르지 않고 이야기해 보련다. 너무 많은 기대는 마시라. 결론은 놀라는 얘기다. 아니, 놀아야 된다는 얘기다.






분노하셈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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