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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쓰기 싫은 서평

2013-07-1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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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7. 15. 월요일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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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싫은 서평


언제부터인가 취업을 정점으로 한 ‘본격자기인생’을 앞두고 있는 이들을 철저하게 타자화시킨 뒤 그들을 향한 위로, 힐링 같은 컨셉의 쇼와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사자들이 자연스레 '타자화'되었으니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무대가 아니라 달랑 객석이었다. 그렇게 공석이 된 무대의 주인공 자리엔 난관에 봉착해있는 당사자가 아닌 난관과는 무관한, 혹은 난관을 제공한 선배라 불리우는 세대들이 '멘토'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주인공이 된 선배들은 타자가 된 실제 주인공들에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냐’라고 쿨하게 말했고, 당사자들이 '이미 세상은 성적 순이 되어 버렸다'고 분노하자 고작 위로랍시고 내놓는 것들은 '이겨내라'는 뜬금없는 격려나 수십 년 전의 개발, 성장위주 경제정책으로 대변되던 시절의 거침없는 무용담이나 경험담이었다.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순'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 발전만 지향하는 사회가 취해왔던 제법 오래된 전통이다.

 

 

취업이 이슈가 된 것. 그러니까 ‘어디로 갈 것이냐’는 좌표, 즉 선택의 가치가 아닌 '취업'을 하느냐 못하느냐라는 본질적의 의미가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IMF 직후다. 대학이라는 자유와 낭만의 공간은 순식간에 거대한 취업 학원이 되었고, 취업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 자체의 문제가 되었다. 취업 자체가 정체절명의 문제가 되면서부터 위기에 봉착한 이들의 구조의 요청들은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조요청에 대해 선배들은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하거나, 혹은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내용들로 화답하는 대신 앞서 말했듯 무용담과 거침없는 격려 등으로 대신했다. 게다가 IMF 이후 생존의 문제가 된 '취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거대한 '위기'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훈계와 조언들만 넘쳐났다. 위기에 질려버린 청년들은 서슴없이 선배들을 향해 꼰대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줄 선배를 요구했으나 부름을 받은 선배들은 자신의 이야기만 꺼내 들고 만 것이다. 어찌보면 죄다 사기꾼들인 거다.

 

 

안내(案內)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내용을 소개하여 알려줌. 또는 그런 일'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바로 '사전적 의미의 안내'를 지향하는, 아니 그냥 대놓고 ‘안내’에만 몰두하는 '본격안내서'다. 선배랍시고 정작 취업의 당사자들을 위한 실질적 편의보다는 자신의 무용담을 그럴싸하게 컨버팅하는 그러한 오만 혹은 사기는 없다. 이 '안내서'는 취업과, 취업을 통한 인생의 고민에 대해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해라'며 섣불리 격려하는 대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내가 어떤 놈'인지 따져볼 단초를 제공한다. 취업이라는 이름을 단 그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안내서'의 이름에 걸맞는 강력한 미덕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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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성공적인 취업=스펙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견고하게 유지되어 왔고. 근래 들어 더욱 확고해졌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만으로 순식간에 치환시키는 강력한 스토리텔링. 하지만 스펙 쌓기에만 '몰빵' 하기에 앞서 신입보다 경력을 우선시하는 근래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사실 '직장'이라는 조직이 스펙이라는 수치로 서열화된 결과 뿐 아니라 업무에 대한 이해와 조직을 구성하고 하나의 구성으로서 관계를 대하는 태도와 이 둘을 바탕으로 하는 실제의 '업무 능력'을 더욱 중요시 하고 있다는 또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이 '안내서'의 기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더욱 유효하고 화끈하게 작동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을 넘어서 자신이 취업하려고 하는 직장(조직)에 대한 영역에까지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이다. 신입사원(당사자)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속하게 될 부서와 협업하게 될 타 부서, 함께 일하게 될 다양한 동료, 거기서 비롯되는 갈등, 직급에 대한 친절한 분류와 그를 바탕으로 한 사내정치까지 대개의 선배들이 지살 깎을까 '미화'로 컨버팅 해 버리고 마는 그 많은 진짜'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안내서'는 이미 취업에 성공해 실전에 배치된 선배들이 실전투입 대기 중인 후배들에게 마땅히 추천해야 할 근사한 매뉴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학원에서 식은땀 흘려가며 얻은 토익 점수(스펙)보다 직장이라는 조직에 대한 명쾌한 이해를 바탕으로 주둥이로 튀어나온 몇몇 문장이 눈앞의 인사담당자의 귀굿녕에 꽂혀 동공이 확대되는 장면을... 이 '안내서'가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친절하고 위트 있게 안내하고 있다는 데 한 표, 아니 부정투표만 가능하다면 몇 표 던지고 싶다.

 

 

 

어쩌면 취업에 이르는 것에도 모자라 취업 이후의 실전까지 안내하는 이 '안내서'는 여전히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여념인, 실패와 좌절을 반복하는, 아니 오히려 그런 기회조차 변변히 제공받지 못하는 이들에겐 여전히 은하계 넘어 그 어딘가 존재하는 판타지일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취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포기하거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막연한 훈계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저자 춘심애비(최영재)가 ‘니덜은 좋겠다’고 밝힌 것처럼, 취업 성공으로 향하는 그 험난한 여정에 이쯤 되는 ‘안내서’ 한 권 손에 들려 주는 강매... 아니, 친절한 선배의 조언인 것이다.

 

 

굳이 서평 앞에 ‘쓰기 싫은’이라 들이댄 것은 아마도 저자의 말처럼 ‘니덜은 좋겠다’는 (니덜에 대한)질투라기 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의뢰를 받았던 본인은 얼마 가지 않아 엎어진 데 반해 춘심애비(최영재)는 매우 그럴싸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에서 비롯된 복통이라 게 정확하겠다. 하지만 복통의 와중에도‘니덜은 좋겠다’는 저자의 끝말엔 동의를 넘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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