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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열린 OPEC 알제리 회의에서 석유감산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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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번회의는 정식 OPEC회의도 아닌 비공식 회의인데다(알제리에서 열린 국제에너지회의참가를 목적으로 열린 비공식 회의로, 정식회의는 11월 비엔나에서 개최된다), 제일 중요한 협상국인 사우디와 이란 모두가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낮게 본다’고 밝혔기 때문에(결렬을 대비한 걸 수도 있다), 시장에서는 어떠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올해 앞서 두 차례 열린 OPEC회의에서 석유생산량 동결에도 합의를 못한 상태라, 동결을 넘어선 감산 조치는 시장에 큰 서프라이즈로 작용했다. 자그마치 8년 만에 이뤄진 감산 뉴스에 원유시장은 크게 상승했고, 브렌트유 가격은 약 6%가량 상승했다.


한 번 팩트를 짚자. 이번 알제리 회의는 정식 OPEC회의가 아니다. 그냥 앞으로 OPEC회원국에서 나오는 생산량을 32.5에서 33백만 배럴수준으로 낮추자는 결론에만 동의한 것이다. 당연히 구속력을 갖지 않을 뿐더러, 11월 정식회의에서 성명채택이 불발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감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이 협의안이 정식으로 채택되기 위해선 각 회원국마다 원유생산 최대할당량을 정해야 하는데, 누가 지금보다 덜 생산하고, 누구는 더 생산할지와 같은 매우 중요한 알맹이는 쏙 빠졌다.


“우리 앞으로 석유생산은 좀 줄이면 좋지 않을까?”


라는 합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OPEC에서는 ‘조만간 구체적인 합의안을 발표하겠다’고 썰을 풀었지만, 여전히 물음표가 많다. 또한 현재 지구상에서 원유를 가장 많이 뽑아내는 러시아 같은 비OPEC 회원국은 이 합의에서 제외됐다. OPEC이 시장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도 옛말이고, 이제는 OPEC 회원국 생산량을 다 합쳐봐야 전 세계 원유시장의 3분의 1이다. 얘들이 찔끔 줄여봐야 요즘 미친 듯이 원유 뽑아내는 러시아가 생산량을 늘려버리면 원유공급과잉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이 뉴스 하나로 원유 값이 6%가량 상승한 것은 시장의 과잉반응일지 모르지만, 이번 합의는 앞으로 유가 상승에 꽤 유의미한 의미를 가진다. OPEC 회원국들이 2014년 이래 계속해서 자국의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무제한 경쟁을 해오다가(무제한 생산경쟁으로 국제유가는 폭락했다), 마침내 작은 합의나마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합의란 게 한번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고 신뢰가 형성되면 얼마든지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럼 그동안 왜 그렇게 합의를 하기가 어려웠던 걸까?


산유국들이 그동안 점유율 싸움을 해왔기 때문이다. 2012년을 기점으로 국제유가는 100불을 웃도는 좋은 시절을 보냈고, 이러한 높은 유가의 자극을 받은 다국적 에너지기업들은 원유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이러한 막대한 투자는 미국의 쉐일가스로 대변되는 기술의 혁신을 탄생시켜, 과거보다 더 효율적으로, 많은 원유를 생산할 수 있게 했다. 또 캐나다 오일샌드, 브라질 딥워터 오일에서 오지에 이르기까지, 과거엔 경제성이 맞지 않은 지역에까지 탐사를 단행해서 원유생산량을 늘렸다(이 시기에 해양플랜트 역시 각광을 받았다).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량이 늘어나는 마당에 시장의 일부를 차지하는 OPEC 회원국들이 자체적으로 생산량을 줄여서 원유가격을 지탱해봐야 에너지기업 좋은 장사를 하는 셈이었으니, 2014년을 기점으로 산유국들은 무제한 원유생산에 돌입한다. 이때부터 과잉공급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유가가 엄청나게 폭락한다. 산유국들이 이 폭락을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언제 에너지 기업들이 다시 생산을 재개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산유국 한 곳이 원유생산량을 줄여봤자 시장 전체의 과잉공급문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냥 더 많이 생산을 해서 유가 하락에 따른 소득감소를 물량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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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의 원유 생산량이 해가 더할 수록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OPEC 대 비OPEC 생산자들의 원유생산 치킨게임은 올 초에 정점을 찍었고(유가가 27불까지 떨어졌다. 고점대비 반의반토막), 훨씬 비싼 생산단가를 지불해야 하는 국제에너지기업들의 원유 감산으로 서서히 끝나는 듯 했다. 에너지기업들은 원유생산에 필수적인 탐사, 생산설비투자 같은 비용을 40%이상 후려치고 주식을 발행하는 식으로 눈물을 삼키며 몸집을 줄여나갔고, 그 결과 올해 새로이 발견된 유전량은 1952년 이래 최소가 되었다.


초봉이 10만 불이 넘어가던 석유공학자 중 상당수가 직업을 잃었고, 셰일샌드 붐으로 일어났던 미 중서부 경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석유 유전 평균 소진율이 9%인 걸 감안할 때(매년 9%씩 유전의 매장량은 감소하기 때문에 에너지기업들은 신규유전을 매년 발견해야 했다), 유가가 다시 반등하더라도 에너지기업들의 원유생산량을 예년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흩어진 기술진을 다시 모으고, 탐사선을 보내고, 생산재가동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경쟁자인 에너지기업들이 빈사상태에 빠졌다고 가정하면, 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OPEC 회원국과 러시아는 공급량을 서서히 줄여서 유가를 띄우기만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시바, 이게 맘처럼 안 됐다. OPEC내에서 앙숙관계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싸웠기 때문이다. IS문제부터 예멘사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중동 내 문제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양국은 석유감산 문제에서도 충돌했다.


OPEC회의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이 원유생산량 동결 안 하면 나도 동결 안 함”하고 꼬장을 부렸다. 이걸 ‘꼬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사우디는 이미 거의 역대급으로 원유를 많이 뽑아내고 있었다. 반면 이란은 최근 미국의 제재대상국가에서 벗어나, 거의 망해있던 자국 내 원유생산 능력을 제재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생산 동결은 이란에게 있어서는 일방적인 감산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사우디도 이런 이란의 상황을 뻔히 알고 있었으리라. 안 먹힐 걸 알면서도 회담에서 번번이 이란핑계를 대면서 원유생산 동결에 파토를 냈다. 아마도 너무 빨리 감산에 응했다가 국제유가가 폭등해서 미국에너지 기업들이 재빨리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실리적인 계산과, 국제정치적으로 대립적인 이란을 경제적으로 견제하려는 명분을 목적으로 한 계산이 깔려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거나 이란과 사우디의 갈등으로 인해 OPEC은 지금까지 아무런 합의도 못 내놓는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고, 국제유가는 40불에서 45불 사이를 오갔다.
 

그런데 이번 알제리 회담을 전후로 하여 사우디가 입장을 바꿨다. 이란한테 딜을 친 거다.


“이란이 동결하면, 우린 감산해줄게!”


엄청 큰 차이다. 사우디가 이란의 동결에 대한 반대급부를 제공해줬으며, 이란의 현 상황을 인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용의를 밝힌 것이다. 이란입장에서도 이 딜은 크게 나쁠 게 없다. 이미 올 초부터 생산량을 미친 듯이 끌어올려놓은 상태라 지금 와서 동결해봤자 크게 손해볼 일이 없다. 협상을 해볼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런 입장변화에는 사우디의 집안사정이 있다. 재정수입을 대부분 원유에 의지하는 탓에 2년 넘게 지속돼 온 저유가는 사우디 경제에 재앙이었다. 공무원들 월급을 15% 이상 깎는데도 재정적자는 10%가 넘어갔고, 외환보유고도 555조 가량 감소했다. OPEC내에서 대빵 노릇을 하는 사우디가 이럴진대, 다른 산유국들의 집안 살림은 오죽하겠는가. 베네수엘라를 비롯, 작은 산유국들일수록 지금과 같은 저유가상황은 재정에 심각한 압박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제재를 갓 벗어난 상태인 이란은 지금 같은 저유가 상황이 익숙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모든 자국의 경제문제를 미국의 제재 탓으로 돌릴 수 없는데다 내년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주도권을 이어나가려면 유가가 주머니를 넉넉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번 합의에서는 이란은 발표에서 감산 및 동결에 제외되는 특혜를 받았는데, 아마 생산을 늘리더라도 사우디의 체면을 구길 정도로 늘리지는 않으리라.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이건 그냥 합의라 언제든 엎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엎을 시 유가 폭락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할 뿐이다. 원유가격에 민감한 이들 산유국이 뒷감당을 할 수 있을까?


이제 공은 러시아로 넘어갔다. 저유가 정국에서 원유생산량을 가장 많이 끌어올리고, 시장점유율을 가장 끌어올린 러시아는 OPEC합의에 동참하여(러시아는 비OPEC회원국이지만, 기름을 하도 많이 뽑아서 OPEC회의 같은 거 하면 꼭 한 마디 하고 그런다) 유가 끌어올리기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파토를 낼까? 이란 사우디 합의에 러시아가 다리를 놓았다는 뉴스를 보면 러시아도 합의에 동참할 듯 싶지만, 뒷통수 때릴 수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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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11월 OPEC회의에 주의를 기울이자.





씻퐈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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