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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7. 수요일

카인






서두를 궁리할 필요가 없는 글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고민하지 않고 로이킴을 들려주겠다.





매우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로이킴의 히트곡 <봄봄봄>이 어쿠스틱 레인의 <Love Is Canon>에서 코드를 가져왔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특히나 우쿨렐레 버전과는 너무도 흡사하다고. 물론 로이킴과 CJ E&M에서는 부정한다. 똑같이 <Canon>을 모티브로 만들었기 때문에 비슷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김태원의 "선수들은 다 안다" 는 말마따나, 선수들은 다 안다. 로이킴의 <봄봄봄>은 표절이다. 그리고, 표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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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리.





재밌는 건 한국에서의 실제적인 음악 표절 판정의 근거가 여론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로이킴과 CJ E&M이 부정해도 대중들은 이걸 표절로 기억한다. 소수의 극성 팬들만 황우석 지지자처럼 남아 아니라고 아니라고 몸부림친다. 그 반대편에서는 표절로 뜨다니 이런 개자식 개자식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이에서 로이킴 뿐만 아니라, 표절로 의심 받는 사람들의 사례는 사회적 논의로 발전되지 못하고 소모 되다가 사라진다.


이 상황, 뭔가가 이상하다.


사회엔 법이라는 도구가 있다.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상황 해소를 위한 판단 기준을 정리해놓은 도구다. 이해 당사자들끼리의 합의가 불가능하고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면, 법의 힘을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음악 표절이라는 사회적 갈등 상황을 판정할 때는 법의 얘기가 등장하지 않고 음악적인 분석이나 대중의 여론만 등장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표절 관련 법, 즉 저작권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표절 관련 규정에서 기준을 모호하게 제시한다. 예전에는 2소절, 즉 8마디 이상이 같으면 표절이라고 기준을 정했는데 이러자 애매한 상황이 발생했다. 4마디나 6마디만 베낀다거나 정말 우연히 비슷했다거나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이 8마디의 동일성이 무엇에 적용되는 건지 - 즉 리듬 파트인지 멜로디 파트인지 코드인지 악기 구성인지 사운드 믹싱인지의 경계조차도 모호했던 것이다. 게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악보로 만들 수 없는 음악도 생기고, 멜로디가 없는 음악도 생겼다. 멜로디로 치환할 수 없는 랩의 플로우를 베낀다면 그건 어떻게 되는 건지도 궁금해진다.


그래서 음악 관련해서는 법이 바뀌었다. 어떻게? 원작자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진짜다. 덕분에 G-Dragon의 [Heartbreaker]는 원작자 Flo Rida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해주어 혐의에서 탈출했다.


그런데 원작자가 Flo Rida 같은 대인배가 아니라 배알이 꼬인 인간말종이라서, 표절이 아닌데 표절 의심자 망해보라고 '표절 맞음 ㅇㅇ' 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해 당사자인 원작자가 기본적인 판단 준거를 제공한다는 것은 법에 필수적인 객관성을 박살내는 일이다.


법이 이 꼬라지라도 괜찮았던 이유는, 표절심의단이 사라진 이후로는 음악에 있어서의 표절 판정 역할이 법에까지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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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는 로이킴의 본명.

물론 혼자 다 한 것은 아니라며 함께 작업한 다른 작곡/편곡자의 이름을 저작권자 정보에 병기하면서

빠져나갈 다른 구멍도 만들어놨다.

또한 CJ E&M은 어쿠스틱 레인이 <Love Is Canon>의 저작권 등록을

<봄봄봄>의 저작권 등록 이후에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법적으로'는 타당한 주장이다.


결국 저작권법이 판단해야 하는 것, 그리고 사실상 판단하지 않고 있는 것은 '실질적 유사성'이다. 실제로 얼마나 유사한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음악적인 분석이 필요하며, 따라서 전문가가 호출되어야 한다. 현재 법이 호출하라고 하는 전문가는 원작자일 뿐이지만, 사실 이 경우에도 판별하는 전문가들의 실제 전문성을 또 판별해야 한다. 게다가 전문가들 중에서도 이해 당사자와 관계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중립성도 판단해야 한다. 졸라 골치 아프다.


결국 남는 건 여론 밖에 없다. 그리고 첨예한 논란에 대해서, 오피니언 리더가 없는 여론은 극단적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앞에서 말한 극성 팬의 옹호론과 안티의 모두까긔가 맞붙고서는 각자의 결론만을 남겨놓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 싸움에서 논리적 근거가 무시받는 것은 아니다. 싸움의 도구로 활용하는 게 (진짜든 가짜든) 전문가의 음악적 분석이다. 그러나 분석은 거들 뿐, 여론 싸움은 매우 치열한 감정 싸움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의문점이 생긴다. 극성 팬들이야 해당 뮤지션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니 옹호론을 펼 수 있다. 그럼 열심히 까고 있는 그들은, 원래부터 안티였을까? 댓글란 등등을 보면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표절로 의심만 되면 꽤나 많은 불특정 다수가 혀를 차며 진저리를 친다. 그러면서 실제로 표절이든 아니면 그냥 비슷한 경우든, 일단 '표절이 된다'. 법적 기준도 음악적 분석도 이 거대한 표절 딱지 앞에선 무시 받거나 도구로 격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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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위키 미러의 '표절' 항목에 있는 목록.

한 화면에 다 잡을 수가 없어서 메모장에 복사해봐도 꽤 길다.

표절천국이라 이럴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의심과 의심을 확증해버린 사례가

꽤 많다는 의미도 될 수가 있다.


단순한 유사성을 실질적 유사성으로 확증하는 과정을 대강 넘겨버리고 낙인을 찍으려는 심리는 분노다. 여론의 생산자인 대중은 표절에 분노한다.






표절 논란은 당연하지만 히트곡에 걸린다. 그렇다면 대중이 표절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표절로 히트했기 때문'이 된다.


저작권은 근대 이후에 툭 튀어나온 개념이고, 더 이상 사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게 된 예술 창작자들에게 배타적인 권리를 보장해주어 산업 구조 속으로 들어와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기획이었다. 다른 경제적 방법이 마련되지 않은 이상은 저작권에 의한 수입은 예술 창작자들에게 경제력의 1차 근원이다. 따라서 대중은 부당한 절도로 돈을 번 것에 화를 내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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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역시 연예인이 만만해서 그렇다. 사회적 책임이 더한 진짜 공인들에 대해서는 그런 잣대를 쉽게 들이대지 않는 이노무 사회." 라며 사회적 책임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표절 논란이 왜 자꾸 루머로 유포되는지 알아? 그게 다 정치권의 물타기야." 라며 음모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단 여기선 그 얘기는 빼자. 난 "사회가 워낙 불의하다 보니 이런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냐." 는 해묵은 사회적 분석을 한 후에 예민한 반응, 즉 분노에 대해 고민하려 한다.


이 분노는 정당해 보이지만, 때때로는 혹은 상당수는 애먼 곳에 화풀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질적 유사성을 판별하는 데에는, 여론의 귀보다는 중립적인 전문가 다수의 분석이 훨씬 정확하고, 여론의 귀는 감정에 휘둘리거나 "얘를 까고 싶어!" 창작 기법에 대해 잘 모르거나 "패스티쉬? 페티쉬 아냐? 샘플링은 도둑질이지~" 그 기법들이 기원한 미학 이론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판별로 옥석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김태원의 "선수는 다 알아봐. 모른 척 하는 거지."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선수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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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투 올드 힙합 키드]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전직 뮤지션의 분류. 꽤 괜찮으니 이걸 사용해보자.

로이킴의 경우엔 감사하게도 옹호의 여지가 거의 없다.

진짜 전문가도, 가짜 전문가도, 일반 대중도 한 목소리로 말한다. "쟤를 매우 쳐라!"


분노는 다소 무분별해진다. 때문에 표절 의심을 받은 케이스 중 상당수는 표절이라 보기 힘들다. 3-2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건 창작 기법의 일종인데, 어느 분야에서는 패스티쉬라고 부르고, 어느 분야에서는 꼴라쥬라고 부르고, 음악에서는 대충 레퍼런스라고도 부른다. 여기 레퍼런스 작법에 관한 내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 작곡을 하는 비트메이커 동생과 함께 작업을 할 때였다. 난 당장 랩을 할 곡이 딱히 없어서 좋아하던 곡에 맞춰서 랩을 짰고, 그걸 갖고 가서 '이 랩이 아까우니 이걸로 곡을 만들고 싶다. 곡 좀 줘.'라고 졸라대었다. 그러자 그 녀석은 내가 랩을 짤 때 쓴 곡을 작업창에 깔더니, 그 곡과 똑같은 식으로 드럼을 찍기 시작했다. 몇 번씩이나 비교해 들으면서 드럼이 똑같아지자, 이번엔 화성만 같고 음은 약간 다른 베이스 라인을 넣었다. 그리고 원곡에서 쓰인 악기가 어떤 부분에서 나오는지를 캐치한 다음 유사한 악기를 사용해 약간 다른 연주를 만들어 넣었다. 잠시 후 그는 잠깐 궁리를 하더니, "이 곡보단 저 곡의 소스가 더 낫겠네요." 하더니 리듬과 분위기가 유사한 다른 곡의 연주를 모방해 다시 짜넣는다. 그 녀석이 이쯤에서 작업을 끝냈다면 3-1의 케이스에 그치고 결국 표절곡이 되었을 것이다. 두 개의 곡을 원곡으로 해 만든 모방작의 뼈대가 완성되자, 작업창 채널에 들어가 있던 원곡을 지워버린다.


진짜 작업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이제 비교할 원곡은 없고 자의적인 스타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드럼 진행의 뼈대는 놔두고 소소한 부분을 고쳐, 같은 리듬이나 조금 다른 진행으로 만들었다. 베이스는 너무 단순하게 들려, 음을 좀 더 많이 집어넣고 악기도 바꿔 더 경쾌해지게 했다. 리듬 위에 올려진 화성부 연주 또한 베이스가 화려해진만큼 이것저것을 제거해 단촐하게 만들어 곡의 균형을 잡았다. 우리 둘은 거기에 몇 가지 소리를 거드는 역할로 하여 더 집어넣었고, 앞뒤 전개의 순서도 우리 성향에 더 잘 맞게 뒤바꿨다. 이 과정에서 원곡이 샘플링한 곡의 다른 부분을 잘라 우리 곡의 샘플로 집어넣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기존 드럼의 소리가 어울리지 않아 다른 드럼 소리로 바꿔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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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놓자, 원전이 된 두 곡과 매우 유사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른 곡이 탄생했다. 비트메이커는 이렇게 불평했다. "베껴서 시작하는 게 더 힘들어요. 형이 워낙 복잡한 리듬의 비트에다가 랩을 해놔가지고, 그 플로우랑 어울리게 만들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웬만하면 앞으로 이러지는 맙시다. 가끔은 레퍼런스가 더 어려워요. 표절이 아니게 만들어야 해서..." 그는 어떻게든 3-1에서 3-2로 가기 위해, 그리고 그 단계를 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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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잘못했다.


모든 레퍼런스 작법이 이런 식인 것은 아니지만, 이때 나는 원곡에서의 영향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레퍼런스 작법을 처음 경험했다. 물론 이런 건 힙합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 음악에만 국한된 방법도 아니다.


원작에서 소스를 가져와 2차 가공해서 창작하는 방식 중에서, 미학은 패러디/패스티쉬/오마쥬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원작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의 의도가 있다면 패러디, 존중과 존경의 의도가 있다면 오마쥬, 아무런 의도가 없이 가져와 사용하면 패스티쉬다. 리메이크는 당연히 오마쥬에 가깝고, 레퍼런스 역시 그렇다.


샘플링은 조금 다르다. 샘플링은 셋 모두에 해당할 수 있다. 같은 샘플을 가져다가 비슷한 방법으로 사용해도, 의도와 최종 가공 방법에 따라 분위기와 맥락이 전혀 달라지는 게 샘플링이다. 게다가 샘플링는 통째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조각조각내 이리저리 섞어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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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샘플링은 필연적으로 이전 세대의 유산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좋은 샘플을 찾는 공부를 디깅(Digging)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런 방법론들 - 창작의 재료가 기존의 창작물인 방법론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론적 맥락과 역사적 맥락이 있으며, 이걸 모르면 샘플링을 창작 방법의 하나가 아닌 표절 방법의 하나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샘플링을 사용하는 뮤지션들은 배워 알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런 맥락을 체화하고 있다.


문제는 샘플링이 표절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표절 아님. 같은 샘플을 같은 방식으로 사용한 것뿐임.' 실제로 이효리의 [It's Hyorish] 앨범에 6곡의 표절곡을 제공하여 이효리로 하여금 폭탄 맞고 자숙하게 만든 작곡가 바누스가 제일 처음 했던 변명이기도 하다. 그는 결국 처벌을 받았다. 저작권법은 아니고 사기, 업무방해, 문서 위조로 18개월의 실형 선고를 받았다.


(여담 : 비슷한 시기에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에서도 표절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중견의 위치에 올라서서 새 앨범을 준비하던 키비와 마이노스의 듀오 팀 이루펀트는 한 신인 비트메이커에게서 곡을 받기로 했는데, 이 곡이 이미 라임어택이라는 래퍼에게 제공되기로 했던 곡인데다가 표절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질은 바누스만큼이나 나빴다. 외국 비트메이커들은 이따금 비트메이킹 배틀이라 하여 최종 결과물은 물론 곡을 제작하는 과정을 포함해서 겨루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과정과 결과물은 인터넷에 업로드되어 승패를 가리는 데에 사용된다. 이걸 그대로 다운 받아서 아주 약간만 고친 후 자기 곡이라고 제공한 것이다. 물론 당사자는 펄쩍 뛰면서 "중복 제공한 건 잘못이 맞지만 표절은 아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내 중간 작업 과정의 백업 파일과 그 기록 일시를 보여주면 될 것 아닌가. 모월 모일에 직접 보여주고 인터넷을 통해서 공개도 하겠다." 고 말하고서는 그날 바로 잠적했다.)


물론 샘플링이 받고 있는 오해와 관련한 법적/도의적 맥락 같은 것은 일단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샘플링을 비롯한 포스트 모더니즘 창작법은 기술과 예술 철학이 발전하면서 생겨난 방법론이라는 것이고, 법은 둘째 치고서라도 사회의 인식이 이 흐름을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절은 이 괴리를 비집고 들어와 변명의 알을 낳는다. 때문에 대중의 귀를 어물쩡 넘어간 표절이 시장에서 먹히고, 설사 들키더라도 '그게 그런 게 아니고 어쩌구저쩌구' 변명을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운 나쁘게 표절로 오해받은 경우도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이런 괴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가 맥락을 따라잡아줘야 한다. 샘플링 작법이 제일 처음 등장했던 미국에서는, 이 작법이 함유하고 있는 철학적 예술적 상업적 맥락과 현실의 법/인식이 상충하는 것을 가지고 상당한 논쟁을 벌였고, 현재는 이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그것이 법에까지 반영이 되었다. 샘플 사용 허가를 받고 비용을 지불한다는 의미의 샘플링 클리어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재미있게도 언더그라운드의 경우에는 암묵적으로 샘플링 클리어를 강요하지 않고 있다. 사회가 최신 맥락을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것이다. 사회적 합의. 평론가 김봉현은 이미 G-Dragon 표절 사건에서 '표절 프레임'이 아닌 '판별 프레임'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규정과 제도에 입각한 판명보다 중요한 건 창작자의 양심과 음악가의 윤리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좋은 음악과 못된 음악을 감별하고 나아가 못된 음악을 퇴출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못된 음악’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물론 절대적 기준은 없다. 그러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신뢰할 만한 기준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라며 기준 제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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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 분노는 필요성이 적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해당 업계 전문가들이 치열한 논의를 통해 전문가 사회 레벨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 합의가 나오면 일반 사회는 이를 이용해 전체 사회의 합의로 발전시키고 법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물론 한국 사회가 그 정도로 성숙한가의 문제는 차치하도록 하자.






다시 법 얘기로 돌아왔다. 결국 사회적 갈등이 향하는 최종 단계는 법이다. 따지고 보면 법이라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명문화되면서 시작한 것이고, 사회적 합의에 강제력을 부여한 것이다.


과거에는, 인용 자체가 하나의 창작 기술이었다. 특히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이 그랬다. 성현들의 명작에서 한 표현을 따와서 자기 작품 안에 멋들어지게 녹여놓지 않으면 시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의 오마쥬나 페스티쉬와 거의 동일한 창작법이다. 돌이켜 보면 저작권이라는 이름으로 인용이 아닌 도용을 규정했던 것은 인류 역사에 비해볼 때 매우 최근의 일이다. 복고풍인지는 몰라도, 현재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역사 발전은 또 다시 그런 식의 방법론을 들고 나왔다.


법에 반영이 되어줘야 하고 사회로 하여금 역사의 발전을 따라가게 해야 하는 사회적 합의는, 결국 앞서 말한 전문가들의 합의체에서 시작해야 한다. 일단 아는 인간들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입을 닫고 있게 놔둬서는 안 된다. 사회가 그들을 회의장으로 호출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로이킴에게 악플 달고 있는 우리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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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합의체를 만들면, 유식해 보이지만 실상은 무식한 가짜 전문가들은 논의의 법칙 - 게임의 법칙에 의해 도태되고 진짜 전문가들이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원작자에게 공문을 보내야 음악 표절을 판정할 수 있는 현재의 방법보다는 잘 조직된 합의체에게 판단을 맡기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법의 객관성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 유사성을 판별하려면 음악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앞에서도 말했다.


물론 합의체에 의한 판단과 합의 도출은 장기적으로 볼 때는 과도기의 임시안이다. 제대로 된 현실적 기준이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고 나서, 사회적 필요가 없어지면 사라져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 문명이 저작권의 개념을 졸업해 제대로 된 카피레프트의 세계로 진입하는 단초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는가 공상도 해본다.


로이킴은 까도 되겠다. 하지만 까는 데에 너무 시간을 할애하지는 말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합리적인 기준을 합의할, 제대로 된 전문가들의 직렬 연결된 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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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 뭐하냐.





카인

@Kain_Sul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