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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종의 이유로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보험설계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만 해도 잠시 일해서 돈이나 벌자는 마음이었으나 어찌하다 보니 생명보험회사-화재보험회사-태아보험 전문 회사-(중간에 사업 한번 했다가 말아먹고)-자동차보험 회사를 거쳐서 현재는 생명보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영업, 영업 관리, 시스템 관리, 보험조사원 등을 거쳐 지금은 보험법률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 직급은 변해도 나를 언제나 난관에 부딪히게 만드는 것은 사람을 만나서 내용을 전달하고 그 내용을 알아듣게 설명하는 일이다. 상대방이 보험상품이나 보험이라는 금융상품에 대해서 기초적이라도 지식을 갖고 있다면 일이 쉽지만, 일이라는 게 그렇게 쉬울 리가 있나. 거의 모두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전화통화를 할 때 보험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설명해야 했다.


이걸 계속 반복하면서 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왜 이들은 본인이 가입한 상품을 이렇게 모르는 것인가. 그리고 왜 만나는 사람마다 약관도 읽어보지 않고 설계사가 풀어놓은 몇 가지 말들만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매달 내 돈이 나가는 일에 어찌 이리 천하태평인지?


내가 만난 사람들 상당수가 본인의 보장내용을 잘못 알고 있다가 막상 큰일이 터졌을 때 제대로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누구 책임이냐면 본인 책임이다. 가입할 때 어떤 상품인지 대충이라도 확인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보상을 받는 건지 기억하거나 보험회사에서 친절하게 적어준 상품설명서, 증권과 약관을 한번 쭉 훑어봤으면 이 사단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거다.


보험회사들은 프로 도박사다.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을 파놓는다. 가입하는 사람이 어떤 심정인지 따위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며, 가입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고 이해시키는 것 또한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이 관심 갖는 것은 제대로 설명을 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 즉, 나중에 덤터기를 쓰지 않는 것이다. 가입자가 4, 5년 후 “가입할 때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라고 주장을 한다면, 보험회사는 높은 확률로 그 가입자가 ‘나는 위의 설명을 모두 이해했으며 그에 따라 보험계약을 진행합니다.’라고 자필서명을 한 계약서와 통화 녹취 기록을 제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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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는 데꿀멍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보험회사가 내놓는 증거들은 진짜니까. 실제로도, 형식적으로라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했냐고 재차 확인까지 하는 쪽은 늘 보험회사 쪽이기도 하고. 교과서 내용을 이해 못했다고 선생님을 고소할 수 없잖은가?


그래서 나는 딴지스들이 조금 더 현명하게 보험가입을 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한다. 내 조언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닥 믿을만한 것도 못되고, 만에 하나 내 말을 듣고 잘못되어도 나는 책임지지 않을 구멍을 곳곳에 파 놓을 것이다(나 보험회사 다닌다). 그러니까 너무 믿지는 말고 참고 정도만 하시라. 누구처럼 약관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가입하라는 말만 하다가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보험을 불신하는 분들이 있다. 보험회사는 다 사기꾼들이고 무조건 내가 지는 게임이라고 말이다. 고로 나는 보험 따위 가입하지 않고 고고하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 아마도 계실 것이다. 물론 돈이 넘치게 많으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 만약 돈이 별로 없다면?


암으로 죽은 환자들이 남기는 가장 많은 유언이 무엇일 것 같은가? 압도적 1위가 있다.


“너는 암보험 꼭 들어놔….”


내 인생이 내 맘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80% 확률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특히 건강이 그렇고 사고가 그렇다. 보험은 도박이지만, 내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넘어서 내 인생이 정말 뜻밖에 조옷이 되는 경우엔 내가 승리한다. 슬프지만 확률이 없는 도박도 아니고, 심지어 확률이 극단적으로 낮은 것도 아니다.


어느 영화에선가 주인공이 이렇게 말을 했다.


“남이 짜놓은 판에서도 너만 잘하면 얼마든지 빛날 수 있어.”


보험은 다단계와 달라서 보험회사가 형편없이 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거부하더라도 알고나 거부하자.


기본 개념부터 잡고 가자. 개인이 가입하는 보험상품은 기본적으로 생명보험과 화재보험으로 나뉜다.


이 광고 기억날 거다.


“10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광고 한 번 잘못 찍었다가 사람들 머릿속에 오로지 욕 처먹는 모습만 남긴 푸르딩딩 생명. 이 광고는 사실, 푸르딩딩 생명이 아까운 돈 퍼준 뒤 이를 악물고 만든 광고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실제로 있던 일을 광고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보험회사 입장에선 악몽과도 같은 일이.


사람이 죽었는데 그보다 더한 악몽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보험회사는 웬만해서는 질 판을 짜지 않는다. 안전장치의 안전장치의 안전장치를 했는데 그 모든 확률을 가볍게 쌩까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 거다.
 

강원도 동해시에 거주하던 소아과 의사인 유모씨는 친구 보험설계사의 성화에 못 이겨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하는 종신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첫 번째 보험료를 납입했다. 1999년 11월 23일에 첫 번째 보험료를 납입하면서 보험의 효력이 개시되었는데, 다음날 오전 8시에 유모씨에게 급성 심근경색이 찾아왔다. 심근경색은 심장의 혈관인 관상동맥이 막혀서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심장이 괴사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일단 발병하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절반은 죽을 정도로 치사율이 높다.


보장개시를 통보해버린 푸르딩딩 생명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보험료 200만 원 받고 10억하고도 6백만 원을 꼼짝없이 지불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으니까. 푸르딩딩 생명의 수뇌부는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이걸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론 분명히 보장개시 상태에서 사망했으니 당연히 주는 게 맞다. 푸르딩딩 생명의 고민거리는 ‘어떻게 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까’에 가까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빠져나갈 구멍을 어떻게 파려고 들면 어찌어찌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그랬다가는 뒷맛이 매우 씁쓸해질 케이스였다. ‘급성’ 심근경색은 조기발견은 물론이요, 스스로 자각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다가 한두 번 가슴에 통증을 느꼈을 수는 있으나 그건 위염일 수도, 소화불량일수도, 헤어진 옛사랑이 생각나서일 수도 있다. 가입 당시, 그러니까 죽기 하루 전 유모씨의 건강상태는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푸르딩딩 생명은 전액 보상을 결정했다. 본인들은 엄청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한국에 상륙한 지 얼마되지 않은 회사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사망했는데 사망보험금을 안 주는 보험회사라니 누가 믿고 가입하겠나.


근데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주고 나니 스스로가 너무 대견해서 뭔가 생색을 좀 내고 싶어진 거라. 보통 이런 경우엔 산전수전 다 겪은 보험조사원들이 막 달려들어서 어떻게든 흠집을 내고(의사 양반이 미리 징후를 느꼈는데 그걸 보험회사에 통보하지 않고 계약을 했다는 등), 지저분한 소송으로 끌고 가서 어떻게든 보상금액을 줄이지만, 푸르딩딩 생명은 군말 없이 보험금을 줘버렸다.


수뇌부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시바 광고라도 만들어서 우리가 이렇게 약속을 잘 지키는 회사라는 걸 마구 소문내면 이게 입소문을 타고 쭉쭉 퍼져나갈 거라는 장밋빛 그림을 그렸다. 해서 유모씨의 이야기를 광고로 만들기로 한다. 광고에 등장하는 두 번째 문구인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는 푸르딩딩 생명의 눈물겨운 생색이다.


하지만 결과는 다 아시리라 본다. 푸르딩딩 생명은 “남편 죽으면 잘생기고 젊은 설계사 보내서 미망인과 하하호호 웃을 놈들”이라는 이미지만 선명하게 남기고 말았다. 생색을 내더라도 좀 똑똑하게 냈어야 했는데 멍청하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답 없다는 사례를 훌륭하게 남겼다 하겠다.


푸르딩딩은 생명보험회사다. (워낙에 여러 가지 상품들이 있어서 확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생명보험회사는 당신의 생명에 베팅한다. 당신이 죽거나 위중한 질병에 걸리거나 혹은 몸의 반 이상을 못 쓰게 되는 재해(외부로부터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말한다)를 당하는 경우에 생명보험 회사는 당신에게 약속한 보험금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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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으니까?


가장 대표적이고 알기 쉬운 게 암보험이다. 암보험은 말 그대로 암에 걸리면 보험금을 받는 상품이다.


병원에서 암 확진을 내리면 보험회사에게 암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금액은 천차만별이지만 요즘은 보장금액이 많이 줄었다. 실제 암에 걸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암보험은 단순하다. 암에 걸리면 보험금을 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한 푼도 못 받는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는고 하니, 암보험 가입해놓고 치질에 걸렸는데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왜 치질수술은 보장을 안 해주냐고, 죄 없는 상담원만 잡는 사람들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기 때문이다. 진짜다.


생명보험은 포괄적 보상이 아닌 선별적 보상을 한다. 보험회사가 약관에 미리 적어놓은 것만  케이스에만 국한되어 당신에게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러니까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약관만 잘 읽어봐도 내가 어떤 경우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전부 알 수가 있다. 소심한 보험회사들이 빠져나갈 구멍 파놓는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서고금 이래 만드는 사람은 물론 받는 사람들까지 합쳐서 단 한 명도 끝까지 제대로 읽어보고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다는 ‘보험 약관’은, 가입 후 장롱 어딘가에 처박혀 썩어가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보험가입자가 줄잡아 5000명은 훌쩍 넘는데, 누구 하나 “약관에 이렇게 적혀있던데.”라고 말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이거 가입하면 다 된다던데”


였다. 동시에 ‘본인이 가입한 상품이 선별적으로 보상되는 생명보험 상품이며 지금 당신이 앓고 있는 질병은 전혀 보장할 생각도 의무도 없는 상품’이라는 말을 해야 하는 나에겐 가장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이거 하나만 분명히 해두고 싶다. 세상에 모든 병과 모든 재해를 전부 보장해주는 보험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가 없다. 특히 생명보험 상품은 더욱 그렇다. 왜? 포괄적 보상이 아니라 ‘선별적’ 보상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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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 보장해준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무시 못 할 정도로 많다. 왜냐하면 나를 가입시킨 보험설계사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못 믿을 직업 랭킹 3위안에 들어가는 ‘보험설계사’의 말을 이렇게 열렬하게 믿는지 참으로 미스테리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생명보험을 들고 전투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회사는 “삼성생명”이다. 당시 기업으로서의 삼성은 찾아간 사람들이 센터로 찾아가 진상을 부려대기 시작하면, 소비자 과실로 떨어뜨려서 박살이 난 경우에도 군말 없이 새 제품으로 바꿔주는 화끈한 AS정책으로 신뢰(이게 왜 신뢰인지는 모르겠으나)의 이미지를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었다. 이는 보험상품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 길게 생각 않고 가입하기 딱 좋은 회사였다.


여기에 물 들어올 때 확실하게 노 젓게 해준 것이 삼성생명이 만들어낸 ‘설계사 아주머니 부대’였다. 삼성생명은 각 동네 통장/반장/어머니회장 등 목소리 크신 분들을 모셔다가 동네영업을 하는 극히 한국적인 영업방식을 선택했다. 이 한국패치는 실로 기가 막힌 한 수였고, 그때 쌓아올린 엄청난 수의 가입자들이 매달 열심히 납입하는 ‘현금’ 보험료는 지금까지도 삼성을 지탱하는 두꺼운 기둥 중 하나다.


그러나 삼성 입장에서는 신의 한 수였으되 한국 생명보험업계가 두고두고 고쳐나가야 하는 병폐를 만들어낸 한 수이기도 했다.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설계사들은 영업 센터에서 만들어준 교육 자료를 읽어보지도 않고 “이거 하나만 가입하면 다 됨.”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고, 이를 믿고 가입한 선량한 가입자들은 큰 일이 닥쳤을 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듯 의지했으나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보험업계 전체에 대한 좋지 못한 인식을 쌓아올리는 데에 크게 일조했고, 결과적으로 가장 합리적으로 선택함이 마땅한 ‘금융상품’인 보험상품을 대충 아는 사람 통해서, 선심 쓰듯이 “그냥 니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사인해주는 풍토까지 낳아버렸다.


“이거 하나면 다 돼.”


“그냥 네가 알아서 해줘.”


보험가입 시 가장 위험하고 피해야 할 대사들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서로간의 믿음을 증명하는 데엔 훈훈하고 좋다만, 큰일이 닥쳐왔을 때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되레 사이좋던 사람들이 말이 다르지 않냐며 멱살 잡고 싸우는 경우가 생긴다.


기억하자.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생판 남이, 혹은 가족이, 혹은 가족의 지인이 아무리 나를 위해서 온 정성을 다 쏟아 준다고 해도 내가 직접 함만 못하다. 모든 보험가입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되’ 선택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


그리고 대충 가입해놓고 어떻게 마구잡이로 우겨서 보장을 받아보겠다는 쌍팔년식 진상은 되지 말자. 그게 효과라도 있어서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든다면 또 모르겠는데 절대로 그렇게 되지도 않을뿐더러(진상 좀 부린다고 가입되어 있지도 않은 보상을 제공하는 보험회사가 진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심각하게 순진한 거다), 고객센터로 전화해서 당신의 일이 그 모양이 되기까지에 아무런 책임도 없고 전혀 무관한 상담원 몇 명 괴롭힌다고 하나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 좀 받아낸다고 당신의 사정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등 뒤에서 욕이나 실컷 먹겠지.


화재보험은 화재보험 편에서 따로 다루기로 하고, 일단은 생명보험 가입 시에 활용하기 좋은 몇 가지 팁을 알려주겠다. 언제? 다음 편에서.
 


거의없다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