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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삼촌 추천19 비추천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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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갑다. 해가 점점 길어지니 겨울과 달리 야간 근무 출근 길이 덥고, 빛이 따갑다. 버스를 내리고 뛰어가면서 보니 오뎅 아줌마가 보이지 않는다. 날이 더워져서 쉬는 듯 하다.

 

1.

야간 근무는 부담스럽다. 경방대원(警防, 사전적 의미는 경계하여 지킨다는 것이며, 흔히 펌프차에 탑승하는 화재진압대원을 말한다. 일제강점기에는 경방단이라는 조직이 있었다)을 할 때에는 야간 근무를 기다리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야간 근무는 행정 업무가 덜하고, 출동 위주의 시간인데 구급차의 출동 횟수가 펌프차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 나는 구급차를 탄다. 그래서 야간 근무는 부담스럽다.

 

주간은 9시~18시이며, 야간은 18시~9시이다. 실질적으로 15시간을 꼬박 안 자고 근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다음 날도 야간 근무가 이어질 때엔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렇다. 소방공무원도 사람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경험으로 알 것이다. 밤을 새려고 할 때 얼마나 신체적으로 무기력해지는지. 물론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비몽사몽인 채 출동을 하게 되면 과연 제대로 된 화재 진압, 구조, 구급 활동이 이뤄질까? 그래서 휴식 시간이 있다.

 

소방공무원 일과표에도 새벽에는 휴식을 갖도록 되어 있다. 단지 어떤 식으로 휴식을 취하는지는 제각각 다를 것이다. 사무실 소파에 앉아서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하는 곳도 있을테고, 대기실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친구들에게 웃으면서 얘기한 적이 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출동하기 위해서 눈을 붙이는 것이라고.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신체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깊게 잠이 들고 싶다 한들 내 몸이 알고 있기에 절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딱 야간 출동에 지장이 없을 만큼의 잠만을 내 몸은 허락한다. 야간 근무가 끝나면 집에 가서 다시 잠을 청해야 한다. 이게 진짜 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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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출동이 얼마나 될까? 야간 근무가 끝날 때면 늘 시체가 되는 기분이다. 게다가 요즘은 성수기다. 출동 성수기. 주취자 출동 성수기. 여름이 싫다. 출동이 비교적 덜한 곳에서 근무하고픈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는다. 1, 2 팀 모두가 모여 근무 교대를 한다. 인수인계 사항들을 전달하고, 김 반장과 김 부장, 윤 부장은 커피 한 잔씩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나도 따라간다(여기서 부장을 흔히 알고 있는 회사의 부장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동일인물을 가리켜 누군가는 반장이라고 부르지만, 누군가는 주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부장은 소방장 계급의 사람을 말한다. 물론 이것도 지역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통일성이 없다)

 

김 반장이 오늘 있었던 주간 출동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열차 사고다. 사람이 다녀선 안 될 열차 터널을 할머니께서 지나다 열차에 치인 것이었다. 사진을 보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 솔직한 심정으로 내게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직접 이 상황을 겪어야만 했던 대원들은 어떨까. 문득 예전 고반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구급 대원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어."

 

화재진화사 2급 필기 시험을 앞두고 있는 윤부장은 ‘화재진화사’의 불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며, 최근 부업으로 옷장사를 시작한 김부장은 피곤함을 토로한다. 이직 준비를 하는 김반장은 어제도 새벽까지 열심히 공부했는지 연신 하품을 하며, 커피를 들이킨다.

 

2.

장비점검을 끝내고, 우리 팀 모두는 사무실에 모였다. 지난 노래방 화재 사건으로 긴급 시달된 공문으로 인해 다중이용업소 점검을 나가야 한다(소방은 화재 진압, 구급, 구조뿐 아니라 예방 업무의 일환으로 점검을 나가는 일 또한 많다. 고층 아파트, 사찰, 숙박업소, 다중이용업소 등 때에 맞춰 늘상 관련 공문이 온다). 한 부장은 얼마 전에 했던 것을 또 하냐며 투덜거리기도 하고, 박 팀장은 그런 팀원들을 독려하며 빨리 끝내자고 한다. 구급팀 먼저 갔다오기로 하여 윤 부장과 함께 구급차에 탑승한다. 상황실에 점검 나간다고 무전 후 언제든지 출동에 임할 수 있도록 무전기를 켜서 들고 있는다. 먼저 나의 책임 대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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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노래주점의 여사장 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장사가 잘 안 되는지 조용하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신도시로 사람들이 몰려서 더 어렵다고 한다. 이것저것 살펴본다. 지적하기도 살짝 미안하지만 꼭 이야기 해야 할 부분은 짚어준다. 방화문 부분에 문제가 보인다.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그리고 '화재배상책임보험' 의무 가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현명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 하지만 업주 개인의 입장에서는 언제 닥칠지도 모를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해 당장 비용이 들어가는 게 썩 달갑지만은 않은 듯 하다. 업주의 선택 사항이 아닌 의무 가입이니 그 반감이 내게 전해진다.

 

법률 불소급의 원칙이 있는데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이 원칙이 일부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교육 때 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딴지 노래주점 여사장 님은 그래서 늘 불만이었다. 

 

"장사는 안 되고, 허구한 날 찾아와서는 이것 저것 고치라고 하는데 돈이 들어가는 게 한두 푼이 아니야. 처음부터 하라고 하든가, 이거 고쳐 놓으면 나중에 또 저렇게 바꾸라고 그러고. 뭐하는 건데 이게. 돈을 지원해 주면서 하라고 하든가." 

 

법의 취지는 좋지만 업주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최대한 사장의 기분을 이해하면서 맞장구를 쳐준 다음,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얘기하면서 행정 지도를 한다. 그럴 때엔 잠시나마 감정적으로 한 편(?)이 되었다는 기분 때문인지 그 분들도 우리 입장을 이해해 준다. 그 분이든 우리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깐.

 

윤 부장이 한마디 거든다.

 

"사장님, 우리가 한 번 올게요. 싸게 해 주세요. 조 반장! 니 책임 대상인데 한 번도 안 왔나? 그러면 되겠나?"

 

"오세요. 싸게 해 줄게."

 

언제 그랬냐는 듯 사장님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딴지 노래주점을 나올 때 즈음, 작년에 암으로 돌아가신 전 부장이 떠오른다. 전 부장은 내게 다중이용업소 소방 검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처음 가르쳐 준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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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과 나의 느낌이려나... 

사진 출처 링크

 

"다 동네 사람이고, 장사도 안 되는데 고압적인 자세로 지적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야. 검사 나가서 그 분들 이야기를 먼저 들어줘라.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은 해야겠지만 너무 까탈스럽게는 하지 않는 게 좋다."

 

그 후에도 여러 선배 분들과 함께 했지만 제각각 검사에 임하는 자세와 방법은 달랐다. 냉정히 말하면 엄격하게 검사하여 사고 발생시,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다중이용업소 화재 사건을 분석해 보면 제대로 된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담당자들이 징계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마냥 다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볼 부분이다.

 

꼼수 노래주점에 들른다. 여기 사장은 우악스럽게 생긴 것이 산적 못지 않다. 머리는 곱슬머리인데 어깨를 넘어갈 만큼 길며, 수염도 정리 안한 지 오래된 듯 하다. 사실 이 곳은 문제가 좀 있다. 건물 구조가 처음과 달리 일부 개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방 시설은 미비하다. 그런데 지적을 하려고 하니 본인이 의용소방대원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뭐, 어쩌라는 건지. 윤 부장과 같이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윤 부장 폰으로 전화 온다. ‘쏼라 쏼라 쏼라’. 수화기 너머로 대화가 오고 간다.

 

“바로 전화 오네.”

 

“뭐가요?”

 

“김XX 부장님인데 아까 그 산적 같은 사장이랑 친한가 봐.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그냥 넘어가 달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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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무전이 온다. 출동이다. 싸이렌을 울리며 급히 간 곳은 어느 외딴 마을의 허름한 집. 방 문을 열어보니 술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옷을 전부 다 벗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몸을 좌로 굴렀다가 우로 굴렀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 언어로 우리에게 말한다. 인상이 찌푸려졌단 사실을 인식하고 얼굴을 편 다음 그래도 웃으면서 다가간다. 

 

민원이 들어오면 우리만 피곤하니까. 여기가 집인지 쓰레기장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그냥 들어가기가 힘들어 마스크를 하나씩 착용 후, 다시 들어간다. 주위를 둘러보며 널부러진 옷을 잡아 일단 입힌다. 입히는 것도 힘들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신고를 한 것이며, 본인을 도와 옷을 입히고 이송까지 해주려 하는데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실까. 의사소통을 해보려 해도 불가능한 상태다. 

 

들것에 실었으나 혹시나 떨어질까봐 공연스레 겁이 난다. 인근 센터 김부장이 문득 떠올랐다. 이송 중 병원 입구에서 환자가 갑자기 몸부림치며 떨어졌던 일로 인해 김부장은 합의금 수 천만 원을 물어야 했다(물론 동료 직원들이 금액의 반을 부담했다. 전국적으로도 소방공무원 중 누군가 사망을 하면 돈을 모아 전달한다). 그 생각이 나자 주취자를 꽉 잡고 구급차에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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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병원으로 이송 중에 무전이 들린다. 우리 관내의 신고인 듯 하나 우리가 출동 중이니 옆 센터에 지령을 내린다. 불길하다. 역시 성수기인가. 벙커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로 향한다. 응급실 간호사 중 버섯 머리를 한 분이 인상을 쓴다. 처음 구급을 시작했을 때, 몇몇 간호사들 및 응급실 의사가 인상을 쓰는 이유를 잘 몰랐다. 단지 윤 부장과 응급실 직원들 간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 때 의아해서 물었더니 윤부장의 답변이,

 

“술 취한 사람들 데리고 오지 말라는 거지. 자기들 피곤하고 싫으니까.”

 

“그럼 어디로 데려가요? 술에 취해서 직접 병원 이송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 보고 우리한테 신고하는데 우리는 어디로 이송하란 말이에요? 다른 병원 가라 이건가? 상황이 어떻든 자기들한테는 데려 오지 말라는 건가?”

 

“뭐, 그런 거지. 자기들도 바쁘고, 진짜 환자들도 많으니까. 그래서 한 번 싸웠다. 우리 입장에서는 관내에 다른 병원이 없는데 관내를 비우고 멀리 갈 수는 없잖아?”

 

인상쓰는 버섯 머리 간호사를 못 본 척 지나친다. 옆에는 스마일 샘이 계시니까. 언제든 환하게 웃어주는 스마일 샘. 잘 웃어주니까 호칭도 선생님. 스마일 샘이 근무 중일 때에는 응급실에 오는 것이 즐겁다. 

 

스마일 샘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병원 베드로 옮긴다. 윤 부장이 구급 일지를 작성하는 사이 들것의 시트를 교체하고, 구급차량 내부를 정리한다. 

 

4.

이때, 또 출동 무전이다. 일지 작성을 서둘러 마친 윤 부장과 허름한 주공아파트 1단지로 향한다. 날은 어두워졌고, 네온 싸인 가득한 시내를 지나간다. 시끄럽다. 나도 어울리고 싶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많은 걸 보니 주말인 듯 하다. 요일 감각이 없다.

 

주공 1단지 정문에 도착하니 어이쿠 단골 손님이 계신다. 의족 아저씨. 처음 구급을 할 때에는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많았다. 하지만 왕왕 겪다 보니 무감각해진다. 그래도 난 아직 크게 다치거나 자살하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어 기도를 한다(종교인은 아니지만...). 일부 오래된 구급 대원들은 사람의 죽음에도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의족 아저씨 역시 술에 취해서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린다. 덩치도 보통이 아닌데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정말 난감할 때가 많다. 윤 부장과 주위의 사람들과 같이 구급차에 태운다.

 

이렇게 또 한 건의 출동이 마무리 되어간다. 병원 이송 후 센터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다. 지난 달 병원 이송 직후, 사망 판정을 받았던 한 아저씨가 떠오른다.

 

‘이 직업이 삶을 체감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건 좋지만, 사람의 끝을, 마지막을 함께 할 수도 있는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출동.

 

나도 사람인지라 그러한 일을 겪을 때면 가라앉는 기분을 좀처럼 어찌할 수 없다. 나의 감정인데 컨트롤이 쉽지 않다. 구급을 얼마하지 않은 내가 이런데 하물며 오래 하신 분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어떠할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상도 아니기에 혼자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위기가 최근 조성되어 관련 공문이 시달되는 것을 보면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문서 행정에 그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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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비유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센터에 도착 후 남은 다중이용업소 점검 대상을 체크해 본다. 구급 차량이 들어오자 센터를 지키던 펌프차 인원이 다중이용업소 점검을 나간다. 윤 부장은 샤워를 하러 가고, 나는 일단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근무일지 정리, 시정보완명령 관련 내용을 민원시스템에 입력한다. 지난 주간에 실시했던 현지적응훈련과 딴지마트 합동소방훈련 내용도 같이 입력한다.

 

5.

슬슬 배가 고파온다. 16시 반 즈음에 저녁을 먹고 출근 했으니 신호가 올 만하다. 옆에 있는 오라마트에 가서 두툼한 놈으로 두부 두 모를 고른다. 길 건너편에 가서 간장치킨 한 마리를 산다. 센터에 돌아와 부엌으로 향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가 가득 있다. 마을회관에서 동네 주민들 김장할 때 급수 지원을 나갔었는데 그분들께서 가져다 준 김치였다.

 

소방차의 펌프 내에 있는 물로 김치를 담갔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썩소가 지어졌지만 그래도 두부엔 역시 김치가 필요한 법이다. 두부를 삶아 접시에 김치와 함께 담는다. 그리고 치킨도 같이 차려놓는다. 뭐가 하나 빠졌다. 마실 음료가 없다. 다시 오라마트에 가서 콜라와 투명한 음료 하나를 산다. 때마침 펌프차가 들어온다(들어오라고 전화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음식이 있고, 함께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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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야식 겸 일상의 대화를 나눈다. 오늘 출동 이야기, 점검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옆 센터 직원 이야기, 지난 번 화재 이야기, 그리고 이번 상여금 수령과 관련하여 와이프 몰래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의 공유 등 대화의 주제는 끝없이 계속 된다. 마치 브레인스토밍처럼.

 

연가 얘기가 나온다. 한부장은 연가를 쓰고 싶어하나 센터장이 웬만하면 쓰지 말란 식으로 말한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연가보상비도 다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가 또한 마음 편히 쓸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지역이나 일선 센터마다 분위기 따라서 복불복이다. 연가를 내더라도 대신 근무할 수 있는 사람 한 명을 구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때에 따라 33시간이나 39시간 혹은 그 이상 연속으로 근무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근무가 비일비재하다).

 

야식을 간단히 먹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자정 무렵이다.

 

‘오늘은 새벽에 출동이 좀 없었으면 좋겠다’

 

... 라는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출동 벨이 울린다. ‘그럼 그렇지. 먹고 있을 때 나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아직 일교차가 심한 듯 하다. 구급차를 타고 나가니 바람이 차다. 시내로 나간다.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도착한다. “딴지 구급 현장 도착” 무전 후에 차에서 내려 보니 한 아가씨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다. 신고자는 지나가는 아주머니였다. “우리가 알아서 병원에 이송하든지 집에 데려다 주든지 할테니 들어가십시오”. 신고자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주취자를 들것에 실어 구급차에 태운다. 정신 못 차리고 쓰러져 있는 아가씨. 집을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벙커 병원의 간호사와 의사가 생각나 좀 멀리 있는 죽돌 병원으로 향한다.

 

운전 중에 윤 부장이 외친다. 

 

“깼다. 차 일단 세워라” 

 

눈만 떴을 뿐 아직 술이 깬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자기가 알아서 가겠다고 한다. 

 

“집 주소를 말하면 태워 드린다니깐!” 

 

윤 부장이 얘기하지만 막무가내다. 타지 말투를 쓰는 아가씨. 술은 취했고, 밤이라 근처에 인적은 드물다.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그냥 가라고 한다. 그러고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무서웠는지 가다가 다시 돌아온다.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은 건 분명한데 무서운 건 아나 보다. 집주소를 모른단다.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기억을 더듬어 주위의 모습을 설명하고, 우리는 퀴즈 풀 듯 동네를 찾아간다. 다행히 집 근처를 찾아갔고, 술에 취한 아가씨는 밥을 사겠다며 전화번호를 손바닥에 적어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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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로 돌아가니 서 반장이 사무실을 지키며 앉아 있고, 몇 분은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피곤하지만 사무실 소파에 일단 앉아 방금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서 반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대기실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에 센터로 민원인이 방문한다.

 

어느덧 한 시를 넘긴 시간. 남편이 ‘죽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사라졌다는 민원인. 위치 추적을 요청한다. 절차를 알려드리고 상황실에 전화 연결한다. 신원확인 등 절차를 거친 다음 상황실에서 지령이 내려온다. 기지국 반경 2~4km 내에 있는 게 확인이 되지만 상당히 넓은 범위다. 또 어디 건물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황을 들어보니 진짜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덜하다. 일단 찾으러 나선다.

 

펌프차는 펌프차대로, 구급차는 구급차대로 구역을 나눠 찾아보기로 한다(정황을 들어보고 나이대를 짐작하여 PC방이나 찜질방에서 찾은 사례도 있지만 실제로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한두 시간 동안 마냥 돌아다녀 보다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긴급 구조 상황이 아니라면 위치 추적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나 민원인의 사정을 듣고 상황실 근무자가 판단하여 지령을 내려주기도 한다).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 상황실을 통해서 무전이 온다. 요구조자가 귀가했다고 한다. 쏟아지는 피곤함에 시계를 보니 어느덧 두 시를 훌쩍 넘겼다. 센터에 복귀한 후 서 반장은 사무실에 앉는다. 나는 대기실에 들어와 잠시 눕는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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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잉 지잉 지잉 구조 출동. 구조 출동”

 

“딴지 구조구급 출동입니다.

현재 차량이 도로를 이탈해서 바다에 빠질 듯

땅에 걸쳐 있는 상황입니다.

요구조자는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속한 출동 바랍니다"

 

출동 소리에 놀란 몸을 이끌고 황급히 구급차에 탑승한다. 살짝 동이 틀 무렵의 새벽. 엑셀레이터를 밟으면서 무전 상황을 전해 듣는다.

 

“차량이 바다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잠시 후

 

“딴지 구급 현장 도착”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차량이 도로를 이탈하여 가드레일을 뚫고, 바다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졸음 운전이었을까? 음주 운전이었을까?’ 잠시 생각하면서 구급차에서 내리는데 먼저 도착한 펌프차의 서 반장이 다급히 소리친다. 

 

“환자 있습니다. 환자!!” 

 

들것과 부목 등 장비를 챙겨 얼른 현장으로 다가간다.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현장의 환자 발견은 늦었다. 환자라는 걸 알고 다가갔음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훑어 봤을 땐 그냥 누더기 옷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다니. 한쪽 다리는 정강이 부근에서 절단 되어 있었다. 잘렸다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했다. 사람 다리가 이렇게 될 수 있는 건지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보게 되었던 얼굴...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향한다. 구조대의 이부장이 남은 발(다리)을 찾았다며 들것에 올려놓는데 알 수 없는 소름이 끼친다. 사람이 레고도 아닌데 이 무슨...

 

벙커 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간호사들도 의사도 멘탈 붕괴다. 무서운 건지 놀란 건지 어쩔 줄 몰라하는 간호사는 지혈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엉뚱한 곳만 계속 붕대를 감는다(사실, 아무리 오랜 연차라도 그럴 만한 상태였다). 피는 도저히 멈출 줄 모르고, 매트리스와 시트, 응급실 바닥은 붉게 물들어 간다. 접합 수술도 불가능해 보인다. 끔찍하다.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르고, 핏자국 가득한 구급차량 내부를 소독한다.

 

센터로 돌아온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차고와 화장실, 사무실 등을 청소한다. 근무일지를 기록하고, 전술훈련 등 매일 작성해야 하는 공문을 기안 중에 또 다시 출동 벨이 울린다.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벙커 병원으로 간다. 1차 수술을 끝내고 더 큰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병원 응급 차량에 태워진 아까 그 환자가 보인다. 앞에는 아내로 보이는 한 여자가 주저앉은 채 울부짖고 있다. 가슴이 미어진다.

 

그렇게,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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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음, 그냥 그 한 편으로 마무리 할 걸 그랬나 보다. 타이틀을 '낮과 밤'이 아닌 '일상 이야기'로 할 걸 그랬나 보다. 글을 쓰는 게 싫었다는 건 아니다. 단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지난 글을 보낸 다음 날, 나는 바로 제주도에 왔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 여전히 제주도에 있다. 원래라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한라산'이나 '제주쌀막걸리'를 마시며 한창 이야기 나눌 시간이겠지만 내일까지 글을 보내야 한다는 부담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래서 살짝 여행의 흥이 가라 앉았다. 게다가 조금 더 솔직히 털어놓자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난 번 글도 쥐어 짜내며 힘들게 썼던 기억이 있다. 일할 때 순간순간의 일들을 블로그로 좀 포스팅 해 둘 걸 그랬나 보다. 면직 처리 된 지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얼마 되지 않았다고? 내게는 오래된 일처럼 느껴진다.  

 

어떤 식의 글이든 다 괜찮다라고 편집부의 동의를 얻긴 했지만 지금 이런 식으로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한 4년간 쓰지 않아서 였을까? 글쓰는 게 어렵다. 단순하게만 써진다. 소중한 공간에 이런 횡설수설을 해도 되는지도 모르겠다(뭐, 편집 해주겠지).

 

아! 중요한 거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기에서 이야기 한 소방 관련 이야기는 경험에 근거해 쓰여졌고 최대한 민폐가 없도록 각색했지만 당연히 개인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 있다. 지난 글에서 소방과 군대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글을 보고서 '소방은 이러이러하다'라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제대한 분들은 알겠지만 군의 부대 수만큼이나 소방도 지역따라, 서에 따라, 센터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군대가 아무리 바뀐다 해도 30년, 40년이 지나도 어떤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기는 쉽지 않고 우리는 왜 그런지 잘 알고 있듯(군에 있을 때도 어떤 사람은 2000년대에 제대했지만 80년대 막사보다 못한 곳을 쓰기도 한다. 아버지 세대 분들이 방문해도 깜짝 놀랄만큼. 내가 그랬다), 소방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현장에 있으면 장비나 구조 등, 정말 바뀌기 힘들겠다고 생각드는 부분이 많다. 많은 분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수밖에.     

 

소방관을 그만두는 사람이, 이런 글을 써서 부끄럽다. 딴지 독자 분들은 현명하니 개떡같이 쓴 글이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시길. 

 

 

편집부 주

 

본 기사는 2013년 업로드된 

소방관 출신 필자의 글입니다.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이루어졌으나

당면한 현실,

일상의 슬픔은 지속중이기에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고 이형석 소방경님,

고 박수동 소방장님,

고 조우찬 소방교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