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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공사다망


본 우원, 요즘 너무 바쁘다. 최근 급증하는 미국 내 테러와 IS의 한국 테러에 대비해 CIA와 공조로 대테러 시뮬레이션 훈련을, PS4 슬림의 <콜 오브 듀티 및 라스트 오브 어스>로 착실히 수행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대테러시 전술운용과 관련하여 <클래시 로얄> 특훈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뿐이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MS 오피스는 왜 MS에서만 사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답을 얻고자 뉴욕 애플 스토어에서 꾸준히 아이폰 7+ 매트블랙을 만지작거리며 MS 오피스 판매를 허하라는 침묵시위도 같이 진행하기도 한다(물량이 안 나와서 자꾸 가는 건 절대 아니다). 그 와중에 딴지 수뇌부 지하 124층에서 발송된 난수표가 본 우원에게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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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라고는 꼴랑 게임 씨디 한 장 살까말까 한 돈을 주는 주제에 말이다. 거기다가 본 우원 미국에 있는 관계로 부득이하게 한국에서 수령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코딱지만 한 고료도 마누라에게 빼앗기는 이 억압과 착취의 현장에서 나는 비장하게 일갈했다.


“네.”


딱히 미국 생활이 외로웠던 것은 아니었는데 왜 이리 답이 빨랐을까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1. 비정상의 정상화


“아니, 미국 놈들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트럼프 같은 인간을 뽑아?”


라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가끔 이야기 한다. 그럴 때마다 본 우원 이렇게 대답한다.


“전과 14범도, 간단한 문장도 만들지 못하는 모지리도 대통령으로 뽑는 나라가 있다.”


1997년, 소위 386으로 통칭하는 세대가 IMF와 함께 주류 권력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무렵, 당시의 4~50대가 맛 본 무시와 경멸은 세대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386은 자신들이 사우디에서, 탄광에서, 동대문 쪽방에서 일구어낸 찬란한 한강의 기적을 독재 아래 시행된 인권과 자유를 탄압한 결과라고 말했다. 주체사상을 외치고 데모를 일삼으며 빨갱이를 친구로 여기는 그들이 달가워 보일 리 없었다.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았던 그들이다. 자신의 과거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동영의 “노인들은 투표 안 해도 괜찮다.”라는 발언은 말 그대로 폭탄이 되었다. 이명박이 전과가 몇 범인지, BBK로 얼마를 땡겨 먹었는지, 검은 머리 외국인과 무엇을 결탁하고 어떻게 해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꼴사나운 젊은 놈들이 보릿고개 넘어가며 살아온 우리를, 피땀 흘려 놀라운 경제성장을 일으킨 우리를 무시하고 폄훼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결과는 압도적인 MB 가카의 승리. 지역 정서와 더불어 세대 갈등을 등에 업은 전무후무한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


미국, 정서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살인적인 의료비, 벗어날 수 없는 정경로비, 빼앗기는 일자리.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똑같은 놈으로 생각한다. 전혀 다른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지만 전통적인 공화당원과 전형적인 민주당원이 아니었던 둘은 그래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다. 특히 트럼프는 십 수 년 간 리얼리티쇼와 TV 프로그램에서 갈고 닦은 언변으로 차마 체면과 도덕적 책무 때문에 말 못했던 주류 백인들의 속마음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인기를 얻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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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에 이런 말도 했었지


유색인종 때문에 빼앗긴 일자리, 지들도 먹고 살만한데 아직도 우리에게 군사비를 요구하는 뻔뻔한 동맹국들, 911 테러를 일으켰던 원흉인 중동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적의, 무엇보다 1조원의 세금 탈루는 ‘자신이 똑똑해서 피해간 절세방법’이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그의 발언엔 거침이 없다. ‘이명박이 전과 14범이면 어때? 저 새끼만 대통령 안 되면 되는 거고 무엇보다 잘살게 해준다잖아?’ 전두환 정권의 강남개발, 노태우 정권의 신도시 개발 단물을 빨아먹은 우리의 이기심으로 이명박의 단점을 모른 척 했던 것처럼 지금의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2. “이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Feat. 서장훈)


최근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1, 2차 대선토론을 보면 도대체 저 대선토론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2차 토론의 경우 진흙탕 싸움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락거리로 즐길만 하기는 하다. 하지만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에게 사실 정책이나 도덕성, 국정 운영 전방에 대한 지식 같은 걸로 어필하는 건 크게 의미 없어 보인다. 국내 뉴스에서 많이 인용하는 진보성향의 <뉴욕 타임즈>나 <CNN>에선 힐러리의 우세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 내 시청률 1위부터 10위까지 뉴스 프로그램 중 9개를 차지하고 있는 <FOX TV>에선 반대의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성향에 따라 대선 토론 우열의 결과는 제각각이다. 문제는 토론의 내용이 아니다. 이미 지금의 미 대선은 토론의 우열에 따라 지지성향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 분석 전문기관인 ‘538(Five Thirty Eight)’은 1976년부터 2012년까지 총 9차례의 미국 대선 결과를 분석한 결과, 2차 토론이 지지율에 미친 영향이 2% 안팎인 경우가 7차례나 되었다는 보고를 한 적도 있다. 특히 이번처럼 정책과 정당이 중심이 아닌 경우에는 그렇다. 아마도 트럼프는 그걸 잘 알고 힐러리의 과거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을 것이며, ‘아님 말고’ 식의 막말과 비아냥을 거리낌 없이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믿기지 않겠지만 이러한 전략은 이미 지난 한국 대선 때 개발된 것으로, 박ㄹ혜 대통령에게 저작권이 있는 스킬이다.




내 목숨은 아까워 걸지 못하지만 딴지일보 부편집장의 귀두 반쪽을 걸고 나는 확신한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 캠프에서는 분명히 지난 한국 대선의 박근혜 캠프를 벤치마킹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한국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선거 전문가(들)가 트럼프 캠프에 취업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복사한 듯한 스탠스를 유지하겠는가 말이다.


물론 언변이나 문장 구축의 측면에서 트럼프와 박근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특유의 언변 속에 유머가 있다. 차마 체면과 도덕성 때문에 하지 못하고 참아왔던 말을 속 시원히 대변한다. 자신의 최대 약점이 될 수 있는 문제(세금 탈루 등)를 노련하게 받아치며 자신의 장점으로 우길 수 있는 능력 또한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곧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에 반해 그네 누나는 말해야 할 때 안함으로서 주변과 아랫사람을 조진다. 의중을 내비치지 않으면 아랫사람들은 그녀의 복심을 헤아리지 못해 두려워 하고 그 두려움을 과잉충성으로 보상받으려고 한다. 둘 모두 장단이 있다.



3. 하필이면


레이건 행정부 출범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세금감면, 복지 축소, 파업 중이던 13,000여명의 항공 교통 관제사들을 모두 해고함으로써 미국 노조 해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80년대 이후, 우리가 동경해마지 않던 미국의 중산층 모습은 TV에서 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주말이면 바베큐를 구우며 동네 이웃을 초대해 수영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이제 일상적인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 병에 걸리면 파산을 걱정해야 하고, 오늘 해고가 되어도 항변할 방법이 없으며, 200년 넘은 미 대륙 개척 초기 수정 헌법 2조를 빌미로 끊임없이 로비하는 군수업체 때문에 수없이 발생하는 총기 사고조차 제재할 수 없다.


누구보다도 절실한 건 미국인들이다. 레이건 이후 클린턴도, 아빠 부시와 아들 부시도, 바뀔 거라 믿었던 오바마도 바꾸지 못했다. 의료비는 더 올랐다. 엄청난 빈부격차와 꿈쩍하지 않는 정경로비 구조 바깥에 있는 대안이 하필 트럼프인 것이다. 우리가 하필 이명박이었던 것처럼.



4. 곧 멸망할 텐데 누가 되어도 괜찮아


2040년이면 어차피 인류는 영생의 길을 가거나 멸망할거니 사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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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는 초지능 시대(링크. 내 글 보다 2040년 초지능 글이 1조배 쯤 유익함)에 살며 2016년을 ‘참 별난 놈들이 해먹었던 시대’로 되새기며 추억의 한 장으로 생각할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현실을 산다.


그래서 이 의미 없는 미국 대선 토론도 의미 있다.


미국의 대선이, 한국의 대선이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으며 믿기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만들어 내려고 하는지 되짚어 보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하기도 전에 멸망해버릴 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럴껄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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