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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 디질 것 같았던 여름이 저물고 미쳐 알아채지 못하던 외로움이 5배쯤 진하게 몰려오는 가을입니다. 그런데뜬금없이 국산맥주가 많이 나왔습니다. '왜 가을초입에?'라는 생각을 하게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대충 넘기며 맥주를 마실 뿐입니다.




1. 호가든 유자


최근의 움직임을 보자면 맥주를 통한 세계정복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는 AB-Inbev의 산하 기업인 OB맥주에서 새로이 맥주를 내놓았습니다. 이름하야 호가든 유자(hoegaarden yuja). 이제는 한국기업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기업의 브랜드, 그마저도 OB맥주 자체 브랜드가 아닌 벨기에 브랜드 호가든을굳이 소개드려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나름 (무려) 한국 한정판인데다가 한국 양조장에서 생산했으며 레시피도 OB에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기대(의 근거따윈 물론 없습니다)에 가득 젖은 관계로 한국 맥주라고 셀프 최면을 걸게 되더군요. 그래서 일단 마셔봤습니다. 


'호가든 유자'를 만들어 내놓은 이유는 이렇다고 합니다. 


세계3대 맥주대회로 불리는 권위 있는 주류 품평회 '2016 월드 비어 컵(WBC)'밀 맥주 부분 금메달 수상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만든 가을,겨울 시즌 한정판 제품이다. 


대체 누가 WBC를 세계3대 맥주대회라고 이름 붙여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유치원 졸업식에서 받는 상장은 거기 뭐라 적혀있든 기쁜 법이지요. 일단은 금메달 수상, 매우 축하드립니다. 가을, 겨울 시즌 한정판이라면 좀 더 묵직하고 진한 맛의 맥주(예를 들면 호가든 그랑크루나 포비든프룻 같은)를 베이스로 해야 적절했을 것 같은데 여름에 매우 잘 어울릴 호가든 블랑셰를 베이스로 준비하였다니 뭐 쫌 어색하고 그렇습니다. OB맥주에서 국내 생산 가능한 호가든 레시피가 호가든 블랑셰 뿐인걸 알고 있기에 투덜거려봐야 바뀔 내용 따윈 조금도 없겠지만, 이럴 거면 '가을,겨울 시즌 한정판' 같은 소리는 빼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물론 가을, 겨울이라고 밝고 가벼운 맥주를 마시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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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가든 유자 - 4.9% 


500ml(캔제품), 구입처는 이마트. 가격은 2,500원(4캔에 8,800원 행사를 하고 있었지만 혹여 지뢰일 경우에 나머지를 처리하기가 두려워 한 개만 샀습니다).


기존 호가든 캔 디자인에 노란색을 덧입혀 유자의 이미지와 함께 상큼상큼을 뿜어내는군요.


노랗고 탁한 외관. 호가든의 익숙한 과일 향, 고수 향 등이 흘러나오는데 유자 향이 잘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한 입 크게 마신 후 가볍게 튀어나온 숨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정도더군요. 맛도 호가든에 비해서 딱히 달라보이는 무언가는 없었습니다. 어딘가 숨어있을 유자맛을 찾고자 집중을 다 했으나 호가든의 기본 맛 자체에 가려져서 느껴지지 않더군요. 다행히도 다른 맛들이 사라진 이후에 맛의 층위 밑바닥에 숨어있던 유자 맛이 살며시 '저 여기 있어요~'라고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유자를 쓰고 맛 없기도 쉽지 않다'는 홈브루어들의 말을 들어왔기에 기대감이 조금은 있었는데 이건 실망스럽네요. '맛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명색이 '호가든 유자'라고 이름을 붙였으면 유자 맛이 충분히 느껴져야 할 텐데 무려 "일조량이 풍부한 전남 고흥에서 재배한 최상급 유자"의 꼬다리만 살짝 담갔다 뺀 느낌이랄까, 유자 맛이 너무 약했습니다. 그냥 호가든에 유자청을 한 스푼 넣고 쉐킷한 후 마시는 게 머리 속에 그렸던 호가든 유자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싶을 정돕니다. (그냥 호가든이 호가든 유자보다 비싼 건 함정.)


그나마 다행인 건 호가든의 맛 자체가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있어서 유자 캐릭터에 대한 기대만 접어둔다면 시원하게 마시는데 나쁠 것은 없겠다는 것입니다. 3개월 한정생산이라니 경험치삼아 한 번 마셔볼까 싶으신 분들은 부담없이 즐겨보심도 괜찮겠습니다. (허나, '오오오 유자'하고 마셨다가는 큰 실망을 할 것이야!)




2. 과르네리


동대문에는 털보 김어준 총수의 절친인 오세훈 덕에 탄생한 역작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DDP(동대문 어쩌고저쩌고)죠. 그곳에는 과르네리라는 탭 하우스가 있습니다. 자체맥주와 다양한 수입 맥주를 만날 수 있는 맥줏집이지요. 물론 가본 적은 없습니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DDP가 싫다는 이유와 제 삶을 좀 먹고 있는 진한 게으름의 시너지 효과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이 과르네리는 순창의 장 앤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양조된 자체 맥주 6종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의 병입제품을 전국으로 유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병입 제품 자체는 꽤 오래전부터 만들어졌었고 몇몇 곳에서는 구해 마실 수도 있었습니다. 전국 유통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1년하고도 몇 개월 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딱히 소식이 없기에 잊고 있었는데 드디어 마트에서 만나게 되었군요. 대형마트 상대하기가 쉽지 아니하였을텐데 그들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더 부스'나 '플레이 그라운드', '핸드 앤 몰트' 등에서도 캔, 병입 제품을 내고는 있지만 전국유통까지 들어오진 않고 있는데 이들 제품도 동네 마트에서 만날 수 있다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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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IPA순창, 라우흐비어 밤베르크, 레드에일 아이리쉬

필스너 체코, 헤페바이젠, 스윗 스타우트.


홈플러스에서 구입했으며 IPA순창, 라우흐비어 밤베르크, 레드에일 아이리쉬, 필스너 체코, 헤페바이젠, 스윗 스타우트 이렇게 6종입니다. 330ml 병 당 가격은 모두 3,900원이었지만 3병당 1만 원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관계로(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병당 3,300원꼴에 산 것이 되겠군요. 스타일이 다른데 가격은 모두 동일한 것이 조금은 의아했습니다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국산 맥주는 행사 참여에 제한이 있는 걸로 아는데 3병 만 원 행사에 참여를 했네요. 국산 맥주에 걸려있는 규제내용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라 그냥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오랜 기간 준비한 분들이시니까 적절히 가능한 선에서 참여한 것이겠지요.



 IPA순창 - 6.5% 


흠... 'IPA라고? 이게?'가 제 소감의 전부였습니다. 심히 슬펐습니다. 



 라우흐비어 밤베르크 - 5.2% 


소세지탄내, 소독약, 나무연기 냄새. 바싹구운 소세지 혹은 베이컨 맛, 얇은 스모키. 마이너한 장르인 라우흐비어를 만든다는 자세 자체에는 경의를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라우흐비어를 마신 게 대략 3년전의 '슐렌케를라'인 관계로 맛의 비교가 어렵고 라우흐비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평은 접어두겠습니다.


*라우흐비어는 훈연, 훈제 맥주라 불리는 독특한 스타일의 맥주입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레드에일 아이리쉬 - 4.4% 


토피, 허브 향. 빵이나 비스킷 같은 바삭바삭한 고소함을 기대했지만 약간의 단맛이 느껴지는 정도군요. 입안에서의 움직임이 매끄러워서 음용성은 좋은 편입니다. 뭔가 아이리쉬 에일에서 기대되는 맥아적 특성이 없다는 게 아쉽군요. 정보 없이 마셨다면 가벼운 아메리칸 레드 에일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스너 체코 - 4.8% 


적절한 탄산과 비터, 고소함. 헤페바이젠과 마찬가지로 별 기대하지 않고 마셨는데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맛의 길이가 약간 짧은 듯 하여 아쉽지만 나름 마실만하군요. 물론 할인행사가 패시브 스킬 마냥 따라붙는 필스너 우르켈이나 부드바르를 이길 가능성은...



 헤페바이젠 - 5.2% 


정 향, 청사과 향? 약간 가벼운 성향의 바이젠입니다. 약간의 떫음과 텁텁함이 혀에 남는군요. 바이젠이 만들기 쉬운 맥주는 아닌 관계로 그닥 기대하지 않고 마셨는데 생각보다는 형태를 갖췄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4캔 만 원, 5병 만 원 행사에 항상 나오는 독일 바이젠과의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스윗 스타우트 - 3.3% 


스윗 스타우트답게 부드럽고 달달함을 기대했으나 이름과는 달리 그냥 가볍고 무난해 실망스러웠습니다. 로스팅된 몰트, 커피, 나무 탄 맛, 견과류의 맛이 느껴졌습니다. 초반에는 조금 강한 탄산감이 혀에 달라붙어 맛을 방해했고 탄산이 사라진 후에는 그저 가볍고 묽은 느낌뿐이었습니다. 스타일은 조금 다르지만 코젤다크처럼 낮은 도수와 음용성을 내세우려 했던 것일까 싶었지만 그렇게 생각해봐도 역시 실망스러움이 가시진 않네요.


노력에 감사하나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제 안의 기대가 컸던 것일까요.




3. 강서 마일드 에일


이제는 나름 이름이 알려진 중소기업 맥주회사인 세븐브로이의 신작입니다. 펍에서 마시는 맛을 병이나 캔에서는 살려내지 못하는 미스테리함을 무기로 조용히 응원하던 제 마음에 긴 상처를 입히고 있지요. 그래도 수입맥주 가격으로 출고하면 무려 스컬핀의 맛도 낼 수 있다고 주장할만큼 자신감이 있는 업체이니 기대감 가득히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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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글로 이름을 만들었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강서 마일드 에일 - 4.6% 


구입처는 홈플러스. 가격은 과르네리와 동일하게 3,900원. 3병에 1만 원 행사 중.


세븐브로이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동안의 지속된 실망 덕에 이번에도 큰 기대 없이 마셨습니다. 다행히 약간의 두려움이 앞서던 마음이 미안하게도 생각보단 마실 만했습니다. 감귤류의 향과 풀 향기, 맛에선 맥아의 특성이 진해서 홉 캐릭터가 많이 가려지는 점이 아쉬웠습니다만 그래도 마실 만은 하였습니다. 조금 더 밝게 만들면 어땠을까 싶지만 양조자가 의도한 바가 따로 있겠지요.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세븐브로이의 전작 중 하나인 라쿤시리즈 코리아 페일에일과 유사한 모양새가 아닌가 싶습니다. 코리아 페일에일 베이스에 홉의 특성을 좀 더 가미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역시 근거 따윈 없습니다. 특이하게도 괴작이라는 평가와 그리 나쁘진 않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어느 쪽이 많냐하면 괴작이라는 평가가 더 많지만...). 제 입은 그리 나쁘진 않다는 쪽이었습니다. 취향을 존중해주세요.


2천 원 정도로 팔린다면 가끔 마실 것 같습니다.




*모든 맥주는 협찬 받았을 리가 없습니다.


*병신같은 주류세 체계는 언제쯤 바뀔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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